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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23)

카지모도 2026. 5. 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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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 냥이라...우린 장사하는 부상대고가 아니니 갑작스레 그 많은 돈이 집안에 쌓여 있

을 리가 있나? 있다면 창고에 쌓인 미곡뿐인데."

"그놈들은 돈이거나 돈이 될 만한 금붙이, 은자, 패물 따위를 보내라구 합디다. 도련님을

살려내셔야지요."

"음...기한은 얼마나 주겠다던가?"

"예, 하루 길어야 이틀 말미를 주는데 그 이상 늦어지면 굴재에다 죽인 시체만 남겨두겠

다구 그랬지요."

생원은 연상 안절부절 못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는 급히 안채로 들어가 부인과

의논하는 것 같더니 피농을 들고 돌아왔다.

"우리 집에 있는 금붙이와 패물과 돈의 전부인데 삼백 냥어치는 될게야. 내 사람을 딸려

보낼 테니 어서 전해주어. 아이가 돌아오면 너에게 따로 수고비를 주겠다." "아이구 뭐 수

고비랄 것두 없습니다. 저두 갈 길이 바빠서요. 헌데 그자들과 내일 정오에 한아비내 건너

편 숲에서 만나기루 했습죠. 돈하구 도련님하구 바꾸는 겝니다." "어찌 이 긴긴 밤을 새운

단 말이냐. 어린 것이 두렵고 배가 고파서 기진하여 죽은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생원은 탄식을 연발하며 오락가락하였다. 생원은 끝내 관가에는커녕 마을의 그 누구와 상

의 한마디 할 수 없는 채로 달근네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기로 하였다. 졸개는 그 댁에서 융

숭한 대접을 받고 하룻밤 묵은 뒤에 길안내를 섰고 건장한 하인 두 사람을 거느린 생원이

뒤를 따라왔다. 약속한 시각쯤에 그들은 한아비내를 건너 전나무숲에 이르렀다. 그들이 숲

어귀에 이르니 길 쪽을 망보고 있던 자 하나가 튀어나와 외쳤다.

"돈을 가지구 왔느냐?"

앞섰던 졸개가 손을 흔들어 보였고, 달근이는 도중에 가마를 골짜기에 처박아두고서 걸려

왔던 아이를 데리고 나와 그들에게 내보였다.

"돈을 가지구 오너라."

졸개는 생원의 떨리는 손에서 피농을 받아들고 제 일당들에게로 달려갔다.

"금붙이하구 패물이며 돈꿰미가 들었수. 삼백 냥이 넘었으면 넘었지 모자라진 않을 게유."

달근이는 곰보 상판을 일그러뜨리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가만있자, 아이놈을 여기서 보내놓고 나면 뒤가 뜨거울텐데..." 고달근이는 잠깐 생각해

보고 나서 생원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댁의 손자를 굴재까지 데리구 갈 테니 거기 와서 찾아가오." 우리 퇴로를 안정시켜놔야

겠으니 굴재로 오시우. 거기다 두고 갈테니..." 고달근이는 아이를 덥석 안고 숲으로 뛰쳐들

어오며 졸개들을 재촉했다.

"어서 내치자!"

"도령은 어쩔라구?"

"그야 아무 데나 한적한 곳에다 버려두면 울며불며 인적을 찾아갈테지." 그들은 부지런

히 뛰어서 회산의 줄기가 끝나는 데까지 가서 아이를 길에다 내려놓았다.

그들은 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평을 지나면서부터는 말에다 피농을 싣고 달근이는

도포와 갓을 벗어 던지고 맨두건 바람이 되었으니 모두들 행상 나갔다 돌아오는 장사치의

모양이 되었다.

"사나흘 고생하구 삼백 냥이면 첫손치고는 과히 부끄럽지 않구나." 달근이는 천마산 솔

부리골로 돌아가며 은근히 황회의 일이 궁금하였다. 곁을 따르던 졸개가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입쇼. 하루벌이 백 냥씩이면 천릿길 행상의 상리보다두 월등합죠. 대개들 이런 벌

이를 하구 나면 한달씩 쉽니다. 우리 솔부리 들어가지 말구 한양 성내 색주가에나 들러 한

번 노십시다."

"이번만은 참고,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 솔부리에 갔다가 아예 송파 나가서 한 보름 뒹굴

다 오자꾸나."

