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 편력기 -其4->
2003년 5월
60년대 초-
부산은 서울보다는 아연 활기를 띤 도시로 소년에게는 비추어 졌다네.
수복후 채 10년 남짓, 4.19와 5.16의 격변의 중심이었던 서울은 어딘가 우울한 에너지를 숨기고 있는 음흉한 느낌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면 부산은 항구도시다운 개방성이 일종의 쾌활한 느낌으로 다가 왔었네.
일본과 가까워 그런지 오히려 자본주의적인 속성은 서울보다 더 발달한듯 하였지.
확실한 내 기억으로, 당시 서울서는 라디오에 상업방송이라고는 없었는데 부산서는 이미 라디오에서 CM송이 예사로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흥얼거릴 정도였다네.
나는 지금도 부산의 상품인 다이아몬드맥주(?)의 CM 송을 지금도 아련히 기억하고 있네.
고등학교의 친구들 역시 서울 아이들보다 밝아 보였고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개방적이었지.
당시 한명숙의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가 유행이었는데, 부산 아이들은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 따위는 문제도 아니고 여태 들어보지도 못한 유행가들을 예사로 읊조리고 있어서 나는 얼마나 부러웠던지.
더군다나 일본 가요들도 상당히 불려지고 있어서 나를 놀라게 하였었네.
그렇다고 빙 크로스비를 부르며 부산으로 내려온 소년의 우울과 자의식은 쉽게 치유될 수는 없었겠으나 어린 놈이 별수 있었겠나...
그런 분위기는 한결 마음을 밝게 하여 주었다네.
더구나 어머니도 곁에 있었으니.
알다시피 부산은 동북남서로 길게 뻗어 있는 형국의 도시가 아닌가.
그 중심에 위치한 남포동,광복동은 단 하나의 중심가였고 번화가였어.
‘시내에 간다’고 하면 곧 그것이 남포동 광복동을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요즘에사 서면 쪽이 오히려 더 번창하여졌고, 동래쪽,해운대쪽, 서구,북구등 도시의 중심권이 너무나 다양해 졌지만.
개봉관도 거의 남포동 광복동이나 중앙동에 포진하고 있었지.
여태 그러하지만 끄 때에도 나는 영도에 살았었네.
영도의 나 살던 동네(대교동)에서 남포동 광복동은 영도다리를 슬슬 걸어서 건너도 불과 15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었어.
그것은 곧 거의 모든 영화들의 섭렵을 15분 거리 내에서 해결할수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지.
당시 부산의 극장들을 한번 살펴 볼까.
개봉관들- 남포동의 부산극장, 그 옆의 제일극장, 부산극장 앞의 대영극장, 충무동 쪽에는 왕자극장이 있었고 이 일원이 지금의 피프(piff:부산국제영화제)광장..
광복동에는 70MM 상영관인 문화극장, 그 앞 동아데파트에 동아극장.
남포파출소 앞의 동명극장, 중앙동에는 외화 개봉관인 현대극장, 동광동 쪽의 국제극장.
재개봉관으로는 광복동 입구에 자유극장, 남포동입구에는 남포극장.미화당 백화점에는 미화관.
옛 시청 앞에는 재개봉관인 시민관. 지금 중부서 앞의 골목에는 중부극장이 있었고.
지금 부산역 앞에는 중앙극장, 대신동쪽으로에는 서부극장.영남극장. 범일동 쪽에는 삼성극장, 삼일극장은 지금도 있네. 서면 쪽에는 동보극장등...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나의 단골극장은 영도, 내 동네의 극장이 아닐수 없었지.
우리집 바로 이웃의 영도시네마는 정말 변소 드나들듯 드나들었던 극장이었고, 조금 떨어진 남항동쪽의 항구극장이 그 다음, 봉래동 저 위쪽의 대양극장, 영선동의 명보극장....
물론 이 극장들은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네.
대충 위치만이라도 가늠할수 없을 정도로 아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그러나 여보게들.
내가 숱하게 드나들었던 그 극장들을 내 마음 속에서만은 쫓아내지 말게나.
조조할인..동시상영..동시상영은 보통 시시한 영화와 좋은영화를 함께 상영하였었는데 나는 몇 번이나 그 좋은 영화를 보기위하여 시시한 영화를 몇시간이고 보아내는 참을성을 과시하였었지.
포스터 권..퀴퀴한 지린내..어둠 속에서 몸을 부딪쳐 오는 낯모르는 나이 많은 여자의 기억도..딱딱한 접이식 나무의자..가끔은 껌이 엉덩이에 붙어 곤혹을 치루기도..
온 동네가 들썩이던 쑈 공연을 기억하는가..짜릿하였던 밴드 플레이.. 드럼의 속사포같은 비트..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꿈틀거리며 춤추던 무희.. 조명은 붉으레해지고..그러면 여기저기서 불어재끼던 휘파람소리..아, 나는 그 무희를 잊지 못하네.. 나는 어른이 되고 있었던게지.
