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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36)

카지모도 2026. 5. 27.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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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일이 술 먹기처럼 쉽다면 온 천지에 부가옹이게? 여기서 거래만 잘 트이면 오히

려 의주나 동래보다두 짭짤하다. 청국이 바루 코앞이여." 두 사람은 광문을 닫고 나섰다.

첫봉이의 말에 의하면 중국 배가 해삼 채취를 할 수가 없어서 가끔 연안에 대었다가 수군에

쫓겨가고 잡혀가고 하는데 이제는 상인들이 장삿배를 타고 와서 거래를 하자고 거간을 넣는

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첫봉이네 형제들이 하는 일은 내륙쪽 잠상들의 거간 노릇인 셈이

었다. 선흥이가 첫봉이에게 물었다.

"거래를 해주면 구전은 넉넉히 받니?"

"받다뿐이냐. 내게 밑천만 조금 있다면 직접 배를 타구 청국으루 건너가볼 텐데..." 둘봉

이와 첫봉이 선흥이 셋은 점심을 함께 들고 나서 우선 잠을 자두기로 하였다. 물때가 밀리

는 자정 무렵에 깨어나 밤일을 해야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에 배가 오기로 약속이 있

었던 것이었다.

밀물 때가 되어 그들의 모친이 형제들을 깨우러 왔다. 셋은 일어나 야참으로 술과 밥을

든든히 먹고 갯가로 나갔다. 말린 해삼이 가득 들어 있는 광우리와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다.

첫봉이가 배를 끌어내어 짐을 싣고 나서 둘봉이에게 말하였다.

"나머지 물건들은 차례로 바위틈에 박아놔라. 선흥이가 와서 실어갈테니까." 둘봉이는 집

으로 되돌아가고 첫봉이와 선흥이만 배를 타고 멍구미섬으로 나아갔다. 첫봉이가 후미에서

노를 저었다. 나룻배보다도 훨씬 작은 편주인데 물결에 끊임없이 뒤뚱거리고 있었다. 노도

앉아서 젓는 짤막하고 넓적한 것이었다.

"노 저을 줄 알지?"

"얘, 아무리 장사질 다녔어두 장연서 갯장구치고 자란 사람이다."

"수군 진의 기찰선에게 들키면 막바로 감영에 압송되어 옥귀신 되구만다." 그들은 멍구미섬을 돌아 나갔는데, 워낙에 바위를 때리는 물결이 거세어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였다. 선흥이가 캄캄한 섬의 숲 사이를 살피면서 물었다.

"거간패는 느이뿐이냐?"

"몇무리가 있었지만, 외방 머슴이 동네 개 등쌀에 동구 밖 출입이라지 않더냐? 우리가 쫓

아버렸다."

그들은 배를 저어 섬의 뒤편으로 돌아 나갔다. 첫봉이는 노를 올리고 삿대를 들어 좁은

바위틈을 요리조리 빠져나갔고, 이윽고 비좁은 모래사장이 나왔다.

"물길 잘 봐두었겠지?"

"대강은 봤는데...오늘밤 잘못하면 물귀신 되겠구나." 그들은 배를 뭍에 끌어올렸다. 선흥

이와 첫봉이는 배에 실었던 짐을 모래밭에다 차례로 운반해놓았다.

"아무두 없잖아."

"저어기 어디엔가 있을 게다."

첫봉이는 캄캄한 바다 쪽을 가리켰다.

"그믐이라 다행이지 달이 뜰 적엔 새벽 장사가 기중 낫다. 안개가 자욱히 끼니까..." 첫봉

이가 쌈지를 꺼내어 부시를 쳤다. 그리고 준비해 온 기름 먹인 솜뭉치에 불을 붙였다.

그는 횃대를 들어서 머리 위에 쳐들고 천천히 흔들었다. 몇번을 걸고 나서 불을 모래 속에

푹 박아서 꺼버렸다.

"너는 어서 가서 남은 짐들을 날라와라."

선흥이는 첫봉이가 시킨 대로 배를 띄워 물길을 찾아나갔다. 역시 첫봉이보다는 길눈이

어두워서 바위에 부딪치곤 하였으나, 삿대로 버티어 뒤집어지는 것은 간신히 면할 수가 있

었다. 선흥이가 멍구미섬을 돌아서 갯가에 닿으니 둘봉이가 짐을 모아다 놓는 중이었다. 둘

봉이는 짐을 배에 실으면서 말하였다.

