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톨스토이 <이반일리이치.., 크로이체르.., 우화몇편> (1,4,3,3,1)

카지모도 2019. 11.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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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톨스토이 -

 

***동우***  

2015.04.27 04:37

 

'톨스토이' (Leo Tolstoy, 1828~1910)는 정말 위대한 작가입니다.

 

얼마나 깊은 사유와 많은 관찰과 상상력의 임상(臨床)을 거쳤기에죽음에 대한 그의 문학이 보여주는 통찰은 이토록 여실할까요.

죽음학의 권위자라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 박사보다 반세기나 앞서.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이 발표됐을 때 러시아와 유럽 문단의 반응은 엄청났다고 합니다.

모파상은 "나의 작품 1백편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 작품을 보고서 알았다"고 했다네요.

 

죽음.

상징과 은유와 추상과 피상으로 얼버무려 삶으로부터 멀찌거니 소외시켜 버렸다가맞닥뜨리면 허둥지둥 맞게되는 리얼리즘의 극점.

이반 일리이치의 주검을 둘러 싼 가족과 친지들작금의 우리들 모습입니다.

입으로는 '메멘토 모리'를 뇌이면서도.

 

차츰 지껄이기로하고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4번으로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뒤이어 육체와 죽음에 대한 사유 그윽한 우리 작가 '김훈' '화장'을 올리겠습니다.        

 

***동우***  

2015.04.28 04:42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그는 생활의 흥미를 모두 이 직업의 세계에서 찾았다자기의 권력의식미운 사람은 누구든지 혼내 줄 있는 가능성법정에 들어갈 때나 동료들과 만났을 때 갖추는 위엄상관이나 부하 등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특히 자신도 느끼고 있는 사무 관리상의 수완 등 이것들은 언제나 그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지은 공 는 사적당히 목에 힘을 주고 품위있고 권위있게.

 

<아내와의 생활이 언제나 생활의 즐거움과 품위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뿐만 아니라오히려 그런 즐거움과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그는 스스로 이런 파괴 행위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되고 진부한 결혼생활의 환멸公的인 폼을 잡고 스스로 위무하여 살아가야지 별수 있을랑가.

 

<가족들은 모두 건강했다이따금씩 이반 일리이치가 입 속에서 야릇한 냄새가 난다거나왼쪽 배가 좀 거북하다고 말하는 일이 있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산다는건 비즈니스가 아닐터인데저때까지도 이반 일리이비치는 삶의 밑바닥에는 깔려 있는 알맹이를 감득하지 못한다.

삶의 진실 속에 내포되어 있는 죽음을.

 

으흠내 삶의 모습은 죽음의 수용을 긍정하는 양상(樣相)인가.

결코 내 것은 아닌것처럼 한사코 도리질하고 있는 꼬라지는 아닐까.

 

***mayblue***  

2015.04.28 11:25

 

삶에 대해 지독히 고뇌하던 젊은 날의 어느 시절..

인생을 몰랐던 시기여서인지

이 책을 잡고 씨름했답니다.

어려서 참 비현실적이고 난해하다 여겼지요!

 

아직도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긴 힘든 현실이지만

어떻게든 수용해야 할텐데요.

 

톨스토이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글은 문장문장이 살아움직이는 느낌을 받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동우님..

동우님만의 고풍스런 서재에서 간만에 고전문학의 향기에 젖습니다..^^

 

***동우***  

2015.04.30 04:48

 

메이블루님.

 

사람들은 오히려 어렸을적이나 젊었을적에 죽음이라는걸 사유하는듯 싶습니다.

나이들면서 세상살이에 순치되어 갈수록 죽음은 삶에서 소외되는건 아닐런지요.

 

문상을 가서도 죽음을 추상으로만 면대하는듯.

주검은 깊숙히 감추어두고 영정사진으로 표상됩니다.

장례식에서조차 죽음을 느끼지 못하는...

 

톨스토이의 기독교는 굉장히 현실적이지요.

