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6. 10

카지모도 2016. 6. 25.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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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4  1996. 10. 1 (화)


여사원 K.Y.G은 추석연휴중 동남아 여행 다녀왔다.

출근하자 내게 눈물로 호소하는바 후배 여사원 K.G.S의 심술.

英이보다 어린 아이 K.G.S.

호되게 나무라기로 한다.


CT용 대리는 고향 다녀오면서 차트렁크에 포도 한궤짝 싣고서 우리집 아파트 경비실에 가져다 놓는다.


이상한 기분과 역할의 꿈에 빠졌다가 일어난 새벽, 2시가 조금 넘었을뿐이다.

창밖에는 바람소리 요란하다.


뜨거운 새벽 차를 마시면서 욥기를 소리내어 읽다.


俊이 이제 꼭 16일이 남았다.


18135  1996. 10. 2 (수)


안전공단의 크레인 안전 검사받다.

이틀 수검계획이었지만 하루만에 마치다.

31대의 검사대상 크레인중 2대만이 불합격이고 지적내용도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니다.

골치아픈 현안 하나 해결.


俊 이제 보름.

추석때 얻은 돈으로 안경 구두 청바지등을 혼자서 쑈핑하여 오다.


선듯한 아침 저녁, 그러나 한낮의 잔서는 아직 따갑다.


18136  1996. 10. 3 (목)


俊이 홀로 오늘 새벽, 제천으로 떠나다.

서울 친구와 제천서 만나서 태백으로 어디로 여행하고 오겠다는.

녀석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군인이 되기전 구가하는 자유.


18137  1996. 10. 4 (금)


스포츠 신문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단상 하나.

상상력의 한계.

어떤 SF, 추리, 도색소설이든 소설을 쓸때 그가 상상할수 있는 한계의 끝.

상상의 끝간데가 바로 그의 정신의 한계라는.

관념과 도덕관과 감정을 얼마만큼 초월할수 있는가의 능력.


俊이, 어미에게 전화하여 제천 잘 도착하였다고.


18138  1996. 10. 5 (토)


俊이는 청주로 간다고 전화.


새벽 목욕.

창문을 여니 가을 냄새.

냄새처럼 기억의 그림을 곧장 끌어낼수 있는 감각도 없다.

훈련소, 10월 들판의 냄새.


기도.


18139  1996. 10. 6 (일)


토요일 오전.

Sh씨가 뒤집어 놓는 분위기의 어수선함.

그 때문에 현업은 무어 하나 차분하게 되는 일없이 허둥지둥 바쁘기만 하다.


퇴근하여 마루에 앉아서 두편의 영화를 본다.

크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 메릴 스트립주연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소설보다 잘 만든 영화다.

결코 예쁜 용모가 아닌 메릴 스트립의 연기 덕.

한 폭의 그림같다.


'나에게 오라'

전라도 사투리의 욕설이 난무하는 60년대의 풍경화.

낙지대구빡 박상민의 열연, 최민수의 중후한 연기.

아마도 송기원의 원작일것.

질펀하게 흐르는 육두문자를 젊은 여자가 구사할 때 나는 무어라 말할 수없이 포근한...

음란함을 느낀다.

성욕의 아름다움.


俊이 어제 밤늦게 돌아왔다.


18140  1996. 10. 7 (월)


일요일.

태종대 하리의 횟집 이층에 어머니, 형내외, 哲이, 그리고 J, 英이, 俊이 둘러앉다.

俊의 입영 환송 모임이다.

俊이.

"잘 갔다 오겠습니다. 첫 휴가때 뵙겠습니다."

는 씩씩한 인사말.


어머니와 哲이는 먼저 가고, 英이도 약속있다고 곧 가고.


형과 형수와 J와 俊이는 인근 노래방.

한시간여 부르는 노래.

俊이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

콧등이 시큰하여 진다.


10일후.


18141  1996. 10. 8 (화)


가을은 깊어가고 가을의 정취는 어딘가 숨어있을 듯 하지만 이 척박한 회사에서는 한오라기 찾아낼수도 없고 그저 메마른 전전긍긍만이 있을 뿐이다.


아,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소중한 것들.

사랑.. 따뜻함.. 혹은 깊은 곳을 그윽히 바라보며 길어올리는 여유로운 사념...


18142  1996. 10. 9 (수)


Sh씨의 어지러움으로 골치아픈 회사를 도피하여,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

'신경영 혁신전략 설명회'라는 세미나 참석.

사장아들 AJ용 과 함께.

생산성본부의 연구위원이라는 사람들이 현상을 귀납하여 그것을 근거로 하나의 모델을 설정하고 이론을 도출하여 하나의 MODULE을 만들었다.

