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50 1994. 5. 1 (일)
바쁜 토요일.
대준건설과 ST-93007 계약건 처리.
외주업체 작업장 및 탈의실 도면과 실행예산 작성.
김상수에게 WEEKLY REPORT의 ADVISE.
해상 크레인 동원하여 SB-411 HATCH COVER 탑재.
4시 거의 되어 퇴근하여 형에게.
마침 퇴근한 형과 함께 영도다리 건너서 남포동 입구 호정횟집에 마주 앉는다.
대화- 그 대화의 질의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형제사이의 우의는, 이해는, 혹은 정이라는 건 마주앉아 아무것이나 말을 주고받는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게 우러 나오는 것이다.
얼마나 격조한 관계의 형제인가.
그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자주 얼굴을 맛대고 되도 않은 얘기일망정 뱉어내는 것만으로도 잃었던 그 무엇은 되살아날 수 있는 것.
둘이서 쐬주 3병을 까고 아파트로 가서 어머니 뵙는다.
거실에 앉아 맥주에 다시 시나브로 취해가면서.
슬프디 슬픈,기쁘디 기쁜, 관계의 환희와 서러움에 가슴 시려가면서 이윽고 취한다.
작취미성의 일요일 아침.
새롭게 하소서 나의 주 나의하나님.
17252 1994. 5. 3 (화)
어제 저녁 TV 프로 '신인간시대'는 무용가 홍신자 이야기.
전에 읽었던 '자유를 위한 변명'을 쓴 여자이다.
오십넷의 나이의 자그마한 용모.
시골에 곡마단 바닥같은 연습장을 만들어 젊은 춤꾼들과 합숙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녀가 꿈꾼다는 자유의 삶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양태는 그녀의 용기이기도 하고, 깊은 성찰후의 어떤 각성에서 비롯한 선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간파해 내고 만다.
그 오종종한 얼굴에서, 늦둥이 딸네미를 대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의 제자들이라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그녀의 부자유함과 속박과 한계를.
그녀는 오만한 것일 뿐이다.
자유를 향한 무모함을 감추기 위한 오만, 부자연스런 오만.
자연에로의 회귀, 내면으로 부터의 자유는 그녀의 몽상일 뿐이라는걸.
다만 그녀가 내 선망의 눈길을 끌수 있었던 것은 인습이나 관계, 사회적인 문화정서를 향한 '사절함'의 몸짓이었을 뿐이다.
화면에 비추인 그녀의 얼굴과 몸짓을 보고 나는 단번에 파악해 버리고 만다.
한낱 창조주가 빚은 피조물, 그 실존의 한계. 인간이란 숙명적 존재.
인간이라는 존재는 스스로 결정하고 사고하여 선택할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란.
라즈니쉬가 무에며 깨달음이란 또 무슨 헛소리인가.
결국'아 나의 존재주여'하고야 마는 목숨의 한계를...
박옥수 목사의 설교집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그 단순하고 명료한 구원이라는 단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오의가 나를 향해 속삭이는 은혜를 받고 있는 중이다.
17253 1994. 5. 4 (수)
독서를 위한 사무실에서의 화장실은 오롯한 나의 영토.
여닫이 문의 걸쇠를 걸고,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낮추어 양변기에 앉는다.
그리고서는 뱃속의 상태를 가늠하면서 항문의 반응을 컨트롤하면서, 그 육체의 소나타에 잠기면서 나는 내 독서에 열중한다.
그리하면 어느새 항문의 사정은 아랑곳 없다.
박옥수 목사의 설교집.
우화를 곁들여 죄사함의 의미를 쉽게 풀어 쓰고 있다.
십자가의 의미, 죄를 용서 받았다는 그 사실에 대한 확신.
하나의 엄연한 사실로서 그것을 인식하고 그 확신으로 인한 환희.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
그 못박힘.
예수님의 존재로서 드리는 그 번제가 바로 나의 죄로 인함임을 내 실존으로서 인식하는 것.
그리하여 완전하게 나를 비워 버릴수 있다는.
그리하여 완벽하게 겸손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에고의 완전한 포기가 가능하다는.
버스타고 서면에서 PS곤이 만나서 다시 버스타고 덕포의 KH근이 화실.
유령처럼 즐비하게 도열해 선 그림들에 둘러쌓여 마셔 취하다.
KH근이의 그림은 썩 잘 그린 그림이 아니다.
테크닉은 무성하되 내 보기에는 에스프리는 없다.
17255 1994. 5. 6 (금)
어린이 날.
