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유리 동물원. 세일즈 맨의 죽음]] (1,4,3,3,1)

카지모도 2020. 2. 3.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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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유리 동물원> <세일즈 맨의 죽음>

 

 

<유리 동물원>

-테네시 윌리엄스 作-

 

***동우***  

2013.09.04 05:31

 

은비님은 채널을 마구 돌리다가 우연히 좋은 영화를 만나 대박을 주어 올리셨다는군요.

‘마르셀의 여름’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대박을 건져 올렸습니다.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의 '유리 동물원'

 

미국의 극작가들. 유진 오닐을 비롯한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쏜턴 와일더, 로버트 셔우드..미국 것 뿐 아니라, 그리스 고전 희곡으로 부터, 세익스피어, 몰리에르, 괴테, 입센, 베케트, 부레히트, 올비, 핀터, 비트링거, 사이먼, 세퍼...

 

그중 가장 어여쁜 연극(희곡).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가 쓴 ‘유리 동물원 (The Glass Menagerie)’

 

아, 벗님들.

가을, 이 아름다운 희곡 함께 읽어요.

 

희곡, 반드시 무대공연을 전제로 한 문학 장르라고만 생각한다면 오해랍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한된 형식이지만 오히려 극적긴장을 유발하여 더 압축적으로 부각되는 서사와 캐릭터.

읽기 위한 희곡(레제 드라마)도 없지 않지만 희곡 읽는 재미, 맛을 들이면 그 재미 만만치 않을거에요.

희곡을 읽다가 가끔 마음에 와 닿는 대사 있으면 소리내어 웅얼거려 보아요.

배우가 되어 그 인물에다 감정이입을 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무대를 그려 보아요. 스스로 연출을 하는 겁니다.

희곡읽기로 다른 인물이 되어, 아니 다른 하나의 삶을 영혼으로 겪어보는 겁니다.

 

희곡에 대하여는 차츰 얘기하기로 하고.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

내가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연극중 하나이지요. <나는 꼭 이 연극을 연출 해보고 싶었답니다. 이제는 무망하겠지요만>    

오지명등이 출연한 것등을 비롯하여 이 연극 여럿 보았지만, 1971년 쯤인가, 부산의 연극지킴이 '허영길'형이 연출한 부산교육대학 연극부 공연이 내게는 가장 좋았습니다.

애틋하게.. 고아하게.. 시정 넘치는 무대.    

아, 영길이 형...

 

나는 거리를 걷다가 가냘프고 여린 인상의 소녀를 보면 속으로 대사를 읊습니다.

"로라, 촛불을 꺼요." 라고

 

애잔하고 어여쁘고.

로라를 보면... 

착하고 자그마하게 산다는 건 왜 조금씩 슬픔이 섞여 있는걸까요?

 

테네시 윌리업스의 유리동물원.

네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3.09.05 05:51

 

예전에 '시나리오'를 문학으로 볼수 있느냐 없느냐로 논쟁한 적이 있습니다.

영상(스크린)을 전혀 전제하지 않은 시나리오(Lese Scenario)도 있거니와, 시나리오가 문학의 한 형식이 아니 될 바 없지 않겠습니까?

상상으로 그려보는 시공간적 자유로움 <배경이나 상황 심리묘사까지>, 머릿 속 카메라의 마술로 소설처럼 <직접적으로 영상적 정서를 자아내는데 있어서는 더 뛰어나게> 무언들 그려내지 못할까요? 

나는 페데리코 페리니의 '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컬러를 입힌 화면으로 내 영화를 만든 적 있답니다. 머릿 속으로 말입니다..ㅎ

 

시나리오보다는 훨씬 상상적 제약이 많은 '희곡'.

일정한 시간과 공간적 제약은 희곡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요즘 무대 기술은 공간적 제약을 많이 무너뜨렸지요.>

 

희곡을 이루는 문자는 이게 전부입니다.

첫째, 등장인물의 ‘대사’

둘째, 동작 표정 말투등을 단순하게 지정한 ‘지문'

셋째, 무대효과를 지시하는 ‘스테이지 디렉션'.