그때 극장에서 쑈를 하던 흥행사들은 아마 대박을 터뜨렸을거야..누구누구와 그의 캄보밴드..그리고 때로는 김진진 임춘앵의 국극공연..
그리고 영화가 있었네.
극장안 어둠 속에서 영화들이 나를 키웠다네.
나를 키웠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반듯한 것보다는 삐딱한 쪽으로.. 어브노말한 무엇.. 굳센 것보다는 말랑말랑한 무엇..이성보다는 감성의 달콤한 그 무엇..
영화는 그러한가?
아닐쎄. 아닐쎄.
교양과 도덕과 계몽의 역할.. 스탈린 시대뿐 아니라 지금도 전제주의 국가에서는 영화란 이데올로기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프로파간다의 도구 아닌가.
그러나 내게는 부질없네. 이런 따위 얘기..
모쪼록 여보게들.
다만 그 극장들을 내 추억속에설랑은 쫓아내지 말게나.
그저 아련한 그리움으로, 그 모습 그대로 남겨 두어 주게.
그리고 영도.
나의 동네. 나의 고향.
영도는 섬이라네.
그러나 섬같지 않은 섬.
영도다리가 있고, 바로 지척에 남포동이 있는.
영도다리.
국민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바로 그 다리.
한때 그 난간에는 ‘다시한번 생각하자 나의 일평생’이라는 표어가 붙어있었던 것도 기억에 떠오르는군.
그 표어를 읽고서는 바다로 투신하려는 마음들이 얼마나 삶쪽으로 돌아섰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일세.
그런데 그 때 영도는 하루에 두 번씩은 섬이 되었었다네.
영도다리가 번쩍 들려 影島라는 이름에 걸맞게 영도를 섬으로 만들었던거지.
도개교- 오래 전부터는 발기불능으로 엎드려 죽어 있지만 당시에는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은 하늘을 향하여 벌떡 곧추 섰던 다리.
다리가 들리면 전차도 차도 사람도 이편과 저편으로 두절되어 다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려야 했지.
그리고 전차-
냉냉거리며 한가하게 오가던 전차, 영도의 남항동이 종점이고 영도다리를 건너 동대신동까지, 또 다른 노선은 동래의 온천장까지.
회억컨대 아마 버스보다도 당시에는 전차가 더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이었고, 생각컨대 작금의 눈알 핑핑 돌아가는 이 스피드의 시대가 무작정 행복한걸까?
영도다리와 전차 그리고 극장들-
그러한 서울보다 좁은 바운더리 안에 더욱 쉽게 접근할수 있었던 극장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찌 나의 영화 편력은 물을 만난 물고기가 되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자, 다시 영화 얘길세.
제목과 감독 또는 주연과 짤막한 영화의 印象.
그렇게 늘어 놓겠네.
*물망초* 땅달막한 이태리의 테너가 부르는 나를 잊지말아요.. 어린이.. 새엄마..지중해의 밝은 태양..
*현해탄은 알고있다* 한운사원작, 김운하.. 일제의 군대..왕따..원작이 좋았고 김운하의 고독한 듯 메마른 연기가 인상적...
*연산군* 신상옥 감독, 신영균의 연산군의 광기어린 연기가 일품...아마 연산군이라는 캐릭터는 프로이트학파의 오소독스한 재료일것...
*폭군연산* 신상옥감독,.. 연산군의 속편...신영균과 전옥의 불꽃 튀기는 연기 대결,,
*용서받지 못할자* 버트 랭커스터, 오드리 헵번... 인디언 혼혈여인..숯을 찍어 이마에 긋는 오드리 헵번의 분연한 연기..
'육체는 슬프다* 김석훈, 김혜정.. 여성의 육체라는 것은 슬픈 걸까..남자의 육체는 슬프지 않은데..당시 패미니즘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음..
*영광에의 탈출* 버트 랭카스터, 버지니아 메이요.. 엑소더스 전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건국 드라마..
*전송가* 록 허드슨...한국동란... 전쟁고아들..미군 장교 록 허드슨은 휴머니스트..
*밤과 낮 사이* 다크 보가드, 에바 가드너...전쟁..고문..배신..
*하이눈* 프레드 진네만 감독, 게리 쿠퍼. 그레이스 케리.. 시간의 흐름이 영화의 상영시간과 딱 맞춘 기발한 아이디어.. 결혼식날..찾아온 악당들.. 남자..책임감..명예..고독한 결투.. 어여쁜 신부 그레이스 케리..주제가 두낫포세이크미오마이달링이 울리고..
*그랜드 캐년의 대결*
*서울의 지붕밑* 김승호의 서민 연기는 타의 추종불허
*비밀첩보기관* 리처드 위드마크
*견습부부* 이수련, 조미령
*아카시아 꽃잎 필때* 신영균, 김혜정
*폭풍의 언덕* 최무룡, 김지미..에밀리 브론테 원작의 국산품..최무룡 김지미 커플은 당시 센세이셔널한 스캔들..인기는 더 올라가고..
*기사 프라카스* 잔 마레..검술..유럽의 팬싱은 발레를 닮았지..
