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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35)

카지모도 2026. 5. 26.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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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선흥이가 아직 결기가 삭지 않은데다 오라 가라 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코대답을 하였다.

"올라가면 집에 보내줄 테유?"

"이 자식아 올라오라면 올 것이지 감히 누구 말이라구 대구야." 감영 장교가 성을 벌컥

냈고, 선흥이는 제미, 하면서 등성이로 올라갔다. 선흥이가 곁으로 다가가자마자 장교는 우

선 귀쌈을 한 대 올려붙였다.

"부역 나왔으면 고분고분 일이나 할 것이지, 왜 사람은 패구 난리냐?" 선흥이가 얼얼한

뺨을 매만지면서 눈을 부릅떴다.

"다 쳤수? 예가 해주 바닥인 줄 알아, 장산곶 벽처요. 그러잖아두 애꿎은 부역에 끌려나와

심화가 죽 끓듯 하는 판인데...수틀리면 다 때려엎겠수." 선흥이가 장연서도 이름난 장사인

줄 아는 감관은 조금 수그러지면서 말을 돌렸다.

"이놈아, 내수사 노비는 왜 두들기구 지랄이여?"

"내수사 노빈지 뭔지 내가 알 게 무어요. 망할 자식이 오에 끼여들어 일을 훼방놓길래 꿀

밤을 한 대 주었을 뿐이오."

장교는 답답하다는 듯이 손가락질을 하였다.

"허허, 참으로 네놈은 망종이여. 내수사에서 조선목이며 정자목을 구한다구 직접 사람을

내려보냈는데, 비록 우리하구 역은 같지만, 관할은 다른 법이다. 전화라는 이가 네게 형장을

매긴다구 불러 오라는구나."

전화는 궁에서 쓰는 여러 잡화와 일용품을 구하고 관리하는 직함이나, 대개는 직권을 남

용하여 왕실을 대고 적당히 벼슬아치들과 결탁하여 사복을 채우는 것이다. 장산곶 활목장에

서도 그들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좋은 재목을 벌채하여 가는 것이지만 반쯤은 궁가에 올리

고 나머지는 장산곶 재목이 전국에 으뜸이니 저희들이 나누어 팔아 쓰려는 것이었다. 전화

와 서리가 내수사 노비랍시고 장정 몇을 데려왔으나 기실 그들은 한양 세도가들의 사노였었

다. 일찍이 벼슬아치들이 이재를 취할 때 사노를 지방에 내려보내어 부리는 것은 흔한 일이

었던 것이다. 선흥이가 그런 까닭을 알 리가 없었고, 그저 부역 나온 놈들끼리 목 다툼을 하

였기로 무슨 형장이냐 싶었다. 그들이 벌채장 빈터로 넘어 내려가니 전화라는 자가 기다리

고 있었고, 그와 동행인 서리가 장정 몇 명을 거느리고 둘러서 있었다.

"그놈을 꿇려라."

갓 쓴 자가 말하자 두어 놈이 달려들어 선흥이를 눌러 앉히려고 어깨를 눌렀다. 선흥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뻣뻣이 서 있는데, 매달린 자들이 기를 쓰는 것이었다.

"어허! 저놈이 죽지 못해 안달이로구나. 그놈을 때려서 꿇려라." 양쪽에서 선흥이를 향하

여 몽둥이가 날아드니, 그는 두 손을 척 올려서 손바닥에 받아 쥐고는 잡아당겨버렸다. 몽둥

이를 빼앗아 쥔 선흥이는 무릎에 대고 단숨에 꺾어서 뒤로 팽개쳤다.

"내가 꿇겠소."

강선흥이가 스스로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이미 그의 기운을 보았던 자들은 은근히 기가

죽어 있었다.

"이놈, 부역을 나왔으면 고분고분 일이나 할 것이지 네 무엇인데 감영과 내수사의 구역을

따지며 일을 못하게 하느냐. 너 같은 놈은 버릇을 고쳐주어야 일이 고르게 될 것이다."

"몇대 치시려우?"

