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제임스 조이스]]
<애러비> <죽은 사람들>
<애러비>
-제임스 조이스 作-
***동우***
2013.03.18 05:43
애러비를 읽으면 예순 넘은 눈가에 눈물이 흐릅니다.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의 ‘애러비’
아래는 이문열의 작품해설입니다.
++++
<상처 혹은 고통으로서의 눈뜸>
삶의 어떤 국면에 관한 눈뜸은 상처의 형태로 오기도 한다. '애러비'의 서사적 원형은 사랑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주인공을 충동질하고 휘몰아가는 감정은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현실적이 되기에 주인공은 너무 어리고 그 대상은 멀다. 따라서 무슨 열병처럼 주인공을 애러비 장터(바자회)로 몰아가는 것은 결국 사랑의 감정을 지향하는 어린아이의 허영일 뿐이다.
자기가 연모하는 소녀의 성의없는 한 마디 물음에 무심코 해버린 약속을 지키기 위해 광기와도 같은 열중으로 시골 바자외에 집착하는 소년에게서 사람들은 잠시 순결하고도 애틋한 사랑을 읽는 느낌에 젖을 것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이르러서도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가망없는 허영에 너무 많을 것을 걸었다는 깨달음 뿐이다. 아무도 아는 이 없고 눈여겨 보지도 않건만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믿는 소년의 고뇌와 분노는 고통스럽지만 또한 그대로 소중한 눈뜸의 체험이 될 것이다.
덜 여물고 섬세하게 상처받기 쉬운 영혼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은 섬광 같은 각성의 기억보다 오래 남아 그 의식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애러비'를 사랑이야기로 분류하지 않고 '성장과 눈뜸'의 항목에 넣었다. 제임스 조이스는 그의 대표작 '율리시즈'를 통해 이른바 '의식의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특히 후기 그의 문학적 성취 중에는 틀림없이 우리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난해함이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가 누구보다도 단정하면서도 유려한 문장가라는 점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이 '애러비'는 '더블린 사람들'이란 장편을 구성하는 연작 단편의 하나이다.
얼핏 보아 소품같지만 영문학에서도 스타일리스트로 손꼽히는 조이스의 솜씨를 가늠하는데는 좋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
***동우***
2013.03.18 05:52
애러비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어쩌다 한두 마디 하는 것을 빼고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 본적이 없으나, 그녀의 이름은 아직도 내 온몸의 어리석은 피를 모아들이는 소환장과도 같았다. 낭만적인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장소에까지 그녀의 영상이 나를 따라다녔다.>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묘한 기도와 찬양을 되 뇌이는 순간 나의 입가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러는 가운데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때때로 나의 심장에서 무언가가 홍수처럼 흘러 넘쳐 내 가슴에 가득 고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을지 또는 그렇게 하지 못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사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도 이 혼란스러운 애모의 감정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몸은 하나의 하프와도 같았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하프 타는 손가락과도 같았다.>
소년의 저 연심(戀心)은 유치하고 욕망은 누추한 것이었던가.
그리하여 저 사랑은 쓰잘데없는 신기루였고, 화양연화의 헛된 깨달음 다음에 오는 자기분노였을까.
<그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나는 허영에 몰려 웃음거리가 된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뇌와 분노로 타오르고 있는 나의 눈도 볼 수 있었다.>
나의 그때.
고뇌 한줌, 슬픔 한줌은 있었을지라도 분노는 없었는데.
애러비를 읽으면 예순줄 늙다리는 눈물이 난다.
***eunbee***
2013.03.18 19:54
사랑의 감정이 허영일리가 있을라구요.
내게는 지금도 자주 애러비 장터로 달려가서는
'내가 왜 이곳에 왔던가'하는 잠시잠시 일어나는 허망스런 생각들은 하지만
헛된 생각이라던가 후회라던가 하는 마음은 갖게 되지 않아요.
인연을 숙명이라 생각하는 나, 인연을 좀더 아름답게 가꾸고 간직하고 추억하고 싶을 뿐이지요.
그러나 진실된 마음 앞에서만 그럴 가치가 있다는 것엔 변함이 없답니다.
