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詩集 ‘눈부신 전모 2’>
-전민선 作-
***동우***
2013.11.13 04:54
전민선의 시집. '눈부신 전모 2'
책이야 아니 받으며 어떠랴.
그녀가 보내준 붉어 저토록 시큰한 몇편 언어로서 족하리.
'증손녀 앞에서 한 줌 살 덜렁 내어 놓고 티 한 점 없이 말갛게 웃는 노망의 당신'을 보살피며 사는 그녀도 육순이 지척이로구나.
예순일곱짜리 내 친구 옥영재는 아흔 넘은 노모가 부르는 '어머니'소리에 그만 오열하는 시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아, 그러하다.
늙음이 바로 詩로구나.
그렇지만 나의 낫살, 詩는 詩로되 저토록 핏빛 우러나지 아니하니 시인의 종자는 따로 있는가 보다.
엿장수는 엿을 팔고 농투성이는 땅을 갈고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뱃놈은 고기를 잡고 시인은 시를 써야하지..
쓰시라, 시인이여.
세상사람 무어라해도 당신은 얼마든지 빼어난 나의 시인이다.
날더러 오래비라 했다가 멘토라 했다가 시인의 낭자한 여념(餘念)은 그것이로되.
***동우***
2013.11.15 05:49
그저께. '늙어 가는 딸년 곁에 세 살 아해처럼 누워 사시는' 그 아버님 그예 영결하셨군요.
'한 시절 튼튼한 기둥을 가진 씩씩한 사내여 지상의 아비여'라고 노래하시며 저문 발원 그리도 애닲더니.
罔極함 오죽하리오마는 인간사 生者必滅이고 會者定離임을 어쩌겠나이까.
슬픔 좀 가시면 곧 안돈하시리다.
몸도 마음도 추스려 대사 잘 치루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가신이의 명복을 빕니다.
원처에서 엎드리는 문상의 절이 송구할 따름입니다.
++++
<百 年 후>
-전민선-
어느 날의 이별아
오늘 이 순간이 바로
百 年 후 그 날이라 치자
눈부신 도처
골수까지 우러른 경외야
서둘러 작별하고 싶어진 사모
아무런 도리가 없는
글썽, 아프다는 단 한 마디
천 마디 아름다운 회유보다 강적이다
삼백예순날 단 한 날도
예삿일 아니었던 눈부신 전모여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염없이 사모한 뜨거운 죄.
<벼르신 말씀>
-전민선-
하루가 지옥이라 더는 견딜 수 없으니 어떻게 하련 노모의 말씀인지 회유인지를 가만 듣던 아우가 어머니 몰래 전화를 했다. 아버지를 데리고 나가야 당신 사신다니 어쩌우 아우 슬픈 고자질 닫히기 전 윤 마담 자태 뜬금없이 스치운다 이렇게 곤혹할 적 별이라도 스치우면 그 얼마나 좋을까마는 젊은 아버지 애첩 화상이라니
물장사로 이골난 년이라고 어머니는 거품을 무셨으나 바람난 젊은 아버지보다 더 늙어버린 딸년 생각은 너그럽다 어머니 가슴 천 불 지핀 위인이지마는 오십 년 전 동학사, 아버지 팔짱 끼고 박꽃같은 낯빛, 틀어 올린 머리 단아한 젊은 애첩은 곱다. 곱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물장사라고 왜 순정이 없었을까 또 너그러워진다
오, 눈이 어지간히 높던, 증손녀 앞에서 한 줌 살 덜렁 내어 놓고 티 한 점 없이 말갛게 웃는 노망의 당신 막내가 불려 가고 다시 딸년들 무릎을 맞대고 당신을 대체 어디로 데려다 놓누 살그머니 모색할제 아랫도리 활활 벗고 기세등등 나타나신 오우, 사랑하는 아버지 오래 벼르셨다는 말씀
"느이들과 느이 엄마가 있는 자리에서 지난날 아비가 지은 죄 백배 사죄를 구하고 근자 아픈 느이 엄마에게 오줌 마렵다고 귀찮게 한 죄 크고 너희 잘 먹이고 많이 가르치지 못한 것, 이 애비 오늘 용서를 구하니 부디 용서를 해주면 차후 이런 일로 오라가라 하는 일 없도록 할거시다"
노망의 다짐과 더러 빼어 먹은 자백을 들으며 참 시리다. 어쨌거나 육십 년 해로한 어머니 회유하기 시작했고 회유의 장면 가만 지켜보던 눈치 구단 아버지 사함을 다 받은 양 우쭐,방으로 들어가신다 그때 아버지 맨 볼기가 멀리 댈 것도 없이 네 살 증손녀 볼기랑 견준다해도 대체 누구 볼기인지 선뜻 구별 못 할 지경으로 앙증맞다.
