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국경 위의 집. 독일군의 선물. 단지비누거품일 뿐 (1,4,3,3,1)

카지모도 2020. 2. 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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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국경 위의 집> <독일군의 선물> <단지 비누 거품일 뿐>

 

 

<국경 위의 집>

-엘리아스 카네티 作-

 

***동우***

2013.03.10 04:34

 

<많이 답답한데 웃기는 소설 부탁합니다.>

'오발탄'의 어두움이 많이 답답하셨다는 티팟님의 부탁.

국경 위의 집.

국가나 제도나 권력 따위 의미심장한 내용일 터이나... 소설적 풍자와 해학(諧謔)으로 좀 웃으시우. 티팟님. ㅎ

 

++++

<이문열의 해설>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것은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과 관련된 환상과 기상이었는데 그중에는 여러 문학적 장치를 빌어 아예 '있을 법한 자연'으로 설정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 '국경 위의 집'은 인위적인 제도, 특히 그중에서도 국가현상을 그야말로 기상으로 처리한 일종의 희화다.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서 국가만큼 그 당위성과 미덕을 옹호받은 것도 드물다. 하지만 국가는 또 그만큼이나 자주 부정과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문학도 국가에 대해서는 그리 우호적인 편이 못된다. 오히려 이 의제된 인격의 모순성과 폭력성은 그 권위주의나 편견, 변덕 따위와 더불어 문학의 적의를 더 자주 자극해왔다는 편이 옳다.

특히 우리 세기에 들어 많은 문학적 영웅들이 국가와 그 권력현상에 적의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그것에 속한 제도나 현실의 지배자를 신랄하게 공격했다. 대개는 국가의 영향력만큼이나 많은 분량의 원고에다 국가의 권위만큼이나 장중한 어조였다. 거기 비해 이 '국경 위의 집'은 한 특이한 예외가 된다. 이처럼 짧은 길이에 이토록 경쾌한 어조로 국가의 여러 악덕과 약점을 선명하게 드러낸 경우는 흔치 않았다.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온갖 횡포를 '국가'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그려낼 수 있었던데에는 결코 평탄할 수 없었던 그의 개인적인 이력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흔히 영국인으로 분류되는 카네티는 불가리아 태생의 스페인계 유태인이다. 청년시절 빈 대학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에 머무르던 그는 나치의 박해가 심해지자 런던으로 이주, 그곳에서 독일어로 소설을 썼다. 그는 이 시기에 매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카프카나 조이스와 비견되는 문인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장편소설 '현혹'과 희곡 '허공의 코미디'로 유명한 그는 198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eunbee***

2013.03.10 20:07

 

오늘 아침엔 늦잠을 자느라 티티새 노랫소릴 놓쳤답니다.

어스름한 새벽부터 긴휘파람소리 처럼 영롱하게 노래하는 그들의 노랠 들으려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덧문을 열고 창문을 반쯤 열어두는데 말예요.

어제의 나들이와 그제의 잠설침이 오늘 티티새 노래를 잃게 했나봅니다.

(겨울이 막 지나면 그때부터 티티새는 새벽부터 울어요. 집 부근의 정원에서, 그 새를 나는 휘파람새라고 내맘대로 불렀었는데, 큰딸이 티티새라고 가르쳐 줬어요. 여기는 티티새가 정말 많거든요. 집부근에...)

 

동우님이 올려주시는 좋은 글들은 스마트폰 기기로 읽는데, 그곳에서 댓글을 쓰려하자면

타자가 익숙지 않아 글이 쓰여지질 않아요.

폰 기기 들고 나가서 양지바른 공원에서 읽는 맛도, 쇼파에 누워 느긋하게 읽는 맛도 좋은데

읽고 난 뒤의 감상이 사라지기전에 글을 쓰려하면, 그것이... 참 어렵네요.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지지 않아서.ㅠ

 

한국의 봄은 어제 그제 깊이 드리워졌다면서요.

여기도 어제같은 날은 축복 중 축복이었어요.

 

지금 먼 곳 성당에서 종이 울리네요.

종소리~

아련한 종소리는 그리움의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그리움을 싣고 온다우.

지금도 그러하네요.

오늘은 일요일이니, 노틀담 성당에서의 그레고리안 성가 공연을 보러 나갈 참이에요.

오후 4시에 예고되어 있던데요.

 

햇볕이 따스하면 노트르담 뒤 공원에 앉아 멍때리기 하기가 참으로 좋은데 오늘 날씨 별로예요.

