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 묘옥이네 주막에서는 술값두 싸구 안주두 맛깔스럽다네. 그러구 손님은 또 얼마나
점잖은가?"
이렁저렁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들은 시비 튼 것을 거두지 않고서 그냥 주섬주섬 일어났
다. 뒤따르던 계집이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쫑알거렸다.
"그년을 객점거리서 몰아내든지 해야지, 이러다간 작부질도 못해먹겠네." 손님들이 욱하
여 자리를 떠버린 다음에 고달근이는 벌써부터 귀가 번쩍했던 터였으므로 곁에 머쓱하여
앉아 있는 계집에게 물었다.
"묘옥이라니...그게 누구냐?"
"글쎄 우리가 어찌 안답디까? 어디서 묻혀 들어왔는지두 모를 년이 갑자기 가게 세를 내
어 작은 술집을 차리더니, 한다 하는 오입장 어르신들이 모두 그 집으로만 모인다우."
"그릇된 기생년...노상에 탁주장사라더니 소박맞은 한양 첨년이겠지요."
"그 집이 어디 있느냐."
"왜요, 가시게요?"
고달근이는 상을 밀어내며 일어섰다. 황회도 영문을 모른 채 따라 일어서는데 달근이가
말하였다.
"잘되었다. 그렇잖아두 여주 이경순이란 작자에게서 몸값을 받아올 참이었는데, 그년이 여
기 있다니..."
"당진서 헤어졌다는 그 사당 아이 말이로군."
달근이는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한 작부들을 뿌리치고 바깥으로 나오자 가가들이 늘어
선 밥집과 주막집들 쪽으로 재빨리 걸었다. 달근이는 반평생을 모가비로 지내왔건만 묘옥이
와 같은 사당을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선 제 발로 찾아들었고, 한번도 모가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도 연희에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달근이로서는 묘옥의 어딘가가 범접을 못
하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다고 느낄수록 얄미웠던 것이다. 그도 몹시 반가웠으나, 반가웠던
그만큼 울화가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년 만나기만 해봐라!"
고달근이는 마음이 급해져서 황회를 멀찍이 떼어두고 있었다.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저녁
후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왔을 성싶은 맨상투 바람의 시장 상인에게 물으니, 과연 묘옥이네
주막은 유명짜하였던지 데꺽 손짓하여주는 것이었다.
"저어기 싸리울 안으루 들어가보우. 앉을 자리가 있을라나 모르겠군." 달근이는 그 집으
로 다가서서 싸리울 안을 기웃거려보았다. 안에서는 술 먹는 자들의 웃음소리와 얘기하는
소리들이 시끄러웠고, 요란하게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며, 중노미를 부르는 소리로 한창 시
끄러웠다. 문간에 들어서는 마당에 멍석 두장이 깔렸는데 술 먹는 패거리가 서넛씩 다섯 패
나 되었다. 마당에는 뒤늦은 자들이 차지한 멍석 주석이요, 기다랗게 트인 토방의 거적 위에
는 앉을 틈이 없이 술상이 벌여져 있었다.
옆에 잇달린 방문이 닫혀 있는데, 주막 사람들이 기거하는 방인 모양이었다. 방에 붙여진
부엌에서는 쟁개비에 물이 끓고 있었으며, 부엌의 벽 한쪽을 헐어 목판을 여러 개 세워두었
는데 각종의 마른안주와 진안주가 담겨 있었다. 흙으로 만든 화덕에서는 숯불이 타고 있고,
그 위에서 너비아니 고기가 지글지글 맛좋은 냄새로 구워지는 중이었다. 바침술집에서 갖다
놓은 술독이 반쯤 채워져 있는데 술국자가 쉴새없이 들락거리며 술잔을 채워내고 있었다.