"어쩐지 기분이 매우 켕기는데..."

"왜 무슨 일이라두 났니?"

"그게 아니라, 보통 땐 인적이 끊긴 곳인데 오다 보니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혔더라."

"뭘 고기잡이 나온 사람들이 지나갔겠지."

둘봉이는 자기도 배에 올라타면서 말하였다.

"아무래두 첫봉 언니께 말해줘야 되겠어. 멍구미 밀상질 목이 짭짤하단 것은 불한당들끼

리 대략 눈치들을 채구 있단 말이거든. 다른 패거리일지두 모르지."

"까짓 거 모조리 오라구 그래, 내가 하백이 사춘을 만들어줄 테여."

"환도라두 가지구 나올 걸 그랬군."

그들은 배를 저어 다시 섬의 뒤로 돌아 나갔다. 그들이 물길을 찾아서 모래사장으로 들어

가는데 뒤편에서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앞에도 먼저 닿은 중국인들의 배가 보였

다. 아마도 큰 배는 멀찍이 바다 가운데 떠 있는 모양이었다. 첫봉이는 세 사람의 사내와 함

께 물건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이 배를 대어 광우리들을 내려놓았고 뒤에 따라오던

배도 대어져 두 사람이 작은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사장에 올랐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은 서

투른 조선말을 지껄이며 첫봉이와 흥정을 하였다. 말린 해삼은 적정가격이었는지 수월하게

타협이 되었으나, 역시 인삼 흥정이 오래 걸렸다. 그들은 기름등을 켜서 발 아래 내려놓고

일일이 인삼들을 살펴보았다. 흥정이 이루어졌는지 상대방이 작은 상자를 첫봉이에게 건네

었다. 첫봉이가 상자를 열고 절편만한 은자를 꺼내어 수효를 헤아렸다. 그들은 서로의 배를

끌어내어 짐을 싣고 있었고, 첫봉이가 서둘렀다.

"얼른 가자. 다음 기일은 내달 그믐이다."

첫봉이가 거래한 상대도 큰 상인은 아니고 또한 상대를 유일하게 첫봉이로만 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첫봉이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듯하였다. 첫봉이가 바라는 것은 다른

잠상들과도 거래를 트는 일이었으나 그들은 첫봉이와의 관계를 독점하려 하였던 것이다. 따

라서 첫봉이는 그들의 신임을 얻고자 성실하게 거래에 응하였다. 그들이 배를 띄우려는데

모래사장 뒤편의 숲속에서 나무를 헤치는 듯한 여러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이놈들, 꿈쩍 말아라!"

그들의 등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리면서 여러 놈들이 모래밭으로 뛰어 내려왔다.

"어...?"

첫봉이는 순간적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배를 띄워 달아나버리면 돈냥은 무사하게 보존할

지 모르나 당인들에게 신용을 잃게 되어 밀상질은 댜해먹는 것이었다. 비록 불리하여 돈을

빼앗기더라도 거래자들에게 이것이 계획된 것이 아니요, 패가 다름을 보여주어야만 하였다.

뒷전에 섰던 청인들도 놀라서 제각기 비수를 빼어들었다. 그러나 선흥이와 첫봉이 형제는

셋 다 맨몸이었다. 둘봉이가 재빨리 배에서 해삼 캐는 작살을 집어서 제 형과 나누어 가졌

다. 그들은 물을 등지고 숲을 향하여 활처럼 둥글게 막아섰다. 숲속과 바위 뒤에서 몰려나온

놈들이 칠팔 인은 되는 것 같았다. 첫봉이가 작살을 쳐들고 물었다.

"웬놈들이냐?"

"느이 밀상질을 단속하러 나온 어른들이다. 물건과 돈을 이쪽으루 던지면 무사히 돌려보

내 주지."

"어디 빼앗아보아라!"

어둠속에서 껄걸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그놈, 아무리 돈이 귀신을 부린다지만 싸워서 이길 것 같으냐.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강선흥이가 두 팔을 벌리고 앞으로 나가면서 얼러댔다.