비나 오지않으면 다행이지요.

비오는 파리를 거니는 것도 나쁜진 않지만....

 

동우님, 멋진 나날 보내시어요.

저도 그렇게 할게요.^*^

 

***동우***

2013.03.12 05:35

 

티티새, 이름이 참 이뻐요.

티티새 찾아보니 우리나라 지바뀌종류라고 하네요.

 

따스한 햇볕에 잠겨 멍때리기.

코발트 빛 바다 무연하게 바라보면서 멍때리기. (안경)

은비님의 그 포즈, 멋있는 그림으로 상상합니다.ㅎ

 

노트르담 성당에 은은하게 번지는 그레고리안 성가.

아아, 이 노래소리는 귓전의 상상만으로 평온해 지는듯 합니다.

 

멋진 나날이라..

무언가 요즘 마음밭 번다하여 나도 이른바 스마트 폰 눈팅으로만 이웃 댁네 들러 본답니다. (나, 또한 스마트폰 기기로 자판 두드리는건 포기한지 오래 되었다우.)

 

나도 차츰 봄바람 들겠습니다.

 

***teapot***

2013.03.11 09:00

 

동우님 감사합니다~

국가 제도와 권위의 폭력을 이리 그려 냈군요.

어이없는 이야기 웃고 갑니다.

이문열씨의 해설도 잘 읽었읍니다.

 

아침에 추워서 두둑히 입고 교회를 갔더니 나만 빼고 모두들 옷차림 가볍더군요,

오후가 되니 날씨가 많이 풀려 덥기까지 했답니다.

다음주는 더운 날씨라니 이제 추운 날씨는 끝이 났나 싶어요.

한국에 예전에 써머타임이 있다가 없어진걸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아직도 써머타임 제도가 있어 오늘 한시간이 앞당겨졌답니다.

한시간 일찍 일어난 셈이지요. 백수가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몸의 리듬이 깨졌느니 어쩌니하며 집에와서 낮잠 한잠 자고 일어 났답니다~ㅎㅎㅎㅎ

주말이 끝이 나고 있어요, 한주가 다시 시작입니다.

좋은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동우***

2013.03.12 05:37

 

캘리포니아의 봄도 변덕이 심한가 봅니다.

한반도 역시 어느 날은 10도를 넘어섰다가 어느 날은 영하에 이르고.

보통 새벽 기온과 한낮의 기온 차는 10도씨가 넘지요.

역시 봄처녀는 조석지변 처녀마음. ㅎ

 

티팟님도 좋은 한주를.

 

***저녁산책***

2013.03.13 09:49

 

ㅎ 이토록 짧은 글로 국가라는 실체를 한방에 희화하고 조소하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거실에서 내려다보니, 밤새 봄비가 내려 촉촉해진 대지위에 사람들이 총총걸음을 하고 있네요.

 

다음주에 여행을 가게 되어 이번주부터는 블로깅을 쉬고 있답니다.

그래서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생겨 좋습니다.

동우님 올려주신 글..더 읽고 갈께요..

늘 감사드립니다^^

 

***동우***

2013.03.14 05:20

 

어느 곳에서는 봄비 촉촉하고 어느 곳에서는 춘설이 분분하니.

한반도가 좁은 땅은 아닌가 봐요.

 

부러워요.

저녁산책님의 봄맞이 여행.

그 여유 모쪼록 즐기시기를.

 

내 봄도 조만치 숨어 있겠지요. ㅎ

 

 

<독일군의 선물>

-허버트 릴리호 作-

 

全文을 댓글란에 옮깁니다.

 

++++

<독일군의 선물>

 

전쟁은 끝났다.

그는 독일군한테 도로 찾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불이 침침한 길을 그는 급히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그의 손을 잡아 술이 취한 듯한 말소리로 말을 건넨다.

"어디 가시나요? 우리 집에 가시는군, 그렇죠?"

그는 웃었다.

"아니요, 당신 집엔 왜? 난 지금 아내를 찾고 있소."

그는 여인을 돌아다 봤다.

두 사람은 가로등 옆으로 왔다.

그러더니 여인은 별안간 "앗!"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여인의 어깨를 잡아 불 밑으로 끌어당기었다.

그의 손가락은 여인의 얼굴을 파고들었다.

눈이 빛난다.

"요안!"하고 그는 여인을 와락 끌어 안았다.

++++

 

***eunbee***

2013.03.13 20:25

 

읽어야 할 글이 짧아서 허전하다.

긴긴 글에 길들여져서 일까.

