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나의 영화 편력기 -其16-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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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편력기>> -其16-

2012년 3월 17일

 

 

토요일 새벽, 나의 뮤지컬을 얘기하려 하네.

내 오랜 친구 왕성규. <한때 김수용 감독의 퍼스트로 충무로 바닥 물을 먹었던 前科가 있는 친구지>

성규는 30년도 훨씬 전(前), 내 어린 두 아이를 양 팔에 하나씩 안고 찍은 사진을 여적 가지고 있었던가 보아.

얼마전 그 사진에 관하여 애상(愛想)을 담은 짧은 글을 썼더군.

거기서 성규는 ‘화양연화’를 얘기하고 ‘sunrise sunset’을 흥얼거리더라구. <내 두 아이가 꼬맹이였듯 사진 속 성규 자신도 그 때는 그리 젊었으리~>

 

화양연화(花樣年華).

뉘에게나 꽃의 절정(絶頂), 그런 시절이 있었을테지.

허지만 나는 모르겠네, 내 어디 쯤이 화양연화였는지.

정작 왕가위의 그 영화에는 화양연화가 있었던가.

장만옥과 양조위의 느리고 유약하고 섬세한 사랑 어느 지점에 그들의 화양연화는 있었을까.

골목길... 비내리는 처마밑... 국수집 옆의 계단 어디쯤... 낫킹콜이 부르는 키사스키사스키사스 노래 사이...

왕가위의 그 스크린 어디쯤에 장만옥 양조위 한쌍의 화양연화는 숨어 있었을까.

마지막 장면, 앙코르와트의 오래 된 돌무더기 속...

어쩌면 화양연화는 회억(回憶)의 화석(化石) 속에 숨어있는 몽환(夢幻)이 아니었을까.

 

둘째손녀와 출장으로 귀국한 아들놈과 할비와 할미, 며칠동안을 삼대(三代)가 좁은 집안에서 비비대었는데 그저께 아들놈 일본으로 떠나고 나니 마음 한구석 허전하여 집안이 텅 빈 듯 싶으이.

첫째놈 비니는 독감으로 입원하여 어미와 함께 병원에 있고, 지금 이 시각 둘째놈 미니는 안방 침대위 할미 옆에 새새끼처럼 붙어서 곤한 새벽잠을 자고 있지.

 

요즈음.

성규로부터 옮겨왔는지 내 입에선 ‘sunrise sunset’의 멜로디가 떠나지 않고 있네.

문득 중얼거리네.

‘sunrise sunset’,

이 노래를 부르는 떠돌이 ‘디아스포라’가 바로 나라고.

가난한 낙농업자 ‘테비에’ 영감탱이가 바로 나일세그려, 아니 우리일세그려.

 

아, 그리하여 화양연화란 그 옛날이 아닐세.

옛날을 회억(回憶)하는 애잔한 늙은 마음밭이 화양연화의 현장일세그려.

 

나와 함께 늙어가는 친구가 흥얼거리는 ‘sunrise sunset’.

함께 흥얼거리는 늙은이 하나 또한 예 있네.

꽃이었을 옛날을 그리면서 주흥(酒興) 도도한(술도 아니마셨는데) 몽환으로 흥얼거리네.

선라이즈 선셋.

세월의 무상함... 아련한 그리움과 아늑한 행복감...

으흠 거기 애긍(哀矜)함 한 줌도 배어있으려나.

애련한 센티멘탈... 스스로 유치하지 않은 늙은이의... 그런 것들...

 

Is this the little girl I carried?

Is this the little boy at play?

I don't remember growing older

When did they?

When did she get to be a beauty?

When did he get to be so tall?

Wasn't it yesterday

When they were small?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Swiftly flow the days

Seedlings turn overnight to sunflowers

Blossoming even as we gaze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Swiftly fly the years

One season following another

Laden with happiness and tears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Swiftly flow the days

 

이 아가씨가 내가 안고 다니던 바로 그 조그만 계집아이였단 말인가.