거짓인줄 알면서도 애러비장터에서 서성대는 것은 그 상대 때문이 아니라(상대에 대한 연모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자기 세월에 대한 애착과 연민 연모 때문이란 생각이.. 요즘 듭니다.
그렇다해도, 세상을 살면서 그 누군가를 연모하고 그 누군가 때문에 설레고 그 누군가에 의해 눈물 짓는 서정은 매우 감미롭고 아름다운 것이라 믿어요.
촉촉한 마음, 그리울줄 아는...
그래서 연모하는 마음 때문에 가슴 적시우는 시간이 오롯이 내게 남겨지는 아름다움이란 걸 소중스럽게 여기고 소중스럽게 간직합니다.
애러비 장터에 나간 마음을 '가망없는 허영'이라 말한 이문열씨가 맘에 안들어요.ㅎㅎㅎ
반대로?( 한편) 애러비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는 동우님의 심장(눈물)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요.ㅎㅎ
연모하는 마음의 들뜸과 바램과 흔들림 때문이라면 천번도 만번도 애러비 장터로 달려가 보겠습니다.
그 연모의 마음이 온전히 내혼자만의 것일지라도....
짝사랑보다 더 순수한 사랑이 있을까요. 하핫
***동우***
2013.03.20 05:30
인연의 소중함.
은비님다운 아름다운 말씀.
사람이 일생 동안 맺을수 있는 연(緣)이 얼마나 될까.
대중적 스타나 저명인사라 하더라도.
저 단순화의 에스프리 SNS, 수만 수천의 커무니케이션...
작금세상, 넘치고 넘치는 인터넷 친교라도 그 연이 수백 수천은 아닐겝니다.
은비님의 요즘 드는 생각 멋집니다.
<거짓인줄 알면서도 애러비장터에서 서성대는 것은 그 상대 때문이 아니라(상대에 대한 연모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자기 세월에 대한 애착과 연민 연모 때문이란 생각이.. 요즘 듭니다.>
애착과 연모.
그래도 애착과 연민은 내 것이로되 연모는 저 어여쁜 여자의 것이겠지요.
나도 그리 생각한다오, 은비님.
상상만으로도 저 사랑의 감정 이입 가능할듯한 늙다리 심장, 아직 남아있으니 그나마 다행올시다그려. 핫핫
***teapot***
2013.03.20 13:37
에궁 두분 잼있게 이야기를 나누시는군요.
멋대가리 없는 저는 "파피' 구먼 했답니다.
눈물이 난다는 동우님, 짝사랑이 순수하다 하시는 은비님,
저는 짝사랑은 싫어요, 받는 사랑이 더 좋은데요
***eunbee***
2013.03.20 23:20
티팟님, 블로고스피어에서의 정은 짝사랑이라기 보다 주고 받는, 오가는 정이죠? 댓글 안쓰거나 들락거리지 않으면 잊혀져 가는....ㅎ
그리고 걱정마세요. 티팟님은 동우님께 짝사랑이 아닌 오가는 정을 나누고 있으니 받는 사랑 쪽이에요. ㅎㅎㅎ
우리의 로맨티스트 동우님은 만인의 연인이 되어도 그 진실성에서는 부족함 없을 터이니 나도 그 곁에 서 있을게요. 티팟님 옆에....ㅎㅎㅎ
***동우***
2013.03.21 06:48
티팟님은 은비님이나 나보다 연배가 낮은 분이신지라 짝사랑의 설레임을 모르시지요.
'사랑받기보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 라는 어떤 시인의 독백도 그러하거니와 나이 지긋하여야 읊조리게 되는 세리프지요. ㅎ
위에서 은비님도 말씀하신바지만 '세상을 살면서 그 누군가를 연모하고 그 누군가 때문에 설레이고 그 누군가에 의해 눈물 짓는 서정'..그 달콤함을 느끼기에 우리 티팟님은 너무 젊으세요. 핫핫핫.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
'페르미나 다자'라는 아름다운 처녀와 '로렌티노 아리자'라는 멋진 총각이 사랑을 하였더랩니다.
우여곡절의 사연 끝에 페르미나 다자는 다른 부잣집 총각 의사에게 시집가게 되지요.
