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6. 7

카지모도 2016. 6. 25.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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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2  1996. 7. 1 (월)


올해도 어느새 절반이 지나갔다.

유수와 같은 세월이라더니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를 실감하게 된다.


나이 먹어 획득하는 것이 자신감과 자기확신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자기회의와 자기불안에 아직 미망하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다.

나는 물론 후자이거니와 게다가 또 남의 시선에서도 도무지 자유롭지 못하니 슬플 따름이다.


일요일, 英이는 외출, 俊이는 제방 문걸어 잠그고 틀어박히기, J는 안방 뒹굴기, 나는 맥주마시며 마루지키기.

어김없는 도식의 풍경화는 일요일마다 연출되는 그림이다.


英이 책사오다.

만화로 만든 '프로이트'와 'CYBER SPACE'

지식의 욕구가 그나마 내게 있으니 다행이랄까.


18043  1996. 7. 2 (화)


장마는 소강상태.

맑고 무덥다.

사무실에는 아직 에어컨의 찬바람은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우천으로 오지않았던 이동도서관이 왔다.

이양지 '돌의 소리'  박영한 '키릴로프의 연인' 빌린다.

일본에서 태어나 후지산 기슭에서 살면서 일본인으로 성장한 재일동포의 소녀.

일본인이면서 결코 일본인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한다.

단지 부모의 고향이라는 한국이 그녀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러다가 만난 조선 문화,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문화의 자궁과 같은 동질성을 느낌에.

한국을 찾아 국문학을 공부하고 가야금과 조선춤을 배우고.

그 한국적 감수성으로 소설을 써 작가가 되고 아쿠다가와상까지 받았다.

서른몇살의 나이로 죽다.


퇴근하여 녹화한 다큐멘타리 '신신인류'를 본다.

메이지대학의 동아리 '응원단'

무르익은 자본주의사회인 일본.

개인주의의 향락과 찰나의 즐거움만을 추구할 것 같은 그 사회의 신세대중에는 이와 같은 집단적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무리가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전통과 극기의 집단, 군대보다도 더 가혹한 규율로 무장된 젊은이들.

합숙하며 혹독한 훈련을 거처서 하는 공연이라는것.

앙상불의 아름다움도, 율동이나 소리의 멋스러움도 아무것도 없는 그냥 땡고함과 슬랍스틱 코메디같은 내용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공연에서 추구하는 것은 가장 격렬한 동작 바로 그것이다.

격렬함을 내면화시킨다는 그것이 말하자면 어떤 경지에 으르는 도정,

예술.. 장인의 모습 또한 있지 않을까.

그런 동아리에 속하여 있다는 자긍심에 그들의 눈동자는 빛난다.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뚜렷한 자기확신으로 스스로 극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질서와 엄격함의 문화는 보기에 따라서는 감동적일수도 있다.

쇼비니즘은 일본에서 완전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18044  1996. 7. 3 (수)


비는 내리지 않고 무더운 날씨.

점심시간, 최대리에게 끌려 시장통까지 가서 보신탕 먹는다.

내 식성이란 본시 검소하고 단조로운 편인데, 어떤 맛의 개념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의 개처럼 맹렬한 식욕이 솟아난다.

그런 음식의 개념들이 축적되어 가면, 즉 늙어갈수록 식탐이 생기는 것인가 보다.


늦은 오후 사무실의 창문으로 어린 제비 한 마리가 날아 들어오다.

나갈 곳을 찾지 못해 낮은 천장과 이곳 저곳 벽에 부딪치며 울부짖는다.

한 30CM만 낮게 날으면 열려있는 창문이 있건만 그저 좌충우돌할 뿐.

미칠 듯 울부짖는 그 모습은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드는데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다.

퇴근하면서 몇군데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탈출에 성공하였는지.


18045  1996. 7. 4 (목)


어머니.

일천구백십년생이시니 올해 일흔일곱의 년륜이신가.

그리고 나는 쉰줄.

