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07 1995. 8. 1 (화)
사무실을 벗어나면 맹렬한 더위.
이제 에어컨이라는 가전제품은 일반화되어 생산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여 그것을 구하려는 아우성이 작년에 이어 다를바 없다고 한다.
실로 한낮에 에어컨의 찬바람이 없다고 상상하면 끔찍이도 더위를 타는 나는 아마 무엇 하나 제대로 할수 있는게 없을 것이다.
사무실을 식히는 에어컨의 찬바람은 한여름 밥벌이를 위한 정말 고마운 물건이 아닐수 없겠다.
그러나 집에서는 좀 다르다.
너도나도 집에다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아우성들이라지만.
가공된 여름.
집안에서의 여름은 가공되지 않은 여름이어야 하지 않을까?
여름의 무더위라는 조물주가 창조하신 뜻이 인간 마음대로 가공 조작되어서는 안된다.
직장은 어차피 반역의 영역, 산업사회의 차가운 기능과 능률을 추구하기 위하여 어쩔수 없다하더라도 .
가정은 본질적으로 따순 사랑과 감성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것은 없는 자의 헛소리....
12시 다 된 늦은 시각, 俊이에게서 짤막한 전화 한통.
지리산 내려 와 지금 강원도 영주에 있고 강능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고.
제 어미에게 한 30초 쯤 속사포처럼 제 할말만 내뱉고는 기차가 들어 온다고 일방적으로 끊어 버린다.
오늘 닷새 여름 휴가 전일,
俊이의 방.
기도.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가 반주를 하고 디스카우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가곡.
그라마폰의 LP.
17708 1995. 8. 2 (수)
서로간의 트인 마음이 아닌 상대에 대한 하나의 선입관만이 존재하는 경우의 관계의 그 난처함.
무슨 배려와 연민과 따스함과 혹은 논리에 입각한 토론이 있을수 있을 건가.
그것이 모처럼 형제의 상면이라 할지라도.
俊이 녀석은 떠난지 5일째, 강원도 어느 고장을 헤매고 있을까.
이 밤 아비는 이토록 몹시 취하였다.
17709 1995. 8. 3 (목)
포기하기.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덜미가 잪혀서 노예로 끌려온 그것에.
나 자신, 지금의 나를 이루게 한 것은 바로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때문이었거니.
포기하기.
그것들을 포기하기.
타인의 실존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기.
내 밖의 것을 포기하기.
내 밖의 것으로 인하여 절망하지 말기.
죽지말기.
그래,
포기하기와 죽지말기.
여름이라는 계절은 수면의 깊이를 얕게 한다.
꿈이란 끈적끈적한 감각을 수사하는 하나의 느낌일 뿐이다.
휴가 첫날.
집을 피하여 독서실 틀어 박혀 있다.
동삼중리의 그 독서실은 한적하게 조용하다.
다른 무언가를 망각하려고 안간힘을 쓰듯 공부한다.
시종 포기하기 죽지말기를 신음처럼 되뇌이면서.
부동산학 개론, 감정평가이론.
俊이, 기중 하나 남은 내 밖의 의미.
벌써 5박6일째.
시편 18.
눈물이 치솟는데.
그 기도는 포기하기와 죽지말기에 다름 아닌 신음일 뿐이다.
17710 1995. 8. 4 (금)
英이 권하여 에어컨이 가동되는 곳이라 하여 찾아간 집 아래의 동삼독서실.
그런데 그곳은 낡은 선풍기가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불결한 냄새가 떠도는 재수생의 무슨 소굴같은 곳이다.
英이가 가츠처 준 곳은 이곳이 아닐지 모르지만, 기왕 돈을 주어 버렸으니 한구석 앉아서 오전을 공부한다.
오후들어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어 정서가 다소 안정되는 분위기.
그저 가만히 있더라도 있음으로하여 사람의 정서를 울렁거리게 하는 그 반정서가 없음으로 하여, 라면을 끓여먹고 안방에 책상다리하고 앉아 책을 펴 들었으나, 이 더위와 적요는 필경 조름을 부른다.
그러나 내게 낮잠이란 얼마나 가당찭은 분복인가.
설핏한 잠.
회색의 진흙 늪에 침몰하는듯한 수면, 더위 속에 머릿속에는 모래를 뿌려 놓은 듯 몽롱하기만 하다.