선흥이가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물었고, 전화는 몹시 화가 나서 손으로 선흥이를 가리키

며 외쳤다.

"그놈의 등판을 사정없이 매우 쳐라."

전화의 말이 떨어지자 내수사에서 나온 자들이 달려들어 꿇어앉은 강선흥의 등에 몽둥이

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강선흥이는 눈을 부릅뜬 채 입을 꾹 다물고 매를 견디었다. 몽둥이질

서너 번에 에고 소리를 내지르며 엎어질 줄 알았던 사람들은 그가 버티는 모양을 보자 은근

히 두려워진 모양이었다.

"이젠...고만 때리시우."

강선흥이가 벌떡 일어서버리자, 둘러섰던 자들이 사방으로 멀찍이 비켜섰다.

"어허, 저놈이 아직두..."

"나 매 못 맞겠수."

강선흥이 제 벗겨진 등과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돌아섰다. 전화가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어딜 가느냐?"

"집에 가우."

장교는 강선흥이의 말을 듣자, 전화에게 속삭였다.

"저자는 장연서두 이름난 장사랍니다. 섣불리 다루다가는 오히려 관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겝니다. 그보다는 잘 꼬드겨서 복종을 시키구 위엄을 보이는 게 나을 겝니다."

"뭐라구...제깐 놈이 시골 무뢰배인 주제에 관노를 함부로 패는데, 역을 감독하러 나온 자네까지 두둔하는 건가?"

"두둔이 아니라, 다스리자면 그렇단 얘기올시다."

"어디 내 말을 듣나, 안 듣나 두고 보자. 초죽음을 시켜서 하옥시키리라." 멀찍이 걸어가

는 강선흥이를 손짓하면서 전화가 장정들에게 지시하였다.

"저놈을 붙잡아다가 형장을 주어라."

장정들이 전화의 지시로 몰려가기는 하면서도, 한편 마음 구석으로는 붙잡혀서 어디 꺾어

지거나 터지지 않는가 두려웠다. 선뜻 달려들지는 못하고 선흥이를 에워싸는데, 이 소동을

알아챈 부역 나온 백성들이 숲의 어귀마다 몰려나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선흥이가 처음에는

꾹눌러 참고 일이나 무사히 끝내고 가려 하였건만, 큰 죄도 없는 터에 몽둥이로 마구 두드

려대니 참을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에라, 이왕 내킨 판이니 그냥 부역 때려치우고 집에 가

는 길로 봇짐을 꾸려서 송도 박대근에게나 갈 셈이었다. 저지를 죄는 나중에 받더라도 예서

아니꼬운 일을 당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소란을 피울 생각보다는 빠져나갈 생각이 앞섰던

선흥이는 그를 에워싸는 장정들을 보자,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싸움꾼이란 상대방

이 싸울 기세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전의가 북돋워지게 마련인지라, 에워싸고 몽둥이를 치

켜든 자들을 본 강선흥이는 열기가 머리에 뜨겁게 솟아올랐다.

"흥, 나를 둘러싸구 어쩌겠다는 게야?"

"어서 가서 전화 나으리의 형장을 받아라."

"안 가면 우리가 두들겨서 끌고 갈 테다."

"순순히 포승 받구 꿇어앉아라."

선흥이는 우선 앞에 서 있던 자의 멱살을 와락 잡았고, 그자를 번쩍 치켜들어 저희 패들

에게 던졌다. 세 놈이 한꺼번에 땅에 넓죽 주저앉는데 선흥이의 등뒤로 몽둥이가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선흥이가 몇대는 피하고, 또한 몇대는 맞으면서 돌아서서 양손에 한놈씩 상투를

그러쥐니, 다른 자들이 비켜섰다. 선흥이는 상투꼭지를 잡아 힘을 주어 뺑뺑이를 시켜주었

다. 선흥이를 에워쌌던 자들이 그를 잡기는커녕 좌우로 패대기쳐지자 비슬비슬 일어나서 감

히 달려들지 못하였다.