죽음을 종교적 관념 속에 가두어 놓지 않아요.

천국이라던가 부활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않고 죽음을 정면으로...

 

많은 죽음을 겪으며 관찰하였을 것이고자신의 상상력으로 임상하였을 것이고 깊은 사유로 죽음을 생각하였을 겁니다.

 

이 소설호스피스는 필독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mayblue***  

2015.04.30 09:59

 

동우님 전 우울하거나 아플 때마다

죽음을 생각한 적은 많지만

유독 심약한 편이라 장례식을 못 갑니다.

 

멘탈이 튼튼하지 못해 사건사고 소식만 들어도

식은 땀 나도록 악몽에 시달리구요.

나이들수록 깊어져가는 현상입니다.

 

될 수 있으면 피해가고 싶은 죽음

하지만 언젠가는 엄연한 내 현실이 될텐데...

 

흐리지만 비가 그친것만으로

기분이 업되는 날입니다.

 

have a nice day~동우님^^*

 

***동우***  

2015.04.30 04:36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뭔가 새로운 것아주 두렵고 여태까지 그의 일생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중대한 사태가 그의 몸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이 사실은 오직 그 혼자만 알고 있었다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고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그들에겐 매사가 예전처럼 아무 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가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바로 주위 사람들의 그런 무관심이었다.나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단지 오늘이냐 내일이냐 또는 내주냐 하는 시간 문제일 뿐이지 않은가어쩌면 지금 당장일지도 모른다전에는 희망이 있었다지금은 어두움 뿐이다전에는 내가 여기 있었으나 이제는 저기로 가고 있는 것이다거기는 어디일까?... 내가 없어진다그러면 어떻게 될까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역시 죽는 것일까...? 아니다죽기는 싫다!... 그는 그녀가 자기 이마에 입맞추고 있는 동안 자기 영혼의 힘을 다 기울여서 그녀를 증오했다>

 

최후를 느끼는 자.

날카로운 자의식피해망상.

다른 사람들이 지닌 건강과 힘젊음은 모두 모욕감을 안겨줄 뿐입니다.

죽음과 상거(相距)한 자들은 아무도 죽음에 이르는 세계를 들여다볼수 없습니다. (장식적 삶이 화려한 부르주아들은 더욱)

그들에게 죽음은 피상이고 추상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은 허위의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가 침착하게 치료를 받기만 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의 태도였다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그런 허위를 견딜 수 없었다.. 허위허위그의 죽음의 전야에 그에게 행해지고 있는 이 허위... 그의 죽음이라는 이 엄숙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나 창문에 드리우는 커튼식탁에 오르는 연어 고기 따위 평범한 일상으로 끌어내리고 마는 것이다사람들은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이러한 허위바로 이것이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견딜 수 없이 무섭고 괴로웠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라는 무섭고 우울한 사실을 그저 우연히 생긴 불유쾌한 일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었다또는 그저 사소한예의 바르지 못한 사태 정도의 범상한 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아무도 이반 일리이치를 가엾게 생각하지 않았다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누구도 그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헐벗어 살아온 농부 게라심이 오히려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을 어루만질줄 아는군요.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지닌 건강과 힘젊음은 모두 이반 일리이치에게 모욕감을 안겨 주었다그러나 게라심의 힘과 젊음은 그를 괴롭히거나 슬프게 하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고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이치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허위였다....다만 한 사람게라심만이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진심으로 가엾게 생각했다그래서 이반 일리이치는 게라심과 단 둘이 있는 것이 좋았다...게라심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고 말아요무엇 때문에 제 몸을 아끼겠습니까?">

 

점점 쇠약해져가는 몸뚱이무서운 고독무력감고립감두려움....사람들의 잔혹함신의 잔혹함...

이반 일리이치는 (죽음이 내포되지 않았던자신의 삶의 내용을 돌이켜 본니다그리고 흐느껴 웁니다.