달근이는 한눈에 주막 안에서 묘옥의 모습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묘옥이는 녹의홍상 입고
서 얹은머리 위에 붉은 금박댕기 매고 치마꼬리를 잘잘 끌면서 술상 사이로 다니며 농도 받
고, 술잔도 쳐주면서 손님 접대에 분주하였다. 과연 송파의 한량들이 한번쯤 집적거려보고
싶을 만큼 예쁜 모습이었다. 이경순의 모습을 찾으니 그는 보이지 않고 부엌에서 칼질을 하
거나 고기를 굽는 할머니가 있었고 상을 내가고 빈 술병을 날라오는 아이놈이 토방과 마당
을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손님네들 앉으시지요. 저어기 멍석에 상 하나 더 나갑니다."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문가
에 섰는 고달근이와 황회에게 청하였으나, 달근이는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우리는 술 손님이 아니다. 네 주인 아주머니의 작은아버지 되는 사람이니, 이리 불러라."
아이는 얼른 그들을 바라보고 토방에서 술을 차고 앉았는 묘옥의 등뒤로 올라가 뭔가 말을
전하였다. 묘옥이 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놀란 듯 해 보였다. 그러나 묘옥은 침착하게 아
이에게 무슨 말인가를 전하였다. 아이가 달려오더니 말을 전하는데, "아주머니께서 뒷방으
루 모시랍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고달근이와 황회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나서 아이의
뒤를 따라갔다. 뒷방이래야 부엌 옆에 붙은 방이건만, 출입문이 앞쪽은 막혀 있고 뒷마당
쪽으로 나 있으니 뒷방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부엌 뒤로 돌아서 가니 작은 퇴창문이 달
리고 앞에는 툇마루가 붙여져 있었다.
"들어가 잠깐만 기다리시지요, 곧 술상을 내겠습니다." 고달근이와 황회가 방에 들어가
니, 제법 도배의 형색이 깨끗하였고 온돌도 반듯한데 농이며 반닫이, 경대 등의 세간이 정연
하여 살림에 규모가 있는 듯하였다. 달근이는 담배쌈지와 놋재떨이를 끌어당겨 곰방대에
부시를 치고서 혼자 중얼거렸다.
"흥, 이년이 이경순이에게서 단단히 우려낸 모양이로군." 둘이서 담배를 태우고 앉았는
데, 퇴창이 빼꼼해지면서 몸소 술상을 받쳐든 묘옥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이 모가비님이 이 누추한 집구석은 어찌 알구 찾아오셨습니까?"
"왜 못 올 데를 왔는가. 조선 팔도 사방 삼천리에 달근이 발 안 닿은 데가 있는 줄 알
았느냐?"
"곤경은 치르지 않으셨나요?"
"너희 때문에 내가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다. 안성 청룡골에는 다시 발두 못 붙이고 패거
리는 산산이 흩어졌지. 게다가 여럿이 관에 잡혀서 죽었다."
"저는 이처럼 술장사에 여념이 없습니다."
"일어이폐지하고, 이경순이 어디 있느냐? 내 좀 만나야겠다." 묘옥이는 상머리를 내려다
보면서 대답이 없었다. 달근이가 술 한 잔을 마구 쭉 들이켜고, "가끔 들르느냐, 아니면
여기 함께 있느냐?"
재촉하니 묘옥은 그 뜻을 짐작하고 차차 마음을 다잡는 눈치이더니, 예의 그 매정하고 독살
스러운 눈길이 되었다.
"이도장님은 만나서 무엇하시렵니까? 모가비 어른께서 작당 화적질하여 오히려 그분을 봉
패하도록 했지요. 지금 여주 옥에 갇혀 계십니다. 그 안댁께서 노자로 주신 돈으로 술집을
내었는데, 제게 놀러 오신 게라면 몰라두 뭘 바란다면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어요."
달근이는 실상 할말이 없었다. 그저 묘옥의 모습을 대하니 역시 손안에 닿지도 않아 그것이 얄미울 뿐이었다.
