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갈매빛 그늘 -9,終-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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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갈매빛 그늘> -9,終-

2008년 9월 22일

 

무릇 목숨이란 자연의 편만한 조화로움 속에서 자연의 한부분으로서 살다 죽는 것.

그러나 인간의 죽음이야 어디 그러한가.

인간은 자연에 종속된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신을 육체로부터 쫓아낼수도 없는 자의식적 존재이다.

육체는 한시적이지만 정신은 영원을 넘나든다.

그리하여 자연의 조화로움으로부터 소외된 채, 군거적(群居的) 안온(安穩)으로부터도 소외된 채 죽어야 하는 존재가 인간으로 태어난 동물의 숙명이다.

인간은 자의식 가득한 단절된 구멍 속에서 스스로의 실존을 살다 지극히 개별적으로 죽을 뿐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자연과도 타인과도 소통할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인데 사랑없이 어찌 살 것인가. (꼬마 모모가 하밀영감에게 묻는다.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느냐고.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사랑은 모듬살이의 원시(元始), 혈거족(穴居族)에게 깃들게 되었을 것이다.

구석기인 문워처(Moon Watcher)가 암컷과 어울려 새끼들 낳아 군거를 이룬 자그마한 동굴.

아비와 어미와 새끼들의 그 二寸까지 관계의 테두리.

삶이 서로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좋은, 목숨이 편안한 관계.

 

나의 동굴.

아버지는 없었고 어머니는 고독하였다.

내 동굴은 동굴 밖 세계를 향하여 지나치게 의타적이었고, 혹은 감성적이고 즉물적이었다.

올곧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체득(體得)함에 부족하였고 살고죽는 도리(道理)를 심득(心得)함에 미흡하였을 것이다.

맘몬(mammon) 비스무리한 것이 동굴 속 우상으로 자리잡아 이기와 어리석음이 동굴 속으로 틈입하였을 것이다.

관계는 다소 천박해져 버렸을 것이다.

 

동굴에 지나치게 애착하였으므로 내게 그 트라우마의 상흔 더욱 깊게 남겨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옛 동굴 뿐이랴.

나라는 아비의 존재 있었으되 내 아이들의 동굴. 그 관계 조금도 천박하지 아니하단 말가.

모든 동굴에는 신탁이 걸려 있다.

매듭을 풀어야 이루리라, 관계의 아름다움.

 

고르디우스 매듭.

알렉산드로스는 검을 뽑는다.

단칼에 내리쳐 매듭뭉치를 절단해 버린다.

어떻게 푸느냐 방법론에만 끙끙대는 사람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다.

기발한 액션, 일도난마의 쾌쾌함.

 

아아, 소년들의 아버지는 알렉산드로스가 되어야 하건만.

작금 우리, 현실속 아버지는 도무지 알렉산드로스가 되지 못한다.

맘모니즘(mammonism)의 사제인 시대의 사람들, 시대의 아비들은 한올한올 그 매듭 푸느라 그저 끙끙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디테일에 회색빛 섞여있을지언정, 그러나 갈매빛 그늘은 조망함으로 안온하여 아름답다.

그 그늘 있음으로 하여 인간은 그나마 기쁨 한줌 품고 죽을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빛 정빈아.

2008년 9월 현재 네 할비 직계의 면모는 이러하다.

 

아버지 이동우(李東雨) 1917. 3. 23 ~ 미상

어머니 박인숙(朴仁淑) 1919. 8. 8 ~ 1998. 5. 24

 

형 이상효(李相孝) 1944. 6. 17 생

이씨집 장손으로 오랜 직장 생활후 은퇴, 어느새 진갑을 넘어섰구나.

형수 최은희(崔恩姬) 1950. 2. 20 생

서울말씨 이쁜, 나이 들어도 미인이신 권사님.

큰조카 이종언(李鐘彦) 1976. 11. 20 생

듬직한 체구, 사법시험 포기하여 아쉬운 장조카.

작은 조카 이한철(李漢哲) 1979. 1. 10 생

20대 후반인데도 발랄한 소년의 모습

 

나 이상헌(李相憲) 1947. 2. 7 생

아내 이정화(李貞和) 1946. 8. 17 생

정빈어미 이수린(李秀麟) 1974. 1. 25생, 정빈아비 임철희

아들 이승준(李承俊) 1976. 5. 25 생

 

동생 이주원(李珠援) 1948. 5. 22 생

나보다 먼저 할머니가 된 나와 연년생인 여동생, 서울 살고 있다.

매제 홍성욱(洪性旭) 1945. 7. 31 생

나보다 2년 연배인 매제, 광고회사 CEO로 이제 이마가 훤하다.

큰조카 홍희진(洪希珍) 1975. 11. 1 생, 남편 김준형.

희진이 벌써 한 딸의 어미가 되어. 아, 세월이 이와 같고나.

작은 조카 홍현기(洪玄基) 1977. 11. 30 생

방송인으로 주로 해외에서 활동중.

 

어제 산길을 걸었다.

한동안 늦더위 심하더니, 하늘 한층 높고 한결 투명하여 완연한 가을이더라.

태종대 숲길 들어서니 낙엽 우수수 떨어져, 마치 내게 “등신아, 등신아, 이 등신아”라고 말하는듯 발밑에서 부스럭거린다.

때 되어 오게 하고 때 이르러 가게 하는 섭리의 손길은 이토록 숙연한데 관계의 매듭 어이하려는가하고...

 

친구가 들려준 옛 신라의 노래(향가‘제망매가’)가 애잔하게 가슴에 스민다.

“생사의 길은

여기 있으매 두려워지고,

너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기 정빈이, 2008년 9월 6일, 呱呱之聲 터뜨린지 일년.

돌잔치를 해운대 무슨 뷔페에서 시류가 그러하듯 북적대며 그렇게 치루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운 우리아기 정빈아.

오늘 우리의 기쁨이듯 내일도 모레도 기쁨이거라.

모쪼록 기쁨의 관계 속에서 기쁨으로 살거라.

그리하여 먼 후제 네 갈매빛 그늘 속에서 기쁨으로 죽거라.

 

너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