"비켜라. 다시 막아서면 이번에는 참말 모가지를 뽑아놓는다." 강선흥이가 두 팔을 우악

스럽게 펼치며 나아가니 그를 막아서던 장정들은 얕은 물에 송사리 흩어지듯 하였다. 선흥

이가 벌채장 빈터를 떠나 산 아래로 내려가는데 등뒤에서 함께 일하던 오부 사람이 쫓아왔다.

"강총각, 내 말 좀 듣구 가게."

"무슨 말이우?"

"부역을 버리구 갔다가는 나중에 온 식구들이 달달 볶일 텐데 어디루 간단 말인가."

"그럼 죄없이 형장을 맞구 있으란 말유? 나중에사 어찌되건 드러워서 못 참아내겠수. 나는 조

니포 나가서 놀다가 집으루 돌아갈라우."

"허허, 그 사람 성미두...내수사 관인이 그냥 둘 성싶나."

"그냥 안 두면 대수요. 그러잖아두 일 년에 서너 달 집에서 보내는 놈인데, 봇짐 꾸려서 장사 나갔다면 제놈들이 어디서 잡을 게요?"

힝하니 코웃음을 날리며 강선흥이는 장산곶 벌채장을 떠났다.

"어이구, 착한 백성이랍시구 부역질 참아내노라구 목구멍에 때 한번 못 벗겼구나." 선흥

이는 멀리 멍구미가 내다보이는 해변길을 신이 나서 걸어갔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멍구미의 가는 모래가 뽀얗게 일어나고 있었다. 선흥이는 한편 마음속으로 꺼림칙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야 장연서 떠나버리면 되지만, 애초부터 형 인흥의 역을 대신하여

나온 것이었으니 그가 몹시 추궁을 받게 될 일이 걱정이었다.

선흥의 형 인흥은 이름 그대로 어질고 착한 사람이었다. 원래 그의 집안은 장연서 대대로

살아온 중농이었는데, 선대에 용우물 만석골에 궁방전이 생겨나고 점점 지역을 넓혀가매, 조

세는 혹심하고 농경이 안되어 논밭을 궁가에 흡수시키고 소작농으로 떨어지게 되었던 것이

었다. 인흥은 선흥이보다 열 살이 위였다. 어째서 이렇게 나이 터울이 큰가 하면 가운데 남

매들이 둘이나 있었건만 하나는 수군역을 지던 중 연지봉 앞바다에서 황당선을 쫓다가 침몰

되어 죽었고, 또 하나는 풍천으로 시집가서 살고 있었다. 소작질로는 형네 식구들과 부모와

선흥이 간신히 기한이나 면할 뿐이었으므로, 인흥은 아내의 권유를 따라서 염장에 나가 소

금꾼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처는 손톱에 피가 맺히도록 길쌈을 매었고, 늙은 부모님들도 밭

두렁에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펼 수없이 농사를 지었다. 선흥이도 철들기 전부터 초군 어부질

로 인근 산과 해변을 싸다니며 일을 하였다. 그런데 호란 때에 성고개서 혼자 바윗돌을 굴

리며 버티었다는 조부를 닮았는지 형제들 중에서 기운이 으뜸이었던 것이다. 선흥이의 힘이

알려지게 된 것은 남대천 모랫벌에서 싸움하는 소의 뿔을 잡아 뽑았다는 일이 처음이지만,

그전에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소래에 들어온 중국 장삿배와 싸움이 났을 적에

선흥이는 혼자서 닻줄을 당겨 배를 끌었던 것이었다. 장연 고을 수령과 관아 아전들도 은근

히 선흥이를 두려워하고 꺼림칙하게 여기게 되었고 반대로 시골의 왈짜패들은 선흥이와 말

이라도 한마디 붙여보기를 원하였다. 선흥이도 철을 따라 인흥이처럼 염장에 나가게 되었다.

