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5. 9

카지모도 2016. 6. 2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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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8 1995. 9. 1 (금)


설계부 방태표이사 사직.

나와 악수를 나누는 그의 눈자위가 붉어진다.

젊음을 바처서 봉사하였던 직장, 수십년간 매일 드나들었던 그곳을 그만 둘때에는 어느날 갑자기 무우를 단칼에 자르듯 하여야 하는 직장이라는 곳.

고작 3년여 다니는 고등학교도 동창이다 모교다 무어다하여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데, 직장이라는 곳은 수십년 맺었던 인연 따위는 헌신짝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참 비애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꿈을 꾼다.

사직서를 내던질 때의 자유를 향한 통쾌함을.

미지의 것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능력과 두뇌와 마음가짐은 그리 처지는 쪽이 아니라는 자신감이 있다.


17739 1995. 9. 2 (토)


박세동.

그 얼굴이 풀썩 웃을 때는 어김없이 옛날 군대 친구인 손철수의 표정이다.

착하디 착한 그 웃음을 나만은 이해하고 또한 사랑할수 있다.

그와 술을 마신다.


취하여 쓰러져 잠이 들고, 잠이 들고..

영원하지도 않는 잠이 들고..

다시 깨어 일어난다.

아침이거니 하고.


17740 1995. 9. 3 (일)


비 흩뿌리는 토요일.

최석교의 송별회식, LW규 ,SJ엽 ,김한호등과 어울려 마시기로 하였는데 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참석치 않기로 한다.


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영화 내용이다, 빌리가 자살하고 맥머피는 간호부장의 목을 조르고 뇌절제수술로 바보가 되고 인디언은 베개를 눌러 그를 죽이고 병원을 탈출한다. 나는 꿈 속에서 헉헉거리며 줄거리를 따라간다.


일요일.

오늘 俊이 카투사 시험.


17741 1995. 9. 4 (월)


생래적으로 유모어가 없는 족속, 화를 내는 것이 천성인 사람들.

어미가 그러할진데 자식 또한 그러하다.

카투사시험을 치고 돌아온 녀석이 아비를 면대하는 포즈는 얼음짱처럼 차갑다.

아마 시험을 망친 모양이다.

그 기분은 이해하겠는데 이 모자는 왜 이 모양인가.


독서실.

그곳에 박혀서 굳은 뇌세포를 억지로 움직이게 하여 부동산 세법을 공부하다.


다만 일요일 휴일 하루 밖에 공부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비에 비하여 허구헌날 많은 시간을 갖고 있는 아이들, 공부가 직업인 아이들, 또는 여편네들.

공부가 얼마나 보람있는데..

그 시간 많음의 고마움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헛되이 보내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나도 진작에 이를 절감하였더라면 지금 훨씬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인데..


꿈- 俊이와 시장통에 쪼그리고 앉아서 목판 저녁식사, 아들놈의 어정쩡한 자세, 어깨를 오므리고 등을 꾸부정하게 하여, 그리고 대사를 외우지 못한채 출연한 연극 무대, 진 땀을 흘린다.


17742 1995. 9. 5 (화)


그저께 일요일, Sh씨 .

마천공장에 가서 난리를 피웠던 모양이다.

정시영의 혼을 쏙 빼 놓았다고.

그 졸병 총무부장의 과장 가득한 공문이 날아들고 나 역시 오후에는 이종엽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몸을 싣고 진해 마천공장으로 달린다.

차의 에어컨이 고장나 후덥지근한 늦여름의 바람을 맞으며 복잡한 도심을 지나고, 산을 깔아 뭉개어 토지를 조성하는 녹산을 지나 마천에 이른다.

일요일도 나와서 근무하는 사람을 격려해 주지는 못할 망정, 휴일날 급습하여 근무자의 혼을 빼놓는 신모씨.

그 잘 지어 놓은 공장을 고작 육교 따위나 주무르고 앉았게 하는 경영마인드의 단견을 자각하지는 못하고.

그러나 그렇게 당하고도 정시영은 멀쩡하다.