그것을 발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회사의 현상에 적응시킬만한 단서는 하나도 없다.


인사과장과 이런저런 얘기.

고1인 딸네미의 비뚤어짐과 마누라의 장사얘기서껀.

총무부장의 아들네미도 10월 17일날 논산 입영한다고.

잘하면 俊이와 훈련소 동기가 되겠구만.

그렇지만 훈련소 면회갈적에 그 친구와 동행하는 것은 좀 싫다.


나 없는새 H이사, GARNET 품의 건으로 또 Sh씨에게 무차별 펀치를 맞았던 모양이다.

정녕 싫다. 이 회사가.

어떻게 어떻게 1년정도만 더 버텨낼수 있을까.


俊이 매일 12시 넘는 귀가.

그러나 녀석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이것이 아비짜리는 기쁜 것이다.


욥기와 기도.


18143  1996. 10. 10 (목)


잔득 취한 밤.


테네시 윌리암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블랑쉬, 스텔라, 스텐리...

뉴 올리언스.

째즈의 선율.

스텐리의 번들번들한 땀 흐르는 등짝.....


18144  1996. 10. 11 (금)


어제는 SJ엽, LB걸 과 또 나중에 만나 어울린 설계부의 JM석, SS목 등과 늦도록 마셔 대취.

한껏 술에 취하여 굿판의 카타르시스를 하고나면 확실하게 스트레스는 날라간다.


점심시간.

초원삼계탕 예약하여 LG섭, KH선 의 송별 회식의 점심으로 떼운다.

혐력업체의 등록을 전제하고 사직한 LG섭, 그러나 Sh씨는 연고있는 다른 업체를 들이밀고 G섭 건은 입을 닦고 허락지 않는다.

그 악랄함을 성토하는 G섭.

정말 악랄하다.


俊이의 입영.

그것이 내게 닥아오는 가장 큰 이포크 포인트.


18145  1996. 10. 12 (토)


2공장 양수실 당직인 NS호 에 대한 을종인사위원회.

술마시고 직무를 유기한 것이 벌써 몇 번째, 그간 제출한 경위서를 보면 추후 또 그러면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 운운...

술마시는 순박한 사람이 아니라 술마시는 교활한 사람.

총무부장의 종용이 아니더라도 나는 단연 해고에 표를 던진다.


테네시 윌리엄스 '유리 동물원'

이것 또한 기가 막힌 희곡이다.

옛날 허영길형이 연출하였던 연극 무대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아서 밀러와는 이질적인, 환상적인 분위기의 무대, 시적인 대사, 인간의 내면의 추함과 선함의 리얼리티...


俊이 어제 학교친구들과 술마시고 외박.

새벽에 전화하여 어미를 안심시킨다.

이제 세밤만 자면 녀석은 떠난다.

걱정과 염려.

기대와 자랑스러움.


남북의 긴장국면이 예사롭지 않아 마음 쓰이는데.

기도.


18146  1996. 10. 13 (일)


Sh씨의 독기.

그것이 유난히 자심하게 느껴지는 날은 말할수 없는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된다.

그 독기에 대응하는, 면전에서의 반격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고작 사직서를 던져 버리는 장면만 꿈꾸는 아, 비겁한 중년의 사나이.


俊이 입영 말년.

그제는 외박, 어제는 자정넘어 돌아온다.

연신 俊이를 찾는 전화 벨소리.

의외로 녀석에게는 친구가 많다.

이것도 역시 아비짜리의 선입관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내일 모레 밤만 집에서 자고나면 수요일날 대전행, 목요일 13:00 입소.

그 날부터 낯선 사람들과 낯 선 잠자리.

그리고 낯선 부자유 속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2년여동안이나...


뒤척뒤척.

회색수면.

여러 가지 상념.


18147  1996. 10. 14 (월)


일요일.

俊이와 밖에 나가 당구도 함께 치고, 어딘가 들어 앉아서 조곤조곤 대화도 나누어보려고 별렀으나 녀석은 오전을 내처 잠만 잔다.

일찍이 경험자인 아비의 군대 얘기와 군대 요령이라는 것도 들려주고 싶건만.

오후가 되자 친구 만난다고 휑 나가 버린다.


아비의 마음과는 사뭇 다르게 마련인 것이 젊은이들이다.

英이는 중고자동차를 사겠다고 일찌감치 나갔다.


내 방 베란다에 앉아서 소주를 홀짝인다.


아들 녀석.

차근차근하게 준비물은 다 챙겼는지.