선흥이가 원래 성미가 쾌활하고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니 산지사방을 떠돌며 장사하는 것

에 이력이 나서, 말수가 적고 소심한 인흥이보다 상리가 많았다. 소금과 어물을 지고 내륙의

고을을 돌아다니며 직전을 받기도 하고 외상을 놓기도 하여 이르는 곳마다 친지가 생겨나니

모두들 장연 강총각의 물건을 기다리는 단골도 생겨났다. 또한 그뿐이 아니라 산골 처처에

목을 잡고 들어앉은 도둑들도 장연 강선흥이의 기운을 직접 당하고서는 그와 교유가 있게

되었고 아무도 감히 빼앗으려드는 자가 없었다. 강선흥이가 박대근이를 통하여 구월산 패거

리들과 형제지의를 맺게 된 것은 실로 그의 전력이 이러함에 연유하는 것이었다. 선흥이는

이미 수상한 녹림처사들과 마음놓고 사귀고 다툼질해오며 장삿길을 다녔으므로 박대근이가

구월산 두령들의 얘기를 해주었을 적에 별로 거리끼지도 않았었다. 더구나 갑송이의 기운을

보고 그가 제 윗길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마음이 흔쾌했던 것이었다. 허나 선흥이는 혈육

과 식구들에 대한 정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차마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녹림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집을 떠나면 우선 가족들은 양식 벌어오는 사람을 하나 잃게 되고 늙

은 부모와 처자식 봉양에 인흥이는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인흥이의 소망은 조랑말 한 필을

사서 짐을 지워 장사를 다니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등짐보다 각 해물과 소금을 많이 실

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행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대근이가 선흥이의 기운에

탄복하여 송도 상단 차인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하였으나 선흥이가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은

부모가 대대로 살아온 장연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그들 형제에게 철마다 근

심이 있었으니 바로 장연 백성 누구나가 시달리는 부역이었다. 장사 다니기에 맞춤한 때마

다 부역 탓으로 짧으면 보름, 길면 한달 이상씩 각종 부역에 동원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훨

훨 나돌아다니기를 천성으로 아는 선흥이에게는 참으로 못 견딜 고역이었다.

 

강선흥이는 조니포의 첫봉이네로 가볼 참이었다. 첫봉이는 선흥이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았건만, 염장의 거간꾼이었고 또한 다른 이들 말대로 술 먹으면 개차반인 왈짜였다. 선흥

이에게 한번 두들겨맞은 뒤로 사화술을 먹고 동무가 되었던 것이었다. 첫봉이 밑에 둘봉이,

세봉이들이 선흥이 또래였고, 네봉이는 그들 말처럼 아직 쇠똥이 떨어지지 않아 나무나 하

러 다닐 소년이었다. 첫봉이네도 부역은 나갔겠지만, 워낙에 살림에 기름기가 돌아가니 돈으

로 대납하고 형제들 중에 한두엇은 집에 남았을 것이었다. 첫봉이네 형제들은 낮에는 염장

에 나가서 소금을 부리고 내주고 하지만, 역시 밤의 밀상질이 그들 생업의 중요한 일거리였

다. 조니포 맞은편에는 멍구미섬이 송낙처럼 떠 있었다. 멀리 금사 해변에 일어난 모래 바람

이 조니포의 북편에 안개처럼 뽀얗게 떠서 흘렀다. 해변에는 황포의 돛배와 나룻배 몇척이

모래톱과 해중에 얹히고 떠서 철썩대는 물결에 흔들거렸다. 나지막한 어촌의 지붕들이 내려

다보였고, 포구는 한산하였다. 선흥이가 첫봉이네 집으로 들어가니 마당에서 작살을 벼리고

있던 둘봉이가 반색을 하였다.

"아이구 선흥이가 웬일이냐? 부역 나갔다면서..."

"첫봉이 집에 있니?"

"시방 뒷방에서 한잠 자구 있어. 간밤에두 꼬빡 새웠거든. 부역이 다 끝났냐?" 선흥이는

볼멘소리로 말하였다.

"부역인지 뭔지 드러워서 그냥 내빼 오는 길이다. 느이 수군역은 어찌됐니?" 둘봉이가

작살을 쳐들어 뾰족한 끝을 벼리어보면서 말하였다.