 

<만약 나의 생활이그 동안 내가 의식적으로 꾸려온 나의 생활이 전부 틀린 것이었다면 어찌 될 것인가이런 생각은 전에는 꿈에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그의 생활이 전부 틀린 것이었다면어쩌면 그것이 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사회의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옳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자신도 가끔 그것에 저항해보고 싶었던 그 깊이 숨겨졌던 마음의 흐름들머리 속에 떠오를 때마다 그가 일부러 물리쳐 버렸던 그 아주 작은깊이 숨겨진 것들그것이야말로 진실한 것이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옳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그의 근무도그의 생활 설계도가정도사교나 업무상의 흥미도 모두 진실한 것이 아니었는지 모른다그는 이것들을 모두 변명해 보려고 했다그러나 갑자기 자신을 변명해 주는 것이 빈약하다는 것을 느꼈다그것을 변명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나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이 쓸데없는 것이고,그런 사실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는 다시 되풀이해서 자신의 전 생애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죽음의 강 아케론에 이르렀습니다.

 

<'얼마나 상쾌한 기분이냐얼마나 간단한 것이냐!'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고통은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고통은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이제 그만이다아플 테면 아파 봐라거리낄 것이라곤 없다그런데... 죽음은죽음은 어디 있는 거냐?' 그는 이제 친숙해진 죽음의 공포를 찾아 보았으나 눈에 뜨이지 않았다죽음은 어디 있지죽음이란 뭐냐아무 공포도 없었다죽음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거기에 빛이 있었다. "아아이것이었구나!" 갑자기 그는 소리를 높여 말했다. "얼마나 기쁘냐!" '죽음은 마지막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제 죽음은 없는 것이다.' 그는 공기를 들여 마시려고 했으나 깊은 호흡은 중간에서 끊어지고몸을 한 번 쭉 뻗자 그대로 죽어 버렸다.>

 

이반 일리이치는 죽음을 죽어버린 것입니다.

죽음을 끝장냈습니다.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퀴블러 로스 박사'가 오랜 임상으로 관찰한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식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최초에 실존의 뿌리를 강타 당하는 커다란 충격으로 자신의 죽음을 결코 인정할수 없는 강한 부정(否定)의 단계.

다음에는 비통(悲痛)과 분노(忿怒)의 단계를 거처서타협(妥協)의 단계.

그리고 엄습하는 의기소침한 우울(憂鬱)의 과정.

마지막에 맞닥뜨리는 장엄하고 위대한 순간임종.

 

벗이여.

작금 우리 삶의 공간에 죽음이 자리하고 있습니까?

well-being. 오로지 삶에 대한 맹렬한 욕망.

철저하게 삶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공간은 아닌지요.

 

다시 뇌어 봅니다.

메멘토 모리...

 

***eunbee***  

2015.05.01 05:21

 

작은딸은 요즘 틈만나면 인터넷에서 작은 스튜디오를 찾느라 바빠요.

오늘도 한군데 가서 봤으나 별로였지요.

방금전 다시 인터넷 검색하더니

너무도 근사한 집 사진을 내게 보여주면서,

"단칸짜리 스튜디오 주루룩 올려둔 마지막에

왜 이리도 크고 좋은집을 소개한대?"라며,

탐나고 부러운 표정으로 소개된 각장의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더군요.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게 최고야.

그런집에 살아도 아파 누우면 뭔소용이야~ "했더니,

작은딸 그말받아서

"이반 일리이치 되는거지 뭐~"

ㅎㅎㅎㅎㅎ~~~

우린 옆구리 결리도록 웃었어요.

 

동우님

화안한 하루 되세요.^^

 

***eunbee***  

2015.05.04 07:24

 

P/C께서 중환이신가 봐요.

포스팅없어도 읽을것은 많지만,

기기따라 주인나으리께서도 편치않으신건 아니죠?

 

바람 드세다는 부산의 봄

이제 오월이니 좀 나아지려는지요.

 

새끈한 PC데불고 어여 오시와요.^^

 

***동우***  

2015.05.05 04:24

 

은비님.

