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2014년 10월 11일 포스팅
<아들과 연인>
-D.H 로렌스 作-
책부족 지난 달 텍스트, ‘D.H 로렌스 (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의 장편소설 '아들과 연인 (Sons And Lovers)'
한 집안의 가정사와 한 젊은이의 신변사 같은 것들이 지리할만큼 세세하게 교직되어 있는, 격렬한 갈등구조도 없고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반전도 없어 그런 면에서 좀 지루한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1913년에 발간된, D.H 로렌스가 27-8세경 집필한 그의 초기작이다.
사상과 문학성의 농익음에 있어서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하기에는 좀 미흡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피력해 보는데, 젊어서 쓴 작품인지라 아무래도 만년에 쓴 그의 걸작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비교가 되어서 그렇게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내가 읽었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그만큼 뛰어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세계명작 반열에 끼기에 모자란 작품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드라마로서는 밋밋하였더라도 문학적으로는 여타 세계명작들에 뒤지지 않는 소설이다.
주인공의 성장환경, 성격과 기질과 심리. 등장인물들의 면모.. 그에 대한 묘사는 진솔하면서도 정치(精緻)하였다.
섬세하게 묘사한 영국 노팅엄셔 지방의 자연과 마을의 풍광,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등 배경의 디테일은 매우 치밀하고 사실적이었고 소설의 플룻과 어울어져 서정적인 아름다움도 없지 않았다.
어머니 '모렐부인' 그리고 '미리엄과 크라라'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주인공 '폴'의 심리에 동화하여 감정이입하는 데에도 그다지 껄끄러움이 없었다.
내가 겪었던 연애감정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지만.
D.H 로렌스'는 1885년 영국 노팅엄셔 주의 탄광촌 이스트우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중산계급 출신의 학교 선생으로 자의식이 강한 여인이었고 아버지는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감각적인 기질의 노동자(광부)였다.
고향의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광부가족으로서의 삶은 그다지 밝은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D.H 로렌스는 유년과 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실제 작가의 모습은 소설속 주인공과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소설속 세째 아들 '폴 모렐'은 작가 자신이 그대로 투영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소설 속 '베스트우드'는 작가의 고향 '이스트우드' 에서 두음자(頭音字)만 바꾼 마을이었고, '모렐 부부'는 자신의 부모를 그대로 차용하여 옮겨다 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해설에 의하면)
그러니까 이 소설은 작가의 자기고백적 자전(自傳)이었던 것이다.
자기고백.
자신의 모든 것들을 헤집어 그것을 글로 써서 만천하에 까발린다는 것
상상컨대 그건 굉장한 용기이기도 하려니와 껍질이 벗겨지는 아픔일듯 싶다. (죽기전 나도 그러고 싶은데.. 몹시 아플까)
타자(他者)와 주위 것들에 대한 애증(愛憎)과 더불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속속들이 반추하고 헤집어, 내면에서 들끓는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견디면서 벌거벗은 자아를 세상에다 내던지고자 하는 충동은 어디에서 우러나는 것일까.
그건 극기(克己)일진대 그로써 도달하려는 그곳은 어디일까.
자아(自我)의 객관화, 세상의 바다와 용해(溶解)되어 획득코자 하는 그것은 보편성으로서 세상과의 화해일까, 자기구원(救援)을 향한 필연적인 과정일까.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하여는 그런 고비를 넘어야 하는가 보다.
'아들과 연인'
교양있고 자존심 강한 중산계급의 처녀 '거터루드'는 별로 배운것 없는 광부 '월터 모렐'의 아내가 되었다.
이 소설의 서사가 비극이라면, 비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월터 모렐'은 관능적인 인간이었고, 처녀는 총각의 핸섬한 외모와 춤솜씨 말솜씨에 반하였다.
무어라해도 남녀관계는 일단 옥시톡신이 발현되어 이루어지는 것, 섹슈얼한 도취의 감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질풍노도의 청춘인데, 오감을 짜릿하게 하는 감각적인식의 황홀함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그 앞에서는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정신 어쩌구 영혼 어쩌구하는 것들은 맥을 추지 못한다.
성(性) 페로몬이 눈꺼풀에다 맹목(盲目)의 콩깍지를 씌우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콩깍지는 언젠가 벗겨지게 마련.
지지고 볶으며 한세상, 환멸의 세월을 겪고난 연후에는 벗겨진다.
광부 마누라 '모렐부인' 역시 그러하였다.
벗겨진 콩깍지 대신에 그 자리에 다른 색감의 사랑, 연민이라는 게 씌어진다는데 모렐 부인은 그게 씌우지 않았으니 그 또한 비극이었다.