"누구긴...네깐 놈들이 누구겠니. 고작해야 좀도적놈들이겠지. 어디 나는 맨손 들구 바람을

쥐는 사람이니 덤벼보아라."

외치던 사내가 좌우를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안되겠다. 얘들아, 콩알을 먹여줘야겠다."

양쪽 끝에 섰던 자가 동시에 앞으로 불쑥 나서는데 그들을 겨눈 작대기의 끝이 보였다.

"칼이구 뭐구 다 귀찮다. 움직거리는 놈은 사정없이 구멍을 뚫는 총포란 게여." 총에 장

사가 따로 없으니 선흥이도 감히 달려들 수가 없었다.

"손에 가진 걸 모두 버려라!"

첫봉이 형제가 하는 수 없이 작살을 모래밭에 힘없이 내던졌다. 청인들도 눈치를 챘는지

짜른 칼들을 떨어뜨렸다. 첫봉이가 말하였다.

"부탁이 한가지 있다. 당사람들은 그냥 보내다우."

"어째서..."

"남의 밥줄까지 끊어놀 테냐? 물건을 빼앗았다간 거래는 끊기구 만다."

"그런 걸 우리가 알 게 뭐냐?"

일당들 중에서 두 놈이 나와 물가에 대어진 첫봉이네 배에서 은자가 들어 있는 상자를 날

라갔고, 다시 해변에 쌓아놓은 부담과 광주리를 운반하여 갔다. 그리고는 가라고 청인들의

등을 떼미니, 그들은 황급하게 배에 올라 뭍을 떠났다. 첫봉이가 애가 달아서 미칠 지경이었

지만 총포가 계속 겨누고 있으니 달싹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자들은 배를 타고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놈들을 묶어라."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지시하여 선흥이와 첫봉이 형제는 밧줄에 꽁꽁 묶여서 숲속으로 끌

려갔다. 그들은 세 사람을 이끌고 섬의 소나무 숲으로 가서 다시 나무에 한무더기로 묶어놓

고는, 이리저리 흩어져 앉았다.

선흥이는 실로 가소로웠다. 총포에 움찔하여 주먹 한번 제대로 쥐어 보지도 못한 채 산짐

승처럼 묶이고 말았으니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판이었다. 선흥이는 묶인 팔과 등판에 은

근히 힘을 주어보았다. 되시근하기는 하였으나 일시에 힘을 주면 끊길 듯도 하였다. 그는 틈

만 엿보면서 나란히 양옆에 묶인 첫봉이와 둘봉이의 발등을 가만히 밟았다. 밀상 목을 덮친

사내들은 흡족했는지 제각기 떠들었다.

"이제 썰물 때만 되면 슬슬 떠나기루 하자."

"내가 뭐랍디까. 기일을 맞추어 배가 들어오는 걸 봤다고 안 합디까. 어제 해질 녘에 덮개

를 씌운 청국배가 먼 데 떠 있는 걸 봤지요. 좌우간 이번 일엔 내 공이 제일 큽니다."

"자아 이젠 물이 썰 때까지 한숨 자둡시다."

"저놈들 괜찮을까?"

곁에서 주억거리던 자가 냉소를 날리는 것이었다.

"금강역사라 할지라두 저 구렁이 같은 바를 어찌 끊겠수. 틈틈이 살펴볼 것두 없겠네."

그들은 나무에 한놈씩 기대어 다리를 길게 펴고 앉았다. 짙은 안개가 섬 주위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총총하던 별빛이 차차 빛을 잃어가는 참이었다. 건너편 산에서 밤새들이 고즈

넉하게 울고 있었다. 선흥이는 그들이 누구인가를 대략 눈치챌 수가 있었다. 그들은 불타산

심백이네 일당들이 분명하였다. 그들 중에 서넛이 먹물 들인 중옷을 입고 있었으니 천불사

에 있는 놈들인 모양이었다. 심백이라면 선흥이가 벌써 오래 전에 혼을 내준 일이 있는

자였다. 심백이는 선흥이를 몹시 두려워하여 남대천 항우라고까지 불렀던 것이었다. 그의 졸

개들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흥이는 몇번 힘을 넣다가 일시에 팔굽에 힘을

모으면서 위로 쳐들고 어깨를 부풀려 앞으로 당겼다. 팽팽한 그의 근육 위로 밧줄이 쓰라리

게 파고들었다. 계속 힘을 쓰며 어깨를 좌우로 뿌리치니 팔 근처의 줄이 느슨해졌고 이어서

두어 가닥이 툭 끊어져버린다. 다시 한번 힘을 쓰니까 줄이 스르르 풀어지며 흩어져 내렸다.