"대납했다. 무명을 사다가 냈어."

"허긴 나두 대납했는데, 언니가 아파서 할 수 없이 나갔었지. 장산곶 벌채장에 갔었는데,

내수사 관아 부스러기들이 어찌나 사람을 업수이 여기는지 몇대 패주고 오는 길이여." 둘

봉이가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러면 관리들을 때렸단 말인가. 거 큰일냈군. 부역에서 빼쳐 나온 것만두 죽을 죄

인데 관원을 두들겼으니 몹시 시끄럽겠는걸."

강선흥이는 마루에 가서 털썩 주저앉으면서 말하였다.

"제길...시끄러워봤자 나는 장연서 떠날 텐데, 맘대루들 하라지."

"자네야 훌쩍 없어지면 괜찮지만, 자네 부친이며 인흥이 언니는 곤경을 치르게 될걸." 걱정스럽게 말하는 둘봉이의 입을 막듯이 강선흥이가 대뜸 말을 바꾸었다.

"이런...남의 초상에 효자 난다더니, 느이들 걱정이나 해둬라. 요즘 밤장사는 잘되냐?"

"당인들두 요새는 약아서 값이 그리 후하질 않다."

"여러 말 말구 탁주나 한잔 있으면 마시게 해주어."

선흥이의 재촉에 둘봉이가 작살을 놓아두고 일어섰다. 그는 뒤꼍으로 돌아가서 열려진 방

문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첫봉이를 불렀다.

"언니, 선흥이 왔수."

첫봉이는 깊이 잠들었는지 끙하면서 돌아누웠다. 선흥이가 다가와서 버럭 고함을 쳤다.

"이 자식아, 아주 염라 태수짜리 해먹기 싫으면 눈을 떠라."

"어유, 시끄러..."

첫봉이가 게게 풀린 눈을 간신히 열어 선흥이를 올려다보았다.

"니가 불쑥...웬일이냐?"

"야, 나 느이 집에 한 이삼 일 신세지러 왔다."

선흥이가 방으로 들어가 웃통을 훌떡 벗고 앉으니, 첫봉이는 기지래를 켜면서 일어나 앉

았다.

"쌀 귀하고 돈 귀한 세상에 너 같은 밥장군이 오면 우리 식구는 어쩌니? 무슨 일이 났구나."

"벌채장에서 내수사놈들을 두들겼대는군."

곁에서 둘봉이가 대신 말하였다.

"잘했다. 그러잖아두 밤에 배 부릴 일손이 하나 필요하던 참인데."

"장사는 잘되니?"

첫봉이는 싱글싱글 웃었다.

"뭣 그럭저럭...나 따라와봐라."

첫봉이의 뒤를 따라서 강선흥이는 뒤꼍에 따로 지어진 광으로 갔다.

광문을 여는데 허공에 기다란 줄이 매어져 있고 말린 해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저게 뭐야...해삼인가?"

첫봉이는 다시 버들 광주리에 가득 담긴 말린 해삼을 만져보면서 말하였다.

"이게 전부 돈이여. 한철 열심히 캐내면 이쯤은 장만할 수 있지. 당인들은 흑충이라구 해

서 제일 좋아하는 해물이란 말야. 그뿐인가 다른 물건두 있거든." 첫봉이가 부담을 들어내

더니 뚜껑을 여는데, 나무뿌리 같은 것이 스물 남짓 들어 있었다.

"이게 뭐냐?"

"인삼이다. 강계에서 온 것을 간신히 받아놨지. 이걸 당인들게 넘겨주면 대금이 들어오지.

아마 오구쌍대나 네닢붙이 정도로 보아줄 게다. 너두 할 일 없이 무거운 소금짐 지구 산간

으루 헤매지 말구 나하구 밀상이나 하자."

"소문났다간 코를 베일 텐데, 조심해야지."

강선흥이가 순박하게 말하니 첫봉이는 그의 어깨를 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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