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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37)

카지모도 2026. 5. 28.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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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두 꼭 올 게다. 선흥이 너는 안방에 들어가 있어." 둘봉이가 곁에서 투덜거렸다.

"드럽게 됐네. 벌이두 없이 상납전 내게 되었는걸."

선흥이는 안방으로 들어가 봉이네 모친이 시키는 대로 이불을 들쳐 쓰고 누워 있었다. 한

참 뒤에 밖에서 두런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니나다를까, 삽짝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첫봉아, 첫봉이 자느냐?"

그러나 방에 몰려들어간 형제는 일부러 코를 드높이 골면서 못 들은 체하는 모양이었다.

"얘 첫봉아, 진에서 나왔다."

한동안 떠들썩한 뒤에 먼저 둘봉이가 나가서 일부러 어물쩍하게 물었다.

"제미헐! 어느 시러베아들놈들이 아닌 밤중에 몰려와서, 동네 워리 새끼 찾듯 하누?" "

허, 그놈 잠이 덜 깼군."

"웬일이슈..."

"느이들 멍구미섬에 갔었지?"

둘봉이는 볼멘소리로 혼잣말하듯 씨부렁거렸다.

"쳇, 수군이라면 최하천인데 제가 장교면 장교지 누구게 놈자 붙여 해라야, 해라가..."

"멍구미섬에 갔었느냐구."

"갔었수."

둘봉이의 대답이 너무도 태연자약하니, 오히려 말문이 막힌 것은 장교 쪽이었다. 그는 우

선 삽짝을 와락 밀고 마당으로 몰려들어갔다. 이리저리 군사들이 흩어졌다. 이때에 코를 골

고 있던 첫봉이가 제 방문고리를 잡아당긴 군사에게 벌떡 일어나서 불문곡직하고 주먹다짐

으로 받아쳤다. 군사가 얼결에 궁둥방아를 찧는데 무르팍에 코피가 주르르 흘렀다.

"흥...아무리 약한 백성이라지만, 이거 너무 행패가 자심하구나. 야반에 집뒤짐을 하다니..."

"첫봉아, 느이들 멍구미섬에 갔었다구?"

"갔었수."

"누가 총을 놓았느냐?"

"언제요?"

"조금 전에 총을 놓는 소리며, 고함소리를 여럿이서 들었단 말야." 첫봉이는 완전히 동문

서답에 견이서풍이었다.

"우리는 초저녁부텀 술 먹구 세상모르게 잤는걸."

"그럼 왜 섬에 갔다구 했니?"

"사흘 전에 게 잡으러 갔었수. 왜, 게두 조세 물구 잡아야 허우?" 장교는 갑자기 맥이 풀

렸다. 그렇다고 조니포 토박이요 주먹깨나 날리는 봉이네 형제를 막볼 수는 없는 노릇이

었다. 군사 하나가 코가 터져서 얼굴을 싸쥐고 있건마는 제 상관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못된 자식 같으니...그럼 그렇다구 진작 말해줘얄 거 아냐."

"아니 조니포 사람들치구 멍구미섬에 안 가본 놈 어딨수. 공연히 남 잠두 못 자게 들볶지들 말구 어서 가서 번이나 잘 스슈. 또 알우? 황당선을 잡아 포상을 받을지."하면서 첫봉이는 슬그머니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어 장교에게 찔러주었고, 장교는 공연히 헛기침만 터뜨리는 것이었다.

"좌우간에 수상한 놈들을 보면 알려주어."

장교가 어물쩍 넘기면서 말하였다.

"염려 마슈. 내 눈에 띄기만 한다면 작살루 산적꽂이를 해서 끌어다 줄 테요."

"얘들아, 포구 안을 샅샅이 살펴보구 돌아가자."

장교가 첫봉이의 밀상질을 눈치 못 채는 바 아니로되 평소부터 수시로 뇌물을 받아왔으니

겉으로 드러내기도 난처한 노릇이었다. 하룻밤 기찰 나와서 한 꿰미를 얻어냈으니 별 군소

리가 있을 수 없었다.

"잘 자게."

"네, 내일 낮에 번이 빠지면 놀러들 오슈."

첫봉이가 시큰둥하니 군사와 장교를 배웅하였다. 그들의 인기척이 멀리 사라지자, 안방에

서 이불을 들쳐쓰고 숨어 있던 선흥이가 뛰어나왔다.