어허, 나 또한 까발린 새끼들, 삐약삐약 엊그제의 병아리새끼들이 꾸꾸 수탉 암탉이 되어 울고 있고나.

어머니의 쓸쓸한 풍경화를 채색하여 초록기쁨으로 변화시킬 능력, 그런 기적의 소지는 애시당초 있을수없으니 에헤라 술이나 마시자꾸나.


俊이나 彦이 군대에서 썪어야 하는 2년여 세월은.

이 썪는다는 언어 속에는 익어감, 성숙함, 이해함, 사랑함 같은 개념이 녹아있는 것이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범부범부의 마음 속에는 그 세월이 결코 썪는다는 그런것만이 아니다.

자신들은 썪는다고 생각할지라도.

젊어서의 세월의 경험이란 귀중한 것이다.


18046  1996. 7. 5 (금)


비 쏟아지다.

비가 쏟아지는데 俊이는 새벽같이 제친구 주홍이와 산에 간다고 집을 나서 나 출근한후 한참을 있다가 돌아왔다고.

여하튼 웃기는 녀석이다.


나에게 프로이트가 수월하게 이해됨은 프로이트가 쉬워서가 아니라 나의 기질적 이해력이 프로이트의 그것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슈퍼에고- 초자아.

이것은 생각컨대 내재되어 있는 전통의식이다.

유전인자가 사회화된 것, 내리사랑이 연연히 지탱하여 작용하는 무의식적 가치관이다.

이드는 소망 충족을 위해 날뛰는데 의식화된 에고는 이를 억제하고, 다시 이를 감시하고 억압하려는 눈이 있으니 그게 바로 초자아.....


18047  1996. 7. 6 (토)


날씨는 잔득 찌푸렸으나 비는 내리지 않는다.

노사협상- 임금협상과 단체협의.

한진등 여러곳이 파업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인데 그나마 회사는 다행이다.


국회 개원, 원구성도 마쳤으나 이번에는 민주당이 단상을 점거하고 멱살잡이들을 한다.

큰 아이들과 놀아보겠다고 나름대로 깡다구를 부리는 꼴, 그 드잡이 속에 이부영도 끼어있으니 정치판에 몸을 담그면 어쩔수 없나보다.


재수와 팔자와 운명에 맡기고 사는 우리는 그야말로 운명론적 특혜의식에 빠져서들 살고 있는 것이다.


어제, 俊이 학교서껀 돌아다닌 모양인데 카투사등 입대 문제를 제대로 매조지하고 있는겐지 모르겠다.

늦은 사춘기를 겪는듯한 아들 놈의 반발하는 심리가 겁나는 나약한 아비짜리는 속이 탈 뿐이다.


햇살, 구름사이로 코발트빛 하늘 자락이 보인다.


18048  1996. 7. 7 (일)


푸르른 하늘, 가을처럼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초여름의 토요일.

퇴근하여 책방들러 김정일 '아하 프로이트'사고 새로 나온 소주 '독도'2병을 사고 아무도 없는 현관문을 따고 들어온다.

오징어 굽고하여 내 방에 앉아서 토요일 오후를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소주를 마시려는데, 두잔이나 털어넣었을까.

느닷없이 인사과 장진고로부터의 전화.

폭발사고.

드라이 도크 옆에 사람이 압사하고 건물이 박살났다는 다급한 목소리.


허겁지겁 택시타고 회사로 달려간다.

회사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유리파편이 자욱하게 널려있다.

주위에는 소방차, 경찰차, 신문사차, 방송사차로 붐비고.

다행히 회사의 사고가 아니다.

이웃 K조선소에서 공사중인 BARGE의 탱크가 폭발한 것이다.

그 외판 덩어리가 근 50M를 날아와 우리 현장의 사람을 덮친 것.

끔찍하게 참혹한 압사.

K조선소와 경계에있는 선급 선주실 사무실들은 폭격맞은 폐허 꼴이다.