<비누>
-전민선-
녹아나고 싶어요
서둘지 말고 부드럽게
군살부터 어루만져주세요
스칠 적 마다 풍선껌처럼 부풀어서
인색한 애간장 모처럼 녹이고 싶어요
구석구석 빠짐없이 녹여주세요
아찔한 가슴 언저리 제대로 쳐들어오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당신
점점 더 점점 더 아래
거기, 손 마주 잡고 쉴만한 물가
후끈 달아오른 제가 미끈하게 빠질 차례
제대로 녹아난 당신
달 뜨는 저녁 다시 만나기로 해요
순백의 셔츠, 후로랄 향수 뿌리고.
<그 해, 시월 초엿새>
-전민선-
봉선사 절 마당
백일홍 꽃그늘 가로질러
청정하신 서른세 번 범종 소리
달콤한 말만 골라 듣던 아둔한
귀 헹구려고 두 손 모으는데
불쑥 몸 밖으로 돋아난 달팽이관
해거름 치마폭으로
휘청, 이명이 쏟아진다
우수수 절 마당 꽃 지는 소리
피었다 지는 꽃들 소상한 내력
눈물 한 방울 대신 흘릴 수 없다
천둥과 우레
다반사 지변을
흔들리며 피어난
착한 이름 하나가
솔깃하게 어깨를 안는
극락의 저녁
세상 것 하나도 그립지 않고
배꽃 닮은 흰 웃음만 막무가내 그리운.
(봉선사-남양주 소재 사찰)
<계리 별곡>
-전민선-
-칠성리 그대-
주린 짐승 기척 조차 그리운 첩첩
재 너머 기름 차 외상으로 불러 놓고
지상의 방 한 칸 뚝딱 꾸어 바치던 이여
검정 비닐 고구마 한 봉지 말없이 쥐어 주며
따듯한 사람들 두어 차례 무릎 빌려 차린 소박한 저녁들
못난 울음 몰래 닦으며 그대 곁자리 헤프게 웃곤 했지요
꽃 같은 그대 각시 보거나 말거나 아랑곳없이
배가 불룩한 들고양이 한 마리가
인색한 아침 햇살에 탈싹 앉아 낯선 신코를 핧는다
경이로워라 산 것들
따듯하고 눈물겨운 부비부비
죄목이야 세상에 염치가 없다만
쌀섬이나 이고 지고 들어왔더라면
눈발 날릴 적마다 징징거리는 철안든 누이되어
훈장님 서가 산맥 같은 대하소설이나 빌려다 읽으며
도진 씨 젊은 내외 장작불에 구워주는 고구마도 가끔 얻어먹으며
칠성리 그대 곁에서 유순한 무지렁이나 되어 싸리꽃 같은 눈으로
앞산 뒷산 명분 없이 흘기면서 지난날 죄의 목록 날마다 잊고 늙어갔으면.