김영희 '뮌헨의 노란 민들레'

곳곳에 생뚱한 표현이 있고, 문장의 연결이 어줍잖아 이해를 모호하게 만드는 구석이 없지 않지만, 한국여자로서 연하의 독일남자와 사는 독일 사람들의 이야기가 풋풋하게 느껴진다.


퇴근하여 내 방에 앉아서 소주를 비운다.

추석은 닥아오고, 술값의 부채는 많고, 곁의 마음들은 비좁고, 환경은 척박하고, 내 정신 또한 비좁다.


17743 1995. 9. 6 (수)


산더미처럼 내 책상위에 쌓여있는 사안들.

건설공사, 사내공사, 설계용역등 계약 품의건과 지출 품의 건.

모두 많은 돈이 걸린 사안들이라 골치가 아픈 것이다.

Sh씨 그에게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흡사 유치원학생이라도 이해할수 있겠금 자료를 만들어야 하니 서너배의 업무량이 되어 버린다.


가정과 회사.

정녕 옥죄어 드는 경제.

마음 어느 구석 평강있으랴.


나의 창조주, 나를 만드신 분이여.

나의 현실, 이것은 내 탓이로소이다마는 여기에 한줄기 빛을 주소서.

척박한 나의 풍토에 당신의 온유와 사랑, 그리하여 행복의 한줌 만나를 내려 주소서.


17745 1995. 9. 8 (금)


추석이 닥아온다.

이제 모두들 타의적으로 모였던 산업사회의 계약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찾아가야 할 정체성의 고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작 밖에서 맥주에 취하고, 돌아와 내 방 책상앞 앉아 또 몇병의 맥주를 마시면서 그렇게 시나브로 취해 갈 뿐이다.


17746 1995. 9. 9 (토)


연휴 첫날.

독서실은 갈 염도 품지 않은채 俊이 빌려온 소설을 읽는다.

공지영 '고등어'

명우,은림,여경,명희,은철,경식...

80년대 무언가 이타주의의 이상에 사로잡혀 순수를 향한 맹목에 들떠서 열정을 쏟아 부었던 젊은이들.

그들이 이제 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 줘. 형이 지금 쓰고 있는 것같은 이긴 사람들 이야기 말구, 잃어버린 사람들... 허지만 빼앗기지 않았던 사람들, 그래서 스스로 잃어 버렸던 사람들, 세대들, 잃어버리고도 기뻤던 우리들... 그 때.."

비애.

이제는 빛 바랜 그 때 그것들.

마음의 어느 골짜기에 애틋한 샘물이 되어 고여 있을 그것들.

그 샘물을 건드리면 말할수 없이 애틋한 눈물이 쏟아진다.

순수의 근원, 한 날의 열정..

아픔, 바람의 허무함, 아, 허무함.

"한 때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적에 아직 그것은 등이 푸른 자유였다..."

고등어.


17747 1995. 9. 10 (월)


한가위.

모두 떠난 도시의 가로는 오히려 허전하다.


어머니, 형네, 아이들.

그리고 이제 지아비가 된 동은이와 그의 색시, 곧 호주로 떠난다는 주은이와 가야 숙모.

그렇게 모여 앉는다.


사직동.

처남 둘은 외할머니 돌아가셔 밀양에들 올라가고, 장인 장모와 며느리들, 처제와 조카들.

그렇게 또 모여 앉는다.


취하여...


17748 1995. 9. 11 (월)


시형어머니 점심식사 초대에는 J만 가고, 나는 집에 남아서 또 맥주나 마실 뿐이다.

공부도 할 염을 품지 않은채 게으른 사념만 반추하여 자의식의 마스터베이션만을 일삼는다.


갈수록 겁쟁이.

씽씽 돌아가는, 회전목마에 올라 탈 생각을 품지 않은채 바라만 보고 있다.

관조하는듯 폼을 잡고는 있지만 기실 그 본질은 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어지러워서, 무서워서 냉큼 올라타지 못하는 것이다.