본관 건물의 동쪽 유리창들은 모두 박살이 났다.

토요일 오후 모두 퇴근한 후라 대형인명사고는 피할수 있어 너무나 다행이었다.


18049  1996. 7. 8 (월)


일요일의 사무실.

어수선한 분위기.

유리 파편들은 대충 치워졌으나 깨진 유리창들이 흉물스럽다.

압사한 현장에는 외판의 강철 덩어리가 그대로 흉물스레 누워있고 피가 홍건했던 자리에는 시체의 형상그대로 모래로 덮어 놓았다.


월요일새벽.

비는 오지 않으나 아우성치는 바람소리.


18050  1996. 7. 9 (화)


선급 선주실들은 수리선부 3층과 본관 3층의 빈방들로 소개하였다.

바람이 몹시 불어댄다.


김정일 '아하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개략적인 개념이라도 그려낼 것이지, 나름대로 궁구한 이론일테지만 제 목소리가 너무 두드러져서 난삽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저 산만한 에세이집.


英이는 주임으로 승진하였다나.


18051  1996. 7. 10 (수)


압사하여 죽은 사람의 가족들.

산업사회의 산업적 보상을 요구하는 정석.

진치고 농성하기, 땡깡부리기.

현장으로 들어가는 정문 안쪽에는 대형천막 3개가 설치되고, 사고 현장에는 돼지머리 놓여진 상하나가 놓여있다.

두건쓰고 삼베각반 찬 사람들은 슬슬 몸부림을 치고있다.

본관의 사방팔방 문은 죄다 걸어 잠그고 유족들의 습격을 막고있다.


俊이, 어제 TOEIC 원서를 제 엄마가 사와서 접수하려고 하니까 내용인즉슨.

토익의 성적통보는 시험친후 50일후이고 카투사 접수마감은 9월 7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토익을 치더라도 카투사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아들녀석 하는 짓이라니.

제 녀석을 믿느니 내가 진작 이것저것 알아보고 챙겨야 하는 건데.

신중하게 재고 계산하는 축이 아니고 충동적인 녀석이다.


18053  1996. 7. 12 (금)


젊은 친구들과 술마시기.

상대도 부담스럽고 나 또한 그들의 유치함과 단견에 주파수를 맞추려니 피곤한 노릇.

그렇다고 나이 든 축들과 어울려 술마시기도 즐거운 노릇만은 아니다.

그들의 유치함과 단견 또한.

그리하여 바람직한 술 상대는 마누라나 자식들일법한데 이들 역시 아비의 술상대되기를 경원하니 어찌하랴.

그러므로 나는 독작이 즐겁다.

어떤 수준의 책을 더불어 읽으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시나브로 취하여 가는 그 즐거움.

게다가 혼자 술을 마시면 매우 경제적이기까지 하니.


2공장의 건설 조립장을 둘러보고 본사로 돌아오니 모든 출입문은 봉쇄되어 할수 없이 6창고 철문을 넘는다.

죽은사람을 볼모삼아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한 몸부림.

죽음은 그 한조각 엄숙 마저도 훼손 당한다.


俊이 카투사, 어쩌면 가능할수도 있겠다.


18054  1996. 7. 13 (토)


법원 판결문 든 집달리에 의한 강제집행.

이를 집행하는데 1천 2백만원의 경비.

중식시간 직후에 집행한다고 하여 긴장하고 기다렸으나 집달리 수배가 여의치 않아 다음 날로 순연되었다.


俊이, 어제는 학교가서 토익 공부하고 늦게 돌아온다.

부디 카투사로 군대생활을 하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은 저보다도 아비가 더하다.


18055  1996. 7. 14 (일)


강제집행.

모두 방패박이 역으로 동원된 동안 나는 3층의 사무실에서 조감으로 내려다 본다.

아무 저항도 극적인 상황도 없이 상황은 10여분 만에 싱겁게 끝난다.


토요일 저녁 7시.