정작 떠들석한 곳은 TV 뿐.
도심은 그저 심드렁하다.
있는 집 아이들은 호텔로 어디로.
없는 집 아이들은 군것질이나 만화가게 쯤.
사직동.
장인 생신.
장인 장모께 큰절 올리고 맥주잔 기울인다.
지그시 아파오는 오른쪽 아래 어금니.
어딘가 삐걱거리는 느낌의 내 구조를 지탱하여주는 SKELETON.
오늘 俊이 소풍.
17256 1994. 5. 7 (토)
내게는 복용해서는 안되는 약이 있다.
게보린등과 같은 진통제나 아스피린류의 약.
그런 따위를 삼킨후에는 반드시 말못할 고통이 엄습한다.
치통 때문에 넘긴 진통제, 정직하게 잇빨의 통증은 다스려 주었지만 그 부작용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다.
속이 미식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뱃속이 울렁거린다.
육체의 콘디숀중 가장 기분 나쁜 느낌.
오늘 치과에 가려한다.
형편없는 치아의 상태를 드러내 보이기가 창피하겠지만 어쩌랴.
英이가 어버이 날이라고 '쉰들러 리스트' 극장표 2장과 카네이션 두송이.
돈도 없을 녀석이.
새벽 치통으로 깨어난다.
2시가 넘지 않았다.
쏘파에 홋이불 덮고 길게 누워 비디오 영화 한편 본다.
'슬리버'
황제처럼 안락의자에 앉아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의 화면을 조작하면서 남의 공간 그 은밀한 프라이버시를 엿보는 재미.
그런 엿보기의 은밀한 성적 쾌락을 탐닉코자하는 이상심리는 분명 내게도 있는 것이다.
내게는 성적 도착증세가 없지 아니하다.
마스터베이션의 상상이 실제의 성행위보다 얼마든지 엑스터시 할 수가 있다.
봄, 무르익는 봄.
그러나 바람소리.
17257 1994. 5. 8 (일)
토요일 퇴근하여 드디어 치과에 가다.
어금니가 없는채로 오랜 세월 방치해 놓아서 노출된 잇몸이 감염되어 염증을 일으켰다나.
J와 아이들 어머니께 다녀오다.
어버이 날, J는 빠짐없이 이런 날을 챙겨주어서 그 점 매우 고맙다.
일요일 새벽.
俊이 방문 바깥에다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놓은 봉투가 있어 떼어보니, 녀석도 참.
어버이 날 축하 메시지와 금일봉이 들어있다.
약소하지만 두 분께서는 이 돈으로 식사나 하시라나?
하나님 운운하는 그 우화는 녀석이 창작해 낸 것일까?
사랑이 넘치는 녀석의 마음을 나는 읽는다.
그리고 아비짜리는 한없이 흐뭇하다.
17258 1994. 5. 9 (월)
J와 시내.
DOWN TOWN의 인파는 죄다 청소년들 일색.
넘쳐흐르는 상품들, 번쩍이는 풍요의 과일들, 현란한 유혹들은 처처에 널려있다.
가히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의 농익음 아닐손가.
그리고 이 성장의 사대 최대의 수혜자는 지금 저 아이들일 것.
그리하여 난무하는 쾌락과 감각주의.
그러하지만 영혼은 여위고.
J와 들어서는 영화관.
英이 어버이날 선물로 십여년만에 들어서는 영화관이라는 곳.
'쉰들러 리스트'
처음에는 낯설어, 커다란 스크린에 눈이 어지럽더니 차츰 적응되면서 화면에 빨려 들어간다.
유태인의 수용소에서의 현실은 과거가 되어 흑백의 다큐멘터리 수법을 구사한 화면.
작위적이고 테크니샹의 냄새만 가득하다.
이따위가 아카데미를 휩쓸고 어쩌구..
나는 스필버그에 대하여 충분히 실망하였다.
작가주의는 전혀 없고, 철학도 물론 있지 아니하며 상업적 서스펜스와 상업적 감동만이 작가주의의 탈을 쓰고 잔치를 벌일 뿐이다.
예전 훌륭하였던 이런 주제의 영화보다 하나도 나을게 없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흉내일 뿐이다.
엘리 위젤의 한편의 소설이나 예전에 보았던 여러편의 영화들이 훨씬 낫고도 낫다.
그저 잘 생기고 잘 다듬어진 헐리웃 영화.
그리고 우리 英이가 선물하여 보여준 영화로서의 가치는 더욱 잘 생겼다.