그녀의 콩깍지는 이르게 벗겨져, 결혼한 직후부터 남편에게 슬슬 실망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자기에게 떠벌였던, 집을 비롯한 경제적인 것들은 상당히 과장된 거짓이었다.
뿐인가, 갈수록 노정되는 남편짜리의 못나고 모자란 것들.
무식함과 무교양함, 단순하고 충동적인 성격. 보잘것 없는 광부의 수입, 술값으로 삥땅(푼돈 수준이지만)을 치는 남편.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즐기는 술과 놀이, 그건 모렐부인이 혐오하는, 그다지 도덕적이지 못한 생활방식이다.
남편에 대한 혐오감의 반작용.
그녀의 청교도적 도덕관과 남편에 대한 지적 우월감은 점점 강화되어 간다.
의식 속에서 점점 굳어가는 남편에 대한 경멸감, 이윽고는 남편에 대하여는 아예 포기와 체념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모렐 부인은 광부의 아내로써의 생활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씩씩하고 현명하게 빠듯하지만 알뜰하게 살림살이를 꾸려 나간다.
다른 방도도 없었거니와 그녀에게는 네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애정이 완전히 식은 후에도 아이가 자꾸 생기는 부부라는 관계의 아이러니..)
자식들은 그녀의 숨구멍이었고 보람이었다.
모렐부인의 애정은 오로지 자식들에게 투영되었는데, 그건 무망(無望)한 남편과의 사랑에 대한 보상심리였을 것이다.
아이들 역시 어머니의 쪽의 정신적이고 정서적으로 따뜻한 세계에 기울어, 칙칙하고 조야한 아버지 쪽의 세계는 경원(敬遠)하게 되고 어머니만을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아이들은 날마다 접하고 느끼는바, 어머니로부터 전이(轉移)된 아버지를 향한 경멸감은 시나브로 깊게 심어졌다.
형해화(形骸化)된 부부관계, 그에 반비례하여 어머니와 자식들의 관계는 점차 하나의 결속체로 굳어져 간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남편(아버지)은 배제되고 소외되었다.
한 집안의 가장, 남편이며 네 아이의 아버지인 '월터 모렐'
밖에서는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한량인데, 집안에서는 허깨비가 되어 버렸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한잔 술에 얼근하여 돌아온 서늘한 집, 그는 아내에게 거칠게 시비를 건다.
그러나 아내의 싸늘한 눈초리와 몇마디 조리있는 과언(寡言)은 남편의 횡설수설 다언(多言)을 일거에 압도해 버린다.
남편짜리, 아내의 코에 걸린 도도한 도덕성과 지적허영심을 속으로는 혀를 찰지언정 어찌하랴.
꼬리를 내리고 비루맞은 개처럼 2층 잠자리로 올라가 쓰러져 잘 밖에.
그는 광부라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일 속에서 보람을 느끼는 노동자인데, 아내가 지배하는 가정은 그의 세계와는 너무도 달라 늘 낯설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얼마나 소박단순한 것인가.
집안에 군림하는 가장이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한집안의 가장다운 대접을 좀 해달라는 거다.
나는 저 후줄근한 윌터가 불쌍하다.
영화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가 생각나고 남자가 가엾다는 어느 친구의 말도 떠오른다.
모렐부인의 관념 속에 자리잡은 '이상적인 애정'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건 꿈꾸어 왔지만 현실에서는 실패한 '정신적으로 고상한 남편'의 어떤 모습이었을 것이다.
큰아들 '윌리엄'이 죽자, 어머니의 사랑이 투사된 대상은 이제 둘째아들 '폴'에게 돌아갔다.
게다가 '폴'의 성정(性情)과 기질은 어머니와 닮아 있어 모자는 너무나 짝짜꿍이 맞았다.
모렐부인이 폴을 향하여 기울이는 모습은 일견 사랑하는 이성(異性)을 향한 집착처럼 보인다.
어떤 리비도의 변형된 심리가 섞여 있었을런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모정(母情)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모자간에 있어서 성적(性的)인 부분에서는 무력할수 밖에는 없다.
그러니까 그들의 애정이 미칠수 있는 부분은 서로의 영혼(지적, 정신적, 예술적)일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남편(아버지)이 속한 저급한 세계에 대한 경멸감으로 인하여 그 영혼의 결속은 더욱 굳건했을 것이다.
모자가 공유하는 그 부분은 심정적(心情的)으로 타인의 침입을 용납할수 없는 배타적인 영역이다.
