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나의 영화 편력기’-其3-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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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편력기-其3->

2003년 5월

 

 

그시절의 극장을 떠올리노라니 우미관인가 세기극장에서는 웃돈을 조금 주고 좌석옆에 레시버를 끼우면 외짝 레시버로 자막 읽어주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이 생각나네. 

문맹자를 위한 기특한 서비스일법도 하지만 혹 자막 읽기 귀찮은 사람들을 노린 장사술이라면 웃기는 발상이기도 하겠지. 

 

또 입체영화라는걸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거야. 

셀로판 색종이를 붙인 안경을 끼고 영화를 보면 인디언이 던지는 창이 곧장 화면을 튀어나와 내게로 날아온다는 식의, 그러나 요란한 선전만큼 대단치 못한 효과에 속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나 모르겠네. 

 

그때 본 영화중 ‘길’을 어찌 빼놓을수 있겠는가. 

페데리코 펠리니라는 천재가 만든 흑백영화. 

안소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 잠파노와 젤소미나.. 

‘길’을 떠올리면 ‘아 젤소미나 애달프고나..’하는 가사를 번안한 주제가가 들리는 듯 하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페데리코 펠리니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를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으이. 

어릿광대가 젤소미나에게 들려주는 대사중 일절. 

 

“잠파노 그 놈은 마음을 말할수 없으니까 짖는거야.. 불쌍한 놈이지” 

마음을 말할수 없으니까 짖는다.. 얼마나 근사한 표현인가? 

사노라니 내가 얼마나 짖고 사는지를 이 영화를 떠올릴때마다 생각한다네. 

 

라스트 신- 

“외톨이야.. 내겐 아무도 없어!” 

캄캄한 해변에 쓰러져 몸부림치는 고독하고 덩치 큰 사나이는 그제야 짖지 않고 말을 하고 있었던 걸까. 

 

게리쿠퍼의 지성적인 연기와 버트 랭커스터의 야성적 연기가 대결을 벌인 ‘베라크루스’ 

 

7인의 신부’에서는 뮤지컬이라는 걸 처음 보았고 그 다이나믹한 춤과 노래에 흠뻑 빠졌었네. 

그 후로 뮤지컬이라면 결코 빼 놓지 않았지.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 

헨리 폰다가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 빅터 맞추어가 술꾼 의사 닥 할리데이.. 

세익스피어의 대사를 읊조리는 타락한 의사 닥, 무표정한 정의의 어프 보안관. 

 

같은 와이어트 어프가 나오는 ‘오케이 목장의 결투’도 생각나네. 

버트 랭커스터와 커크 더그러스가 어프와 닥. 

마지막 오케이 목장에서의 집단 결투 신이 압권이었지. 

커크 더글라스가 트럼프를 늘어놓고 좌르륵 뒤집는 재주를 나는 이 영화에서 배우게 되어 꽤 숙달하였었네. 

얼마 전 비디오로 와이어트 어프가 나오는 영화 두편을 보았는데,어프 역을 캐빈 코스트너와 커트 러셀이 맡았더군. 

그런데 참 건조한 보안관들이이야. 하드 보일드의 주인공마냥. 

아무래도 우리 나이쯤 되면 낭만과 서정이 깃든 로맨틱한 와이어트 어프에서 제격의 서부영화 폼을 느낄수 있는 모양일세. 

아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황야의 무법자’등장으로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사조의 서부영화 등장 이후에 서부 영화에서도 로맨틱한 요소가 많이 사라진 듯 하이. 

 

아, 일일이 열거하여 쓰기가 번거롭네. 

대충 제목과 배우등을 나열할테니 자네도 기억을 반추하여 더듬어 보게나. 