은비 모친님께서 리딩 북 읽어주시니무척이나 기쁘면서 한켠 부끄럽고 조심스럽습니다.

은비님이야 내 밑천 모두 아시는 바이고 절친이니 그렇다지만ㅎㅎ

 

따님과 은비님 발품 파시는 파리의 스튜디오.

좋은 곳 찾아라비앙로스의 나날이셨으면.

대박 더불어.

 

드센 부산의 바람.

올해는 좀 눅은 느낌인데, 5월은 어떨런지.

 

오늘 손주녀석 둘 데리고 다니느라 나도 발품 좀 팔아야 할것 같습니다ㅎㅎㅎ

 

 

 

 

 

 

 

 -독서 리뷰-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우화 몇편>

 

 

<크로이체르 소나타>

-톨스토이 -

 

***동우***  

2013.12.18 05:57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바이올린 소나타 9 A장조(작품 47)를 듣습니다.

3개 악장으로 이루어진 바이올린 소나타이지만 협주곡적인 성격을 지닌 명곡이지요.

 

톨스토이(Tolstoi, Lev Nikolaevich. 18281910) '크로이체르 소나타'

질투로 아내를 살해한 사나이가 늘어놓는 사설.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이 음악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길래 편향된 이성관(異性觀), 결혼관섹스관을 지닌 요상한 남자의 이야기를 썼을까요.

베토벤의 이 음악은 광적이거나 어두운 음악이 결코 아닌데.

거꾸로 작곡가 '야나체크'는 톨스토이의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현악4중주'를 썼다지요.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상중하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3.12.19 05:48

 

하얗게 센 머리와 번들거리는 두 눈으로 줄담배를 피워대면서 아내를 살해한 사연을 늘어놓는 사나이.

 

[그러나 오늘날 결혼은 사기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결혼에 성교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은 채 결혼합니다.]

 

그는 남녀관계의 본질은 육체적 욕구의 충족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 봅니다.

결혼그것은 사랑의 완성이라거나 사랑의 지속을 위한 어떤 정신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가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고상하고 정신적인 면은 찾을 생각은 아니하고어디까지나 배꼽 아래 육체적 차원의 문제일 뿐이라는 그의 생각은 가정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왜 그런 고착 왜곡된 성의식을 갖게 되어 그의 결혼관이 만들어졌을까요.

그 시대 러시아의 타락한 성문화나 위선적인 성의식등을 여러모로 들려주고 있습니다만 (결혼전의 성경험도근본에 있어서는 작금 우리나라에서도 그닥 다를바 없을듯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생각중 어떤 것들은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진정한 결혼에 대한 반어적 천착을 시도한 것이겠지만톨스토이의 결혼생활도 그닥 행복한건 아니라지요. (회자되는 것처럼 그의 아내는 악처가 아니었어요)

그가 피력하는 얘기 속에는 톨스토이의 생각도 녹아있을겝니다.

남자라는 고객과 상품화된 여성.

그렇습니다.

결혼에 있어서도 그 근저에는 필경 여성의 섹슈얼적 요소가 오로지 남성이 고르는 상품적 요소로 작용하는바 적지 않습니다.

 

[선생은 우리 숙녀들이 창녀들과는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견해가 다릅니다증명해드리겠습니다인간이 인생의 목표인생에 담긴 내적 내용물이 서로 다르다면 그러한 차이점은 직접 외부에 나타나고 외양 또한 다르기 마련입니다그러나 불쌍한 천대받는 여자들과 고상한 상류사회의 요조숙녀들을 비교해보십시오옷차림모자 형태향수어깨젖가슴을 드러내는 것도 똑같고히프선을 드러내는 것도 똑같잖습니까어디 그뿐인가요보석비싸고 번쩍거리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점유흥음악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똑 같지요다른 점이 없습니다굳이 구분을 하자면 이렇습니다잠깐 데리고 놀 창녀는 보통 천대받는 여자들이고오랫동안 데리고 놀 창녀는 요조숙녀입니다.]

