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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22)

카지모도 2026. 5. 12.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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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근이가 황회의 옆구리를 쿡쿡 내질렀다.

"그래 차차 장가라두 들기루 하구."

복만이는 또 다짐하였다.

"그러구...이건 알아두게나. 솔부리 두령은 나야. 우리네는 율령이 엄정하니까 미지근하게

굴지 말아."

"압다 넨장맞을...그래 두령님이라구 불렀다!"

황회가 볼멘소리로 내지르자, 정원태가 껄걸 웃으면서 참견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좌우 두령을 하면 되지 않겠나?"

"그게 좋겠군, 난전을 나가는 패와 행상 나가는 패가 있구, 손보러 나가는 패가 있는데...

자네들 시방 올라가면 집털이부터 해야 되네."

"흥, 가장 어려운 짓이나 시키려구 하는구먼. 우린 저자루 나갈까 했더니, 쫓겨 다니는 워

리새끼처럼 화적질이나 댕기란 말여?"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잡아놔야 두령 노릇을 해먹지." 의논이 정해져서 황회와 고달근

이는 복만이를 따라서 천마산에 올랐다. 묘적산 척추 능선을 타고 말고개를 넘어 천마산 북

녘을 돌아드니 햇빛도 들지 않을 짙은 송림이 눈 아래 깔리는데, 솔부리골은 그 한복판에

으슥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미 고달근이와 황회의 이름은 솔부리골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좌우 두령이 되어 제 밑에 십여 명씩의 졸개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한달 가까이 방구석에 쳐박혀 술이나 퍼마시고, 가끔 노적사에 내려가거나 송파 나가서

투전이나 하고 돌아오는 날을 보내자니 두 사람은 워낙에 뜨내기 성질이라 좀이 쑤셔서 견

딜 수가 없었다. 복만이는 이틀이나 사흘 걸러서 난전을 휩쓸고 돌아오고는 하건만, 그들에

게는 도통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참다못한 고달근이와 황회는 복만이 일행이 말을 끌

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마중하여 나가면서 불평을 터뜨렸다.

"아니 우린 무슨 오다가다 얹혀 있는 식객이라던가? 솔부리서 나가라면 곱게 나갈 테여."

먼지를 횟박처럼 뒤집어쓰고 돌아온 복만이는 제가 데리고 나갔던 난전꾼들을 흘깃 돌아보

며 서로 웃었다.

"왜 푹 쉬라구 그랬지. 심심하면 낼부터라두 애들 데리구 나가 놀아보게. 하다 보면 안이

생길 게야."

"글쎄 그래서 의논을 해보자는 게 아닌가?"

"그러지. 오늘은 좌우 두령을 모시고 술이나 마셔볼까." 복만이는 그들을 자기 살림집으

로 데려갔다. 그에게는 아내가 둘이 있었으니, 모두 동작나루 있을 때 데리구 다녔던 앳된

사당들이었다. 양갓집 아낙네 같은 모양이었으나 사내들 앞에 거리낌없이 나돌며 수월하게

농을 던지니 예전 자지간나희의 습관이 배어 있는 듯하였다. 술상을 마주하고 앉자, 복만

이가 그들의 일거리에 대하여 말을 꺼냈다.

"내 대강의 요령을 일러줄 테니 잘 새겨 듣고 일해보게. 물론 자네들이 할 일이란 도적질

이나, 여기선 수십여 인이 작당하여 집을 들이치고 사람을 죽이고, 하는 난리를 치러선 안된

다 그 말야."

"그럼 좀도적질밖에 더하겠나."

"허허, 얘기를 들어보라니까. 보통 서넛이 나다니고...고작 작당해야 열을 넘기지 말게. 사

람을 잡아놨다가 돈과 바꾸어도 되고, 부잣집에 일시에 들어가서 협박하여 돈이 될 것들만

꾸려가지고 나오거나, 손님으로 찾아가서 은근히 위협하여도 되네. 유람 다니는 셈치구 나다

녀보게. 우선 살피는 아이들을 내보내어 몇집 알아두었다가 자네들이 찾아가 직접 확인하고

그 다음에 거사하도록 하게. 그렇게만 하면 뒤도 구리지 않구, 벌이두 쏠쏠하단 말야."