(칠성리-영양군 일월면 칠성리)
<下心 , 한 움큼>
-전민선-
수려한 옷맵시 미혹적 눈웃음
장밋빛 매니큐어 올리던 섬섬옥수
진달래 입술연지 곧추세운 걸음새
동래 시장 후덕한 아지매 실하게 퍼담던 곰삭은 젓갈
할매가 구워주던 붕장어 한 접시, 멸치 대가리조차
산중에서 왜 아니 그리울까마는 길상화 내색조차 앙큼하다
색 바랜 두렁치마
질끈 묶은 다소곳 머리채로
손을 대접하는 근간 어엿하다
물 좋은 생선 까다롭게 채던 손이
울안 밭 지천인 고사리 톡톡 꺾어
고작 한 움큼 가지런히 볕에 올린다
오호, 그녀가 쓰시는 보란 듯 하심이다
단추 구멍 하나 내자고
부산행 열차에 흔들린다는 그녀
사탕 한 알 녹이며 다녀오던 부속점
그리울 법 하건만 작정의 그 여자 내색 미동이 없다
(길상화-법명)
<죄 하나 없는 어린 기도>
-전민선-
오줌이 급하면 어린 칡 순처럼 다리를 꼬던
일곱 살 같은 네 살배기 콧등 미소 압권인 송현이
와락 안겨 다 내어 줄 듯 굴다가도
불현듯 이모를 찾는 야속한 아기천사 예준이
달개비꽃을 손에 쥐고 아침마다 꽃이 되던
영영 잊을 수 없을 효민이 남몰래 뜨거운 고백
효민이 그림자를 밟으며
가장 행복해하는 전생이 궁금한 반들한 윤비
한순간도 나무랄 데가 없어
오히려 염려스런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민채
등 붉은 지렁이를 나비처럼 잡아 올리는
독산성 독보적 여전사 반듯한 서안이
곱슬한 앞머리 간담이 녹아나던 미소
부자유친 면모를 아침마다 보이던 큰 재형
소극과 적극 다채로운 양면 생각이 깊은 키만 작은 사색의 재영이
귀여운 고집쟁이 어렴풋 볼우물 즐겨 부른 너의 애칭 아기 윤재
유순한 눈빛 낭만주의자 효균이 꽃 같은 새침으로 위장한 호락호락 예승이가
산문 들어설 때 밥풀 같은 입술 달싹여 올리는 죄 하나 없는 어린 기도는
무시로 계명을 살지 못하는 어불[語不]의 선생을 아침마다 호되게 야단치십니다.
(독산성 세마대지 사적 제140호)
<홍자빛 그대>
-전민선-
빼곡한 순정 수신한 그대
배롱나무 홍자빛 꽃이 되었다
호되게 앓은 마음자리
머뭇머뭇 첫 불 지피고
앙다문 절개 살끔 풀었다
뼈속까지 아팠던 화농
순정한 혀로 오래 핧아 주리
아흔아홉 칸
구중 주춧돌
안시륨 꽃 분 심고
첫 새벽 물을 길어 찻물 올리시라
커튼을 바꾸어 달고
옥양목 식탁보 네 귀퉁이
격자무늬 어여쁜 꽃 수를 놓으렴
문마다 통통한 주렴 알알이 드리우고
홍자빛 배롱나무 한 그루도 창가에 심고.
<눈물도 우는구나>
-전민선-
사족 거두고 바람앞에 두고 가신 묵묵한 헌정
"*슬픔을 건너 가기 -J 시인에게-"
따듯한 마음 제 것 인양 설운 겨울 겅중 건너
꽃피고 새우는 소리 그럭저럭 듣고 살았습니다
오도 갈 곳 없다니
애달파 어쩌면 좋으냐
한 칸 방 예 있으니 오소
당신, 거짓말처럼 흔쾌하실 적에요
신파를 쓰던 계집 무시로 울리고
뒤늦게 속죄하는 본디 선한 기둥서방
내 전생 혹여 당신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바퀴벌레 득실거리는
거리의 한 칸 방도 지폐 서너 장으로 어림없거늘
어쩌자고 태산같은 호객 선뜻하셨던지 묻습니다
눈물도 하염없이 울던 벌거숭이 시절
다 살아낸 것 아니지마는 눈물, 더 울지 않고
살려내신 아름다운 채무 하늘에 고자질합니다.
("슬픔을 건너 가기 -J 시인에게-" 이만섭시인 시 제목)
<詩보다 더>
-전민선-
눈물겨운 연애사를
늦은 신앙처럼 쓰고 싶었다
일생,단 한 사람
그대만 보였노라고
거룩한 실록 차마 쓰고 싶었다
詩보다
더 눈부시고
詩보다
더 더 간절하고
詩보다
더 더 더 경이로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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