새벽 1시에 俊이 돌아오다.
지리산은 종주를 않고 중도에 내려와 경주,울진, 강원도 일대를 돌아 건강하게 귀환하였다.
얼마나 고마웁고 기특한 놈인가.
찬물 뒤집어 쓰고 녀석은 그대로 곯아 떨어진다.
2시30분, 잠자기를 포기하고 베란다 내 방 책상 앞 앉는다.
안방에 불빛이 비추인다고 짜증을 내는 J는 英이 방으로 물러가고.
부동산 중개업법.
기도.
척박한 품성들을 도와 주소서.
17711 1995. 8. 5 (토)
여름은 그야말로 오르가즘을 향하여 치닫는다.
영삼독서실, 낮시간의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학생들은 주로 밤시간을 이용하는 모양이고 낮에는 넓고 고요한 실내에 오직 나 뿐이다.
고즈넉한 적요, 그 청결함, 창 밖에는 환한 여름, 정일한 풍경.
내가 좋아하는, 내 심상이 지향코자하는 그 분위기...
그 분위기에 잠겨 공부한다.
부동산 중개업법.
저녁 무렵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다.
俊이- 밝고 건강하다.
여행담, 좀 비둔한 彦이를 끌고 곳곳을 헤매고 돌아왔다.
텐트 안에서, 때로는 역사에서 잠을 자고, 영양이 염려되어 삼겹살도 사다 구워 먹기도 하면서.
지리산 천왕봉, 뱀사골, 대구, 영주, 울진, 경주....
俊아, 네 여행담 속에는 젊디 젊은 아비도 있었다.
17712 1995. 8. 6 (일)
한낮의 더위도 아랑곳 않는 것은 무엇엔가 정신이 집중된 상태일 것.
조용한 독서실, 홀로 그곳 한 귀퉁이 독서대에 자리잡고 앉아서 중개업법 중개실무를 공부한다.
이로서 어쨌던 2과목을 마친 것이다.
이번 휴가기간은 제법 뜻있게 보낸 셈인가.
돌아 와 맥주 마신다.
옅은 수면은 여름의 수면.
꿈- 모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군대, 내무반, 휴가귀대, 고참과 낯선 신병들, 중국요리배달...
오늘 서울서 珍이 내려 온다고.
17713 1995. 8. 7 (월)
마음가짐만으로 집중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 환경의 중요함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이다.
또는 심리적인 요소도 무시못할 요소.
내일이면 다시 그 진부한 지겨운 직장에 가야한다는 강박.
일요일, 휴가의 마지막 날.
독서실 가기를 포기하고 집에서 뒹굴다.
눈이 아프도록 TV에 매달려 있으면서.
珍이 내려오다.
오목한 눈에 통통한 모습은 옛 그대로이지만 이제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모처럼 내려 온 조카아이.
월요일, 출근날이다.
꿈- 옛2송도 거리가 변형된 풍경, CT용 ,KC원 ,신정애등 출연, 교실과 사무실..
목욕하고 회색수면의 은빛 정신을 추스린다.
BORODIN의 현악사중주, EMERSON 사중주단.
기도.
17714 1995. 8. 8 (화)
며칠만에 출근한 사무실.
그 끔찍함은 일과개시 30분도 안되어 공격을 개시한다.
90톤 크레인 건으로 신모씨의 전화가 걸려온다.
흡사 광인과 같이 악을 고래고래 써대는 그.
무참하게 당하고 만다.
英이는 珍이를 데리고 광안리로, 요트장으로, 얼음조각 전시장으로 돌아다니다가 어둔 밤 돌아오와 英이 방에서 둘이 잠자고.
俊이는 彦이와 종일 P/C앞에 노닥거리다가 낮술로 두 녀석은 맥주를 마신 모양이다.
오늘 어머니 생신.
더운데 집에서 음식 장만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우냐하는 언질에 며느리는 얼씨구나한다.
이제 밖에서 뚝딱 밥 한그릇씩 나누어 먹고 떼워 버리는 어머니 생신.
못마땅하다.
17715 1995. 8. 9 (수)
중앙동 한정식집.
어머니를 중심으로 피붙이들 모여 앉는다.
珍이는 서울로부터의 특사격인가.
칠십여섯번째.
이 칠십여섯이라는 숫자를 자꾸만 줄여 계산하고 싶은 아들 놈.