"어이 졸려 죽겠네. 하마터면 코를 골구 잠들 뻔했어." 둘봉이가 광을 살피고 나와서 말

하였다.

"어쩔 테유? 저 자식을 바다에 쓸어넣어버릴까."

"아니야, 저놈을 앞잡이로 세워서 산채루 숨어드는 게다."

"산채에는 패거리가 많은데 우리 셋이서 대적하긴 힘들걸." 둘봉이가 말하자 선흥이가 껄껄 웃었다.

"걱정 없다. 심백이만 잡아서 족치면 물건을 찾을 수 있어. 심백이놈은 내게 맡겨두어라. 헌데 언제 올라갈려구?"

"날이 밝는 대루 곧장 올라갈까...?"

둘봉이의 말에 첫봉이가 반대하였다.

"아니다, 저녁때가 좋아, 아무래두 밤에 두령의 침소를 덮쳐야 할 테니까."

"그럼...나는 용우물 집에 다녀와야겠는걸."

선흥이가 아무래도 집 걱정이 되어서 집에 들를 것을 비쳤다.

"부역을 빼쳐 달아났으니, 어쩌면 인흥이 언니가 곤욕을 당하게 될지두 모르겠다. 관아에

줄을 넣어 돈냥이라두 주고 수습을 해봐야 되겠어."

"그렇게 해라. 이놈아, 그럴 일을 뭣허러 저지르구 다녀. 너는 네 성깔하구 기운 땜에 늘

골칫거리다. 내가 열 냥을 줄 테니 잘 수습해 놓구 저녁때까지 돌아와라."

"스무 냥만 다우. 아무래두 내가 장연서 당분간 떠나야 되겠으니, 식구들 양식이라두 넉넉히 팔아주구 가야겠어."

첫봉이가 두말 없이 스무 냥을 꺼내 주었다. 그들은 저녁때에 다시 모여서 불타산에 오르

기로 단단히 약속을 하고서, 선흥이만 첫봉이네 집을 나섰다.

조니포에서 게나루 쪽으로 사십여 리를 가면 왜성과 용우물로 갈리니, 용우물은 해변을

낀 너른 들판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만석골은 특히 사방 십여 리에 가로 거칠 데가

없는 들판인데, 그 들판의 끝에 성곽과도 같은 불타산의 이빨이 아득하게 섰는 것이었다.

선흥이가 새벽녘에 용우물로 들어가 퇴락한 집으로 찾아들어가는데, 원래가 선흥이, 인흥

이 형제가 행상아치이니 농사꾼들처럼 집안을 가꾸거나 돌보지 않아서 집 꼴이 말이 아닌

것이었다. 집안은 괴괴하였다.

"용선아, 용선아."

선흥이 문득 불안하여 큰조카의 이름을 부르는데, 안방 문과 건넌방 문이 동시에 열어젖

혀지고 아버지의 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도대체 정신이 있는 놈이냐? 아예 집에서 없어져버리든지, 죽어서 꼴을 안 보면 다

른 식구들 속이나 편하겠다."

안방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건넌방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은 형

수였다. 형수는 아마도 근심 끝에 밤을 새운 듯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이, 무슨 일을 저질렀어요? 용선이 아부지가 나졸들에게 끌려가셨답니다." 강선흥이는

식구들께 면목이 없어서 마루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혀를 찼다.

"네 형이 앓아 드러누워 있는 걸 보구 부역을 대신 나갔으면, 일이 끝날 때까지 착실하게

일하구 돌아와얄 거 아니냐. 차라리 수군역이야 군포를 내어 면했다지만, 장산곶 벌목 부역

을 어찌하겠느냐. 도무지 빠질 길이 없어 너를 보냈는데, 어디 네 몸이 네 몸인 줄 알았니.

느이 형의 몸이여."

선흥이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형수에게 물어보았다.

"언제 잡혀가셨수?"

"어제 한밤중에 나졸들 서넛이 나왔습디다. 앓는 사람이니 어찌 사정 좀 보아달라구 애걸

했지만 부역 나가서 관원을 두드리고 빼쳐 왔으니 본을 보여야 된다구 한 대요."

"그럼 날 잡아가지, 어째서 언니는 잡아가구 법석이람."

