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나의 영화 편력기’-其2-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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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편력기 -其2->

2003년 5월

 

 

중학생시절의 대부분, 형과 나는 자하문밖 부암동이라는 신흥 주택가에 방 한칸 얻어 하숙을 하며 학교에 다녔었네. 

그 무렵 나는 내성적이고 우울한 소년이었지. 

 

어느 시인이 표현한바대로 ‘나의 창밖은 언제나 짐승같은 겨울이었다’네. 

말못할 가정적인 문제와.. 이런저런 정황때문에 그 시절 소년의 창밖은 늘 쌩쌩 찬바람이 불고 있었고 가슴 속에다가는 무언가를 물어뜯는 짐승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지. 

 

당시 나를 둘러싼 환경도 그러하였거니와 감수성과잉과 자의식과잉의 성격적인 특성 또한 무시할수 없었을걸세. 

어느 때는 하루종일 입을 한번도 떼지 않는 날도 있을 정도로 언어를 잃어 버린 일종의 자폐적 증세에 빠져 있기도 하였다네. 

 

하교길- 책가방 옆구리 끼어차고 중앙청을 오른편으로 적선동 지나 효자동에 이르면 저만치 경무대(청와대)가 보이면 경복고등학교 옆의 언덕길을 터덜터덜 오르는 열서너살짜리 아이의 마음에는 무슨 사념들이 그리도 가득 차 있었길래..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기도 한 시절이었네. 

 

어쩌면 그 소년은 자신의 내면과 밖의 세계와의 조화에 절망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언어란 부질없다. 아, 세상은 나의 내면과는 너무나 다르구나. 

 

건방진 소리겠지만 훗날 나는 ‘사양’‘인간실격’등의 소설을 쓴 일본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흠뻑 빠지게 되었는데 그의 ‘인간실격’중 어린아이때를 회상하는 부분을 읽자마자 나는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였다고 느낄수가 있었네. 

아무도 다자이 오사무를 나만큼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그러나 세상은 그런 나의 내면 따위가 무슨 아랑곳이었겠는가? 

 

4.19 직후의 리버럴한 풍조 속에서도 나는 극장을 찾아 다니는 것으로 한동안 그런 리버럴을 만끽하였는데, 한참 지난 어느날 자하문 고개를 넘어서니 중앙청 부근에 삼엄하게 도열한 군인들을 보았는데 그게 바로 5.16 이었네. 

 

그 때 검은 안경 쓴 자그마한 체구의 사나이가 이후의 내 청춘을 알게 또는 모르게 요리하여 결정 지었을테지만 당시의 내게는 그깟 따위는 사고할 능력도 의식도 겨를도 있지 아니하였네. 

 

나는 그저 영화가 좋았을 뿐. 

닥치는대로 주어삼키는 잡식성.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이론이나 아스토룩의 카메라 만년필설 따위, 네오 리얼리즘이다 무슨 누벨 바그다 뉴욕파다 하는 영화이론적 넉두리는 훗날 들은 풍월이었을뿐 당시의 나는 닥치는대로 영화를 보고 그저 배경과 스토리나 영상적 풍경화나 배우들의 연기에 넋을 빼앗기는게 고작이었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임병석은 황야의 칠인이라는 영화 매니아 무리와 영화라는 것을 공유하였지만 나는 오로지 나 하나 그야말로 ‘독고’였어. 

 

나의 逃避城. 

그 성으로 숨어들면 아무도 나를 건드릴수 없고, 자의식 따위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나만의 아편굴. 

 

파고다 공원을 어슬렁거리다가 시간에 맞추어 들어서는 우미관과 평화극장과 문화극장과 세기극장- 그 컴컴한 공간에만 앉아있으면 나는 행복하였다네. 

그곳에 소년의 겨울은 존재하지 않았지. 

 

물론 단체관람의 영화도 빼놓지 않았네. 

단체관람이야말로 개봉영화를 싼 값에 접할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으니까. 

 

입장료는? 

중학생에게 무슨 돈이 넉넉하였겠는가. 

부암동에서 광화문까지의 통학 버스비, 교통비를 아껴 나는 곧잘 그 먼길을 걸어다녔다네. 

거짓말로 삥땅친 돈등. 

 

그리고 극장기도(옛날에는 덕대들이 극장의 정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을 기도라 하였지 않나?)에게 사정하여 한가한 시간 입장료의 반의 반값만 주면 들어갈수도 있었고. 

어느날은 파고다공원에서 책가방 하나를 주웠는데 그 안에 들어있었던 교과서와 참고서로 만만치 않은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였지. 

 

당시 인사동에 헌책방이 있었는데 책이야말로 즉시 현금화 할수 있는 좋은 상품이었다네. 

학생다운 정직성? 도덕성? 웃기지 말게. 

아편처럼 영화에 중독된 아이가 무슨 정직이고 도덕이고가 나설 겨를이 있었겠는가. 

 

아차, 서론이 너무 길었지? 