최석교 사직서.
회사의 비정함, 군지렁거리는 최석교에게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 늦은 시각 우리 집으로 돌아오다.
英이, 珍이, 俊이, 彦이 네 녀석.
17716 1995. 8. 10 (목)
어제 아침 일찍 어머니 오시다.
J가 정성스레 차린 아침 밥상에 어머니를 가운데로 하여 英,珍,俊,彦이 둘러 앉는다.
이제 완연히 노파의 색채, 칠십여섯짜리 늙은이...
여름 숨가쁜 고비를 넘어섰는가. 어제가 입추.
珍이는 큰외숙모, 사촌 형제들의 배웅을 받으며 5시 새마을호로 올라가다.
17717 1995. 8. 11 (금)
정시영과장, 최석교의 후임으로 마천공장 관리자로.
잘 되었다.
13,14,15 일은 연휴.
노사 타결 휴가가 하루 끼어 있어서 황금의 연휴다.
내게 황금이라는 것은 독서실에 박혀서 공부할수 있다는 그 시간이 황금이라는 것.
俊이 카투사 시험도 닥아왔는데, 俊이와 함께 한 3일 집중하여 볼 것을 아비는 이토록 간절하게 희망한다.
아들 놈의 생각은 어떻건간에.
17718 1995. 8. 12 (토)
여전한 더위 속에서도 아침 저녁 선뜻 느껴지는 것이 있다.
가을.
영원히 지속되는 盛함이 있겠는가.
生成하여 절정을 구가하다가 필경 소멸하는..
모름지기 이것을 깨달아 진정 이해한다면 그가 바로 군자일지니..
광안대교 외주 기성 올리고 나서 조마조마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늦은 오후 Sh씨 의 호출.
유보금액 건에 대하여 그를 납득시키고자 시도하였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거지 고함을 질러대는 늙은이 앞에서.
정과장, 마천공장의 전보를 받아들이다.
다행이다.
그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빈자리 충원은 어필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어찌어찌 꾸려나갈 생각.
17720 1995. 8. 14 (월)
일요일, 여름은 마지막 정염을 쏟아내고 있다.
俊이와 둘이서 동삼중리 영삼독서실 들어 앉았다.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잠시 부자가 나가서 짜장면 먹은 시간 30여분을 제외하고는 계속 공부하다.
부동산 등기법 2/3 가량 진도를 나아간다.
통로를 사이에 하고 앉은 俊이의 포즈에는 공부하고자하는 자세가 전혀 없다.
그저 아비의 눈치만 살피고 억지로 앉아있는 것이다.
5시, 그만 돌아가자는 아비의 소리가 녀석을 사지에서 구한다.
중리- 바닷가에 앉아서 담치와 고동을 먹으면서 모처럼 부자 마주 앉다.
준수하고 번듯한 내 아들.
꿈- 왕자극장, 극장표, 생산부사무실, 그리고 웬 터미네이터도 등장, 총싸움...
17721 1995. 8. 15 (화)
하루 종일, 그렇다.
휴일 집에 있노라면 무언가 안절부절, 이것도 찝적 저것도 찝적거리다가 결국에는 TV에 눈을 고정시키고야 만다.
안정되지 못하는 마음밭.
그 원인에 J도 한몫 거들고 있는 것.
TV프로- 한국의 음악가들, 김희로의 다큐멘타리.
독서실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꿈- 홍수, 고아아이를 업고, 광화문, 내수동 외갓집, 규선이 형....
17722 1995. 8. 16 (수)
광복 50년.
그 의미는 심상치 않을 것.
그런데 TV에서는 무슨 카니발처럼 분위기를 몰고 간다.
그래도 가끔 화면에 비치는 빛바랜 흑백사진들, 옛 시절.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그때 그 순간의 풍경화를 기적처럼 재현해 낸 옛날 필름들을 보면서 회환과 그리움의 아픔이 사르르 번져 온다.
지금 서울의 어디엘 가면 광화문에서 내수동 접어드는 골목을 찾을수 있을거나.
고모집이 있던 재판소와 덕수초등학교 부근, 정능의 성북극장은, 청수장 근처의 숭덕초등학교 분교는, 혹은 자하문 밖 버스종점 양재서의 집은....
기억의 단편들이 단절적으로 띄엄띄엄 느닷없는 것이지만 기실 그것들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다.