선흥이는 잠깐 그러고 서서 잠자는 도적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을 감시하고 앉았던 자도 무릎에 화승총을 얹은 채로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선흥이

가 첫봉이 형제의 줄을 풀어주려 하나 칼이 보이질 않았다. 더듬더듬 나무에 기댄 자들 앞

을 앉은걸음으로 살피면서 다니는데 한 녀석이 등에 환도를 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흥이

가 호흡을 삼키고 슬그머니 자루에 손을 대어 뽑아내는데 그놈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오른

쪽으로 넘어진다. 다시 느긋하게 다져먹고 선흥이는 환도를 뽑았다. 뽑자마자 재빨리 되돌아

가서 첫봉이와 둘봉이가 묶인 밧줄을 끊었다. 형제들이 나무에서 몸을 막 떼어내는 찰나인

데 등뒤에서 누군가 부르짖었다.

"저놈들 봐라!"

선흥이가 돌아서니 도적들이 우르르 일어나고 있었다. 앞 뒤 챙길 것 없이 한달음에 달려

들어 화승총 가졌던 자의 가슴팍을 발길로 내차고 총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등뒤를

덮치려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우두머리 사내의 면상을 총대로 후려갈겼다.

"에쿠!"

소리를 내지르며 그자는 얼굴을 감싸고 뒤로 넘어졌다. 선흥이가 어둠속에서 닥치는 대로

총대를 휘두르는데, 워낙에 도적들이란 형세 판단에 빠른지라 뿔뿔이 흩어져서 섬의 언덕을

넘어갔다. 첫봉이도 환도로 한 사내를 베어 넘겼다. 첫봉이는 우선 물건 찾는 일이 급하여

주위를 더듬거려보는데 해삼을 담았던 광주리가 엎어져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삼이 들어 있을 부담과 은자가 든 상자는 보이질 않았다. 도적들이 달아나면서 챙겨가지

고 뛴 모양이었다.

선흥이가 씨근거리면서 도적들의 뒤를 쫓아갔다. 언덕을 넘어서니 이미 그들은 섬을 빠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바닷물이 제법 썰었는데 섬에서 사선 방향으로 모래톱이 쌓여 있었

고, 도적들은 모래톱을 따라서 뛰는 것이었다. 물이 겨우 정강이에 찰까말까 하였다. 선흥이

가 뛰쳐내려가는데, 방포 소리가 들려왔다. 탄환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는 듯한 날카로운 소

리가 들려왔다. 뒤미처서 따라오던 첫봉이가 언덕 위에서 외쳤다.

"선흥아...이리루 올라와라."

선흥이는 물에 내려서지 못하고 멈칫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첫봉이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쫓아라."

선흥이는 다시 섬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첫봉이는 급히 말하였다.

"빨리 예서 빠져나가야 한다. 우리두 이젠 저놈들과 마찬가지다."

"곧 쫓아가서 뒷덜미를 덮치려는 참이었는데..."

"아니야, 방포 소리가 들렸으니 수군 진에서 들었을 게다. 아마 장교가 군사를 인솔해서

기찰을 나올 게다. 그러잖아두 멍구미섬이 의심을 받던 터였다." 그들은 섬 뒤편의 모래사

장으로 되돌아왔다. 둘봉이가 우두머리 사내를 밧줄로 단단히 비끄러매고 있었다.

"몇 놈이냐?"

"네가 때려 잡은 놈이 소두령인 모양인데, 나두 한놈 베었다." 첫봉이의 말에 둘봉이가

침을 탁 뱉으면서 덧붙였다.

"살펴보니 어깻죽지에서 허리까지 깊숙이 베었어. 버얼써 고택골 갔는데..." 선흥이는 소

두령의 머리를 발로 건드려보았다.

"이놈은...?"

"비슬비슬 일어나는 걸 메어치구 묶어두는 중이야."