이 젊은이가 뜰에서 철없이 뛰어놀던 바로 그 장난 꾸러기였던가.

내 나이 든 줄도 의식치 못했건만 언제 저들은 이렇게 성장하여 어른들이 되었단 말인가.

그 꼬마 계집아이가, 언제 저렇게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나.

그 꼬마 녀석은 어느새 저렇게 자라 늠름한 청년이 되었단 말인가.

이 애들 어린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해가 뜨고, 해는 지고.

정말 세월은 화살같이 흘러갔누나.

어린 풀은 밤 사이에 해바라기가 되고

우리가 보는 가운데서도 피고 있네

해가 뜨고, 해는 지고.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가네

행복과 눈물을 싣고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바뀌네.

 

어저께 ‘지붕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을 P/C 모니터로 다시 감상하였네.

개봉관 재개봉관 동시상영관등 스크린을 따라 다니면서, 혹은 비디오테이프를 걸어 TV화면으로, 아마 다섯번 이상은 보았을 뮤지컬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

다시 보는 그 무지컬은 늙어 연연(軟娟)한 가슴을 다시금 촉촉하게 적셨다네.

 

1905년 러시아 유태인 마을, 우크라이나의 ‘아나테프카’

교회(시나고그)와 푸줏간과 시장과 거리... 거지... 랍비... 중매쟁이... 다섯딸을 거느린 가난한 낙농업자 테비에... 유태인에 대한 핍박... 딸들의 사랑... 결혼... 러시아 혁명... 유대 전통에 젖어있는 완고한 아버지... 그러나 딸들에게는 늘 지고마는...

 

샤갈의 그림이 떠오르는 미장센.

웅장한 합창과 파워풀한 군무, 주옥같은 뮤지컬넘버들.

지붕 위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무엇을 은유하는 것일까.

가파른 경사의 지붕은 남의 나라 빌붙어 사는 디아스포라의 불안정한 삶의 환경을 상징하는 것일터.

바이올린의 선율(‘아이작 스턴’의 연주)은 곤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어가는, 삶에 대한 의지와 낙천일걸세.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그러하듯이.

 

종장에 딸들과 헤어져 다시 유랑을 떠나는... 디아스포라의 삶.

지붕위의 바이올린도 그들을 따르네.

엔딩 크레딧 위를 흐르는 ‘sunrise sunset’의 선율.

날마다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네.

 

아, 여보게들.

우리 인생, 영원한 기쁨도 있지 아니하고 끝없는 슬픔 또한 있지 아니하네.

한살이 삶.

희노애락 더불어 세월은 흐르고 우리는 늙어간다네.

 

뮤지컬.

뮤지컬이 없었다면 나의 ‘sunrise sunset’의 나날은 사뭇 회색빛이었을거야.

젊은 날 그때, 내게 7인의 신부’거나 ‘오클라호마’이거나 ‘남태평양’이 없었다면 말일세.

한편의 뮤지컬을 감상하고 난 후 극장문을 나서면 정말로 세상은 다르게 보였지.

‘플레전트빌’이라는 영화, 흑백의 칙칙한 세상(기성꾼의 세상)에다 컬러세상을 대비시킨 영화인데 똑 그러 하였다네.

 

아, 뮤지컬은 잿빛의 내 한시절에 컬러를 입혀 주었다네.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중3 말년때 서울 명동의 시청각회관,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소년의 절망을 그토록 위무(慰撫)하였다네.

인생이란 살아 볼만한 것, 꿈결처럼 행복도 도처에 스며 있는 것.

아무리 비극적인 드라마라도 뮤지컬이 되면 이미 그것은 낙천과 긍정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라네.

뮤지컬은 인생을 낙천으로 해석하는 레토릭일세.

 

아, 느끼건대 화양연화란 몽환일세.

나의 화양연화는 뮤지컬로 내게 남아있는, 기억을 장식한 찬란한 색감(色感)일세그려.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