영화를 보고 J와 마시는 두어잔의 호프.
아이들 덕에 호사스런 가시버시.
봄햇살....
17259 1994. 5. 10 (화)
사장,전무,설계부 이사.
장기출장- 미국, 중국,베트남,일본....
일거리를 줏으러 가는 것인데 전무가 없으니 나로서는 당분간 마음이 편하구나.
치과, 다시 X-RAY 찍는다.
몇십년 동안 비정상적으로 고착되어 버린 치아가 미상불 의사는 골치 아픈 모양이다.
환자는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치과병원.
돈을 번다는 실감이 난다. 치과의사.
고원정 '대권'반납하고 92년도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과 신춘문예 추리소설 당선작품집을 빌린다.
몇 편 읽는 추리소설- 그 수준에서 일천한 우리나라 추리문학의 한계를 느낀다.
俊이 시험중.
초저녁 잠자리 들면서 제 방문에다 써붙여 놓은 쪽지.
'부모로써 마음 아프시겠지만 새벽 2시에 사정없이 뺨을 때리고 찬물 뒤집어 씌어서라도 정신차리게 하여줍시사'하는 .
그래서 아비는 2시에 두들겨 깨워 일으켜 세우기는 하였으나 웬걸.
조금 있으려니 안방에 기어들어와 누워 버린다.
잠에 저 버리는 고3짜리.
의지의 문제다.
17260 1994. 5. 11 (수)
俊이 시험 사흘째.
3시경 극심한 치통에 잠이 깨이다.
어쩔수없이 삼키는 진통제 한알.
서서히 통증은 가라앉으나 반대급부.
속이 미식거리는 은회색 불쾌감 속에 잠기는 그 기분 나쁜 느낌을 감수해야 한다.
동편 창문 유리창을 빗방울이 때린다.
17261 1994. 5. 12 (목)
잇빨은 뿌리께에 곪아 있다고.
그동안 잇몸이 시도 때도 없이 아파서 연고를 발라왔는데, 그 만져지는 멍울은 알고보니 바로 잇빨의 탈 때문이었구나.
미련한.
급한 내 성격은 그 쪽 잇빨을 뿌리째 뽑아 없앴으면 좋겠는데, 또 한쪽의 우유부단한 내 성격의 일단은 그것을 망서린다.
의사의 한번 살려보자는 말한마디에.
전날 새벽, 복용한 한알의 게보린 때문에 하루 종일 칙칙 부글부글 미식미식 앗득앗득한 느낌으로 보내게 한다.
금기! 금기! 사리돈, 게보린, 아스피린.
이러한 약은 나와는 상극이다.
17261 1994. 5. 13 (금)
잇빨의 통증은 한결 나아지다.
5월 한낮은 제법 후덥지근하다가도 빈 회의실 장의자에 숙취의 몸을 잠시 눞히고 있노라면 으슬으슬 추워진다.
금성하우스의 안사장과 계약 협의, 젊은 만큼 노련함이나 이해력이 부족한 대신 열정은 있다.
그는 사장 사촌형님의 아들인데, 사장의 고종 사촌인 전무와의 파워게임에 밀리는 부류여서 노심초사, 전전긍긍.
'새롭게 하소서'
고은아, 곽정환 부부 출연.
부유하여 행복한 크리스찬.
부유한 부부는 정다웁다.
그런데 부유하기 때문에만 정다운 것은 아닐 것이다.
英이 저희과의 아이들과 지리산 M.T
일박이일 여정.
결국 설득 당하여 허락해주는 부모에 감지덕지하며 새벽 일찍 배낭 챙겨 떠났다.
기도.
17263 1994. 5. 14 (토)
의사는 잇빨에 희망을 건다.
뽑지말고 치료하자고.
내가 뽑아버리자고 하면 뽑아버릴 포즈인데 의사의 그 한마디에 내가 어쩔수 있을 건가.
신춘문예 수상소설과 추리소설들.
어느 것은 훌륭하고 어느 것은 미진하다.
미국입양아의 정체성없는 삶의 양태를 그린 소설도 좋았고, 산꾼의 이야기도 매우 사실적이어서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신춘문예 작품들에게서는 도전적인 패기와 독창적인 상상력이 없고, 그저 현실의 유행성에 편승한듯한 소품 따위가 수두룩하다.
예전에, 신춘문예는 사회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듯한 그 패기는 대단한 것이었는데.
추리소설, SF소설들에서는 근원적인 역부족이 느껴진다.
상상력, 지식, 구성등...