부산역앞의 '사해방'

彦이 입대를 전송하는 회식.

어머니를 가운데로 형네와 우리식구들 둘러 앉다.

彦이의 결의에 찬 인삿말 한마디.

'빡시게 군대생활하고 빡시게 공부하겠습니다.'

彦이에게 돈 쥐어주어 젊은이들은 어디로들 가고, 나머지는 그대로 헤어저 택시타고 돌아온다.


음식값을 계산하며 형의 폼잡는 소리.

'BILL 갖다줘' 하는데 몹시 우스웠다,


18057  1996. 7. 16 (화)


오후부터 사무실에는 찬바람이 나오기 시작한다.

한결 낫다.


어딘가 외부로 눈을 돌려 파묻힐 대상 하나 찾아야하는데.

이제 꺾인 내 의지는 팔자타령이나 되뇌일 뿐이다.


그나마 회사의 업무에.

몇가지 사안처리,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똥을 누면서 키릴로프의 연인이라는 박영한의 시시한 소설을 읽고.

그러면서 초라한 존재의 무게를 가늠한다


꿈- 보생의원, 점주와 오버랩되는 어린 俊이, 형과의 싸움, 1호실과 5호실.

변두리 극장, 못된 버릇의 俊이 고집, 나의 신경질, 어젯밤 늦은 시각 俊이를 큰 소리로 나무라는 J의 목소리가 내 수면에 틈입하여 만들어 낸 내용일 것.


18058  1996. 7. 17 (수)


출근하기 10여분전.

토익시험이 8월 25일이라는 말을 듣고 불같이 치미는 화.

8월 25일이라면 9월 7일 마감하는 카투사는 지원할수 없지 않은가.

아, 한심한 녀석.

미적미적, 어떻게 되겠지, 되면되고 안되면 안되고....


아무러면 아무리 아비라고 하여도 나는 제3자가 아닌가.

이것은 제 문제인데 저 자신의 문제를 이토록 소홀하게 긴장감없이..

흡사 아무런 생각도 없는 놈마냥.


내가 잠꼬대한 카투사 얘기는 아마 1년이 넘었을 것이고, 올 봄부터 토익은 알아봤느냐, 신청해야지하는 잔소리는 또 몇백번을 하였나 말이다.

그때마다 녀석은 온갖 신경질을 내며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꼴이라니.

녀석의 그 못난 의지를 간파하여 진작에 내가 설쳤어야 하는건데.

기실 믿지도 않으면서 설마하고 있었으니.


TOEIC 위원회라는 곳의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하여 아무리 사정해도 7월 21일의 시험에 응시할 수는 없다.


18059  1996. 7. 18 (목)


공휴일.

비디오 '세븐'

요즘 한창 잘 나간다는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이 형사역.

어두운 사회를 응징한다는 미치광이를 내용으로 하는 영화.

그러나 시시하다. 요즘에는 옛 영화에서와 같이 예사롭지 않은 감동을 창출해내지 못한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만 하고.

이것은 어쩌면 신세대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내 고루함때문일 것.


사무실 잠시 들렀다가 책방.

두권의 책, '공산당 선언' 과 '융의 심리학 해설'

공산당 선언, 이 책이 문고판으로 예사롭게 출판되어 있을줄이야.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이 얇은 책은 사상서로서, 그 보다 역사서로서 영원한 가치를 잃지 않을 책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접하고자하는 칼 구스타프 융.


책을 가지고 홀로 태종대 숲 속에 앉는다.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 숲의 정취에 그윽하게 사념을 맡긴채 한 병의 소주를 마신다.

俊이 문제를 떠나...


18060  1996. 7. 19 (금)


한진중공업, 노사는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정문 앞에서 무리지어 구호를 외치는 아낙네들.

부창부수하는 폼을 잡는 웃기는 무리들이다.

프로레타리아란 여기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주의로만 무장한 호모 사피엔스만이 있을 뿐이다.