고달근이가 첫 번 일을 나가 보기 좋게 해치우고 의기양양하여 솔부리골에 돌아오니, 황

회는 이미 먼저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달근이와는 달리 못시 시무룩하였다. 좌우 두령

이 함께 쓰는 초막에 들어 고달근이는 털어온 물건들을 피농에서 꺼내어 값을 따져보고 있

었다.

"흠, 금부처 하나, 옥지환 한쌍, 은 백 냥, 돈 열 냥짜리 다섯 꿰미, 삼백 냥이 넘었으면

넘었지 모자라진 않겠다. 복만이에게는 백오십냥이라구 말하구 나머지 졸개들게 오십 냥, 내

가 백 냥을 먹으면 좋겠구나."

곁에서 시무룩하고 있던 황회가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에이 넨장맞을...나는 이게 무슨

꼴이야."

하면서 앞에 놓인 제 보퉁이를 발길로 걷어찼다.

"그게 뭔데?"

"왜...오백 냥짜리 물건이다. 풀어볼 테면 한번 봐." 달근이는 그 보퉁이가 궁금하기도

하여 조심스럽게 매듭을 풀었고, 두터운 한지에 여러 겹으로 싼 둥근 물건이 나타났다.

"그래 이번에 일 나가서 이걸 가지구 왔단 말인가?"

"글쎄 펴보라니..."

"이게 뭔데?"

달근이는 한지를 벗겨내다가 깜짝 놀라서 내동댕이를 치고 말았다. 그것은 노랗게 퇴색한

사람의 두개골이었던 것이다. 그는 건성으로 퉤하며 침 뱉는 흉내로써 부정을 털어버리고

나서, "도대체 이 해골바가지를 어쩌자는 게여?"

물으니 황회는 벽에 세워둔 화승총을 들어 그것을 부숴버리려는 시늉으로 번쩍 치켜들었다.

"아아, 얘기나 좀 들어보자."

고달근이가 씨근거리는 황회를 만류하고 이번엔 그가 일 나갔던 전말을 물어보았다.

"우리는 수원 쪽으루 일을 나갔지. 시동이놈이 일거리를 살피구 왔다구 그래서 나는 믿었

단 말야. 우리네야 밤중에 지키는 이 없는 모이를 파헤치는 짓인데 뭐 식은죽 먹기라구 생

각했다. 점찍은 수원 부상의 삼대조가 묻힌 선산을 파헤치구 저 해골바가지를 끊어냈지. 모

이를 쓰길 잘 썼더구만, 하여간 봉분을 헤쳐내는데 넷이서 꼬박 하룻밤을 새웠으니까." 두

개골을 끊어낸 뒤에 그들은 과천으로 돌아가, 수원으로 사람을 보내어 조상의 두개골을 오

백 냥에 사가라고 전언을 했던 것이다. 수원과 과천 사이에 있는 백운산에서 만나 돈과

해골을 맞바꾸기로 하였으나 사근내와 가을재에 수원의 관병들이 나와서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변변히 대면하여 흥정도 붙여보지 못한 채 숯내를 따라서 광주까지 겨우 내

빼왔던 것이었다.

"복만이 말만 듣고 나섰다가 돈은커녕 몰이꾼에 쫓긴 들토끼 신세가 될 뻔했다. 나는 아

예 길목에 나갔다가 행상들이나 털든지, 십여 인 작당하여 명화적 노릇이나 할란다. 제길 당

장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더 신이 나지."

"이 사람아 명화적이 되려면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델 산채로 삼아야지, 까짓 솔부리 같은

데서 관에 기찰되었다간 갈 데 없이 잡혀 죽구만다."

고달근이도 한번 일을 나갔다 와서 이곳의 형편을 대강 이해하게 되었고, 그에게는 아주

맞춤한 도적질이라 여겨져서 당분간은 솔부리를 떠나지 않을 작정이었다.

복만이가 돌아오고 나서 달근이와 황회는 그들이 겪었던 일을 모두 얘기해주었다. 복만이

는 이제 포도 군관이 설칠 것이니 당분간 솔부리를 떠나지 말고 근신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황회에게는 역시 이런 일이 맞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서, "나허구 난전이나 나가세.

맛들고 보면 그 일두 아주 재미가 있지." "제길할 나는 난전두 별루 재미가 없으니...화적질

이나 해야겠네." "가만있어, 우리두 사세 부득하면 식솔들 데리구 운악산으루 들어가 산채

를 정할까 하는데...그때까지는 큰 일을 못 치르네. 운악산과 화악산은 쌍둥이처럼 서로 마

주보고 있으니, 그뒤로 계속 산줄기가 뻗쳐 있어서 산지사방에 튈 데가 맨천지란 말야. 우

리 재물이 좀 모이면 거기에 산채를 닦아놓을 생각일세."