하하, '어린'사랑의 미성숙함은 귀엽기는 하여도 보통 그렇게 되고는 하지요.
그렇게 둘 다 나이를 먹어 파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지요.(여든이 넘은)
아리자는 오로지 페르미나 다자를 그리면서 총각으로 늙어버렸구요. (총각으로 바람은 무척이나 피워 댔는데, 한번도 다자를 잊은 적은 없어요)
다자의 남편이 죽자 아리자는 다자에게 비로소 청혼을 한답니다.
처음에는 화를 내는 다자였지만 그 순정에 넘어가지 않을 도리 있나요?ㅎ
콜레라 창궐하였다는 핑계로 강을 오가는 유람선에 갇힌채 두 늙디늙은 연인은 사랑을 불태운답니다.
쭈굴쭈굴한 육체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행복한 섹스를 나누면서...
반백년 동안 오로지 짝사랑으로만 간직한 그 추상의 사랑...
이런 대목이 있어요.
어느 날, 아리자는 식당 거울에 비추인 다자를 보게 됩니다.
비싼 값으로 그 거울을 사다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다자를 짝사랑하지요.
잠시 거울 속에 비추어졌던 다자의 영상은 아리자의 가슴 속에 고대로 살아 있었던 것..
멋지지 않아요? 티팟님.
어느 날 마음에 비추인 어떤 이미지, 어떤 그림자를 평생동안 사랑하는 남자.
그 마음을 뉘라 뭐라 하겠어요? ㅎ
***eunbee***
2013.03.27 08:19
동우님 블방에서는 어찌나 사랑타령을 많이도 늘어놓았는지...
전화번호...
누구에게도 전번이나 이름 이야기한 적은 없거들랑요. 여자 두 분 제외하고는.
아 참 지난 겨울에 외과선생님 민욱아빠가 주소 묻는 일 있어, 그분에게도...ㅎ
동우님이 여러 책부족 님들과 전화로 주고 받는다는 것을 읽고는 '그렇구나~'했어요.
내게는 좀 어색한 일이거든요.
촌스럽죠?
웃음. 자조의 웃음, 치유의 웃음. 동우님 말씀 딱 맞습니다. 요즘 내 웃음은 그런 웃음이랍니다.
어처구니 없어서, 그리고 자신에게 부끄러워서, 웃는 웃음.
요즘의 잔잔한 슬픔은 늙어가는 내 세월과 그리고....또... 비밀! ㅎ~
작은딸이 말하지요. '엄마는 순진하잖아.' 우리 큰딸이 말하지요.'엄마는 낙천적이야.'
우리 아들이 말하지요.'엄마랑 나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맘을 알지?'
깊고 해박하고 넓고 섬세하고 예민하고 때로는 여리고 그리고 냉철한 동우님은
어리석은 블방 친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ㅎㅎㅎ
***동우***
2013.03.28 05:04
섬세하여 조신(조심이 아니라 操身)스러운 은비님의 마음밭.
은비님은 맹꽁이, 맞습니다. 하하
은비님의 블로그 대충이나마 섭렵한 사람들, 은비님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 (나의 경우 댓글과..)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은비님의 글솜씨 말솜씨 마음솜씨에 담겨있는....따뜻함, 세련됨, 발랄함, 낙천성, 긍정성, 고급스러움, 유모어...
나는 은비님의 나이를 의식할수 없다우.
'엄마는 순진하잖아.' '엄마는 낙천적이야.' '엄마랑 나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맘을 알지?‘
역시 두 따님과 아드님께서는 정확하게 어머니를 이해하는듯.
"오 랄라! 내 꿈꾸어오던 찬란한 사람들아. -랭보우-"
하하, 은비님.
나이 들면서 편하고 좋은게 뭔지 아슈?
그건 어느 정도 의식의 자유로움이 허여(許與)된다는 겁니다.
스스로에 있어서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말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생각에 있어서, 제도나 풍속을 대하여. (젊었을 때의 EDPS적 섹슈얼한 언사도 유모어로 환치되어 가볍게 나눌수 있다는.. ㅎㅎ)
거듭 강조컨대, 스스로에 대하여나 타인의 시선으로 부터.