나도 이 나이에 소설 같은걸 한편 쓸수 있을까.
나이 먹으면 날고 뛰는 상상력과 감수성과 패기같은 것은 쇠퇴해 질지라도 어떤 주제에 대한 천착의 자세는 더욱 치열할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어떤 보편적인 것을 향한 가치의 획득 욕구, 감정의 평형, 인생의 이면에 대한 혜안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이런 것들은 다른 불씨가 되어 열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니.
기다려 볼꺼나.
꿈- 난삽하고 난삽한 꿈, 꿈들.
내 꿈들을 정리하고 정돈하여 형상화할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훌륭한 작품이 될 수도 있지 않을란가.
17264 1994. 5. 15 (일)
비 흩뿌리는 토요일.
라스팔마스에 기술감독으로 4년동안이나 나가 있던 장명표 이제 귀국하여 찾아오다.
순박한 눈매의 오종종한 얼굴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이제 그도 나이먹은 티가 난다.
스페인령 라스팔마스의 에피소드들....
오후 퇴근하여 집에 오니, 강기탁의 전화.
몇 년째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격조함이 있는 녀석.
마루에 퍼질러 앉아서 소주를 마신다.
'오멘 4'
점점 취하여 가는 의식에 영화의 내용이 남아 있을리 없다.
英이는 내가 잠든 사이, 11시경 돌아왔다.
천왕봉은 오르지 못하였다고.
일요일 궂은 날씨.
바람이 분다.
17265 1994. 5. 16 (월)
종일 비디오 영화 보면서 마루에 퍼질러 앉아서 맥주를 마신다.
'오멘4'
악마 데미안 쏘온의 아이.
성서의 예언.
악마는 정말로 하나의 물리적인 실체로서 존재할런지도 모르겠다.
관념이나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확연한 하나의 객체로서 존재하는 악마.
화창한 아침,.
양희은과 패티킴의 노래 틀어놓고.
여호와의 증인 팜플렛을 읽는데..
우찌무라 간죠는 말하였지.
유니테리언의 근본적인 차가움에 대하여.
17266 1994. 5. 17 (화)
사랑, 사랑, 애정이여.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내가 갈구하는바 내 황폐한 대지를 적셔줄 생명의 비.
사랑, 한 줌의 사랑.
아내짜리의 사랑이여.
TV '인간시대'.
스위스에 입양된 남매.
훌륭하게 성장하여 生母의 초청으로 17일간을 낳아준 어머니와 함께 보낸다.
스물다섯살 딸의 생모를 향한 그윽한 눈빛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지언정 동양여인의 바로 그것이고,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들의 그것은 바로 막둥이의 정겨움이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따위는 대수가 아니다.
스위스 양부모의 인간적인 성숙된 의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히 흉내내지 못할 성숙한 사랑.
사랑이라는 것.
당시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어린 아이들을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남매를 품에 안는 어머니의 행복은 울고불고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윽한 사랑, 사랑. 사랑.
恨이란 그 그윽한 서로의 눈빛 속에서 모두 녹아 버린다.
그냥 나아준 어머니이고 딸이고 아들이다.
문화가 무엇이냐.
어머니와 딸과, 그리고 아들이 함께 그윽히 서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떠들썩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무당의 껑충껑충 뛰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떨어져 있음으로 더욱 성숙된 사랑은....
만약 그 남매가 국내 어딘가로 입양되었다면 이런일은 없을 것.
어제의 그 다큐멘타리 프로.
어떤 드라마보다도 아름답고 성숙된 한편의 드라마.
서양인의 무의식은 사랑의 본질, 사랑이란 그 고독함을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밤새 뒤척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이 감상적 에고의 늪에서 벗어나기는.
어제의 TV 프로는 내게 잊지못할 영상 하나를 심어 주었다.
17267 1994. 5. 18 (수)
어제의 TV 프로는 퇴근하여 나의 발길을 어머니께 향하게 한다.
어머니, 형수, 哲이.
내 피붙이들.
그 어머니 곁에서 그예 취하여 늦은밤 돌아와 헤르만 프라이가 부르는 슈베르트를 듣는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헤르만 프라이의 리트의 선율 속에서 나는 어제 본 인간시대 그 세모자녀와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사랑, 사랑.
애틋한 눈물이 없고.
저미는 기쁨이 없는.
성숙한 사랑이라는...
17269 1994. 5. 20 (금)
가라 앉는다. 가라앉는다.
혼탁한 리비도의 구정물 속으로.
난마와 같이 얽혀있는 어두운 감각의 욕망.