그러나 내가 영화에 함몰된 그 당시의 안팎 정황의 분위기를 더듬지 않고서는 당시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그 미묘한 감각을 떠올릴수 없을 것 같은 나의 기분을 이해하여 주게나. 

 

이제 영화얘기- 

 

공책을 펴보니 제일 먼저 ‘우정있는 설복’이 나오는군. 

게리 쿠퍼와 껑충 키만 크고 비쩍 마른 안소니 퍼킨스가 부자지간으로 나오는, 전쟁을 혐오하는 퀘이커교도의 이야기. 자식을 위하여 총을 드는 아버지. 내게 존재하지 않는 부정이라는 개념. 나는 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더욱 우울하였다네. 

당시에 아이들끼리는 제 아버지를 ‘우리 꼰대’라는 호칭으로 불러 소년다운 반항의 치기를 과시하였지 않나?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정다움임을 나는 간파하고 있었거든. 

내게는 그 꼰대가 없었던거야. 

 

마론 브란도가 나폴레옹으로 분하고 진 시몬즈가 그의 옛 연인으로 나온 ‘데지레’. 

앞가슴에 왼손을 지른 나폴레옹의 모습이 너무나도 근사하여 나는 한동안 교복의 단추 한개를 열고 그 사이로 왼손을 지르고 다녔던 기억.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폭풍의 언덕’세익스피어리언 로렌스 올리비에가 히스크리프, 마른 오베른이 캐서린역이었지. 

 

‘캐시! 캐시! 죽음으로라도 돌아 오라!’눈보라 속의 허공을 향하여 부르짖는 히스크리프. 

그 소리는 오래도록 환청으로 내게 남아있었네. 

 

운명적인 사랑,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 

이 영화는 진짜배기 사랑이란 모름지기 이와 같이 격렬해야하고 이와 같이 비극적이지 않아서는 안된다는 오도된 사랑관을 소년에게 심어주었을법도 하네. 

소년의 가슴은 쿵쾅거리고 뛰었지. 

 

황량한 바람부는 히스 꽃 언덕, 살벌한 눈보라 휘몰아치는 그 드라마틱한 배경 속의 사랑만이 진실일 것이라는 사상(?)이 한동안 나를 지배하였다네. 

 

후에 줄리엣 비노시가 캐시역으로 분한 영화를 보았는데 윌리엄 와일러에 비하면 밋밋한 서술적 구조여서 별 감동을 느끼지 못하였어. 

영화를 본 얼마후 구해 읽은 에밀리 브론테의 원작은 또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제임스 메이슨이 네모 함장 역을 맡은 ‘해저 이만리’. 

여자가 한사람도 나오지 않는 최초의 영화라고 하여 어디 군중씬 속에 여자가 없을까하고 눈 여겨 본 기억. 

 

엘비스 프레스리의 ‘러브미 텐더’.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중 그토록 유명짜한 대가수가 될줄은 모르고 노래도 연기도 형편없는 삼류 쯤으로 느꼈었는데 한 연예인의 탈랜트를 파악하는 수준이 고작 이 수준이었다네. 

 

르네 클레망 감독의 ‘금지된 장난’은 또 어떠한가. 

그 영화가 시사코자하는 염전사상은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심오한 것이었고 나는 그냥 기타 선율과 어우러진 소년 소녀의 그 애틋한 십자가 행각의 영상만이 너무나 애틋한 아픔으로 느껴젔었지. 

 

루이 말로 감독 잔느 모로가 출연한 ‘연인들’은 깊이있는 영상적 메시지가 있을 듯 싶기는한데 막연하기만 하였고. 

 

안성기가 꼬마로 나온 ‘십대의 반항’은 그야말로 당시 암울한 시대배경을 빼어나게 표현한 영화라는 정도. 

 

이탈리안 네오 리얼리즘의 기수라는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도둑’, 내게는 부자의 그 에피소드가 말할수 없이 슬프고 안타까웠다네. 

 

그 무렵 국산영화도 제법 흥행이 되던 시절이었지 싶네. 

 

김진규,최무룡,김승호,최은희,조미령,이빈화,김경희,도금봉,문정숙,이민,김석훈,노경희,성소민,황해,이예춘,허장강.황정순,김희갑... 

죄 흑백영화였지만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어린 소년의 눈에는 한결같이 어쩌면 그렇게 예뻤던지. 

영화속 서양 미녀보다 더 실제적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몽골리안의 미인들. 

 

아, 영화는 누구나 아름답게 만드는 요술 거울인 모양일세. 

언젠가 노경희의 촬영현장에서 실물을 보았는데 영화에서 보다 너무나 못생겨 실망하였던 기억이 나네. 

 

그리고 ‘선화공주’인가 하는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름은 잊었네) 때문에 밤에 잠을 못이루었던 적이 있었네. 

그 때 처음으로 몽정이라는걸 경험하였지 아마. 

 

조긍하 감독의‘철조망’거제포로 수용소, 그 황량한 배경 속에서도 나는 김혜정의 육감적인 모습에 넋을 놓았었고.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