"흠 듣고 보니...이제 좀 알겠구먼."

"우린 언제 저자에 나가보나?"

"가만있어. 대목 볼 제 일러줄 테니..."

하고 나서 복만이는 인심을 쓰듯이 일러주는 것이었다.

"달근이 자네는 어느 댁 귀한 장손이나 하나 물어들이고, 그리구 황가 자넨...조상을 사서

팔게."

복만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노라 하는 부잣집의 선산을 파다가 해골바가지만 떼어두고 돈냥하구 바꾸자구 그런단

말야."

달근이와 황회는 역시 그럴 듯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절대루 그런 일감을 솔부리까지 묻혀 오면 안되네. 거기 가까운 고을의 객줏집이나

주막에 묵으면서 일을 다 마치고 밑까지 닦구 나오란 말야. 그러구 일테면...갈 적에는 하인

거느린 양반 차림을 하든가, 그리구 돌아올 적에는 행상으로 바꾼다든가 해서 남의 눈에 유

독 뜨이지 말란 얘길세."

"알겠어, 낼부터 슬슬 시작을 할 테니까...이력이 날 때까지 너무 괄시하지 말게니." 달근

이와 황회는 역시 복만이의 두령 자격을 수긍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안

을 내는 데엔 고달근이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위인이었으므로 복만이의 그러한 거드름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저놈 어디 얼마나 오랫동안 두령 노릇 해처먹는지 두구 봐야겠다." 황회도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으나 달근이와는 성깔이 다른 데가 있어놔서, "뭘 우두머리 노릇을 해먹자니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눌러두고 말았다. 복만이가 안을 내어준 대로 그들은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서 제각기

박거사와 시동이를 불러 이러저리 하라고 지시하였다. 제각기 나갔던 박거사와 시동이는 소

견대로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잘 살피고 돌아왔고, 먼저 고달근이가 솔부리골을 출발하게

되었다.

고달근이는 박거사에게 견마를 잡혔으며 장죽 물고 통영갓에 도포를 떨쳐 입었고, 졸개

둘은 교꾼으로 꾸며 빈 가마를 메도록 하였다. 누가 보기에도 점잖은 댁의 부부가 나들이를

가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말고개에서 가평가는 길로 들어서서 북한강 줄기를 따라 올라갔다.

육십 리 길을 중화참에 가평에 대고는 동떨어져 한적한 주막을 찾아서 사처를 정하였다.

"내행이 오셔 계십니까?"

"아닐세. 안사람을 친정으로 데리러 가는 길에 내가 여독이 들어 잠깐 쉬었다 가려는 겔

세. 예서 한 사날 묵을 것이니 돈은 미리 받소."

하며 달근이는 숙식대를 후하게 내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달근이는 박거사만을 데리고

바람을 쏘인다며 주막을 나섰다.

"게가 어디라구 했지?"

"포천 못미처서 연골이라구 있습니다. 동학산 굴재 아랫녘이우." "그 집의 내막을 이틀

사이에 어찌 알아냈냐?"

"성님 내가 왜 모르우. 곰뱅이 트러 다닐 제 내가 매번 촌의 장로들을 찾아뵙구 간청하구

안했습니까? 웬간한 시골 부자들 집구석 사정은 내가 뜨르르 꿴다우."

"그 집서 괄시받았구나."

"괄시 정도가 아니우. 시골서 농사깨나 지어 먹는다구 관을 쓰구 젠척하는데, 도의 풍속은

족보 어엿한 양반보다두 더 따집디다. 그 집구석 머슴놈이 우리 애를 샀는데, 내 참, 끌려가

서 행하기는커녕 볼기를 맞은 적이 있수."

"거 아주 잘되었다."