번지점프.

나는 그것을 할수 있을까?


17749 1995. 9. 12 (화)


연휴의 마지막 날.

끝내 독서실은 가지 아니하고, 집에서도 책 한번 펴보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가고, J역시 사직동 가버려 고즈넉한 집안.

여늬 때같으면 독작을 즐겼을테지만 연일 들이 부은 속이 차마 그를 거부한다.

다만 왼종일 TV 앞에서 뒹굴 뿐.


사나흘 쉬다가 회사에 나가야 하는 전날.

반드시 어떤 강박이 지배하는 의식 한자락이 있다.

목매여 사는 봉급쟁이의 슬픈 속성이라는 보편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내 심리의 독특한 예민함일까.


새벽.

내 방 불밝혀 앉아서 갈라디아서 소리내어 읽는다.

한 겹 봉창 너머 새벽잠 들어있는 J.

혹시 잠결에라도 들을지도.

척박한 이 가시버시의 심령의 뜰에 그리스도의 싹이 심어지기를...


17751 1995. 9. 14 (목)


俊이 당연하게 카투사 낙방.

그런 자세를 갖고서는 붙는다는게 오히려 이상할 것.

아비가 그토록 염불하였건만 그 염불이 공염불일 뿐이다.


17752 1995. 9. 15 (금)


길들게 마련인 습성

연휴 직후 그토록 싫다 싫다하던 사무실도 한 일주일 그런 분위기에 젖고 있으려니 차츰 익숙해 진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

그 자유의지로서 선택한 상황.

자유의지가 척박할수록 획득한 상황 역시 척박하다.


그리고 자유의지가 완벽한 인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유의지의 선택은 완벽할수 없다.

훈련이 필요하다.

어떤 가능성의 상황 속에 들어가 훈련 받는것.

스스로의 의지로 훈련 받는 것, 그리하여 이루는 것.

교육은 그래서 필요하다.

아, 인간은 끊임없이 순치되어야만 하는 동물이다.


선듯한 기운.

가을이다.


17754 1995. 9. 17 (일)


토요일 오후, 퇴근하자 독서실 들어 앉는다.

세법공부.

이제 시간이 많지 아니하다.


저녁에 돌아와 마루에 앉아서 소주를 마신다.

조수미의 BIG SHOW 보면서.

콜로라투라의 음역으로 그냥 오페라만 부르시지 팝송은 어울리지 않는다.


17755 1995. 9. 18 (월)


일요일의 독서실.

전날 구입한 문제집을 풀어 보니까 50%도 맞출수가 없다.

긴장하지 않고 편한 환경에서 풀어도 이러한데 실제의 시험에서는 더욱 무망하다.

의기소침.


몇병의 맥주와 튀김닭 사들고 돌아오다.

아이들은 모두 외출, 감기 들어 목이 잔득 쉬어버린 J만 있는 마루.

함께 TV 보면서 가시버시 닭을 뜯는다.


꿈- 기차, 역, 할머니, 공정소위원회,회의실, 한진 서과장, 정진호씨...


17756 1995. 9. 19 (화)


가을 완연한 기색.

대기의 선선함은 줄곧 시달려 왔던 끈적끈적한 느낌의 살갗에 얼마나 신선하게 닿는지.

그리고 가을 하늘은 확연하게 한 層 올라가 높다.


해운대강교 도장공사 잔여금 지출품의, 재공사의 계약 건.

의외로 쉽게 결재가 떨어졌다.

이제 가을이 되니 완고한 마음밭에도 청량한 바람 한줄기 부는지.


요즘 아이들은 매일 늦는다.

늦으면서도 전화 한통 할줄을 모른다.

자기합리화와 변명의 테크닉만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俊이의 포즈는 반항기 가득.

한발 늦게 발동이 걸리는 俊이, 이제야 사춘기에 다다른 것인지...


17757 1995. 9. 20 (수)


가을, 투명하다.

잠자리 날개 云云..

다자이 오사무의 말이었던가.