이름도 몰라요 전화번호도 몰라.... (촌스럽죠? 하고 말씀하신)
맞아요, 촌스럽구말구요. 은비님은.
위에서 말했지요?
'콜레라시대의 사랑'에서 페르미나 다자가 비추인 거울.
그 거울은 이미 로렌티노 아리자 것인데..무슨 대수? 하하하
이제 은비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가'를 올리려 합니다.
이승에서의 인연, 애절한 사랑의 마음을 곱게 곱게 직조한 아름다운 소설.
은비님의 외동손주 은비아씨 더블린 가버려 좀 쓸쓸하시겠지만, 오늘도 좋은 날을.
<죽은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作-
***동우***
2013.08.29 05:48
제임스 조이스 (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
'더블린 사람들'의 마지막 소설인 '죽은 사람들(The Dead)'
두번에 나누어 올립니다. (단편소설치고는 좀 길기도 하려니와 이 '분위기의 소설'을 단숨에 읽어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서.)
검색하여 보니 이 소설 'The Dead'를 존 휴스턴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군요. <존 휴스턴의 마지막 연출 작품이라네요.>
어떻게 영상화하였는지, 꼭 보고 싶습니다.
잡설은 下편에서.
***동우***
2013.08.30 05:17
[사각사각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에 창가를 바라본다. 다시 눈이 내리고 있다. 은빛과 검은 빛깔의 눈송이가 가로등 불빛에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서쪽으로 길을 떠나야 할 시기가 왔다! 그래, 신문이 맞았어. 눈은 아일란드 전역에 내리고 있었다. 검은 중부평야의 모든 곳과 나무 없는 산들에 눈이 내린다. 애런 호수와 그 서쪽에 있는 검고 거친 사뇬 강물결에도 내린다. 또한 마이클 퓨리가 땅 속에 누워 있는 산, 쓸쓸한 묘지의 모든 구석에도 내린다. 꾸부러진 십자가와 비석들 위에도, 묘지 입구의 작은 대문에 달린 작은 창끝에도, 쓸쓸한 쑥덩쿨에도 수북히 쌓이리라. 온 세상에 희미하게 내리며, 그와 그레타의 종말인 것처럼, 모든 산 것과 죽은 것 위에 내려 덮는 눈소리를 들으며 그의 의식은 살며시 이지러졌다.]
[유리창을 무언가가 몇 번 가볍게 치는 소리에 그는 창문 쪽으로 돌아누웠다. 눈이 다시 오기 시작했다. 그는 졸리는 눈으로 은빛 나는 어두운 색의 눈송이가 가로등에 비스듬히 내려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에게는 서쪽으로 여행을 시작할 때가 온 것이었다. 그렇다, 신문이 옳았다. 눈은 아일랜드 전역에 내리고 있었다. 눈은 음울한 중부 평야의 구석구석에도, 나무 없는 구릉지대에도 내리고, 앨런의 늪에도 소리 없이 내리고, 더 멀리 서쪽으로 섀넌 강의 어둡고 거친 물결 위에도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또한 마이클 퓨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의 그 쓸쓸한 교회 부속묘지의 구석구석에도 내리고 있었다. 기우뚱한 십자가와 묘석 위에도, 작은 출입문 위의 뾰족한 쇠창 위에도, 그리고 앙상한 가시나무 위에도 눈은 바람에 나부끼며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그가 눈이 온 세상에 사뿐이 내려앉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에, 그리고 그들의 최후의 종말의 강림처럼 눈이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들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에 그의 영혼은 서서히 스러져갔다.]
앞의 글은 업어 와 포스팅한 텍스트 파일이고, 아래 문장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문학동네 책의 문장을 베껴 쓴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대단한 문장가, 원어(原語)로 읽어야 할 당위가 예 있구나.
'죽은 사람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허무 탐미 서정.... '설국'이 맥락없이 내게는 오버랩 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설국처럼 아늑하게 몽롱한 허무는 짙지 않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적막함 고적함의 서정 또한 참으로 아름답다.
산 것과 죽은 것 위를 내려 덮는 눈처럼...
[아, 내 머리에 비가 내리고
살은 이슬에 젖었는데
내 사랑 싸늘히 누워 있네]
‘아그림의 처녀’ (아일랜드의 유명한 민요랍니다.)