회사의 협상도 난항중.


꿈의 기록.

꿈을 기록으로 남기고는 있으나 이것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요원하기만 하다.


俊이.

무기력한 녀석의 감정을 탈피시키는 길은 어서 군대에 보내야 하겠다는 것이다.

녀석의 군입대, 이제 내가 적극 설쳐야 될 시점이 아닐까.


18061  1996. 7. 20 (토)


불볕더위.

한낮의 기온은 35도를 오르내리는 모양이지만 에어 컨의 찬바람 속에 앉아있는 내게는 더위가 없다.

그리고는 직원들에게 여름은 더워야 한다는둥 씨부려댄다.

空論, 겪지 않으니 이 따위 관념의 일단을 진정인양 피력하는 위선.


아트란타 올림픽을 이틀 남겨둔 어제, TWA기 공중에서 폭파하여 2백수십면이 공중의 고혼으로 사라졌다.

테러인지.


공산당 선언, 나는 이 책에서 18세기의 유럽을 본다.

봉건주의 부르조아. 사회주의자, 쁘띠 부르조아, 무정부주의자, 호나상적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프롤레타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등 그 국가적 특질들도 고스란히 읽어낼수가 있다.

참으로 유익한 얇다란 한권의 책.


똑같은 의사표시라도 '아'와 '어'는 다른 언어이다.

J의 언어라는 것은 이를 구별할줄 모른다.


18062  1996. 7. 21 (일)


토요일 늦은 퇴근.

아트란타 올림픽 개막식,

俊이에게 개막식 녹화를 당부하였는데 녹화가 되어 있지 않다.

믿고 맡길만한 책임감이 부족하다.

타인에게 신뢰를 얻어야만 부대껴 살수 있는 세상인데...


소주 마시며 두편의 비디오본다.

'TOTAL ECLIPSE'

두 시인, 폴 베르네르와 랭보우

두 사람의 동성애적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QUARTET'

그리스 영화의 어떤 수준을 느낀다.

가정, 남편과 자식, 여인의 소외감....


18063  1996. 7. 22 (월)


일요일.

彦이 입대 인사차 오다.

오늘 1시 기차로 서울로 가서 23일에 춘천 101 보충대에 입소하여 6주간의 훈련을 받게 된다고.

상근예비군인가로 지원하여서 1년은 현역복무, 1년은 재택근무.

중국음식 시켜다 점심을 먹이고, 맥주 한잔 하려 俊이와 나간다.


내 방 책상 앞 앉아 읽는 공산당 선언.

영국의 경제학, 독일의 철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1789년 부르조아 대혁명 이후 관념철학의 변증법으로부터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이 불거져 나온 이후.

백가쟁명의 사상들, 기존 봉건제 왕권제 혹은 길드적 산업형태의 붕괴를 모두들 예감하고 있었다.

각가지 사회주의 운동의 난무, 바뵈프, 생시몽, 푸리에, 바쿠닌등의 분위기 속에서 칼 맑스는 태동한다.


꿈- 언덕, 정주영, 함안댁, 화재, 나주의 어느 곳.


18064  1996. 7. 23 (화)


줄곧 며칠후 맞이할 여름휴가 계획을 구상한다.

여름의 가족들은 아비와 남편과의 무엇을 기대하지도 즐겨하지도 않는다.


우선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볼수있는 다초점 렌즈의 안경 맞추기.

코오롱 크린스 사기.

정신분석에 관한 몇권의 책 사기.

그리고 책읽기. 정식으로 책상 앞 앉아서 융이나 프로이트의 책들을 천착하기.

그리고 회계학이라는 공부를 시도하기.

그러기 위하여 영도도서관이나 독서실 선택하여 가기.


한번 쯤은 마누라와 아이들 끌고 나가 외식하기.


彦이 오늘 입영할 것.

건강하게 다녀 오너라.

군대에서의 요령이란 엉덩이를 뒤로 빼고 뒷전에서 맴도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닥치는 것들을 긍정하여 껴안는 것이다.