"빨리 서두르자. 의논은 집에 가서 천천히 하기루 하구...관군이 오기 전에 얼른 없어져야해."

첫봉이가 배를 끌어올렸고, 둘봉이는 모래밭에 사방으로 흩어진 물건들을 그러모아다가

광주리에 담고 배에 실었다. 선흥이가 잡힌 소두령을 번쩍 들어 배에 태우고 뭍에서 밀어냈

다. 그들은 곧 섬을 벗어나, 이제는 바닥이 얕아져서 모래에 가끔씩 쓸리는 배를 삿대로 밀

고 나갔다. 거의 뭍에 이르러 선흥이가 배를 끌고 갔다.

"저 봐, 진에 불이 휘황하다. 곧 기찰선이 뜰 거야." 그들은 재빨리 포구를 벗어나 집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첫봉이네 집에 이르니 노모는 잠이 깨어 두 아들을 기다리던 중

이었다. 첫봉이가 말했다.

"이제부터 저놈에게 일의 속내를 캐어보자."

"정신 차릴까 모르겠군."

그들은 광문을 따고 들어갔다. 선흥이가 묶인 소두령을 사정없이 내던졌다.

"어 그놈 뭘 처먹었는지 똥집 한번 무겁네."

끄응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관솔 불빛이 눈에 거슬리는지

자꾸만 고개를 돌렸다. 첫봉이가 비수를 뽑아서 그자의 살에 슬슬 비벼보면서 말했다.

"우리가 누군 줄 아니...아마 모를 게다. 이쪽 분은 남대천 항우되시는 강총각되시고, 나는

조니포의 봉이 형제 중 맏이 되는 사람이다."

소두령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장사님과 첫봉이 성님 선성은 산채에서두 압니다. 살려주오." "느이들 멍구미 밀상 목

이 누구 밥줄인지 알구 왔겠지." 소두령 사내가 말을 못하고 고개를 푹 박았다. 첫봉이가

칼끝으로 사내의 턱을 치켜올리자, 사내는 안면을 잔뜩 찡그리고 그를 마주보았다.

"우리 목인 줄 알았지?"

"예..."

"심백이가 느이보구 시키더냐?"

소두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첫봉이는 이를 갈았다.

"죽일 놈...감히 나를 넘봐? 여기는 갯가인데, 녹림패가 산을 버리구 남의 구역으루 들어와

분탕질을 했것다. 그래 거래가 있을 줄은 어찌 알았느냐?"

"예, 정탐꾼을 내려보내어 멍구미섬을 지켜보게 하였습니다."

"물은 어찌 건넜느냐?"

"밝을 때 조개 줍는 사람들인 척하구 섬에 들어가서 기다렸지요. 물이 썬 뒤에 모래톱을

건넜습니다."

첫봉이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흠, 여우 같은 놈들!"

하고 나서 첫봉이가 선흥이에게 말하였다.

"얘, 내가 네 동무인 줄 번연히 알면서 심백이놈이 이럴 수가 있냐?" 선흥이도 그런 말

에는 은근히 불쾌하였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글쎄나 말이다. 당장 산채루 쳐들어가서 모조리 때려 죽이구 말아야지." 첫봉이가 사내

의 얼굴을 다시 치켜들었다.

"어쩔테? 여기서 물고기 미끼가 될래, 아니면 순순히 산채까지 우리를 모셔갈 테냐."

"살려주신다면 여부가 있겠습니까. 불타산까지 모셔드립지요."

"만일 부담과 은자를 찾으면 네게두 두둑히 나눠주겠다. 이 길루 산채에 가는 거다. 그리구...느이들 화승총은 어디서 생겼지?"

"예, 몇 달 전에 심두령이 양주에 장물을 넘기러 갔다가 비싸게 주고 구했답니다." 첫봉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자루나 있느냐?"

"다섯 자루가 있는데, 일을 나올 때만 두령이 한두 자루씩 내줍디다."

"하나는 내가 부숴버렸다."

강선흥이가 아쉬운 듯이 말했으나, 첫봉이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였다.

그들이 광문을 굳게 잠가 놓고 마당으로 나서보니 과연 멍구미섬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

기찰선의 횃불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모래톱 가까이 대어진 배에서 군사들 여럿

이 내려서 해변으로 건너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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