 

역설적으로, 그러니까 희곡은 독특한 하나의 장르를 이루는 <문학>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연출은 읽는 자의 자유로움, 그러나 극작가가 제시하는 인물과 인생과 운명을 한치도 벗어나서는 아니되는.

하하, 어줍잖은 희곡잡설은 그만.

 

유진 오닐 이후 미국 연극을 대표하는 두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와 '아서 밀러' <아서 밀러의 불후의 명작 '세일즈맨의 죽음' 파일을 찾고 있습니다.>

 

'유리 동물원'에서 ‘테네시 윌리엄스’가 만든 여성성을 눈여겨 보시기를, 아니, 느껴 보시기를.

스칼렛 오하라적 기질도 갖춘 몰락한 남부마님 '아만다'와 투명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처녀 '로라',

아, 그리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의 '블랑쉬'도 있었군요.

그렇군요. 대비되는 여인상.

테네시 윌리엄스 그의 남부적 환상은 서정적이면서 때로 잔혹합니다.

 

나는 이 희곡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인물 전부에게 아주 진한 애정을 느낍니다.

세상에 좌절하는 사람의 품성들.

징그럽지 않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뉘, 로라를 또는 아만다를 맡으려우?

나는 톰의 대사를 읊겠습니다. ㅎ

 

***동우***  

2013.09.07 03:31

 

++++

[톰] : 전 달나라엔 가지 않았습니다. 전 더 멀리갔죠. 왜냐하면 시간은 두 장소간의 가장 먼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뒤 얼마 안가서 난 구두상자 위에다 시를 썼다고 해서 해고당하고 말았습니다. 전 샌트루이스를 떠났습니다. 이 비상구 계단을 마지막으로 내려간 셈이죠. 그리고는 우리 아버지의 발자욱을 뒤따랐습니다. 잃어버린 행동을 찾기 위해서였죠. 전 바람따라 여러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도시와 도시는 낙엽처럼 내곁은 스쳐갔습니다. 밝은 빛깔이지만 가지에서 흩날리는 잎파리처럼 말입니다. 전 떠돌아 다니는걸 멈출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뭔가에 쫓기고 있었죠. 그것은 모르는 사이에 저를 덮쳤고 항상 짓누르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귀에 익은 음악이기도 했고 투명한 유리조각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전 어떤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외롭게 말입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불빛 비치는 창가를 지나갑니다. 유리창은 여러색깔의 유리잔과 무지개처럼 영롱한 빛깔의 작은 병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 누나가 내 어깨를 칩니다. 나는 몸을 돌리고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죠... 오, 로오라, 로오라. 난 누나를 버리려 했어. 하지만 난 내가 의도했던것보다 더 성실해. 전 담배를 꺼냈죠. 거리를 건너갑니다 영화관이나 빠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술을 마십니다. 가까이 있는 낯선 사람에게 얘기를 합니다. 당신의 촛불을 끌수있는 어떤 얘기를! 

 

로오라는 촛불을 향해 몸을 숙인다.

 

[톰]: 왜냐하면 오늘날의 세상은 번개로써 불을 밝히기 때문이죠. 로오라 촛불을 꺼요. 그럼 안녕! 

 

로오라는 촛불을 불어서 끈다.

 

-막이 내린다- 

++++

 

올 여름 무척이나 더웠지요.

매스컴 떠들썩했던 정전(停電) 위협.

블랙아웃이 되면 우리 삶은 공황(恐慌)에 빠지는가 봅니다. <에어컨 없이 열대야를 지샐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기는 합니다>

번개로써 불을 밝히는 오늘 날 세상.

그러나 '유리동물원'은 촛불로 비추이는 세상입니다.

로오라는 몸을 숙여 촛불을 불어 끄지요.

촛불이 꺼지면 무대는 블랙아웃(암전-暗轉)이 되고 연극은 끝납니다.

 

촛불이 버거워 톰은 집을 떠나 방랑했을까요?

촛불을 끄고나서야 비로소 로라는 번개빛을 밝히게 될까요?

아닐겝니다.

가냘프게 바람에 팔랑거리지만 촛불은 꺼지지 않을겁니다.

촛불은 회색빛 도시의 어느 어두운 길목에서 문득문득 조우하게 됩니다.