바느질, 빨래등 기초적인 신변잡사 처리 기능은 좀 익혀야 할텐데.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채 그냥 부딪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으슬으슬 감기기운.

俊이에게 감기기운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18148  1996. 10. 15 (화)


어제 이른 아침.

어머니 오셔서 아이들과 J에게 독감 예방주사 접종하여 주시다.

조반드시고 나 출근한 뒤 英이와 함께 나서 인성의원으로 출근하셨다고.


QC의 PJ희 부친, 일요일 갑자기 사망.

추석때부터 밥대신 술만 드시다가 심장질환으로 급사.

오후에 잠시 부민동 상가에 H이사와 문상.


JS영 과장, P이사가 불러 권고사직을 종용하였으나 완강한 거부.

그런다고 어쩌랴, 대기발령을 내 버리면 그 뿐인것을.

한사람씩 한사람씩 누구의 손가락질로 잘려나가고 있다.

내게도 강건너 등불이 아닌 현실.


어제 퇴근하니 英이, 씨에로 중고차를 구입하여 아파트 마당에 주차.

드디어 우리집에도 자동차라는 물건이 있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英아, 첫째도 둘째도 안전 안전...


俊이 어제 낮동안 외갓집에 가서 외조부모님께 하직인사 올리고, S형 집에 가서 S형어머니께도 입영인사.

녀석은 내일 집을 떠난다.

어찌 착잡함이 없겠는가.


18149  1996. 10. 16 (수)


어제 저녁에야 나는 알았는데, 俊이 외박한 날 지갑을 통째 잃어버렸다.

그동안 예제서 얻은 돈과 제가 알바이트하여 번 돈등 60여만원, 그리고 지갑 속에는 주민등록증, 입영영장도 들어 있었다.

돈은 그렇다치고 주민등록증과 입영영장이 문제.

제가 병무청에 알아보니 입영영장은 없어도 되지만 주민증은 있어야 한다고 하여 동사무소에 재발급신청하여 오늘 늦게야 재발급 된단다.


그리하여 俊이는 오늘 오후에 주민등록증을 찾아 가지고 친구 주홍이와 함께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떠난다.

거기서 하룻밤을 잔후 내일 오전 대전시내에서 머리를 깎고서 오후1시에 연무대 입소.


내 생각하는바 보다 훨씬 더 잘 해낼수 있을거라는 강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자의식 강하고 적응이 늦은 아이가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힘든 자신과의 싸움을 아비도 힘들게 그 느낌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어제도 밤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3시 넘어 들어와 찬물 뒤집어 써 목욕하더니 지금 제 방에 곯아떨어져 있는 俊.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의 저녁밥상, 별식을 차려놓지는 못하였을망정 네 식구 둘러앉아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며칠째 설치는 수면.

俊이 무사한 입영후 실컷 자고, 그때 허리를 펴리라.


18150  1996. 10. 17 (목)


사무실의 책상위  전화벨이 울린다.

부산역의 俊.

"아버지. 잘 다녀 오겠습니다."

씩씩한 내 아들.

그러나 범상하게 말하는 녀석의 음성에는 기대와 불안이 울멍울멍 맺혀있는 것을 아비라서 느낄수 있다.

부산역에는 제 어미와 누나도 배웅을 나갔는데, 남녀 친구들이 몰려오고 개찰구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어미와 누이는 한사코 먼저 가라고 쫓아내었다고.

그래, 식구의 슬픈 표정보다는 떠들썩한 친구들이 백번 편하지.

그러나 그대로 역광장에서 돌아서는 어미의 마음 오죽 쓸쓸했으랴.


俊이는 잘 해내리라!


황산벌, 연무대, 가을냄새의 들판, 이제 곧 쌀쌀해지고, 군복을 지급받고, 장비를 지급받고,  점호를 받고, 짬밥을 먹으며, 땅을 기고 닫고, 산을 오르고 총을 쏘고 때로는 빠따를 엉덩이에 맞으며...

그렇게 6주동안 다듬어진후, 작대기 한개 육군 이등병이 되어 어딘가로 배속된후, 고달픈 졸병생활 한 6개월.

한 10개월 쯤 되면 진짜 군바리 폼도 나겠지, 내 아들.


기도.


18151  1996. 10. 18 (금)


오전 10시 45분.

동영해운 SB-427, 2선대 건조선박중 최대 규모여서 불안한 공사였는데, 무사히 스르르 2선대를 미끄러져 바다로 진입한다.

이 무사한 진수를 나는 俊이의 무사한 군생활에 도박처럼 걸었었다.

성공적인 진수, 俊이의 성공적인 군생활을 확신케 하여 준다.


俊이 어제 오후 1시 입소.