 

외국영화- 

‘타임 머쉰’H.G 웰즈 원작의 영화/ ‘풍운아’엘비스 프레슬 리가 나왔는지 기억이 아리송/ ‘칼타고’/ ‘카치아’/ ‘우주인’/ ‘태양의 자손’/ ‘아라비안 나이트’/ ‘리차드 3세’/ ‘애수의 이별’/ ‘복수의 결투’/ ‘심야의 별장’/ ‘코만체로’/ ‘바파로대대’/‘FBI' 제임스 스츄어드가 G맨으로 나왔지 (G맨이란 FBI요원) / ’폭력대 폭력‘쳅 찬드라 출연 / ’해적왕 털보‘/ ’전쟁이여 영원히‘제프리 헌터가 나온 휴머니즘이 눈물겹던 전쟁영화 / ’프랑다스의 개‘소년배우 데빗 랏드는 아마 아란 랏드의 아들이라고 / ’쓰라린 승리‘허수아비에 훈장을 달아주는 쿨트 율겐스 / ’사십인의 여도적‘/ ’원산만의 서브마린‘윌리암 홀덴이 나온 한국동란이 배경 / ’사랑아 무엇이 아까우리‘/ ’연애전선‘/ ’내일이면 늦으리‘...... 

 

국산 영화로는. 

‘처녀별’/ ‘오인의 해병’/ ‘별’/ ‘일지매’/ ‘이별의 부산정거장’/ ‘상록수’심훈 원작의 채영신역 최은희 / ‘임꺽정’신영균이 꺽정이 / ‘바보온달과 평강공주’김지미가 평강공주 / ‘원술랑’최무룡 / ‘인생 갑을병’/ ‘장희빈’/ ‘어부들’김승호특유의 서민 연기 / ‘불효자’김진규 / ‘일편단심’/ ‘당쟁비화’/ ‘인간만세’/ ‘마이동풍’/ ‘사랑이 문을 두드릴때’/ ‘구두쇠’자식을 위한 자린고비 김승호 / ‘천하일색 양귀비’/ ‘맹진사댁 경사.오영진의 희곡 김승호, 김진규출연, 주인공 여종역은 조미령이었던지 / ’파도넘어 해당화‘/ ’두고온 산하‘/ ’촌놈 오복이‘/ ’이차돈‘/ ’성웅 이순신‘김진규가 충무공 / ’원효대사‘최무룡,김지미 이때가 둘의 스캔들 이후였던지 아리송 / ’대 장화홍련전‘엄앵란, 조미령이 나왔는데 ’대‘자가 붙은걸 보면 몇 번쯤 영화로 만들어진 듯 / ’먼동이 틀때‘이빈화 / ’두만강아 잘있거라‘김석훈, 엄앵란이 출연한 임권택 감독의 초기영화일 듯 / ’산색씨‘신영균,최은희 / ’정조‘신영균과 문정숙이 부부로 / ’부라보 청춘‘조미령,김희갑,엄앵란 / ’검은 꽃잎이 질때‘김지미 이때부터 박노식의 액션은 볼만 하였지 / ’암행어사 박문수‘김진규,김지미 / ’벼락부자‘나는 구봉서를 참 좋아하였네 / ’질투‘문정숙,전계현 / ’밀양 아리랑‘김희갑,구봉서 / ’사랑의 승부‘김희갑,주선태 / ’서울로 가는길‘김진규,김지미 / ’북극성‘황해,김혜정 / ’여심‘이경희,허장강 / ’슬픔은 나에게만‘이민,조미령..... 

 

중학시절의 종장. 

이제 서울에서의 내 마지막 겨울에 대하여 얘기하려 하네. 

 

중 3 졸업 말년인 12월의 어느 날. 

형과 동생은 재학중인이라 중학교를 졸업하는 나만 우선 부산에 계신 조부모님과 어머니의 슬하로 편입되어야 할 운명이었네. 

 

서울- 태어나 유년을, 소년을 보냈던 곳. 

비감이 없을수 없었지. 

오냐.. 지금은 물러가마. 언젠가는 다시 찾아주마, 네게 복수하리라. 서울이여. 

 

그 날도 역시 친구 C와 H와 D의 세녀석은 학교에서 땡땡이를 쳤지. 