"이 녀석아 그 역이 인흥이 역이 아니냐. 그러잖아두 앓느라구 심기가 쇠잔한 사람이 태형이라두 맞아봐라."

어머니가 선흥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꾸짖는 대신에 스스로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장연 고을을 떠나든지 해야지 그놈의 부역 등쌀에 이거 살 수가 있나. 농사라야 궁방전

에 붙여 겨우 끼니를 떼우고, 자식놈들은 타관객지에 보내어 행상아치를 시키니 어디 가선

들 요따위 살림보다 못할라구."

선흥이가 한편 마음으로는 후회가 되면서도, 평소부터 관아 알기를 도야지 우리쯤으로 알

고 있던 판이라 절로 코웃음이 터져나왔다.

"쳇, 쫓아가서 아예 삼문을 와그르르 무너뜨리구 언닐 업어 오지요."

"허어!"

어이가 없는지 선흥의 아버지는 마루를 연신 두드리며 앉았다.

"이놈아, 약한 백성이 죄가 없어도 간이 두근반 세근반 하는 터인데, 자수를 하여 벌받을

생각은 않구 집안 망칠 궁리나 하구 앉었어?"

"죄두 없이 벌을 받는단 말여요?"

"니 아비는 그럼 너보다 못해서 마름놈의 사나운 닥달을 받으며 용선이랑 추수 부역을 나

가는 줄 아냐. 다 살자니 어쩔 수 없어 그러는게야. 늙은 아비는 하루 종일 낫질을 하느라구

허리앓이에 잠들지 못하고, 어린 조카는 곤하다 못해 입술에 헌 데가 가득한 판에 너는 뉘

댁의 도령이길래 그나마 부역을 못 참아서 말썽을 부려." 선흥이가 묵묵히 앉았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마루에서 내려 미투리를 꿰었다.

"어디 가니?"

"관가에 가우."

"거긴 뭣하러 가?"

선흥이가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언니가 잡혀갔다니 개청을 하면 형을 받을 거 아니우. 그래 빨리 쫓아가서 내가 벌을 받

겠수."

가족들은 잠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얘, 잠깐 내 말 좀 들어라."

선흥의 어머니가 말했다.

"느이 형이 잡혀가서 하룻밤을 새웠는데 혹시 아니? 아픈 사람을 설마 태장이야 치겠느

냐. 형방이나 이방이나 모두 생각은 있는 이들이니 방면해줄지두 모른다." 선흥의 어머니에

겐 손가락처럼 사랑이 더하고 덜함 없는 내 살이요 내 자식인 것이었다.

일단 인흥이가 잡혀갈 때 애간장을 태웠던 마음은 이제 또 둘째아들이 형장을 맞으러 가겠

다니 더욱 애처롭고 안쓰러웠다.

"기다려보았다가, 용선이를 보내어 관가의 형편을 살피구 나서 은밀히 이방 어른을 뵙구

사정해보려무나."

"그렇지만...매를 맞으면 그분이 기가 쇠하여 견디지 못할 텐데..."하면서 형수는 그 나름대

로 나서지는 못하고 은근히 선흥의 등을 밀어내듯 말하였다. 하나 역시 아버지의 생각이

늘 공평한 법이라서, 그는 절충한 생각을 끄집어냈다.

"용선이를 데리구 가거라. 둘이서 관가 사정을 알아보고, 그저 무마될 일이라면 무명이라

도 갖다 바치고 인정을 통하여 볼 것이요, 만약 형편이 급박해서 느이 형이 매를 맞게 되면

지체없이 자수를 하여라."

"알겠습니다."

선흥이는 가족들의 애정에 갑자기 송구스럽고 격한 느낌이 들어 코허리가 시큰하여 고개

를 수그린 채 마당에 서 있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형수가 쫓아들어가 부리나케 용선이를

깨웠다. 용선이가 할아버지와 함께 만석골 궁방전에 나가 노역에 시달린 태가 역력하여 선

흥이는 가엾어서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입술이 부르터서 딱지가 더덕더덕 앉았고, 어

린것이 새까맣게 그을린데다 바싹 여위어 있었다. 아직 곤한 잠이 덜 깼는지 마루 끝에 다

시 걸터앉아 끄덕끄덕 조는 놈을 선흥이가 덥석 끌어다 등에 업었다. 그런데도 용선이는 부

끄러워하기는커녕 정신없이 매달려 잠을 자는 것이었다. 선흥이가, "그냥 자게 내버려두고

혼자 갈 테요."