"자손이 바른 집안이라니 우리가 맞춰놓은 자리나 매한가지유." 그들은 가평서 연골까지

나아가 노리는 집이 있는 동네를 살펴보았다. 제법 전장이 기름지게 정돈되어 있었고 뒷산

의 숲이 울창하여 먼데서 보기에도 그럴 듯이 포실한 마을이었다. 닭 우는 소리와 소의

울음이 어우러지니 농사는 제법 풍요한 모양이었다. 삼십여 호가 옹기종기 자리잡은 가운

데 덩그렇게 치솟아올라간 기와집의 지붕이 보였고, 솟을대문 앞에는 둥치가 아름은 되는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도령이 서당에 가는 길이 어느 쪽이냐?"

"내 그저께 하루 종일 버티구 앉아서 살폈더니, 회산 쪽으루 동무들과 어울려 갑디다. 거

기 서당이 있는가 보우. 한 오릿길 될 게요."

"길은 살펴봤니?"

"까짓 거 아무데서나 콱 덮쳐서 업어 오면 되는데 살피구 자시구 할거 없수." 고달근이

는 역정을 내었다.

"이런 망할 자식 같으니...이놈아, 시골 종년 훔쳐오는 일이 아니여. 그래두 명색이 시골

양반의 씨종손을 도적질하는 일인데 그런 채비도 없어 되겠니. 섣불리 하다가는 가평서 오

도 가도 못하구 잡히구 만다."

"딴은 그렇구먼요."

고달근이는 앞서서 길을 따라 내려갔다. 회산을 향하여 한참을 내려가니 기다란 내가 흐

르고 있었고, 소나무 가지를 엮어놓은 다리가 나왔다. 달근이가 문득 냇가에서 걸음을 멈추

더니 혼자서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한길까지 나가려면 저 냇가를 주욱 따라가면 되겠군. 북한강으루 흘러들 테니까.

아주 좋은 길목이로구나."

고달근이가 다시 박거사에게 물었다.

"도령의 얼굴은 아니?"

"알다뿐이우. 더구나 그놈만 복건에 철릭을 걸쳤으니 십리 밖에서두 알아보겠수."

"집안의 어른이 조부냐?"

"아비는 아마 일찍 죽은갑디다. 그러니 더욱 금지옥엽이지요."

"자 어서 돌아가자. 낼 식전에 나오려면 일찍 자두어야지."

그들은 다시 가평으로 돌아와 이튿날 날이 새기가 무섭게 찬밥을 말아 먹고 주막을 출발

하였다. 주인에게는 내자를 데리러 간다고만 말해 두었다.

처음 떠나올 때처럼 달근이가 견마 잡혀 앞에 갔고 빈 가마가 그뒤를 따랐다. 그들은 한

아비내에 이르러 가마를 숲속에 숨겨놓고 다시 모자란 아침잠을 잤다. 해가 높직하니 떴을

때 달근이는 졸개들을 시켜 소나무 다리를 걷어내도록 했고 걷어낸 생솔가지들은 무릎 깊이

로 콸콸 흘러가는 개천물에 모두 떠내려 보냈다.

아이들이 서당에 갈 시간쯤 임박하여 밭 보러 나온 농군처럼 두 졸개는 개천 가에서 서성

거리고 있었다. 망을 보던 박거사가 손을 내저으며 뛰어와, "애새끼들이 몰려옵니다."

다급하게 외쳤고, 달근이와 함께 숲 사이로 숨었다. 잠시 후에 과연 아이들 댓 명이 재잘거

리면서 길을 따라 오는데 그 가운데 복건에 남철릭을 입은 도령이 보였다.

"어이구, 고뿔이라두 들려서 못 나올 줄 알았네."

"이 자식아 그랬으면 네놈이 여기서 노숙하면서 기다렸을 게여." 박거사와 고달근이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일단 일이 잘 풀려 나가리라 안심은 되었다. 아이들이 손마다 천

자문책을 끼고 졸음이 방금 가신지라 귀엽게 통통 부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서 개천가에 옹

기종기 몰려 서 있었다.

"얘, 다리가 떠내려갔으니 어쩌니."

"이거 큰일났구나. 옷이 다 젖겠네."

하더니 총각 꼴이 박혀 뵈는 아이놈 하나가 도령에게 말하였다.