"모...몸값은 어쩔 터이냐?"
"몸값이라구요? 제가 언제 모가비님 사당패에 팔려서 갔던가요? 해주서 내 발로 찾아들어
갈 제 밥값으로 연희나 팔아드리고,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패를 나가겠다구 하지 않았나요?"
"그래, 니가 가을에 들어와 겨울 한철 공밥으로 세월 보낸 뒤에, 연희 한 차례로 패를 떠
났으니, 밥값을 했단 말이냐? 더 여러 말 할 거 없다. 우리 있는 데루 가서 시중이나 들어라."
달근이의 말이 떨어지자 묘옥은 목청을 드높여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를 뭐 여염 향리의 촌년이나 종년으루 알았다간 큰코 다칩니다. 나두 명색이 작부질
석삼 년으루 궁둥이가 큰 년이어요. 가서 포교를 불러오지요. 어디 두구 보십시다. 나를 데
려가나, 고거사님을 데려가나."
묘옥이가 자리를 뜨려니 어마 뜨거라 한 것은 물론 고달근이었다.
"아니 이년이 시방 누굴 놀리나?"
달근이가 일어나면서 묘옥의 소매를 잡았다.
"왜 이러셔요?" 내 몸값을 받으러 오셨다니, 포교를 불러다가 판결을 해달라구 그래야지요."
"앉어, 앉으라니."
묘옥은 달근이를 흘겨보면서 독살스럽게 내뱉는다.
"술값을 내셔요. 한 돈이니까."
"제길헐!"
달근이가 꿰미에서 열 닢을 꺼내어 방바닥에 내 던진다.
"아무리 그렇기로니, 예전 안면두 있는 터에 참으로 못된 년이로구나."
덤덤히 앉아서 두 사람을 관망하던 황회가 보다못하여 거들었다.
"내 보아하니 두 사람의 타시락거리는 양이 친척붙이들 같군. 이 사람아 반가우면 반갑다
고 반색이나 보일 게지 이게 무슨 장난이야? 자네두 이리 앉아 술 좀 들게."
황회가 자기 잔을 비우고 묘옥이에게 내밀어주니, 묘옥은 대꾸 없이 잔을 받았다.
황회가 따르고 묘옥이 마시는 사이에 세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혹시 이도장님 소문 듣지 못하셨습니까?"
"못 들었다."
달근이가 대답하였고, 묘옥이는 그렁그렁해진 눈시울을 옷고름으로 씻어냈다.
"탈옥하신 뒤에 관원들을 죽이고 이방까지 죽인 다음에 종적을 감췄다구 합니다. 집안은
온통 적몰이 되었다지요. 제가 사람을 사서 보냈더니, 며칠 전에 살피구 와서 전해주어 알았
지요. 여주에서는 이도장이 몸을 망친 것은 늦바람 탓이라구 합답디다."
"그렇게 되었군. 그러면 너는 먼저 여주를 떠났더냐?"
"이년의 죄가 크지요. 제가 그분을 찾아서 모셔야 죄를 벗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강 건너 천마산에 있다. 여기 와서 솔부리라구 들은 적이 있느냐?"
달근이가 참지 못하고 발설을 했고, 묘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 장쇠가 얘기를 합디다."
"장쇠라니...아까 그 아이놈 말이냐?"
"예, 그애가 송파 깍정이 꼭지의 조카 행세를 한답니다." 황회는 고개를 끄덕였고, 달근
이가 빙긋 웃음을 지었다.
"허허, 참으로 좁은 세상이로구나. 이제는 장물을 그놈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겠군. 묘옥아,
우리하구 손을 잡지 않을래? 주막벌이보다야 불어나기두 쉽구, 또한 포교의 기찰에 걸리지
두 않는다. 우릴 좀 도와다우."
"무슨 일인데요?"