죽은 이는 그레타의 마음 속에서 부활하였고, 가브리엘의 욕정과 속물성의 자기혐오...
그런 것들과 더불어 반드시 죽는 것.
삶에는 언제나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삶을 간직한채 우리는 죽는다.
책 뒷장의 해설을 보니 제임스 조이스는 등장인물의 이름에,대사 곳곳에 죽음이라는 상징을 숨겨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파티, 음악가 노자매, 조카들, 주정뱅이 맘마보이, 성악가, 마차, 동상, IRA 지지와 친영주의...
대화의 곳곳에서 실감되는 더블린의 액추어리티가 있다.
우리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참으로 너그럽게, 사각사각 내리는 눈소리처럼 참으로 고요하게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가브리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그는 어떤 여자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가져본 일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 느낌이 사랑이란 걸 알았다. 눈물이 더욱 글썽여지고 어두컴컴한 방에 비에 젖은 나무 아래 선 소년의 형상이 보이는 듯했다. 다른 형상들도 보였다. 그의 영혼은 많은 다른 죽은 사람들이 사는 그 세상에 가까이 온 느낌이다. 그들이 헤매며 명멸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으나 의식할 수는 있었다. 자신도 같이 형체 없는 회색의 세상으로 사라져가며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의 현실 세계가 허물어지고 사라져갔다.]
***마분지***
2013.09.13 03:51
안녕하세요.
영도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먼 고향이 그립기도 하고, 또 개인적인 작업의 필요도 있어서
영도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다 선생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는
청학동에 살던 고등학교 1학년때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었는데 큰 재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더블린 사람들'을 읽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죽은 사람들'에 나오는 노래
'lass of aughrim'이란 노래를
실제로 제임스 조이스가 쓰던 기타를 복구해서
연주하고 노래한 영상이 있습니다.
아일랜드 기타리스트인데요 연주도 좋고
무심한듯 부르는 노래도 좋습니다.
참 슬픈 노래인데...
https://www.youtube.com/watch?v=5AN9YRPPIWY
*
선생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솔직하게 올려주신 가족의 이야기들도 잘 읽었습니다.
실향민의 아들이라 마음 아프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도...
가끔 들르겠습니다.
***동우***
2013.09.13 06:02
영도를 고향으로 가지고 있는 분이 찾아주시다니.
진심으로 반가운 인사드립니다.
영도에 관한 자료, 개인적인 작업...
부쩍 궁금합니다만 일단 참지요.ㅎ
새롭게 읽히는 책들.
나 또한 많은 책들이 그러합니다. (마분지님과 마찬가지로 제임스 조이스 역시...)
새로운 감동과 옛 감동의 상실 (그 옛날 그토록 감동으로 읽었던 '달과 육펜스'같은 소설은 시시하였고..)
좀 있다 소개해 주신 'lass of aughrim', 찾아 듣겠습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실제로 쓰던 기타 연주의 노래라니.
마분지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자주 들러 주십시오.
***동우***
2013.09.14 06:31
'lass of aughrim'
마분지님.
너무 좋습니다.
몇번 들어도.
애잔한 슬픔이 밀려오는듯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글과 함께 들으니 더욱 가슴 먹먹합니다.
고맙습니다.
***마분지***
2013.09.17 14:38
들어보셨군요!
어릴 때 샀던 조이스의 책에
기타를 들고 있는 작가의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도 영상에 나오는 기타였던 것 같습니다.
모니터로 소설을 읽는 것은 익숙치 않지만
간간이 와서 올려주신 좋은 글들
읽어야겠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시구요...
***동우***
2013.09.18 05:08
마분지님도 넉넉한 한가위 되시기를.
영도의 앞바다 좀 그리워 하시면서. ㅎ
-독서 리뷰-
[[제임스 조이스]]
<구름 한 점> <<끔찍한 사건> <하숙집>
<구름 한 점>
-제임스 조이스 作-
***동우***
2016.06.23 04:21
제임스 조이스 (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
전에 함께 제임스 조이스를 읽으면서 은비님도 가슴 한구석 시려 하셨던.. '애러비'... '죽음' ...
문학의 효용일 것이다.