무수한 지렁이의 엉킴, 밀도 진한 늪같은 곳으로의 침잠...
찬란한 날씨의 휴일, 부처님 오신 날.
떨처 일어나라고, 저 푸르름은 손짓하건만.
마냥 가라 앉을뿐이다.
사슬에 매인 족쇄,
이 천성은 숙명인가.
성품은 어쩔수 없단 말가.
이 성품을 확 바뀌게 할 묘수는 없는 것인가.
내게도 그 분께서 주신 천품은 있을 것...
17270 1994. 5. 21 (토)
간밤 회색수면으로 인한 그 특유의 흔적.
은빛 두통, 근육을 우릿하게 쑤시는 신경통.
그러나 눈 부릅떠 그와 맞서서...
오후, 임금협상중 자리를 빠져 나온다.
목욕탕에 가서 7 여년만에 파마머리를 잘라 버린다.
미망을 끊는다는 따위의 명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번거로운 파마의 공정이 너무도 싫은 까닭이다.
파마를 시작한지 7년.
확 바뀌어 버린 인상.
목욕탕 거울 속에 비추인 몰골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살진 목, 울퉁불퉁 참외같은 안면, 튀어나온 배, 처진 어깨, 메마른 피부, 쥐새끼처럼 달려있는 좆대가리.
거울 속에는 한덩이 고깃덩어리가 꿈지럭거리고 있고, 그 고깃덩이에서 자의식은 육수가 되어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아아, 인간이란.
예수여.
나를 변케 하소서.
17271 1994. 5. 22 (일)
KBS 주일특파원 전여옥이 쓴 '일본은 없다'
기자의 예리함으로 일본을 관찰하여 쓴 글.
나의 事大主義, 일본적인 것을 향한 傾倒에 확 찬물을 끼얹는다.
전에 스리랑카 선원들을 폄훼하는 한무리의 사람들과 싸움을 한 적도 있었지만 얼굴 검은 외국인일지라도 그들은 우리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욱이 일본에 대해서는 일본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보다는 한결 윗길이다하는 의식이 내게는 있다.
우리 것을 폄훼코자 하는 마음 속.
내 익히 겪어온 품성들의 어두운 쪽에 대한 혐오감, 혹은 스스로에 대한 임상의 결과 나타나는 동류에 대한 어떤 혐오감때문일 것인데.
그런데 전여옥의 일본 사회에 어프로치 방법에도 다분히 일방적인 시각이 작용하였고, 좀 더 깊은 천착이 있었더라면 일본문화에 대한 긍정적 사고도 도출될수 있었으리라 보아지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그녀의 일본관은 옳지 싶다.
일본의 겉모습- 섬세하고 세련된 듯, 친절한 듯 보이는 그 이면을 간파하는 능력은 그녀의 의식이 투명한 까닭일 것이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에서의 분수찾기, 자신의 위치찾기...
그리고 이른바 혼네(本音)과 다테마에(建前)...
한나라의 본질을 한나라의 모든 국민을 싸잡아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찌무라 간죠는, 다자이 오사무는....
또는 혼네와 다데마에라는 이중성의 자아관리를 요구하는 풍토가 치열한 자기연마의 가능성을 내포할지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1번.
아스케나치.
17272 1994. 5. 23 (월)
일요일.
종일 비디오 영화보고 뒹군다.
'도망자' 해리슨 포드가 도망자 리차드 킴블을 연기한 엔터테인먼트.
'이블 데드' 어떻게 하든지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어떻게 하던지 더욱 쇼킹하게의 표어만을 염두에 두고 구성이니 논리니 드라마트루기니 하는 것들은 죄다 도외시하고 만든 영화.
꿈- 아리랑 고개, 낯 익은 한적한 길.
핸빛 쏟아지는 한적한 길목의 이미지.
이 이미지는 내 심층심리의 어떤 동인에 의해서 꾸며지는 그림인지 나는 알 것도 같지만...
월요일, 또다시.
새벽의 찬송가.
주여, 예수여.
17274 1994. 5. 25 (수)
1, 2공장의 기본공작반 1년간 보유인원 운용에 관한 보고서를 만든다.
이 쓰잘데없고 번거로운 일거리는 순전히 전무라는 한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짓거리다.
JM교 의 푸념
"어쩌겠습니까? 절이냐, 중이냐는 얘기아닙니까"
절은 전무고 나는 중일뿐이다.
사뭇 덥다.
곧 6월.
SB-407 예비시운전.