서울친구 원철이도 내려와 주어서 주홍이와 원철이의 배웅을 받으며 영문 안으로 들어갔다.

주홍이가 J에게 전화 해 주었다.

가는 몸매, 훌쩍한 키의 녀석이 건들건들 걸어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밟히는 아비짜리.


일찍 사무실을 나와 집에서 J와 마주 앉아서 소주를 마신다.

허전하고 안스러운 마음이야 어미가 더 할것.


하룻밤이 지났다.

29년전 수용연대 막사에서 하룻밤 지낸 다음 날의 그 이상스런 느낌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녀석도 지금 이 시각 아주 이상할 기분일 것이다.


俊아.

용기와 지혜.

기도.


18152  1996. 10. 19 (토)


俊이 이틀밤 지났다.

첫새벽, 눈 떠 그 낯설고 황량한 느낌이 두 번째 새벽에는 좀 가셨을까.

아직은 대기하는 장정신분일 것이다.

월요일쯤부터 군복을 입게 될까.


회사는 갈수록 개같은 분위기로 침몰한다.

은밀하게 사직을 권유 받는 사람들.

내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듯하나 혹 내 귀에 아직 미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자'가 아니라 '하지말자'의 분위기가 팽배한 곳.

도장반 창고에서 잠시 신문 읽다가 걸린 황인수, 사수 SJ엽 이하 아래의 반장까지 줄줄이 시말서 쓰라는 공문.

둘은 어제 출근하지 않았다.


안팎으로 어수선하지만 관광회사 전화하여 부차장 제주도 관광을 추진한다.

명색 총무라는 역할의 피곤함이다.


꿈- 방바닥에 무더기 무더기 싸지른 똥.


기도.


18153  1996. 10. 20 (일)


Sh씨와 H부장의 미친듯한 콤비 플레이.

SJ엽 과 HI수 는 며칠째 회사를 나오지 않고 어제 오후 잠시 만난 SJ엽 은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을 피력한다.


간 밤에는 俊이 방에서 잔다.

俊 3일째.


18154  1996. 10. 21 (월)


박철수 감독 '학생부군신위'

아주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초상집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죽은자와 산자, 죽은자를 보내는 마당에 펼처지는 산자들의 굿판.

그 굿판은 죽은자를 위한 의식이다.

형식의 미학.

너무나 마음을 감싸주는 영화이다.


일요일마다 방영하던 KBS '퀴즈대학'은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다.

시청율이 낮았던 모양인가.

한번 출연하여 볼 마음이 있었는데 아쉽다.


俊이 없는 빈 자리,

갓 떠난 그 적요감은 사뭇 더하다.

오늘은 일요일.

이제 좀 적응이 되었을까.

자의식 강한 녀석의 마음이 힘들어하고 있는건 아닌지.

녀석에게는 육체적인 어떤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그것이 더 힘들 것인데.


새벽의 목욕.

기도.


18155  1996. 10. 22 (화)


회사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나서 돌연 배탈.

아랫배의 쌀쌀함이 곧 설사로 이어지는데 설사라도 배변의 쾌감은 있다.

뒤이어 뒷꽁무니의 극심한 통증.


俊이 5일 밤을 지냈다.

이제 훈련에 돌입하였을까.

JM교  자형에게 PUSH할 시점은 언제로 잡아야 할까.


J 내 셔츠 하나 사놓았다.


꿈- 나이들어 다시 입대해야 하는 전날 밤, 나는 억울하고 억울하여 영 죽을 맛인데 어머니와 형과 홍철이등은 그런 것은 아랑곳없이 나를 왕따시킨다.


18156  1996. 10. 23 (수)


퇴근무렵, JS영 과장의 거센 어필, 내가 무어 잘못하였다고 해고 대상이냐고.

딱하디 딱한 일.

결코 남의 사안일수만은 없으나 나의 경우를 상정하건데.

미련없이, 자존심 더욱 상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적시타로서 사직서를 날릴 것이다.


英이, 어제 제 차 몰고 첫 출근.

아파트 주차장 주차하는 솜씨는 영 서툰데, 그래도 시내를 헤집고 다녔으니 곧 능숙해 질 것이다.

그러나 요 조심! 요 조심!


俊이 일주일 닥아온다.

이 시각, 6시가 넘었으니 기상하여 점호 준비중일까.


18158  1996. 10. 25 (금)


어제 英이 모는 차타고 출근.

아직 다소 불안한 운전 솜씨이지만 곧 익숙해지며 자신감도 붙을 것이다.


J.S.Y과장, H부장을 찾아가고 Sh씨를 찾아가 발버둥치더니 어제 저녁 결국 사직서를 던지다.