문학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생각한다.
타인을 경험하여 민주주의나 똘레랑스를 생각할수 있는 것처럼.
구름 한 점.
비용기(非勇氣), 유약한 예술성, 허영, 몽롱한 이상주의,무력감, 동경, 질시, 좌절, 분노, 열패감....
미성숙한 내면.
내 안의 꼬마 챈들러가, 기억속 내 챈들러가 불쑥불쑥 나를 들쑤신다.
때로 나는 중얼거린다.
제임스 조이스의 세리프.
“오오, 먼 땅의 아버지. 먼 땅의 名工이여. 나에게 힘을 빌려 주소서.”
***하늘의소리***
2016.06.23 11:52
오늘도 출근 도장 꾹.
***동우***
2016.06.24 04:47
daum의 징벌.
하루에 100개 이상은 포스팅할수 없다고 하는군요.
Raeding Book 복원, 조금전까지 제목만 입력하였는데 100개가 다 차버리네요.
1개는 남겨 둘걸. (숫자를 헤아려가면서 올리는게 아니니, 원)
하릴없어 오늘 R/B은 쉽니다.
***霓鄕***
2016.06.24 07:33
우리네 6,70년대에도 대처로 '성공'찾아 떠나는 친구나 이웃에게
저런 부러운 마음으로 배웅하고 부러운 마음으로 맞이했었던 것 같아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속에서는 마냥 애잔한 우울이 배어나옵니다.
애러비도 그러했고, 구름 한 점도 그러하네요. 이 소설 읽으면서
서너달 전 여행길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브루클린>의 더블린 사람들도 떠올려 봅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우울한 도시를 떠나 온, 브루클린의 아일랜드 사람들.
8년전에 떠난 친구를 바라보는 꼬마 챈들러, 바라고 꿈꾸는 것과 처한 현실의
간극에 자리잡은 열패감, 찌그러들기만 하는 자신의 꿈들. 용기없는 백일몽 환자같은 챈들러.
나는 아기를 안고 시를 읽는 저 후반부가 참으로 슬퍼요. 꼬마챈들러에게 한없는 연민을..ㅎ
그리고 이런 대목 다시 읽게 되네요.
[그는 이따금씩 지겨운 글쓰기를 멈추고 몸을 돌려 사무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늦가을 저녁 노을빛이 잔디밭과 보도를 뒤덮고 있었다. 그 노을빛은 온화한 황금 먼지의 소나기를 단정치 못한 간호원들과 벤치에서 졸고 있는 쇠약한 노인들에게 퍼부었다. 그 노을빛은 모든 움직이는 모습 위에, 소리를 지르며 자갈 보도를 따라 뛰는 어린애들 위에, 그리고 정원을 통과하는 모든 사람들 위에 반짝였다.
그는 그 광경을 쳐다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인생을 생각할 때면 늘 그러하듯) 그는 슬퍼졌다. 잔잔한 우울이 그를 사로잡았다. 운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란 얼마나 소용없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운명이란 누대에 걸쳐 그에게 남겨진 지혜의 짐인 것을.
그는 집 선반 위에 쌓인 시집들이 생각났다. 그는 그 책들을 총각 시절에 샀고, 저녁 무렵 종종 현관 마루 옆에 붙은 작은 방에 앉아 있으면 책 선반에서 한 권을 꺼내 아내에게 뭔가 좀 읽어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했었다. 하지만 매번 수줍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책들은 언제나 선반 위에 그대로 있었다. 이따금씩 그는 시구절을 혼자 풀이해 읊었고, 그러면서 마음을 달랬다.]
***┗동우***
2016.06.25 04:28
학력도 환경도 자신보다 그리 잘 날 것 없는 옛친구의 출세.
꼬마 챈들러의 저 미묘한 감정.
으흠, 예향님.
적실한 표현입니다.
애잔한 우울...
애러비를 읽고서도 그러하였듯.
그리고 내 인간성 어떤 모습을 보는듯한 낯익은 부끄러움 같은 것 또한..
Over the rainbow-
무지개 저편의 고향, 뉘실까? 예향님은.
자주 들러 좋은 말씀 남겨주시기를.
고맙습니다, 예향님.