계절을 느낀다는 것은 시간 흐름의 영속성을 경험한 후에나 따르는 정서이다.

여름을 겪고나서야 가을을 느끼는 것.

만일 어디 신선하고 높푸른 하늘이 있는 고장에서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이 땅의 가을 속으로 들어 온 사람에게는 가을다운 느낌의 계절은 없을 것이다.


가을.

자의식이 슬슬 싹이 트는 계절.

겨울이 되면 그것은 자라서 온전한 자의식의 계절이 되고 만다.


사람은 어이하여 자유로울수 없을까.

가을이 와서 하늘은 저토록 높게 푸르른데..


英이 아비 부탁한 공인중개사 원서 사오다.

그 요강을 훑어보니까 활자의 행간에서 받는 느낌은 이 중개사라는 시험이 퍽 수월하리라는 느낌이든다, 근거도 없는.


17758 1995. 9. 21 (목)


J가 요즘 온유하니까 회사의 분위기도 온유하다.

마누라쟁이가 끼치는 영향은 이토록 대단하다.

Sh씨 의 들볶음도 없고 골치 아픈 업무장애도 생기지 않는다.


시청 고시계에 가서 공인중개사 응시원서 접수.

내 접수번호는 2028번.

한번 계산을 해보자.

접수기간의 중간 시점에 접수하였으니 2028 X 2 = 40000 명, 6개 광역시니까 4000 X 6 =24000 명, 서울을 30000명 정도 잡으면 54000 명, 그 외 다른 시도 합이 50000 명 정도 잡으면 자그만치 10만명이 되는구나.

이중 2000 여명 뽑는다니까 50 : 1 이 되는건가.

그러나 단지 그러나일뿐이다.

어중이 떠중이의 머리 숫자는 문제될 것이 없다.


돌아온 다소 이른 저녁.

마루에 앉아서 소주를 마신다.


17759 1995. 9. 22 (금)


김대중이란 모사꾼.

한때 그에게 흠취된 적도 있었으나 그 때에는 내가 철이 없어서이고 그의 순수한 열정에 속았던 까닭이다.

그가 이제는 싫다.

진보의 폼을 가득 잡고느 있으나 그는 근본 보수꾼의 패거리다.


김영삼 너도 해 먹었으니 이제 나도 한번 해 먹어야겠다는 노골적인 행태.

그리고 그 주변에서는 썩은 돈냄새도 물씬 풍긴다.


대한민국- 아주 새롭고 깨끗한 그 누가 나와야 한다.

새로움이 홀연히 나타나야 이 나라는 산다.


17760 1995. 9. 23 (토)


A급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올해는 늦은 태풍이 일고 있다.


토요일의 학습계획.

민법 재독.

내일은 황근이 집 약속이다.

이래저래 황금같은 시간은 솔솔 새 나가는데 토요일 아닌 평일에는 도무지 마음도 상황도 공부가 불가능하니 참.


英이 밥먹을때, 반찬을 께작거리는 젓가락질.

시집가면 복스럽지 못하다는 시댁 어른 꾸지람이 있을법하다.

그것을 지적하여 나무라면 뿌르퉁.

모녀가 함께.


먼바다, 바람소리 바람소리.

우르르 꽝꽝.

태풍 제왕이 입성하기 전, 전령의 고함소리.


俊이는 어제도 늦은 귀가.

친구 생일이라나.

아이들, 정신이 뻔쩍 들만큼 자신의 인생개척을 향한 굳건한 의지를 다잡게 할 수 있는 무슨 계기는 없을까.

계집애는 시집가고, 머슴애는 군대 가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야만 체득되는 그런 것일까.


17761 1995. 9. 24 (일)


A급 태풍 '레이언'

대만을 강타하고 시시각각 동북으로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토요일의 회사는 긴장 분위기.

그러나 안벽 너머 보이는 회사의 앞 바다는 물결만 다소 일렁이고 빗방울이 조금 흩뿌릴 뿐이지 태풍의 징조는 보이지 앟는다.