 

[여자는 앉아 있고남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여자를 고르는 겁니다여자는 기다리면서도 '나예요날 고르세요그 여자가 아니고 나란 말이에요날 좀 보세요내 어깨 좀 보라구요.]

 

그렇다면.

이토록 괴로워 하는 그의 영혼은 어떤 모습인지.

결혼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는 그는 단지 속박을 벗어난 자유를 열망하고 있는건지.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윤리관의 모습은 무엇에 근거하는 것인지.

'크로이체르 소나타'에 넋을 빼앗기는 그의 파토스의 정체는 무엇인지.

무엇보다 그를 몸서리치게 하는 질투라는 감정의 정체는아내의 늑골에 칼을 박은 그의 감정모체의 진실은 어떤 것인지..

 

그의 '오셀로'는 과연 어떤 색감이었겠는지함께 느껴보아요

 

"사랑이란 남자건 여자건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선호함을 뜻합니다."

기차간 노부인승객이 말하자 그는 신랄하게 묻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선호하는 겁니까한 달두 시간아니면 30분요?"

 

생각건대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의 마음밭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지속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상태의 근원에 있어서 말입니다.

 

스타를 향한 팬클럽 사람들의 사랑은 공유됩니다만진짜배기 사랑은 공유되지 않습니다.

팬클럽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지요.

사랑은 절대적 배타성이지요.

한사코 독점코자합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질투가 수반되어야지요.

 

그렇지만낫살먹으니 사랑의 다른 모습이 보이네요.

연민그것이 사랑이라는걸.

연민은 독점하려 하지 않아요

 

***동우***  

2013.12.20 05:16

 

[내가 아내를 살해한 것은 그 날이 아니에요훨씬 전입니다사람들은 지금도 자기 아내를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모든 사람들이 말입니다나도 똑같았습니다.]

 

'포즈드느이셰프'라는 사나이그의 결혼생활에는 애시당초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에게 이런 관념를 심어주었는지그에게 고착된 사고(思考)는 병적입니다.

톨스토이는 시대와 풍조와 제도와 심리에 대하여 긍정과 부정의 사유로 궁구하였을겁니다.

그가 성찰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내용도 바로 거기 있는듯 합니다.

 

생각건대현대 이 땅의 무릇 남녀관계그 결혼생활 속에도 저 비극성(悲劇性추호도 배어있지 않다고 장담할수 있겠는지요.

 

포즈드느이세프의 사설을 다시 읽어봅니다.

 

[그것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던 절벽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었습니다사랑에 빠진 것도 잠깐성욕의 충족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버렸고 우리는 서로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이 말은 상대방을 이용하여 가능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두 명의 완벽한 이기주의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우리가 다툰 것을 나는 언쟁이라고 불렀지만 그건 언쟁이 아니었습니다그것은 욕정이 중단된 결과 드러난 우리의 실제 관계였던 것입니다나는 이 차갑고 적대적인 관계가 일상적인 우리 관계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왜냐하면 이 적대적인 관계가 처음에는 곧이어 다시 정제된 욕정 즉 사랑으로 덮어졌었기 때문입니다]

 

[형이나 친구 그리고 아버지와도 싸워보았지만 내 기억에 그처럼 특이하고 독기서린 악의는 없었습니다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서로에 대한 사랑즉 욕정이 증오심을 덮었습니다그 앙심은 다른 게 아니라 동물적인 것에 억눌려 있던 인간적인 천성의 저항이었던 것입니다나는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러지요아시다시피 동물들은 자손을 만들 수 있을 때만 교접합니다그러나 추악한 만물의 영장은 마음내키는 대로 아무 때나 그 짓을 해요그걸로 부족해서 이 원숭이 같은 짓을 창조를 위한 위대한 행위니 사랑이니 하며 승화시킵니다그리고는 추하기 짝이 없는 사랑의 이름으로 망쳐놓습니다...수학에 대해 좀 많이 알고 하프를 연주할 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여자는 남자의 넋을 빼놓을 때 행복해 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여성의 중요 과제는 남자를 홀릴 줄 아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처녀 때는 신랑감을 선택하는 데 필요하고 결혼한 후에는 남편을 다스리는 데 필요하지요.]