***송현***
2016.06.24 15:04
젊은 시절 한때 종로서점 동화서점이 종로통에 있었지요~
친구들 만나는 약속 장소, 하릴없이 이런저런 시집 산것들이 저희집 거실 이구석 저구석 빛바래있습니다.
집정리하며 바릴까 들추어 보다 시 한줄에 몇시간 커피로 허비하고 결국 못버리고 ,,,,
보잘것 없는 낡은 것들의 연민.... 챈들러가 내속에도 ..... 우중충한 책장이 머 재산이라고 ㅠㅠ
***┗동우***
2016.06.25 04:34
송현님.
종로서점과 함께 나는 종로도서관이 기억납니다.
학교(중동중학) 마치면 친구들과 슬슬 걸어다녔던 곳들이지요.
책 사는건 언감생심, 종로도서관에서 소설책이나 빌려보다가 돈 있으면 빵집이나 드나들던.. ㅎ
빛바랜 시집들.
그래도 그것들은 송현님 예술적 감성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들일겝니다.
<끔찍한 사건>
-제임스 조이스 作-
***동우***
2013.08.28 05:11
'끔찍한 사건'은 ‘어제 댓글에서 말한바와 같이’ '제임스 조이스'의 '더불린 사람들' <유년기,청년기,장년기,대중생활,종장의 5부분으로 나뉜> 속 15편의 소설들 중 한 편입니다.
유년기의 '애러비'는 前에, 어제는 청년기의 '하숙집'을 포스팅 하였는데 '끔찍한 사건'은 장년기에 속한 소설이지요. <내일 종장의 '죽은 사람들' 올리는 것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좀 길어서 2회로 나눌까 어쩔까..)>
'더블린 사람들'.
<모두 다 읽지는 않았지만>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무슨 티브이 드라마 '인간극장'을 보는듯 합니다. <'애러비'의 소년은 애틋하고 이뻤는데...>
우리에게도 낯익은 모습들의 인간군상.
그런데 저 '제임스 더피'씨에게는 상당히 아일란드적 어떤 인간형의 특색이랄까 하는게 느껴집니다. <내가 아일란드적 인간이 어떠한지 알리 없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등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아일랜드의 적 영국인이지만 이웃끼리인데 무어..)이 연상되기도 .. 일종의 자아집착의 편집광적인 기질이랄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엄격한 틀 속에 갇힌 인간성.
제 딴에는, 고상한 음악적 취향과 깊이있는 독서와 로고스적 사유를 영위하여 형이상학적 고상한 인격이라는 자아도취....
남자와 여자 사이.
그 빠알간 파토스의 열정과 그 고상한 열락의 감정을 짐짓 모른척 하고 사는.. 에잇, 쫌팽이.
저런 사내가 어디 감히 제대로 된 연애를 하겠어요?
하하, 남은 여생 실컷 외로우라지요.
문득 나 자신을 가만 들여다 봅니다.
허이구, 내게도 있네요. 저 자아집착의 아성...ㅎ
***eunbee***
2013.08.28 09:01
어제는 전에 올려주신 '애러비'를 다시 읽었고, '하숙집'도 재밌게 읽었어요.
'끔찍한 사건'은 또 무슨 이야기일까요. 이건 저녁에 읽어야겠어요. 서울나들이가 예약되어있걸랑요.^*^
동우님, 더위가 한풀 꺾였다는데, 댁에서 바라다 보이는 해원의 표정들은 어떠한지요.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기온이 오른다네요. 늘 건강하세요. 동우님.
***eunbee***
2013.08.28 09:08
그런데 있잖아요, 동우님. 저 프로필 창에 걸어둔 오늘의 사진을 보니
마치 그 의상이 구급용밧줄을 몸에 감고 기타 퉁기는 것 같아서 웃고 가요.ㅋㅋㅋ
저 사람 구름위에서 뛰어내리려나 봐요. 연주끝나면.ㅎㅎㅎㅎㅎ
***동우***
2013.08.29 06:02
서울 나들이...
엊그제 은비님 그토록 사랑하는 파리에서 돌아오셔서 어떤 색감의 '파리의 우울' 모드 없지 않으실터인데.