고달근이가 말하였다.

"난전은 재미있을 듯하니 나두 좀 데려가 배워주게." "그래, 다음에 양주 나갈 때 같이

나가보지."

"하여튼지 나두 맨손가락 빨구만 있을 수는 없으니 술값이라두 벌어야지. 퇴계원 나가서

살폈다가 호젓이 지나는 행객의 보따리나 털어볼라네." 황회가 투덜거리자 복만이는 여지

없이 면박을 주었다.

"그런 위험한 짓은 말라니깐. 정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자네 혼자 나가서 해보게.

아이들은 한 사람도 데려가선 안돼."

"좋아, 시동이만 데리구 가지. 그애는 원래 내 식구였으니까." "자아, 우리 술이나 먹지."

복만이가 제안하였으나, 황회는 못마땅하여 말이 없었고, 고달근이가 말하였다.

"싱겁게 솔부리에 앉아 무슨 술을 먹어. 나두 그동안 몸을 풀지 못했더니 사지가 욱신거

려서 못 참겠는걸. 우리 송파 나가 색주가에 가서 묵은 때를 말짱하게 벗기구 오지." "송파

는 사람 눈이 많은데..."

"압다, 술 먹는데 무슨 죄짓구 다니나. 제 돈 내구 제 술 사먹는데." "정 그렇다면 나는

안 갈 테니 자네들이나 다녀와. 달근이 자네 이번 들여온 돈에서 사종으로 오십 냥 떼고 백

냥은 솔부리골에 내는 것으루 하겠네." "뭐? 백오십 냥씩이나 떼어. 그럼 나는 뭘 먹구..."

"듣자니까 삼백 냥이라던데. 반절 가지고 애들 나눠주고 자네가 쓰게." 달근이는 불만스

럽게 복만이를 흘겨보다가 쓰다 달다 말도 없이 황회를 잡아 일으켰다.

황회도 말없이 따라나왔다. 달근이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먹을 쥐어 부르르 떨면서 중얼거

렸다.

"내 복만이 자식을 죽여버리지 않으면 이 드러운 솔부리에서 더부살이는 안할란다." "달

근이, 우리는 운악산에 나가 산채나 열지 그래. 뱃보가 맞아야지." "가만있어. 당이 이루어

져야 산채구 뭐구 정하지...둘이서 숯이나 굽구 살잔 말이냐?" "그럼 어쩔테."

"자네는 그냥 잠자코 보고 있으소. 내가 저놈을 감쪽같이 해치우고 패를 떼어 운악산에

산채를 열 테니깐..."

"정원태가 좋아하지 않을걸."

"그까짓 가짜 땡초중이 무슨 상관이냐?"

황회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정원태는 우리들 사이에 아주 중한 사람으루 알려져 있지." "기왕에 사당패 모

가비질을 때려치웠으니, 되려면 대적당의 화주가 되어야지. 정원태구 뭐구 저 복만이 자식은

내 손에 죽을 게여."

"사람 성미두 참 급하긴...압다 자네를 누가 믿구 졸개들이 순순히 따르겠나?" "송파 내려

가서 술이나 퍼 마시고 오세."

그들은 노적사로 내려가는 길을 피하여 곧장 평구말로 질러가서 광나루까지 오르는 나룻

배를 타고 송파로 나갔다. 송파의 거여 객점거리에는 한창 땅거미 덮일 무렵인지라 손님을

부르는 선소리꾼들은 물론이요, 색주가의 홍등 아래에서는 유객을 하는 작부들의 교태와 웃

음이 시끌작하였다.

"손님 이리 들어오시지요. 꽃 본 나비인 듯 물 본 기러기인 듯 잠깐 걸쳐서 쉬어 가셔요."

"손님 삭신을 촛물에 푹 담그었다가 내드릴 테니 어서 이리 들어오셔요."하면서 계집들이

문간에서 내달아 이놈 저놈의 팔뚝을 잡아 흔들고 난리였다. 달근이와 황회는 사당패를 떠

나고 계집을 대한 지 달포가 넘었는지라 과연 불두덩이 욱신거릴 만하였다.

"어 그년들 자못 음탕하다.!"

"급한 놈은 문간에 들어서기도 전에 탕정하겠는걸."

작부가 돈 가진 놈팡이를 몰라볼 리가 있나, 역시 두 사람의 지분대려는 태를 대뜸 짐작

하고 치마꼬리를 감싸쥐며 달려들어 가슴에 안기는 것이었다.