"내가 댁에 가서 먹쇠를 불러올까요?"

"도련님은 예서 기다리시지요."

아이들은 제각기 떠들었다. 그때에 냇가를 서성대던 두 졸개가 앞으로 나서면서 허리를

굽신하였다.

"어유 도련님 평안하십니까?"

"소인들 문안 올립니다."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고, 도령은 제법 야무지게 물었다.

"자네들은 누군가?"

"저희를 모르십니까요. 소인들은 도련님을 잘 알지요. 광악골 사는 사람들이올시다. 재넘

이 논에 두레 나가서 샌님두 모셨구요, 잔치 때마다 나뭇짐두 해다 그리구 술두 여러번 얻

어먹었습죠. 작은나리마님이 살아계실 제는 소인들이 그 댁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다리가 떠내려갔구먼이요. 까짓, 저희가 회산까지 업어다 드리지요." 아이들은 모두 반가워하였고 도령도 적이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자네들을 월천꾼으루 부려서 안되었네."

"에이 월천꾼이라닙쇼. 서당에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먼저 한 놈이 도령을 덥석 업고서

텀벙대며 내를 건너갔다. 다른 자는 바지를 추스른다 신들메를 고쳐 신는다 하면서 엔간히

지체한 다음에 남은 아이들을 하나씩 업어 건넸다. 아이들은 제 동무가 건널 때까지 모두

기다리게 되었는데, 도령을 업고 간 자는 이미 길에서 벗어난 뒤였다.

아이들은 모두 도령이 광악골 농군의 등에 업혀 사당으로 앞질러갔거니만 여기고 뒤에 남

았던 자에게 인사하고는 다시 평화롭게 재잘거리며 멀어져갔다. 달근이와 박거사는 벌써 졸

개가 업어 온 도령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발을 묶은 뒤에 여자의 장옷을 두텁게 씌워놓은

뒤였다. 가마 속에다 도령을 쳐넣고 나서 그들은 서둘러 한아비내를 따라서 가평으로 되돌

아갔다. 주막으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라 그들을 가평 읍내 가까운 야산에다 가

마를 내려놓고 낮잠을 자면서 하루 낮을 보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호랑이밥이 되게 깊은 산속에다 버린다. 소리를 지르지두 말구, 울지두

말어라."

하면서 그들은 번갈아 아이에게 어지간히 공갈밥을 먹여 주눅을 들게 해두었다. 인가에 가

서 낭패할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눈은 가린 채 재갈만을 풀어주어 요기를 시키니, 역시 아이

가 영리하여 주는 대로 다소곳이 받아 먹었다.

그날 밤이 이슥해서 그들은 가평 주막으로 돌아갔고, 주인은 손님들이 어김없이 되찾아오

매 넓고 깨끗한 부부 방을 치우고 법석대었다. 그들은 주인 사내가 보는 앞에서 장옷을 씌

운 도령을 업어다가 방에 누이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들씌워두었다.

"아씨께서 불편하신가요?"

"신열이 보통이 아니라네. 어차피 며칠 더 쉬어야 길을 떠나겠는걸." "의원을 불러다 드

릴까요?"

"괜찮네. 나두 의서를 봐서 약간의 진맥은 할 줄 아니까. 그보다두 아내가 몹시 아프니 이

쪽엔 잡인이 얼씬하지 않도록 해주게."

주인도 함께 걱정스런 빛이 되었다.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손님이 와두 이쪽으로는 들이지 않겠습니다." 일단 일이 반

쯤은 성사되었으므로 고달근이는 매우 흡족하였다. 밤을 새워 번을 바꾸며 파수를 드는데

지장이 있을까 하여 그는 먹고 싶은 술도 참았고, 졸개들을 몹시 단속하였다.

"내일 하루가 고비여. 하룻밤만 눈뜨고 새울 작정들을 해라." 이튿날 오후에 느지막이 졸

개 한 놈이 연골 도령네 집을 향하여 출발했다. 고달근이는 그에게 이리저리 하라 이르고,

다시 그에게 반복해서 말해보도록 시켜놓고야 마음을 놓았다.