분당의 은비님 외연의 삶은 역시 빛이 납니다.
우리집 창으로 내려다 보이는 해원은 여적 여름이랍니다.
가을 빛깔은 아직 깃들지 않았어요.
대문 창의 그림.
타마라 드 렘피카의 그림입니다.
폴란드 출신의 자유분방한 여류화가인데 양성애자에다 화려한 남성편력, 이혼을 밥먹듯 하였던 팜므 파탈..
내게는 렘피카는 멕시코의 '프리다 갈로'와는 완전 대비되는 색감입니다.
갈로와 같은 성적 처연함은 뵈지 않고, 화려 개방 당당함 쾌락 자본 부유 풍요... ㅎ
은비님도 역시 그림 속 의상에서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으셨군요.
아르 테코라고 하나요? 장식적인 색조와 터치의 강렬함...
며칠간 렘피카의 그림들 걸겠습니다. <어느 분으로 부터 방대한 그림 파일 받은 것 있거든요.>
대문에는 썸네일의 손톱만한 화폭이지만, 마우스 오른 버튼 클릭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여 확대하여 보면 해상도 그런대로 괜찮답니다.
함께 감상을..
<하숙집>
-제임스 조이스 作-
***동우***
2013.08.27 04:51
예전에 나는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율리시즈'를 완독한 적이 있는지, 그 내용 지금 머릿속 거의 남아있지 않는다. <어떤 장에서는 구둣점 하나 없이 몇페이지나 이어가던 끔찍함이 떠오를 뿐이니 제대로 읽기는 커녕일 것이다.>
하루의 일상중 어떤 사람의 마음 속 떠오르는 느닷없는 생각들을 맥락도 시제(時制)도 없이 뇌까리는 내용.
순전히 지적 허영으루다 화르륵 화르륵 책장 넘기면서 눈에 들어오는 글자들 망막에만 넣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
'율리시즈', 이 소설이 술술 이해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노릇아닐까.
더구나 '더블린'이라는 도시와 그곳 사는 사람들의 일상모습이라던가 습관 생각같은 걸 한줌 알지 못하는 독자로서는. <그런데 책부족 함께 읽었던 윌리엄 포크너 (미시시피 배경의 소설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는 서사와 캐릭터에서 어떤 존재론적 상징성이 만져졌고 어느만큼 일관된 재미를 느낄수 있었다.>
'하숙집'은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 3부작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와 더불어)중 하나인 '더블린 사람들' 중 한편.
이 소설은 율리시즈와는 달리 자연주의 소설의 재미가 있구나.
결혼에 실패한 어머니의, 철없는 딸과 아들, 처녀를 건드린 남자의 갈등..
세상살이는 어디나 보편 편만한 색감이로구나.
인생살이의 속살.
상황과 인물의 성격과 심리, 치밀한 묘사로 똑 우리네 이야기로 읽힌다.
도오런 씨와 폴리 양, 저 한쌍은 결국 결혼으로 꼴인할 모냥인데.
자, 누가 승자일까? ㅎ
다음은 '제임스 조이스'가 구상한, 열다섯편의 소설로 구성된 '더블린 사람들'의 골격구조. <인터넷에서 주어온 것>
++++
1. 유년기-〈자매들〉<뜻밖의 만남〉<애러비〉
2. 청년기-〈이블린〉〈경주가 끝난 뒤〉〈두 건달들〉〈하숙집〉
3. 장년기-〈작은 구름〉〈짝패들〉〈진흙〉〈참혹한 사건〉
4. 대중생활-〈위원실의 담쟁이의 날〉〈어머니〉〈은총〉
5. 종장-〈죽은 사람들〉
그가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그리고 대중 생활로 구분하여 더블린을 다루겠다고 한 것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 표현되는 전형적인 더블린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고, 또한 그 안에 살고 있는 자신까지를 포함한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블린이란 의인화된 도시를 일컫는 것이고 또한 지리적인 특정지역을 넘어서는 개념이라고 하겠다.
++++
'애러비'는 전에 포스팅한 바 있는데 참으로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소년의 섬세하기 그지없는 내면... 일독을 권합니다.
다른 작품들, 텍스트 파일 업어올수 있으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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