나는 彦이 송별연에서 이 얘기를 해 주었다.


18065  1996. 7. 24 (수)


연일 찜통더위.

노사협상은 수시로 결렬되었다가 다시 마주앉았다가.

한진중공업은 근 한달째 파업중.

그러나 한진 관리직들의 업무는 일관되게 진행되어서 BLOCK제작공사의 PROPOSAL은 계속 오고있다.


COLE의 사상서 '정치학의 이데올로기'중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읽는다.

한마디로 정의할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이 사회주의란 것이다.

공상적 사회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진화론적 사회주의..

그러나 이들 기저에 흐르는 공통된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추상적인 도덕과 정의에 근거하였든 아니든 간에 인간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코자하는 염원을 담은 이념이라는 것.

이데올로기란 과연 무엇일까?

결코 OPINION은 아니고 하나의 THUUGHT 일시 분명한데.

사회적 집단에 의해 지지되는 신념이나 태도(?)

그리고 그 신념이나 태도가 곧바로 행위로 표출될수 있는 집단적인 마음가짐(?)


회사의 사장이나 전무라는 사람.

그들도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무장되어 있는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인 보수주의로서.


18066  1996. 7. 25 (목)


노사협상 타결.

바쁘게 사정표를 만들고 고과원칙을 작성하여 현업과장들을 소집하여 설명하고 나누어 준다.

수당까지 포함한 금액을 사정기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P상무의 주장.

피곤한 추가작업.


퇴근하여 베란다 내 방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면서 요즘 읽고있는 사회주의 지식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이문열의 '영웅시대'를 끄집어 내어 종장에 쓰여진 '동영의 노트'를 읽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이문열의 천착되지 않은 사회주의 관점이 드러난다.

몽롱한 논리 전개, 그의 인간주의란.

사람이란 규정할수 없는 불가해한 존재, 그러므로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장황한 언어의 나열은 헛소리에 가깝다.

천착하지 못한 주제는 애매한 단어를 구사하여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고.

그의 규정할수 없고 규정되어서도 안된다는 인간론은 소설가적 수사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나 또한 긍정해 마지 않는바이지만 이문열 그의 현학이 어설프다는 점, 상상력의 한계가 빤히 드러난다는 점, 그런 것이 영 못마땅하다.


휴가때.

피서지나 유원지가 아닌 어느 시골에다 한 사나흘 방을 얻어서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 하나.

그런 곳을 알지도, 알아볼 염도 품지 않은채 그저 했으면 했으면 하고 있는 나냐말로 몽상가...


18067  1996. 7. 26 (금)


돼지갈비를 시작으로 좀 마시다.

KH호, SJ엽 과 함께.


T볼트모어 '현대사회의 계층'

사회과학의 서적이 내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어설픈 현학취미의 만족 뿐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 유물론적 시각에서 바라본 사회계층이라는 측면은 단순하고 순진한 듯 하다.

이 사회의 계층은 보다 다양하고 모호하고 상대적이며 심리적인 무엇이다.

허긴 이 논문은 1965년도의 논문이다.


18068  1996. 7. 27 (토)


조선일보 금요일 문화면은 독서정보로 편집되었는데, 근래 부쩍 정신분석에 관한 책들의 등장이 잦다.

정신과의사들이 문필가로 각광들을 받기도 하는데.

무슨 현상일까.

정신분석이라는 고답적인 노인이 현대의 세속을 활보한다.

이른바 이것도 무슨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상인지.

아니면 현대인들이 비로소 정신이라는 추상구조에 대한 각성이 있었는지.


"주님을 믿는다는 것과 자기를 잃는다는 것은 다를뿐만 아니라 교리에도 어긋난다.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주님 안에서 자기를 찾는 것이다"

너무도 옳은 소리다.


18069  1996. 7. 28 (일)


열대야.

연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양파와 같이 겹겹이 쌓여진 층층의 껍질들이 수면 과정에는 있다.