폭풍주의보 때문에 가느냐 마느냐 하는게 관건인데.
새벽 바다는 고요하고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새벽.
모처럼 내 방에 불밝혀 앉는다.
빌립보서.
오늘 俊이 열 일곱 번째의 생일.
지혜와 건강과 행운...
불꺼 새벽속 어둠에 영육을 잠그고 기도.
17275 1994. 5. 26 (목)
SB-407 'YI FA'호 예비시운전.
그러나 MILE POST를 포착하지 못할만큼 짙은 안개 때문에 속력시험은 포기한채 귀환.
오후 늦게 추적거리며 비 내린다.
비 내리는데 진로와 토닉워터 사들고.
만원버스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않아서 택시잡아타고 돌아온다.
마루에 앉아서 마시는 소주.
눈길은 TV.
英이 돌아오면서 俊이 우산과 좋아하는 노래 테이프를 사가지고 생일선물, 俊이를 기쁘게 한다.
17277 1994. 5. 28 (토)
끔찍한 뉴스.
20대 초반의 아들이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
칼로 수십번이나 찔러서 살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칼을 구입하고, 휘발유를 준비하고.
한밤중, 알몸에 침대시트로 몸을 두르고 부모의 침실로 스며들어.
제 아버지 어머니를 수십번 칼로 난자하여 살해한 것이다.
오렌지족이다, 과보호다, 흥청망청의 유학생활이다, 가중된 경쟁사회의 스트레스다, 과도한 기대에 대한 정신적 공황이다, 운운하며 사회학, 심리학, 정신분석학을 들이대며 마치 그런 환경들이 동기인양 떠들어대는 전문가라는 치들.
그러나 아니다.
악마다. 악마가 스며든 영혼이 악마의 지시에 따라 집행한 악마의 행위이다.
악마의 소행이다.
무슨 사회문제운운, 부모의 과잉보호운운, 자식의 강박관념운운, 사회적 병리현상운운, 도치된 현대의 가치관운운.. 따위를 떠들어대는 저 무리들의 합리주의라는 것은 얼마나 엉터리인지.
그들은 악마를 각종 이론과 논리로서 미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꿈- 참 난삽하고 비도덕적이고 야만적인 이미지의 것인데 내용을 기억해 낼수가 없다.
부모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그 인간의 이야기가 내 꿈 속을 비집고서 침범했을 것이다.
17278 1994. 5. 29 (일)
코발트도 아니고 무슨 색일까.
저 하늘은.
푸르르다고 하면 되는 것일까.
솜처럼 포근한 푸르름이라는 색감의 표현은 없을까 보다.
하늘 빛.
그 아래 시린 코발트 빛으로 누워 있는 바다.
하늘과 바다의 조화로움은 신의 즐거운 미소.
계절은 부활로써 이토록 빛나고.
이제 오십줄에 접어들며 나는 이 푸르른 청춘의 무엇을 이해할수 있으랴.
그저 바라볼 뿐이다.
관조하고 조망함은 이해함이 아니다.
하나의 제3자로서의 느낌일 뿐이다.
아, 이를 보숫꾼의 퇴락한 회고취미가 일궈내는 감상이라고 하지 말라.
내가 청춘이라면 안될게 무에냐?
英아 俊아.
저 청춘 속으로 저 청춘 속으로...
생명은 젊음의 것이다.
'얼라이브'
안데스 산속에 추락한 비행기.
60일간 그 상황에 갇혀있으면서 16명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육을 먹었다.
그들은 그 기억때문에 괴롭다.
그러나 그들은 짐승은 되지는 않았다.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한 상황의 당위성은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용서하여 줄 것이다.
17279 1994. 5. 30 (월)
일요일.
금정산은 사람으로 뒤덮혔다.
부차장회의의 산행.
다른 사랍들은 범어사 코스로 등반을 하고 총무인 나는 회식자리 준비를 위하여 막바로 차를 타고 동문으로 가려 하였으나 웬걸, 차는 중간에 갇혀서 꼼짝을 못한다.
무슨 어린이 행사가 있어서 금정산은 그야말로 만원이다.
차를 버리고 땀 범벅이 되어 걸어서 동문까지.
동문 밑 성안집이라는 곳, 넓은 방에다 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다 일행들과 합류.
오리고기, 염소고기와 밀주...
얼근들하여 음식집에서 내준 봉고타고 허심청.
거대한 목욕탕.
로마는 목욕문화 때문에 멸망하였다던가.
목욕마치고 나와 맥주와 노래방의 정해진 코스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