부산으로 떠나는 친구를 위한다는 과장된 우정의 몸짓. 

녀석들은 종로의 어느 빵집에서 빵을 사주고는 영화를 보기로 하였네. 

 

예전 서울사람이라면 기억할런지 모르겠네만, 그 때 명동 쪽에는 청소년 시청각회관(?)인가가 있었네. 

그곳에서만은 단속에 걸릴 걱정을 하지 않고도 영화를 볼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었을꺼야. 

물론 영화는 죄다 건전영화 일색. 

한낮에 네 녀석은 그곳에 들어갔지. 

 

빙 크로스비와 대니 케어가 출연한 일종의 뮤지컬 영화 ‘화이트 크리스마스’ 

우정과 사랑과 인정이 가득한, 음악과 춤과 낙천주의가 넘치는. 

그리고 눈과 크리스마스- 

반짝반짝이는 데코레이션.. 종소리와 웃음소리.. 情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아, 서울에서의 마지막 영화는 그냥 행복한 그런 영화였다네. 

영화를 보고나서는 네녀석 모두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멜로디를 흥얼거릴 정도는 되었고. 

 

나는 지금 그 영화 얘기를 하고자 하는게 아니네. 

극장을 나섰을때의 그 경이로움을 얘기하고 싶은 걸세. 

 

이제 막 저녁시간으로 들어설 무렵의 거리의 풍경, 시청각회관을 들어올때 까지만 하여도 잔득 찌푸렸던 하늘이었는데.. 

 

눈, 눈, 눈. 

생전에 그토록 아름다운 눈송이는 본적이 없었을 것 같네. 

바람도 한점 없는 하늘에서 탐스런 눈송이가 펑펑. 

이미 가도에는, 지붕에는, 가로수에는, 사람들의 옷깃에는 하얀 융단이, 꽃송이가, 망또가. 

아, 서울은 나를 축복하며 보내주는구나. 

 

우리는 걸었네. 

명동을 소공동을 태평로를 광화문을 효자동을. 

효자동 어름의 거리에서 친구놈들과는 이별하고..그리고 곧 나는 혼자가 되었지. 

 

홀로 자하문박 언덕길을 오르는 내 뺨에는 눈물 한줄기 흘렀다네. 

눈을 맞아 차가운 뺨에 그 눈물은 뜨거웠던가. 

눈(눈)물은 눈물이 되어 교복안의 내복으로 흘러들어갔지. 

추운게 무엔가. 

어두운 하늘로 고개를 젖히고 눈을 얼굴로 입으로 코로 들이 마셨어. 

아니, 가슴으로 영혼으로 들이 마셨지. 

 

그리고 이내 나는 노래를 불렀네. 

엉터리 가사의 발음일망정. 

나는 행복한 빙 크로스비- 

나는 빙 크로스비가 되어서 부산으로 떠나는거야. 

비감이 아니고 낙천이 되어서. 비극이 아니고 희극으로서. 

 

자, 여보게들- 

마지막 서울의 날, 영화는 소년의 비감을 원망을 증오를 잠시나마 구원하였다네. 

영화는... 

 

나는 서울에서 쫓겨 가는 것이 아니야. 

새로운 곳으로,‘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르면서 스스로 떠나는거야. 

나는야 빙 크로스비. 

낙천의, 희망의, 기쁨의, 웃음의 빙 크로스비. 

 

나는 다음날 홀로 통일호를 탔지. 

그리고 그로부터 여태까지 나는 서울 시민이었던 적이 없었다네. 

 

여보게들. 

한겨울의 황량함 속에 숨어있는 따스한 생명과 웃음... 

자네도 가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멜러디를 흥얼거려 보게. 

그런대로 세상은 살만한 곳. 

 

세상이란..사람들이란.. 참... 따뜻한것..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Just like the once I used to know, 

Where the tree tops glisten and children 

listen to hear the sleigh bells in the snow.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Where every Christmas card I write 

May your days be merry and bright 

And may all your Christmas-as be white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