*만리장성* 김승호, 신영균, 김진규. ..당시의 블록 버스터...명절용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 김승호, 엄앵란, 황해.. 한국고전영화의 리메이크.
*다이알 112를 돌려라* 박노식, 최무룡, 문정숙.. 상당히 잘 만든 국산 스릴 액션.
*피리불던 모녀고개* 이민자, 엄앵란.. 극장안 아줌마들의 흐느끼는 소리.
*흑두건* 김진규, 신영균..사극 액션.
*신입사원 미스터 리* 신영균, 엄앵란.. 우직하고 남자다운 신입사원에 반하지 않을 여직원 누구?
*대심청전* 도금봉, 허장강.. 도금봉의 심청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던 기억.
*와룡선생 상경기* 김희갑, 허장강.. 김희갑은 코메디 배우에서 본격적인 연기파 배우로..
*그늘과 양지* 스잔 헤이워드, 존 카빈..늙었지만 스잔 헤이워드는 기품있는 여인.
*무덥고 긴 여름밤* 폴 뉴먼.. 방화.. 사랑..여름밤.. 테네시 윌리엄스적 분위기 물씬.
*양귀비* 김지미, 이예춘.. 명절용 영화.
*블랙보드 정글* 글렌 포드, 시드니 포이티어.. 청소년은 이 영화로 반항의 미학을 배웠음직..학교라는 사회.
*벤허* 윌리엄 와일러 감독, 찰톤헤스톤, 스티븐 보이드.. 후에 생각하니 당시 그토록 인구에 회자될 만큼 그렇게 훌륭한 영화였던가하는 미심쩍은 점 없지 않았지만 내가 사이비나마 크리스찬이 되고 난후에는 다시 보아도 역시 감동..그 유명짜한 전차경기에서 몽따쥬의 놀라운 편집의 효과를 느꼈음..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김진규, 최은희.. 소월을 극화한 영화.. 낭송되는 소월의 시가 참 좋았었지.
*내일까지는 말하지 말라* 김석훈, 조미령..스릴러.
*전쟁과 노인* 최무룡, 김혜정... 창녀와 전쟁과 사랑..
*인목대비* 이민자, 조미령, 허장강
*흑사관의 공포* 망원경에서 튀어나와 눈을 찌르는 꼬챙이.. 얼음집게.. 공포
*콰이강의 다리* 위리엄 홀덴, 알렉 기네스.. 콰이 마치의 휘파람..일본 소장 사이또..자존심..군인..명예..결국 승리자는 누구일까..데이빗 린의 그 섬세한 연출..
*사랑의 동명왕* 신영균, 문정숙
*골목안 풍경* 김진규, 김승호
*상한 갈대를 꺾지 마라* 전향이, 신영균..고아소녀 전향이에의 연민..그녀는 감독 전창근의 딸..
*소로몬과 시바의 여왕* 율 부린너, 지나 로로부리지다..지나 로로부리지다의 요염한 매력..지금도 에티오피아는 소로몬의 자손이라는 전설..몹씬이 볼만..
*29세의 어머니* 최은희, 이예춘.
*보이헌트* 코니 프란시스, 잉글릿 듀린, 코니 스티븐스.. 당시 최고 인기 팝가수 코니 프란시스의 노래.. Where the boys are.. 청춘..특히 미국의 청춘은 그야말로 꿈, 꿈의 청춘..
*선풍을 일으킨 질투* 토니 커티스, 쟈넷 리, 딘 마틴.. 엠파이어 스티에트 빌딩을 잠수함으로 착각하여 벌어지는 희극영화..토니 커티스와 자넷 리는 실제로 잉꼬 부부였고..
*돈과 여성과 기관총* 지나로로 부리지다. 이태리영화.. 흑인.. 고문.. 돈 돈..
*비트 걸* 17세의 아쁘레 걸..반항하는 소녀..벗어라 벗어라.. 스트맆장면에 침을 흘렸었지..
*하늘과 땅 사이에* 김지미, 김진규, 엄앵란.
*비밀 통로를 찾아라* 신영균, 방성자,
*마음대로 사랑하고* 이상규, 최은희,
*칠공주* 엄앵란, 문정숙, 신영균,
*모성애* 전옥, 김혜정... 양모가 양자에게 눈을 이식.. 눈물의 여왕 전옥..그녀는 옛 최무룡의 장모, 강효실의 어머니였지..
*여판사* 문정숙, 김석훈.. 아내의 출세.. 남편의 의기소침.. 좌절..
*이 세상 어딘가에* 허장강, 이경희..벙어리 부부..의지..좌절..승리.
*여섯번째의 행복* 잉그릿드 버그만, 쿨트 율겐스.. 중국대륙..고아들을 이끌고 중국대륙 횡단.. 태수의 감동.. 오직 사랑으로.. 휴매니즘 가득..잉글릿드 버그만은 역시...
*공포의 8시간* 황해, 박노식.. 호텔에서의 8시간 공포..압축된 드라마..
오늘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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