현재의 내가 사십팔년의 숨쉬기를 계속 이어온 것 처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독서실 틀어박혀 마친 분량은 등기법 나머지 1/3 분량.
어쨌든 공부는 하였다.
이나마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도 참담했을 것이다.
마루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이른 잠자리.
꿈- 바닷물이 차오른다, 당구장, 영도다리, 시청앞....
내일은 J의 생일.
기도.
17723 1995. 8. 17 (목)
연휴후의 첫출근.
또 신모씨에게 참담하게 당하였다.
자존심, 또는 일상에 대한 긍정의식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그 늙고 밴질밴질한 낯짝에다 사직서를 내던지고 싶은 굴뜩같은 충동을 모가지 매여 길들여진 노예의식이 간신히 만류를 한다.
이 회사.
무언가 정의는 없는가.
정당하게 조직인으로서의 능력을 평가하고 조직행위의 정당성을 평가할 잣대는 없는가.
그것이 없다면 부당함에 대하여 의연히 맛서는 진작된 인품이 양성될 풍토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려는가.
이 산업사회의 한구석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수준의 기업 풍토에서.
이 상처, 얼마나 또 진창 속에 몸을 담그고 있어야 치유될수 있을런지.
밤새 뒤척이다.
꿈, 꿈- 곧바로 어떤 상징체계를 무의식중에서 끌어내어 만드는 그것 역시 프로이트가 말하는 감시자로서의 그것은 아니다.
오늘.
J의 생일, 늙어가는 가시버시.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 하는데...
오, 주님.
도우소서.
17724 1995. 8. 18 (금)
신모라는 사람.
그 독선이 근거하고 있는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스스로의 착각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기는커녕 자신을 한번쯤 객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인격.
이것은 전혀 그의 교양없음에 기인한다.
그가 일생동안 인문서적의 독서를 한번이라도 하여 본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항상 엔지니어를 코 끝에 걸고 다니는 그가 표방하는바는 진정한 엔지니어도 무엇도 아니다.
단지 한 사람의 기능인 정도일 것.
오전에 또 그의 방에 불려 들어간다.
나는 마음을 다잡아 먹는다.
또다시 모욕을 준다면 참지 않으리라.
2년전 품의를 득한 콤프레샤에 관한 서류들.
그 건이 올해 산업은행 시설자금으로 집행한데 대하여 그 내력을 설명하였는데, 아뿔사, 이제 불똥은 사방팔방으로 튀기 시작한다.
구매부서장이 불려오고, 급기야는 P상무도 불려들어온다.
일군의 도열한 사람들 앞에서 신모씨는 입에 침을 튀겨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댄다.
자신의 오류가 지적되고 그를 깨닫고 나니까, 일견 엉뚱한 쪽으로 논리를 비약시켜서 악을 써대는 그 꼴은 완연한 노망의 증세에 다름 아니다.
어쨌거나 나의 업무 실책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신모씨가 이성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여 주지 못하는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한사람으로 인한 환멸의 회사.
TV의 음악 연주회.
장영주, 사라 장.
그 소녀가 활을 움직여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나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
당당함, 자신감, 확신 넘치는 자기주장, 신으로부터 특혜받은 재능에 대한 믿음..
여름의 마지막 더위.
俊이의 카투사 시험은 9월 3일이라는데, 녀석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생각과 열망과 뜻과 생각과 기원하는 바들..
J와 아이들은 이런것, 아랑곳 않는다.
17725 1995. 8. 19 (토)
정시영, 그는 그래도 순박한 구석이 있다.
그 속에 숨은 교활함을 나는 간파할수 있겠지만, 일반적 시각으로서 그는 소박하다.
그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 떠들썩 노래도 부르고.
그는 내게 사죄하겠노라고.
그 말의 뜻은 진실일까.
나는 이제 그러한 어줍잖은 말에 속지 않으리라.
너를 감싸주어 내가 당한 어려움을, 네 형편없는 어리석음 때문에 내가 맞서야 했던 숱한 난처한 상황들을, 너는 기억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내게 사죄하여야 한다.
싫노라, 싫노라.
마누라짜리의 그 표정이 싫노라.
열두시가 넘은 시각, 그녀가 자신의 가장 귀중해야할 남자에게 보이는 포즈와 표정이 싫노라.