하였으나 식구들이 모두 데려가라고 권유하여 그대로 업고 나설 도리밖에 없었다. 게나루

갈대밭을 지날 때 용선이가 서늘한 강바람에 잠이 깨어 그의 등뒤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삼춘, 어디 가는 거유?"

"응, 잠이 깼구나. 읍내 나간다."

"아부지가 어젯밤 잡혀갔어요."

"그래서 관가에 가는 길이다."

선흥이는 용선이에게 이방에 통기할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남대천의 자갈밭에는 물이 썰

기 시작하여 젖은 바닥이 널따랗게 드러나 있었다. 방게가 이리저리로 그들의 발길을 피해

달아났다. 그들은 배를 타고 남대천 건너 읍내로 들어갔다.

우선 객사 부근의 주막에 선흥이 혼자만 남고 용선이가 길청을 찾아갔다. 개청이 일러서

아전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는데, 용선이가 오락가락하노라니 때마침 형리가 들어서는 중이

었다.

"나으리, 이방 어른 아직 안 나오셨습니까?"

"음, 안 나오셨다. 무슨 일루 찾누?"

"예, 저희 아비가 걱정이 되어 왔습니다."

"느이 아비가 누군데 여기 잡혀왔느냐?"

"어젯밤에 부역 까탈로 잡혀오셨습니다."

"강인흥이 말이로구나."

형리는 어제 저녁때에 장산곶 벌채장에서 내수사 전화가 장연현감께 올린 보장을 접수하

여 이방에게 올렸던 것이다. 관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간단히 처리할 수가 있었으나, 주무

가 다른 곳에서 올라온 것이니 현감께 보고하고 명에 따라 강인흥을 잡아들였던 것이었다.

인흥은 관가 옥에 하옥되어 앓고 있었다. 용선이는 형리에게 매달렸다.

"나으리, 죄를 진 사람은 우리 아비가 아니라 대신 부역을 나갔던 삼촌이 저지른 짓이올

시다."

"알구 있다, 느이 삼촌이 시방 어디 있느냐?"

"이방 어른을 은근히 만나고자 하십니다."

"이방 어른두 별루 손을 쓸 수가 없을 게다. 우리 관내 일이라면, 사또께서 모르시니 소리

들이 적당히 해서 넘기겠으나, 다른 부처에서 넘어와 우리는 하명대루 봉행할 뿐이다. 그래

느이 삼촌이 어디 있느냐?"

용선이가 대답을 망설이는 중인데, 이방이 길청에 들어섰다. 그는 관가에 아이가 들어와

있는 것을 보자, 대뜸 형리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웬 아인가?"

"어젯밤에 잡혀온 강인흥이의 자식이랍니다."

"죄인의 자식이 뭣하러 관부에 와서 기웃거리는가?"

용선이가 머뭇거는데, 형리는 수리의 의심을 덜고자 말하였다.

"강선흥이의 전갈이 있는 듯합니다."

"흠...그래?"

이방은 아직 청탁이 받아들여지거나 돈냥을 주고받은 것이 아님을 눈치채고 적이 마음을

놓았다.

"오늘중으로 온 고을에 나졸을 풀어 잡아들이려 했는데, 제발루 찾아왔군." 용선이가 꺼

림칙하면서도 제 아비의 일이 오로지 걱정인지라, 말을 꺼냈다.

"혹시 자수를 하면 저희 아비가 풀려나오겠는가 삼촌이 여쭈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흥이가 근처에 와 있느냐?"

"예, 객사거리 주막에서 기다리십니다."

"어디 만나볼까. 앞장서라."

용선이는 이방을 데리고 객사거리로 나아갔다. 주막집의 술청 구석에 앉았던 선흥이가 주

뼛거리며 일어나 인사하였다.

"나으리 평안합쇼?"

"오냐...이놈아 부역 나간 놈이 관노들은 왜 두들기고 내수사 전화 어른께는 어째서 행패

를 놓았느냐."

선흥이는 묵묵히 도로 주저앉았다.

"고을에서 일반 왈짜들과 주먹다짐 벌인 것과는 경우가 다르니, 자네두 이젠 정신 바짝

차려야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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