흐음, 어쩌면 그것은 우리 영혼이 간직한 어떤 자그마한 환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오라, 촛불을 꺼요. 그럼 안녕."

 

삼차원 공간으로 배치한 무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

유리동물원에는 번개가 번쩍이지 않습니다.

유리동물원은 촛불이 비추어주는 세상입니다.

 

그래요, 유리동물원의 애틋한 시정(詩情)은 하나의 환상입니다.

조금도 징그러움 없는.

착하고 슬프고 가여운.

 

"로오라, 촛불을 켜요. 그럼 안녕."

 

촛불을 뇌이다보니, 문득 어떤 시가 떠올라 몇가지 검색어로 인터넷 열심히 뒤져 찾았습니다. <전에 '레이 브래드배리'라는 추리작가를 소개한 적 있을 겁니다. 그가 지은 짤막한 동시입니다>

유리동물원과 유기적 이미지을 불러일으키는 시는 아니지만 참 소박하고 따뜻한 시입니다.

소개 할께요.

 

++++

<밤을 켜는 아이>

-레이 브래드배리-

 

스위치를 내린다고 꼭 불이 꺼지는 건 아냐

스위치로 밤을 켜는 거야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것처럼

네 마음대로 밤을 켜고 끌 수 있는 거란다.

 

네가 스위치로 밤을 켜면

귀뚜라미 소리도 켜는 거야!

그리고 개구리 소리도 켜는 거야!

넌 또 별도 켜는 거야!'

++++

 

스위치를 내려보아요.

전등이 꺼지면 밤이 환하게 켜지지요.

 

아, 내가 밤하늘 별을 본적이 언제였을까.

 

"로오라, 촛불을 꺼요. 그럼 안녕."

 

 

 

<세일즈 맨의 죽음>

-아서 밀러 作-

 

***동우***  

2013.11.14 05:32

 

아더 밀러((Arthur Asher Miller, 1915~2005)가 1945년에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Salesman)>

나는 근세 최고의 희곡중 하나로 평가합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무대에서도 자주 상연되었고 영화로도 여러번 만들어졌지요.

'윤주상' '선우용녀' 주연의 연극과 '프레드릭 마치'주연의 영화가 기억에 떠오릅니다.

그러나 나는 희곡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상상의 연출로 무대를 만들어 감정이입하는, 그 느낌이 자유롭거든요. ㅎ

 

아, 군거적 순종의 가장 최소의 동굴.

가족이라는 것.

그 사랑과 갈등의 애환.

'윌리 로오먼'과 그의 아내 '린다'와 장남 '비프' 차남 '해피'.

그 모습들,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짜리의 허세. 권위의식, 자식을 향한 허황한 기대, 그리고 한줌 죄책감..

남편이나 자식의 사이에서, 남편을 향한 연민과 배려의 눈길, 자식을 향한 애정과 심려..

린다는 이나라 많은 어머니의 면모 그대로이지요.

 

아버지와 자식 사이.

윌리 로오먼도 그렇지만, 특히 눈여겨 비프의 심리를 들여다 보시고 한번 느껴보십시오.

장남이라는 자의식, 원망과 사랑과..

우리나라 장남짜리들의 감정밭과 진배없습니다.

나는 큰아들 비프에게 왠지 애정이 갑니다.

 

아메리카라는 사회살이를 들여다 보는 맛도 진합니다.

무언가 팔아야 함으로써 영위되는 삶...세일즈..

팔아야 할 것이 어디 물건이라는 하드웨어 뿐이리까.

재능과 용모와 언변과 태도같은 소프트웨어...

오히려 그 쪽이 더욱 중요한 상품이 아닐런지요.

 

윌리 로오먼의 죽음이라는 종장을 읽고서 가슴 한켠 서늘하실겝니다.

눈꼬리에 시큰한 눈물 한줄기 흐를지도.

혹은 이런 푸념 한마디 투덜거리실지도 모르겠어요.

 

연봉.. 부동산.. 자동차.. 모기지론.. 보험.. 대출..월부..신자유주의..

빌어먹을.

늬들이 개별들의 생떼같은 목숨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다스리누나.

 

세일즈맨의 죽음.

4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안 읽으셨다면 꼬옥 읽어보시기를.

강추합니다.