 

[사람들은 아이들에 대해서도 벼라별 거짓말을 다하고 있죠아이들은 신의 축복이자 기쁨이라고 합니다다 거짓말입니다자식은 고역입니다그 이상그 이하도 아니에요아이의 쬐그만 손발자그만 몸뚱아리가 꼼지락거려 어머니에게 안겨주는 달콤함과 희열은 어머니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초라하기만 합니다....아이들이 자라남에 따라 아이들 자체가 더욱 자주 불화의 수단이자 대상이 되었으니까요이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은 부부 싸움의 무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서로 의견이 달라 앙심을 품는게 아니라 앙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의견이 달라지는 상황으로까지 변했습니다아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반대했는데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결혼한 지 4 년째가 되자 우리는 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견의 일치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내리게 되었습니다우리는 더 이상 상대방의 얘기를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지극히 간단한 문제들특히 아이들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각자 자기 의견을 고수했습니다... 우리는 둘이 있을 때는 언제나 침묵했습니다우리가 나누는 대화라야 기껏 이런 정도였어요. '몇 시야잠잘 시간이네뭘 먹지어디 갈까신문에 뭐라고 쓰여 있어요의사를 불러야 되겠어요마샤가 목이 아파요.' 같은 최소한의 것이었죠... 사랑과 미움은 둘 다 지극히 동물적인 감정이고 그 종착역만이 다릅니다.]

 

[모든 일은 우리 부부 사이에 내가 선생에게 말씀드린 끔찍한 구렁텅이가 존재했다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서로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되는 몸서리쳐지는 긴장바로 이것이 조그만 구실만 있어도 곧장 위기로 치닫게 하곤 했으니까요우리가 벌이는 언쟁은 마지막에는 점차 무서운 양상을 띄었고 팽팽한 동물적 열정과 번갈아들면서 섬뜩해졌습니다만일 그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이 나타났을 겁니다또 질투가 구실이 아니라면 다른 게 구실이 되었겠죠나는 나처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남편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든가 아니면 이혼을 하든가 아니면 자살을 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아내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지극히 예외적인 일입니다나만 하더라도 끝장을 내기 전에 수차에 걸쳐 자살하려고 맘먹었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독약을 먹었었으니까요.]

 

저와 같은 마음밭은 오도된 예술관을 불러일으켜베토벤의 음악까지도 오로지 혼돈된 파토스로써만 접수합니다.

음악은 정신적 고양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충동질하여 최면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아무튼 이 소나타는 나에게 끔찍한 효과를 나타냈습니다마치 새로운 감정내가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내가 이전에 살면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마치 뭔가 내 영혼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내가 깨달은 새로운 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새로운 인식은 기분좋은 것이었습니다그러자 내 자신에 대한 연민이 즉시 사라지고 이상한 감정이 생기더군요믿어지지 않겠지만 그건 희열이었습니다드디어 고통이 끝날 거라는 희열드디어 아내를 벌하고 해방될 수 있다는 희열비로소 나의 원한에 명분을 실을 수 있다는 희열이었습니다나는 나의 원한에 희열을 실었습니다짐승그것도 잔인하고 교활한 짐승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의 어브노멀(abnormal)은 정신병적 수준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내를 칼로 찌르고그를 증오하면서 아내는 숨을 거둡니다.

 

***동우***  

2013.12.20 05:24

 

나는 '포즈드느이셰프'의 감정모체를 정신병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싶네요.

 

나는 저런 불꽃같은 질투의 감정은 그의 요설스러운 변설로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느끼는바아내를 병적으로 사랑한 것이 그의 감정모체의 진실이었을겁니다.

입으로는 아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그 포박에 집착하는 이상심리는 사랑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납득되지 않아요.     