"별루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처분할 물건들을 좀 맡아주고 아이를 시켜서 거간을
붙여주면 되는 게야. 그리구 장바닥에 무슨 소문이 있으면 솔부리에다 귀띔만 해주면 되어."
묘옥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일이라면 해보겠어요. 헌데 저두 청이 한가지 있군요."
"구문은 두둑히 내주마."
"구문두 좋지만, 이도장 어른을 찾아주셔요."
"이 너른 천지에 그 사람이 어디 있는 줄 알구 찾아내겠느냐."
"아니오, 그이는 세상을 등진 분이니 분명히 숨어 살 것이어요. 숨어서 사는 사람끼리는 소식이 잘 닿을 듯도 합니다. 혹시 솔부리의 소문을 들으시면 찾아오실지 누가 알겠어요?"
곁에서 황회가 참견을 하였다.
"딴은 그렇지, 여주서 도망을 쳤다면 혹시 강원도 쪽의 산사에 숨었을지두 모르고 오히려
저자에 훤한 사람이라면 장시 바닥에 틀어박혔는지두 모르네. 사람이 많은 데가 숨기에는
더욱 편할 테니까. 아무튼 서울 근처에서는 우리 패가 줄줄이 꿰고 있으니, 언제든 소식이
닿을지두 모르겠군."
"그래 우리두 이도장을 만나면 반가울 게다. 그건 어려운 청이 아니고...할 테냐 말 테냐?"
"도와드리면 몸값 내란 말은 다시 하지 않으시려요?" 묘옥이 말하자, 황회와 고달근이는
어쩔 수 없이 웃고 말았다. 밖에서 젊은 주모를 찾는 소리가 요란했으므로 묘옥이 자리를
뜨려는데 마침 장쇠가 부르러 왔다.
"아주머니 손님들이 찾고 야단이우. 모두들 자리 폐하고 돌아가신다구 법석입니다."
"알겠다, 곧 나가야지. 그리구 장쇠야 너 이리 좀 들어오너라." 장쇠는 총명한 눈을 반짝이며
방안으로 쭈뼛쭈뼛 들어섰고, 묘옥이 인사를 시켰다.
"너두 솔부리를 알지? 거기 두령님들이시다. 인사를 올려라."
"평안합쇼?"
장쇠가 제법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며 꾸뻑하였다. 달근이가 말하였다.
"천마산에 가본 적이 있니?"
"얘기루만 들었습니다."
"음, 그러면 오늘은 우리허구 솔부리 갔다가 내일 내려오너라. 산길두 알아야 하구...앞으
루 심부름하는 일이 생길 테니."
장쇠는 대답 대신 묘옥을 바라보았고, 묘옥이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들은 그날 밤 늦
게까지 묘옥이네 주막 뒷방에서 술을 마셨다. 간간히 묘옥이 드나들며 끊겼던 얘기를 계속
하는데, 황회가 보기에도 졸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 함부로 대하지를 못하였다. 둘만이 앉
았을 때 달근이가 황회에게 얘기를 털어놓았다.
"내가 몇가지 계획을 해두었네. 첫째는 복만이란 놈을 없애버릴 일이야."
"정원태가 가만있지 않을걸. 정원태는 복만이를 신임하구 있거든."
"그자가 무엇인가? 그자두 쳐죽여버리지 뭐."
"아닐세. 정원태는 우리네 무리에게 모두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 또 그만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인심 잃구 두령짓은 못해먹네."
"그러면...정원태의 신임을 우리가 얻구 나서 복만이를 해치우지. 그리고 소굴을 화악산으
루 옮기는 게야. 솔부리서는 아무래두 애들 장난밖에 할 짓이 없거든. 그리구 셋째로는 송파
와 삼전나루의 주막 색주가들을 우리 손아귀에 넣어두는 일이지."
"욕심이 너무 크네."
"젠장할 같은 값에 화적이라면 대적당이 되어야지, 저자 무뢰 잡배나 협잡꾼으로는 조상
뵈일 면목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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