17726 1995. 8. 20 (일)
늦더위는 맹렬하다.
그런데 하늘의 구름은 정말 환상적인 그림을 연출한다.
너무나 부드러운 푸르름의 하늘을 배경으로 흰구름이 뭉게뭉게 스카이 라인을 이루고 있다.
그 풍성하고 포근한 질감은 빛의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한 입체감을 연출한다.
늦여름의 저 하늘의 구름은 참 아름답기도 하구나.
토요일 오후 퇴근하여 돌아오니, 英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물을 뒤집어 쓰고 지난 밤 남겨 두었던 찬 맥주를 마신다.
전일의 음주로 육신은 피곤의 극을 달리는데 그 피곤을 다시 혼곤한 마취 속으로 유도한다.
돌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쏴-하는 빗소리.
소나기다.
반가운 소나기.
17727 1995. 8. 21 (월)
후덥지근함 속에서 때로 소나기 쏟아진다.
찬공기는 없더라도 그 소리만으로도 한결 시원하다.
이른 아침, 미장원.
장미헤어라인의 주인이 바뀌었다.
손님없어 편안하게 나혼자 세시간여에 걸친 파마.
신변잡사의 숙제 하나 해결.
俊이 카투사시험은 9월 3일.
좀 긴장하는 폼을 잡아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녀석은...
오후 중리의 영삼독서실.
지적법의 진도를 조금 나아가다.
문득 떠오른 단상 하나.
지문의 효과에 대하여.
시나 소설같은데서, 혹은 만화에서라도.
"...."
".... 고독"
"고독..."
"? 전쟁."
이런 식의 배열과 조합으로 적절한 정서를 이끌어 내는 수법.
문장의 시각화 기법.
심리학이나 미학적 측면에서 이러한 기법의 연구는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하나.
다시 월요일.
주님.
17728 1995. 8. 22 (화)
때로 비내리는데 'HAN PO'호 예비시운전.
월요일.
마음은 허둥지둥, 불안하다.
신모씨에 대한 강박증세이다.
몇 건의 결재가 올라갔는데 그에게서는 아무런 통신이 없다.
이것이 더욱 불안하다.
시운전 늦은 귀환.
덕에 늦은 귀가.
늦은 시각까지 아이들은 아무도 돌아와 있지를 아니하다.
전화 한통의 연락도 취할줄 모르는 아이들의 무심함.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 마음을 알것인데.
英이는 11시 다되어 돌아 왔으나, 俊이는 12시에 전화 한통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서너마디, 동래의 친구집에 있다는.
무슨 일일까?
혹 무슨 어려운 상황에 닥친 것이나 아닌지.
녀석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온갖 걱정이 겹처서 그예 수면을 그르치고 만다.
그리고 심리적 알레르기의 가려움증.
英이는 기십만원의 장학금, 이것은 기쁜 쪽인데.
17729 1995. 8. 23 (수)
俊, 돌아오지 않다.
온종일 안절부절.
이 녀석, 제 누나의 삐삐에 메시지를 남겼는데 역시 그러하다.
형편없는 성적으로 집에 들어 올 면목이 없는 것이다.
못나 빠진 놈,
알량한 대학에 알량한 학점 하나 따지 못하는 것도 지지리 못나 빠졌지만, 겨우 제 누나의 삐삐에다가 속삭이듯 한마디하고는 집을 떠나있는 그 못남!
학점.
엉터리 대학생활.
그 아이에게는 아비가 없었으며 또한 진정한 가정교육이란 있지 아니하였구나.
어리광, 부끄러워 들어오지 못한다.
이 놈의 어린아이.
이 놈의 어린아이.
홀로 바닷가에 앉아서 소주를 비운다.
俊, 여보게.
자네 어찌 그리 어린가, 여보게.
그 따위 알량한 학점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그 까짓 대학생활 하나 적응하지 못하여 이따위 아비 하나 즐겁게 할 줄 모르고, 그 따위 부끄러움 하나 극복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여보게 俊이.
그 따위 가정 아닌듯한 가정 하나 긍정하지 못하는가.
여보게.
아비는 참담할세.
자네의 못남이 억울하고 억울하여 그저 참담 뿐이로세.
그래, 한 참을 떠나있다가 자네 혼자 삭혀지거든 돌아오게.