 

***저녁산책***  

2013.11.15 11:13

 

동우님,,ㅎ 스무살 남짓적에 읽었던 희곡이 올라와 있어 다른 소설도 아직 못 읽어있는데도 급 반가운 마음에 잠깐 인사드립니다. 이번주 내내 김장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이 보내고 있고요..얼릉 김장 끝내고

커피마시면서, 음악 배경으로 들으면서 동우님 글 읽었으면 좋겠어요.(제게는 이것이 삼합이랍니다.ㅎㅎ)

 

***동우***  

2013.11.16 05:03

 

저녁산책님댁의 김장 김치 맛은 어떤 맛일까.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단출한 가족의 요즘 김장이란 옛같지는 않겠지요.

 

여성분들 한철 치루어야 하는 노동이었을테지만. (아,남자들은 독 묻을 땅을 팠던가)

내 아련한 기억 속의 김장은 늦가을 축제같은 것이랍니다.

희고 붉고 푸른 냄새들 마당에 넘쳐 흐르고, 김장하는 집 동네 품앗이로 왁자지껄.

쭈욱 찢어서 밥숟갈 얹어 먹는 그 맛하며...

살벌한 군대에서도 김장날은 울긋불긋 하였지요.

어느 해에는 장교와 중상사 아내들이 부대로 몰려와 김치를 담구었는데, 짬밥에 얹어 먹는 그 맛도 각별하였어요.

 

삼합.

홍어와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말함이지요?

나주에 문상가서 처음 먹어 본 삭힌 홍어.

그 맛에는 나는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남도 사람들 그 삼합에 환장들 하지요. ㅎㅎ

 

하하, 저녁산책님의 삼합.

커피와 음악과 독서.

 

거기에 내 리딩북이 들어간다니 기분 좋습니다.

모쪼록 맛있게 드세요, 저녁산책님.

 

***동우***  

2013.11.17 05:03

 

혼자서 무얼 뚝딱거리면서 만들기를 좋아하고 농사같은게 기질에 맞는, 게다가 자존심 강하고 독선적이기까지 한 윌리 로우먼.

세일즈맨은 아무래도 그의 직업이 아닌듯 하다.

진작 형 벤을 따라 알라스카이거나 아프리카로 갈 내기지, 뉴욕 브룰클린에 붙박힌 아메리칸 드림은 필경 그의 것은 아니었다.

외판을 하면서 젊어 한때 반짝하여 그의 자부심이 만족한 적도 있었을 터이나, 산업사회의 미국은 필경 그에게는 더이상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고작 주급(週給) 몇달라 상관(相關)에 목을 매고, 자동차에 몸을 의탁하여 온갖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상품을 팔아야 하는, 그리고 대출과 월부에 허덕이는 삶.

 

세일즈맨의 죽음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하나의 부품, 그저 한마리 소시민으로 소모되는 삶의 양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그저 도회의 한구석에서 쓸쓸하게 살아갈수 밖에는 없는 삶 속에 가족이란 더욱 소중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아, 父子 사이라는 것.

필경 뉜가 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자라면서 그 情 내게 추상이더니 이제 늙은 아비되어 나이 든 아들 바라보는 그 의미 사무치련가,    

 

++++

[윌리] (한참 만에 놀랍고 기분이 좋아서) 희한하지 않소! 그 녀석이 그래도 날 위하는구료!

[린다] 그렇다니까요!

[해피] (매우 감동되어) 언제고 그랬어요.

[윌리] 응, 비프가! (흥분하여 눈을 크게 뜨고) 그놈이 울었어! 애비한테 안겨 울었다니까! (부성애에 벅차 목이 메며 소망을 외친다) 그놈은 그놈은, 훌륭하게 될거야!

++++

 

콧등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뜨겁다.

이 대목에서는 언제나 어떤 영상이 떠오른다.

엘리아 카잔의 영화 '에덴의 동쪽'

아버지의 사랑을 애타게 구걸하는 제임스 딘. <부정한 돈이라고 생일선물을 거부하는 아버지에게 그 돈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서 처절하게 흐느끼면서 아버지에게 닥아 가는 칼, 제임스 딘.>

 

사랑.

그래, 관계의 구원은 오로지 사랑이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