 

'이아고'의 사악한 흉계로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교살하고 자결하는 베네치아의 장군 무어인 '오델로'

두 사람의 아내 살해의 외면적 동인(動因)은 동일한 '질투'이지만 그 내면적 동인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델로는 단순한 사람이고 데스데모나를 향한 그의 사랑은 너무나 지순하였던 반면포즈드느이셰프는 복잡한 사람이고 (오델로보다는 햄릿에 가까운아내를 향한 그의 사랑은 매우 복합적 갈등구조의 현대심리학적인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에로스를 넘어선 타나토스적인 광적이고 절망적인 사랑.

 

사랑이란 본시한 이성(異性)에게서 오감에 접수되는 미세한 체취등의 감각적 인상(印象)과 생리주기(여자의 경우)등이 교합하여 만드는 옥시톡신이라는 화학물질(호르몬)의 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그렇지만 성적 오르가즘이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랑은 필경 정신이라던가 영혼의 영역으로 상승함으로 지속되는 것일겝니다.

오르가즘이 필요없는 상시적(常時的만족의 사랑..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은 [싯적(詩的)으로도 아름답지만낫살들수록 진리인듯 합니다.

가슴으로는 저리도록 납득하는데 손발이 따르지 않습니다만.

이 나이 되도록 말입니다.

 

 

<악마의 결론을 위한 두가지 다른 선택 ()>

-톨스토이 -

 

***동우***  

2013.05.04 05:17

 

톨스토이 만년의 소박하고 잔잔한 이야기들.

선과 악의 선택적 가름에는 확연한 당위가 내재되어 있는건가... 실천적 기독교적 삶...톨스토이의 계급적 자의식과 그에 대한 생각들..? 우리 삶의 구체성 속에서 선()이란 어떤 자세와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엘리야와 오르파>

 

***동우***  

2016.03.28 04:39

 

청빈낙도(淸貧樂道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이 행복일지라..

나이 들면 조금씩은 깨닫게 되는가 봅니다만영혼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고 마음이 약하니 탈이지요.

 

가난한 심령.. 청결하고 온유한 마음..,

반백년 탐욕과 불만에 길든 심신(心身), 노욕(老慾)으로 찌들어 더욱 아득하여라..

 

 

<두 노인>

 

***동우***  

2016.05.17 04:20

 

'톨스토이'의 소박한 우화 '두 노인'

 

사람 사는 길의 가르침은 언제나 소박함에 있습니다.

외식(外飾)보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생각건대 소박함 깃들기가 참 어려운 것이지요.

 

착한 사마리아인 쉬운게 아닙니다.    

기교(핑계)를 빙자한 교활한 내 마음이 그러하듯.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 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하시니라. <누가복음 10>

 

***하늘의 소리***

2016.05.17 13:11

 

'주는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느리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 가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엿도다그는 종일토록 은헤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편37;25-26).

그렇습니다영적인 축복도 있지만 현실의 삶에서도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동우***

2016.05.18 00:40

 

시편 37

자신에게 현실적 보응이 아니더라도..

심은대로 거두리라...

연연한 핏줄로.

 

목사님 말씀.

묵상하겠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부산 오시면 술한잔 합시다.

광명이가 쏘겠답니다ㅎㅎ

 

 

<달걀만한 씨앗>

 

***동우***

2017.03.02 08:10

 

톨스토이의 '달걀만한 씨앗'

성경을 보면 옛날 사람들의 수명은 보통 몇백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옛날 곡식의 낱알은 달걀만 하였다는군요.

스스로 노력하여 얻어 만족하는 자족함에서 벗어나 남의 것을 탐욕하면서부터 달걀만한 씨앗은 사라졌다고 하네요.

 

검색해보니 이런 한문 문장이 눈에 띄는군요.

大廈千間 夜臥八尺 良田萬頃 日食二升 (대하천간 야와팔척 양전만경 일식이승)

천 칸짜리 큰 집에 살지라도 밤에 잘 때는 여덟 자면 족하고좋은 밭이 만 이랑이라도 하루에 두 되만 먹으면 넉넉하니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 버리고 차카게들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