공상적인 소녀 미리엄은 정신적이고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폴의 영혼을 사랑한다.
그러나 모렐 부인은 그와 같은 미리엄을 용납할수 없다.
자신의 기준으로 그녀를 재단(裁斷)하고 배척한다.
그것은 모자(母子)만의 영역에 침입한 미리엄에 대한 모렐 부인의 미움과 질투에 다름 아니다.
"폴, 난 너무 힘들어, 다른 여자는 다 돼도 미리엄은 안된다. 나는... 너도 알잖니? 폴, 내겐 한 순간도 남편이 있었던 적이 없어. 진정으로..."
'아들과 연인'이라는 소설 제목의 소이(所以), 폴은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것이다.
폴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청년이다.
책부족 송명숙님은 폴을 전형적인 '마마보이'로 파악하셨는데 나 역시 옳다고 생각한다.
그의 '내면아이'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탯줄을 끊지 못하고 어머니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독점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욕구하고 아버지를 배척하는 아들, 그건 전형적인 오이디푸스의 표상이 아닌가.
D.H 로렌스는 훗날 정신분석에 심취하였으나 '아들과 연인'을 쓸 당시에는 프로이트를 읽어 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는데, 글쎄 모종의 근친상간적 암시같은게 어느 행간에 숨어 있었던지 모르겠다.
남녀간의 애정.
정신으로만 사랑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건 뜬구름 잡는 헛소리다. (영혼결혼식이 아닌 다음에야 성불능의 사랑에도 육체는 전제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육체만의 결합 또한 사랑이 아니다, 그건 암수의 코이터스(交接)일 뿐이다.
섞인 비율은 다르더라도 영육일원(靈肉一元)이 사랑의 본질이다.
폴은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움을 갖춘 건강한 남성은 아니었다.
그의 사랑, 그것은 어머니에게로 연인에게로 무참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죽자 폴은 말할수 없이 혼돈스럽다.
여태 의식(意識)의 한 쪽 다리를 받치고 있었던 강력한 힘이 일거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신적인 미리엄과의 사랑도, 관능적인 크라라와의 사랑도 그의 의식 속에서 밸런스를 잃었다.
그는 방향을 상실하였다, 죽음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폴의 강인한 자아에 있었다.
소설의 종장에 암시되는 그것은 필경, 폴의 영혼의 구원(救援)을 암시하는 것이었을거다.
<그러나 아니다. 그는 굴복하지 않으리라.... 그는 어머니 뒤를 쫓아 암흑(죽음)으로 가는 그 방향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희미한 소음이 나는 불빛 찬란한 시내 쪽을 향하여 빨리 걸어갔다.>
생각한다.
폴이 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하고 어머니를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니, 그 전에 모렐 부인이 따뜻하였더라면.
남편 월터에게 자신을 강요하여 들이밀지 않았더라면.
생긴 그대로의 남편을 받아들이는 아내였더라면.
‘채털리 부인의 연인’처럼, 폴의 부모의 사이에 '제인부인'과 '존 토마스경'의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육(靈肉)의 결합이 있었더라면.
채부족이 읽었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다시 들여다 본다.
<그것은 내 영혼 속에 서늘한 물이 흐르듯 기분좋은 일이오. 나는 지금 우리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이 깨끗함을 사랑하오. 그것은 신선한 물이나 비 같은 것이오. 돈 주안 같은 사람은 얼마나 비참하오. 그에게는 평화로운 접촉이 없소.조그마한 불꽃이 타오를 때의 그 서늘한 휴식 동안 강가에 몸을 담그는 그런 깨끗함을 맛볼 수 없소. 우리는 진실로 이 작은 불꽃을, 그리고 그것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는 이름 모를 신을 믿고 있소.>
<아니, 나는 무엇인가를 믿지요. 나는 따뜻한 마음을 믿습니다. 특히 사랑으로 부터 생기는 따뜻한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교섭하고, 여자가 그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믿습니다. 차디찬 마음으로 교섭하는 것은 다만 죽음과 어리석은 행위밖에 낳지 못하오.>
그때.
거기에다 나는 이렇게 썼었구나.
<젊은 벗들이여.
저물기 전.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반려를 향하여.
그의 '존 토머스경'에게 헌화하고 '존 토머스경'의 위용에 감동하고 '토머스경'을 찬미하기를.
그녀의 '제인부인'의 숲을 꽃으로 장식하고 '제인부인'의 어여쁨에 경탄하고 '제인부인'을 찬미하기를.
무한한 신비로움을 간직한 양성(兩性)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 몸뚱이를 우리에게 주신 조물주께 찬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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