졸개는 한달음에 뛰어서 연골에 도착했고, 생원 집의 솟을대문 앞에 이르렀다. 하인을 찾으

니, 그의 차림새를 보고는 더 이상 말도 않고 대문을 닫으면서, "집안이 우환중인데...구걸

하려면 똑똑히 알아보구 다녀라."하며 투덜대는 것이었다. 졸개가 목청을 높여서 오히려 그

하인을 꾸짖었다.

"이런 쓸개 빠진 놈아, 이 댁 도령이 없어졌으면 산지사방으루 찾아다녀도 아랫것 노릇이

부족할 텐데, 공밥이나 처먹구 축객이나 하려느냐?"

하인의 귀가 번쩍하여 대문을 열었다.

"시방 뭐랬어?"

"이 댁 도령을 맡았다는 사람이 보내어 찾아왔다. 왜?"

"어...이건...!"

갑자기 하인이 안으로 달려들어가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샌님, 아씨, 찾았습니다. 찾았어요. 도련님을 찾았습니다." 하자마자 사랑의 문이 열렸고

안채에서는 부녀자들이, 부엌에서는 계집종들이며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하인은 문

밖에 섰는 졸개를 연방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랑 마루로 뛰어나오는 늙은이가 생원인 모양

인데 도포에 유건을 쓰고 풍채가 제법 그럴 듯하였다. 노인은 다급했는지 버선발로 댓돌까

지 내려섰다가 다시 마루 위에 오르며 졸개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아이가 어디 있느냐?"

"이...이 사람이 안답니다."

"자네가 안다구...어디 사는 누구길래..."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면서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졸개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고

말하였다.

"예, 저는 시방 영평까지 서신 급주를 뛰는 방자이올시다. 방금 굴재를 넘어오는데 험상궂

은 장정들 서넛이서 앞길을 막아서더니 다짜고짜로 몸을 뒤지데요. 품속에서 서신이 나오자

그것을 빼앗고는 칼을 들이대고 핍박하여 말하기를, 저희들 심부름을 먼저 해주지 않으면

서신도 내주지 않으려니와 다시는 굴재를 넘을 생각을 말라구 합디다. 그리고는 돈까지 닷

냥을 주었습지요."

생원이 다급하게 물었다.

"우리 집 아이가 그놈들게 잡혀있던가?"

"예.저...그자들이 손짓하는 곳을 바라보니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았는데 허기지고 피로하여

사색이 다 된듯하더이다."

이때 사랑 마당에 모여 서서 주시하던 아낙네 중에 늙은이와 젊은 여자가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통곡을 터뜨렸다. 하녀들도 저희끼리 소리를 질렀고, 마루 위의 생원은 털썩 주

저앉았다.

"누가 관가루 달려가서...포도 군관을 데리구 오너라." 그러나 졸개는 그런 말을 놓치지

않았다.

"소인이 알기로는 만약에 관에 알리면 머리만을 베어, 이 댁 담장 너머로 던져버리겠다구

하더군입쇼."

생원은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넋이 빠진 듯이 입을 벌리고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자들의 전갈을 말씀해 올리겠으니 좌우를 물리치십시오." 졸개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난 생원이 그제서야 마당에 주저앉아 땅을 치는 안식구들을 내려다보았다.

"왜...이런 소란들인고? 모두들 물러가 있도록 해라."

"아버님 제발 덕분 저희 모자 살려주십시오. 재물이든 무엇이든 다 내어주고 그애를 데려

오게 해주셔요."

"여보, 그애는 우리 집안에 하나뿐인 종손이어요."

"모두들 물러가 있소. 자넨 잠깐 들어오게."

졸개는 생원의 뒤를 따라서 사랑으로 들어갔다.

"자네두 고생이 많네, 그래 그놈들이 뭣 때문에 우리 아이를 잡아두고 있다던가?"

"돈 삼백 냥을 원한답디다. 삼백 냥을 소인 편에 건네주면 아이를 다시 소인이 데려다

드리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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