자네가 자네의 대학 점수에 대한 책임질수 있을만큼 스스로를 주체할수 있거들랑 그 때 돌아오게.
제발, 어리광으로 이 못나빠진 아비 앞에 서지 말게나.
자네 아비짜리는 덜 여문 사람일세.
화가 나 죽을 지경이라네.
여버게, 俊이.
차라리 지금 군대에 가면 어떻겠는가.
순전히 타인들의 낯선 집단 속에서 자네를 한번 넣어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자네의 아비짜리는 자네의 의지를 믿지 못하게 되고 말았네.
자네의 안일하고 소극적인 분위기는 앞으로 이 아비짜리에게 하나의 고통일걸세.
자네 누이의 대학생활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네로 인하여 또 하나 이 못난 아비짜리에겐 고통의 무게가 더하여 졌단 말일세.
그래도 아비짜리는 그 새꼽잖은 공인중개사일 망정, 안간힘을 쓰는 것이네만 그것은 자네에게 무언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네.
그런데 낫살 먹은 사람의 그 안간힘이 곁에서 보는 자네에게는 오죽잖은 청승으로 보여졌을까하는 생각이 들면 자네가 더욱 괴씸하다네.
어딘가. 있는 곳이.
돈이나 좀 챙겨 가졌는가. 자네?
어디에 있나.
진하해수욕장이라고 했는가.
俊이 자네, 편치 않은 마음으로 하나도 즐겁지 않으리라는 것은 뻔히 알수 있다네.
결코 절망으로는 헤매지 말게나.
내게 오게.
그래도 내게는 俊이라는 한 객체를 이해하고 포용하여 사롭게 고취시킬수 있는 아비짜리로서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네.
내게 오게.
우리 기도하세.
못난 아비짜리는 이미 술이 취하였네.
17730 1995. 8. 24 (목)
여름은 마지막으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데 俊이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내 일상은 이제 그것에 짓눌려져 있을 뿐이다.
그렇게 못난 놈일까, 내 아들은.
대학1학년의 학점 하나 제대로 챙길 능력이 없을만큼.
결과를 예측하지 못할만큼 그렇게 허물렁 허물렁한 놈인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끄러워하며 도망칠만큼 그렇게 사나이답지 못한 놈인가.
진정 내 아들의 진면목은 그런 놈일까.
아, 기대와 가능성이라는 것은 피라밋처럼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게이 인생이라지만,
내게는 모든 것이 갈수록 참담해지는 느낌이니.
그렇다고 아무런 기대와 희망없이 살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저녁나절, 제 어미와 누나와는 연락이 되었다고.
도우소서.
17731 1995. 8. 25 (금)
회색수면으로 인한 아른한 아픔.
P/C 모니터에 노출된 눈 때문에 머리는 더욱 지끈거린다.
회사는 점점 환멸의 도를 더해가고, 俊이는 아비를 실망시키고. 여름은 지겹게도 지글지글 타고있고, 경제는 갈수록 아득하다.
그러다 5시 쯤.
책상위 전화 벨이 울린다.
앗, 俊이다.
"죄송합니다. 내일 아침 돌아가겠습니다."
17732 1995. 8. 26 (토)
길고 긴 俊이의 반성문.
그것을 쓰면서의 아들 놈 마음가짐을 생각해 본다.
모쪼록, 모쪼록.
주님 俊이를 도우소서.
상상을 초월한 성적표, 도무지 집에는 들어갈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떠돌았다, 많은 생각을 했다, 잘못하였음을 통감한다, 용서해 줍시사,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 나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고 부모님 일상에 돌아와 주십사...
17733 1995. 8. 27 (일)
아들 놈의 길고 긴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
모쪼록 모쪼록..
염불처럼 외울 뿐이다.
위쪽 지방에서는 물난리.
태풍도 열대성 저기압으로 소멸되고.
다시 늦더위가 타 오른다.
일요일.
간밤 모처럼의 숙면 이루다.
17734 1995. 8. 28 (월)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부모의 INPUT은 자식에게서 OUTPUT으로 나타난다.
英과 俊의 원인은 나와 J에 있으며 나의 원인은 어머니께 있으며 어머니의 원인은 외조부모께 있으며...
무형의 분위기라는 것.
잘 된 가정에는 회초리나 징벌이나 질책이나 충고등의 감각과 청각과 시각으로는 결코 느낄수 없는 무언의 분위기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가정의 향기.