CT용 을 당직으로 남겨 놓고 회사를 빠져 나온다.


영삼독서실.

민법.

요약하여 편집한 교재.

전에 훑어 보았던 기억이 조금씩은 되살아난다.

기억 소자들은 아주 망각의 피안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가 보다.


7시쯤 집에 돌아오다.

저녁을 먹은후 TV 드라마에 눈은 고착된다.

'옥이이모'

60년대 어름의 경상도지방.

능청스런 사투리와 연기, 과장없이 담담하게 그려낸 연출 솜씨는 제법이다.

썩 괸찮은 드라마다.


일요일 새벽.

웬일일까?

태풍의 기척이 없다.

그냥 일본 열도를 비껴간 것일까?


17762 1995. 9. 25 (월)


일요일.

사상 덕포지나서 황근의 아파트.

늙수레한 친구들 둘러앉아 술을 마신다.


황근이 고백.

숨겨 논 아들, 벌써 고등학교 2학년.

총각때 그 여자로부터 아들을 얻었다는 놀라운 사실.


12시 넘어 가득 취하여 돌아오다.


17764 1995. 9. 27 (수)


눈병.

빨갛게 충혈되어 눈두덩이 부어 오르다.


부서장 회의.

고속도로의 휴게실 사업은 또 무에?

웃기는 회사다.


고등학교 동기회.

9월30일 동래 허심청을 몽땅 빌려서 홈 커밍데이인가하는 행사를 한다고.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

필히 참석하라는.

1억5천만원 이상 자금이 모였고, 그 행사에만 수천만원을 쓴다는.

그런데 나는 도시 관심이 있지 아니하다.


17765 1995. 9. 28 (목)


박완서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70년대에 쓴 글들인데, 장발이 어떻고하는 에피소드를 읽고 있자니까 장발운운의 그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20여년전의 얘기로구나.

20년- 그 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인가.

그런데 이를 어쩌랴.

시간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어린 날의 1년은 참으로 길고도 긴 시간이었고, 20대에 이르러서도 시간이란 그렇게 짧지는 아니하였건만 이제 1년이란 이토록 후딱후딱 지나가는 순식간의 단위이다.


17766 1995. 9. 29 (금)


회색수면.

요즘 육체는 고전을 한다.


오랜시간 뒤척여야 잠이 찾아오는 그런 것도 아니고, 꼭두 새벽에 눈이 떠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꿈의 바라이어티 쇼우는 매일밤 연출되고. 수면의 품질은 썩 좋지가 않으니.


꿈은 프로이트 말대로 잠을 지켜주는 파숫꾼인지, 아니면 수면을 파괴하는 해방꾼인지.

꿈의 내용, 깨어나면 노트에다가 기록은 하여 놓는데.

언제쯤이나 그 의미를 파악하여 내 무의식의 세계의 일말을 이해할수 있을란가.


돌아와 TV 보면서 소주 한병.

俊이는 요즘 연일 늦는다.


소주 덕분에 숙면 취하다.

그러나 여전히 꿈, 꿈.


17767 1995. 9. 30 (토)


PP갑 , SJ엽 등과 밤 늦도록 마시다.

PP갑 이 큰아들 환용이.

천재 운운할 정도의 매우 뛰어난 두뇌를 갖고있다는 소문.

아비는 그걸 썩 내세우는 폼은 잡지 않지만 자랑스러움이야 왜 없을까보냐.


자식이란 아비의 꿈이 투사된 객체.

그 아비의 꿈이란 실은 열등의식, 자의식,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보상심리일지라도 그 꿈만은 애절하다.

이것을 자식짜리는 알수가 없다.

저도 아비가 되어야만 알수 있을 것이다.


작취미성의 토요일 일과.

공부는 밀렸는데 토요일 황금의 시간이 작취미성이라니.


휘저어 깨뜨리고 일으켜 주먹질하여도 모자라는 판에.

엎드려 토악질하고 엉엉 울어서 눈이 충혈되고.


하늘에 날개를 얻어 자유로운.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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