그런데 나의 수면은 극히 표면에서 더 이상 수면의 핵심으로 들어가지를 못한다.

온갖 잡다한 꿈, 꿈이 무의식의 변형된 실체라면 나는 허구허날 무수히 경험하는 이 꿈의 현실을 어떻게 내 자아를 통하여 개성화할수 있을까.

개꿈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꿈에도 가치있는 것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있어서 품질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선인들은 무의식 개념의 정곡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수면의 질.

즉 그 수면상태가 어느 수준에 머물렀느냐에 따라서 꿈의 품질 역시 다른 것이다.

얕은 수면- 자아의 현실을 완전하게 방기하지 못한채 자아를 붙잡고 놓지 못한다.

깊은 수면- 자아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냥 무의식의 세계를 유영하는 것.

그렇다면 내 꿈의 기록과 시도코자하는 분석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수면의 품질을 개선시킴으로 진정한 무의식이 시사하는 현실과 맛닥뜨리지 아니하고서는.


비디오 '홀란드 오퍼스'

리차드 드레이퓨스 주연.

진정한 선생님에 관한 주제.

여늬 이런 종류의 영화보다는 감동이 덜하다.

몇가지 교사상의 에피소드로서 종장의 대형행사로 감동을 만들어내기에는 다소 작위적이다.


18070  1996. 7. 29 (월)


중부지방에서는 집중호우가 쏟아져 수십명의 사망자와 수천명의 이재민을 내고,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아트란타에서는 폭탄 테러가 발생 하였고, 100M경주에서는 세계 신기록이 수립되고, 날씨는 오늘도 역시 찔 것이다.


18071  1996. 7. 30 (화)


사무실을 벗어난 공간은 그대로 절절 끓는 공간이다.

매년 읊조리는 말.

계절의 오르가즘.

그리고 매년 꿈꾸는 그림.

녹음 우거진, 매미소리, 툇마루와 초라하지만 깨끗한 장판방, 툇무 하나,

그리고 평화, 몇권의 책, 知的느낌 가득한 한가한 일락....

떠남.

훌훌 벗어던지고 그 한가한 평화를 찾아서 떠나지 못할 뚜렷한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러하지 못함은 무언가에 코가 꿰어 스스로 자포하는 내 비겁함과 안일함 탓이요, 나가 설치고 호기심을 발산할줄 모르는 내 게으른 성격 탓이요, 동기가 부여되지 못하는 내가 가진 관계들 탓이다.


이동 도서관, 조영래 '전태일 평전' 송기원 '인도로 간 예수' 빌리다.

모두 예전에 내 귓가에 전설로 스처갔던 영웅의 이름들이다.

조영래, 전태일, 송기원....


18072  1996. 7. 31 (수)


여름휴가의 전날, 5일 동안의 현장 휴면기간중의 걱정.

Sh씨는 무슨 충신 열사 폼을 잡고서 모든 기우는 독차지하려 한다.


송기원 '인도로 간 예수'

그러한가.

결국 철들어 돌아가는 곳은 한결같이 그곳, 인도로 상징되는 내면의 세계인가.

내부로 내부로 자신을 침잠시켜 이윽고 객관화된 자신을 바라보는 경지.

80년대 이데올로기의 투사가 이제 나만큼 나이 먹어, 돌아가 성숙한 글쓰기의 영역은 필연적으로 거기인가.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데스페라토'

이 영화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한 퀜틴 타란티노의 영화와 같은 맥락의 영화기법.

애시당초 드라마트루기 따위는 쓸모가 없으며 영상적 서정성은 집어치우고, 즉흥적이고 풍자적이며 하나의 시퀴엔스만이 중요시되는 그런 영화인데.

나는 이런 감각이 부족하므로 다소 저질스럽고 불쾌하게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재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英이.

대학서클 'SEA SOUND' OB들과 함께 4박5일의 지리산, 소백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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