이런 무형의 향기가 유형적인 환경요인과 더불어 한 영혼의 심층의 모양을 형성하여 알게 모르게 한 실존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켠 깊이 천착하여 보라.
생명, 창조주가 만드신 생명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 절대적인 생명에 있어서 실패한 인생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산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실패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너희 인생아, 패배한 인생이란 없노라고 창조주는 말씀하신다.
성공한 듯한 인생도 따지고 보면 상대적인 패배일 뿐이고, 그 패배란 느끼는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아주 고약한 스스로에 대한 심리 상태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俊아.
일요일.
독서실 들어앉아서 지적법 떼다.
억지로 머릿 속에 쑤셔 넣는 지식들.
월요일.
아이들 개강.
주님.
척박한 땅, 기쁨과 사랑과 긍정을 내리소서.
17735 1995. 8. 29 (화)
P/C 메이커를 불러다가 모니터를 바꿔보아도 화면의 떨림현상은 마찬가지이다.
전산실에 공문 보내다.
사무실 P/C 앞에 너무나 분별없이 눈을 혹사시켰다.
돋보기를 걸치고 나서도 점점 아프고 어두워지는 눈을 너무나 예사롭게 취급하였다.
눈의 통증은 곧 두통으로 이어져 더욱 곤란하다.
안경의 렌즈를 그 무어라더라, 돋보기와 겸용하는 렌즈로 바꾸는게 좋을까?
두 겹으로 걸처야하는 돋보기가 눈에 좋을리는 없을 것 같다.
갈수록 육체의 기능은 쇠잔해지고, 경제는 점점 궁핍하여지고, 나의 여자는 차거워지고, 아이들은 자꾸 실망을 가중시키고.
그리하여 이제 삶의 기쁨을 지탱시켜 주는 것은 그나마 정신일진저.
그런데 요즘 그마저도 고갈된 상상력의 동굴 속에서 현실의 거친 음식만을 반추하고 있다.
다시 신음과 외마디 소리.
포기하기, 죽지말기.
아, 주님. 죽지말기와 포기하기를 조와 주소서.
17736 1995. 8. 30 (수)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한바탕 暗示의 착각 속에 춤추다가는 무대.
그런데 그 암시라는 것은 말할수없이 중요한 것.
행복하다는 암시, 부유하다는 암시, 사랑받는다는 암시..
그 본질이야 진정 행복과 부요와 사랑을 소유하였을까마는 그 암시가 어찌하였건 사람에게 일단은 인생을 긍정케 한다.
존재의 삶에는 이르지 못할망정 소유의 삶이라는, 그 착각속에서 행복하다는 느낌으로 늙어가고 이윽고 죽는 삶이란 또한 한바탕 즐거움이 아닐손가.
어불성설.
내가 존재의 삶을 어찌 깨달을까.
어차피 소유가 존재라는 암시를 주는 착각, 그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범속하고 시시한 나의 품성이 바라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J, 눈에 좋다는 약을 사온다.
그런데 거기에 따르는 말 한마디는 그런 마누라짜리에의 고마움을 싹 가시게 한다.
"3만6천원 짜리요. 이제 생활비도 없어"
꿈- 높은 곳의 동네들,
17737 1995. 8. 31 (목)
일본의 사무라이.
때로 그들에게 죽음이란 매우 강렬한 유혹일 것 같다.
'大望'이나 '주신쿠라'같은 소설을 읽으면, 그들은 어느 무엇보다 아끼고 아껴서 그 순간을 아주 인생의 절정으로서 아주 극적인때, 서서히 그 기쁨을 음미하고 만끽하면서 죽어가는 것 같다.
무엇이 그들에게 죽음이 그토록이나 설레이는 기쁨이게 하는가.
삶의 가없는 고달픔을 벗어난다는 기대일까, 또는 경험하지 못한 피안의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일까, 또는 죽음 예식의 그 과정에 대한 성적 엑스터시의 욕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해서 기쁨으로 그 선을 넘는가.
여름도 이제 시들어가고 있다.
때로 비가 쏟아지고.
퇴근하여 내 방 책상 앞 앉아서 소주를 마신다.
신문을 펴들면 그곳에는 남들의, 온통 행복의 바라이어티의 쇼우가 벌어지는데.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주는 슬슬 취하라 취하라고 재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