俊이, 이제 초장은 넘겼다.

초장의 군대 맛에 이제 슬슬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내무반 불침번.

한밤중 내무반 입구에 걸려있는 조그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생경하여 몹시도 야릇하였던 29년전,

俊이도 그럴까.


차츰 俊이의 부재가 자연스레 자리를 잡아가는 집의 분위기.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18159  1996. 10. 26 (토)


C.T.Y대리, 대기발령 내겠다고 공갈을 때리더니 결국은 스스로 사직케 한다.

그 악역을 맡은 나, 차마 그의 얼굴을 똑바로 처다보지 못하는 면목없음.


LD찬 씨의 큰아들 대섭이 해양대학을 나와 한진해운 근무하는데 사무실로 찾아오다.

내미는 청첩장.

LD찬 씨의 딸네미 인숙이 결혼식, 이번 일요일 기장에서.


俊이, 이제 두 번째의 일요일을 맞는다.


새벽.

소리내어 욥기와 빌립보서.


18160  1996. 10. 27 (일)


총무부장, 무슨 빚독촉하듯이 CT용 대리의 사직서를 재촉한다.

Sh씨가 난리라고.

황금의 콤비플레이.


토요일 회사 식당의 비빔밥은 맛이 있다.

퇴근하여 이화미용실, 파마.


비디오 영화 '포룸'

퀜틴 타란티노등 4명의 감독이 연출한 옴니버스.

이런 것이 이른바 컬트무비인지.

호텔의 벨보이가 겪는 4개의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글쎄, 평가는 유보...


18161  1996. 10. 28 (월)


일요일 부산역앞.

예식장으로 가는 버스가 늦도록 오지 않아서 신부아버지인 LD찬 씨와 SJ엽 과 택시를 타고 기장으로 달린다.

예식시간을 10여분 늦은 도착.

신부는 죽은 엄마 생각으로 예식 도중 흐느껴 울고, 이제 딸 마저도 치웠으니 LD찬 씨는 할아버지다.


SJ엽 과 버스에 긴시간 흔들리며 시내로.

예전에는 한적한 어촌마을이었던 기장, 시골 해수욕장이었던 송정은 이제 신흥도시의 면모로 바뀌었다.

버스차창으로 보이는 해운대는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곳곳에 어지럽게 파헤쳐져 개발이 한창이다.

수영을 지나면서 국군 통합병원, 그 시절 제3육군병원은 그대로의 건물이다.


자갈치 호정횟집에 마주앉아서 SJ엽 과 소주


18162  1996. 10. 29 (화)


Sh씨와 Hw부장의 이미지만 떠올리면 오만 정나미가 떨어지는 회사.

그래도 빌붙어 견뎌야 할 당위성이 있는 스스로에 대하여 치미는 부아.


英이 운전 솜씨는 날로 늘어가는데 시내 사무실에 주차할 곳이 없어서 차를 끌고 갈수 없다고.

출퇴근과 영업 외근때 필요하다고 사더니 그러면 차는 무슨 소용인지?

나라도 연수를 하여 새벽에 태종대라도 몰고 다녀야겠다.

나보다 고참 면허취득자인 J도 어서 운전을 익히고...


俊이.

잘 해내고 있겠지.

부대에서라도 무슨 소식하나 있을법하건만.


기도.


18163  1996. 10. 30 (수)


CT용 대리 사직서 제출.

JD규, 사직하여 SS우 는 의장과에 전보될듯.

SS우 를 뺏기는 것에 대하여 심각한 업무의 타격을 어필하는 나,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생존 방법의 테크닉.

그러나, 이런 내가 싫기도 하여라.


부서장회의.

이 살얼음판 같은 회사 분위기 속에서도 부차장의 제주도 관광건은 거론된다.

11월 23일 저녁 페리편으로 가서 제주도 1박하고 25일 오후에 항공편으로 돌아오기로 결정.


육본에 있는 JM교  자형으로부터 소식이 오다.

제2훈련소 23연대.

俊이는 훈련을 잘 받고 있다는 소식.

고맙고 대견하고 기특한 녀석.

그리고 俊이를 주목하여주는 군대내의 빽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


18164  1996. 10. 31 (목)


俊이 어느새 보름이 되어간다.

지금쯤 P.R.I의 엎드려 쏴로 팔꿈치 무릎팍이 까졌을까.

총검술 자세는 제대로 잡혔을까.

살벌한 유도점호의 공포분위기는 몇 번이나 겼었을까.

지금쯤 사나이로서의 뿌듯한 어떤 충일감 같은거는 느끼고 있을거나.


아직은 이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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