"아이구 서방님 얼마만이십니까요. 쇤네는 기다리다 지쳐서 애간장이 좁쌀만큼 닳았다우."

"그래 평안한가. 오늘 우리 두 사람인데 술도 술이려니와 하룻밤 질탕히 구르다 가련다.

뒷물은 쳐놓았느냐?"

"아이 무슨 말씀을 그리 우악스레 하십니까."

"내 주장군이 색심에 주려서 성이 날 대루 났으니 어디 고분고분하겠느냐. 본시 성정은

봄바람 같은 우리지만 하루만 더 넘겼다가는 득도하여 성불할까 걱정이다." "재담이 그럴

듯 하오."

한눈에 그자들이 예사 양인이 아님을 눈치챈 작부들은 화방 물림과는 원래가 한통속이라

더욱 즐거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주막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선래자가 두엇 앉아서 계집

들과 잡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전대 꼴이며 배자 걸친 모양이 부상들의 차인일시 분명하

여다. 고달근이와 황회는 건넌방으로 들어가며 그 편을 향하여 주석의 예로 알은 체를 하였다.

"같이 놉시다. 실례하우."

"태평하우. 좀 섞입시다."

하고 나서 자리를 잡고 앉자, 번듯한 통영반에 조촐한 안주 올린 술상을 맞들고 작부 두 년

이 들어왔다. 잡가도 듣고 타령도 주고받으련마는, 고달근이는 이짓저짓 다 마다하고 우선

계집의 치맛귀 속으로 손을 넣어 사타구니를 덥석 움켜쥐었다. 계집이 자지러지는 소리를

질렀고, 달근이는 다시 저고리 앞섶에 손을 넣는데, 계집이 요동을 치는 것이었다.

"거 보자하니 너무들 허시우."

맞은편에서 흥얼거리고 앉았던 자들이 불쾌하다는 듯이 이쪽을 건너다보면서 상을 찡그리

고 있었다. 황회는 잠자코 있었으나 성정이 제법 불량한 달근이가 잠자코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곰보 상판을 잔뜩 찌푸리며 턱을 치켜 들었다.

"뭐라구 하셨수?"

맞은편에 앉았던 술꾼이 제법 점잖게 고달근이를 나무랐다.

"여보, 아무리 색주가에 동석하여 사내끼리 허물이 없다지만 남들 다 보는 데서 그 짓이

무어요? 참으로 안하무인이로군."

"내가 언제 네놈더러 술값 내랬어?"

다짜고짜 놈자가 떨어지니 상대는 아연하여 입만 벙벙히 벌리고 앉았다.

"계집도 네 것 내 것이 다르고, 양물도 네 것 내 것이 다른데 웬 참견이냐?"하자 상대는

벌써 마음을 다잡고 술잔을 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허, 그놈 말본새 한번 봐라."

이렇게 시비가 일어나니 난처한 것은 그래도 성질이 좀 눅은 편인 황회 쪽이었다. 송파는

솔부리와 천마산에서 바로 코 닿을 데가 아닌가. 제 동네서 혼난 놈치고 발붙이는 놈이 없

는 법이다. 황회가 달근이의 벌떡 일어나려는 어깨를 눌러 앉히고 일방 떠들며 또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허 참 사람두, 동석에 예의가 있는 법인데 벌써 술 취했나? 이봐, 여기는 송파 거여 객점

거리여, 솔부리가 아니란 말일세."

하고는 마주 일어나려는 자에게 공손히 사과를 하였다.

"죄송허우. 이 사람이 원행에 하두 적적하여 실행을 하였으나, 본시는 그럴 사람이 아니니

마음 푸시우. 술 먹자면 성깔있는 놈두 끼여있어야 먹는 맛이 나지 않우." "엥이...드러워서

같이 못 앉아 있겠네. 어이 가세나." 그자가 제 동무를 잡아 일으켰다.

"아직 초저녁인데 벌써 자리를 뜰 테여?"

"아이, 그러시지 마시구 푹 쉬시고 내일 떠나셔요."

만류하는데, 그자는 막무가내였다.

"까짓 것 술집이 어디 여기뿐이더냐...거여에 깔린 게 색주가요 주막이다. 묘옥이네 주막으

루 가지."

"거기 가면 온갖 한량 잡패가 몰려와 있을 텐데 우리 따위가 눈에 뜨이겠나? 예서 그냥

마시다 일찍 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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