길들여진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움과 한통속의 정서를 바탕하는지도 모른다.

어제 폭설이 쏟아져 모든 것이 불통이었다가

오늘 쾌청한 날씨가 어제 일을 꿈속처럼 만들었다.

동우님 마음도 쾌청해서, 고치속에 말려들어간 듯한 그 다정한 마음의 바람을

쐬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에혀~~~ 내팔자야! 하하하핫

 

***동우***

2013.03.14 05:35

 

일상사 혹은 신변잡사의 번다한 것들.

은비님 같으면 어제의 것들, 전생같은 느낌으로 오늘 찬란한 햇살 속에 녹여 버릴터인데.

마음 비좁은 나는 그게 잘 아니되니 그저 은비님의 오늘이 이쁠뿐..ㅎ

하하, 이번 주 지나면 나의 오늘도 이뻐질터입니다.

이뻐지려 합니다. 하하

 

***eunbee***

2013.03.13 20:29

 

그 누가 '요안'을 탓하랴.

 

침침한 길을 때론 걸을 필요가 있다.

시시콜콜 따지고 밝혀서 무엇하랴.

시절이, 세상이, 인연이... 그렇게 닿은 것을.... 만든 것을....

 

요안이 가엾을까

돌아온 사내가 가엾을까

아니, 모두가 다 행복해지리라.

이제 막 도착한 시간은 새로운 시간이니까.

 

***동우***

2013.03.14 05:43

 

그 누가 요안을 탓할수 있으리까.

참, 은비님.

그리 말씀하시니 애수(워털루 브릿지)가 생각납니다.

흑백화면에서 비비안리의 젖은 눈망울 고스란히 떠올라요.

저 '요안'처럼 로버트 테일러와 그렇게 해후하였는데...

전쟁 그 미친 시절에 몸 팔았던게 무에 그리 대수라고. (더구나 로버트 테일러가 전사한 줄 굳게 믿고 있었던 그 절망적인 여인의 심장을..)

 

이 소설이 가장 짧은 소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검색하여 보니 더 짧은 소설이 있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친구와의 내기로 지은 6단어 짜리 소설.

 

그 전문은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번도 안 신음)>

 

상상의 영역 속에 남겨진 그 사연.

좀 슬프지요?

 

***teapot***

2013.03.14 15:26

 

와락 끌어 안았다고 해서 마음을 놓았읍니다.

이런 소설도 읽게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동우***

2013.03.15 05:23

 

위의 은비님께도 언급하였는데, 마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 '애수-워털루 브릿지-' (아마 티팟님도 보셨을 것...)

사랑하는 비비안리와 로버트 테일러, 그 선남선녀.

로버트 테일러가 전사한 줄 알고 비비안 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거리의 여자가 되지요.

런던 역(? 역이름이 원털루 역이던가..)에서 낯선 사나이를 유혹하려 웃음을 흘리는 비비안 리와 살아 귀환한 로버트 테일러가 이 소설에서처럼 딱 마주 쳐 해후하지요.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비안 리.

흑백 스크린에는 올드 랭 사인이 흐르고....

로버트 테일러는 비비안 리를 <와락> 끌어 안았건만.

 

 

<단지 비누 거품일 뿐>

-에르난도 테예스 作-

 

***동우***

2013.04.22 04:49

 

심약함이란, 저 사나이의 굳센 간겅미(强健美) 앞에서는 지푸라기와 같다.

양산박 도적들, 그들 배짱이 근거한 영역은 정의따위 이념따위 사유따위가 아니다.

‘마초적 정서에 마취(痲醉)되어버린’ 사나이라는 에토스.

오로지 그것, 내게 결핍되어 부러웠던.. 저 배짱이라는 놈.

 

다음은 이문열의 해설입니다.

 

++++

작품 속의 이발사는 아마도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심약은 안타깝다 못해 애처롭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논의의 여지없이 명백하다.

운좋게 손 안에 들어온 사람백정이나 다름 없는 악당을 처형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온갖 새삼스런 논의와 자제와 소심 때문에 결국 기회는 비누거품처럼 날아가 버린다.

거기 비해 악당은 어떤가. 온갖 끔찍한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하게 거침없다.

더구나 그 이발사가 이미 반란군과 내통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시퍼런 그의 면도칼 아래 목을 맡기는 그의 배짱은 거의 무모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한 마디를 잊지 않는 그의 여유는 비록 악당이라 할지라도 사내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건미의 한 특이한 결정이 될 것이다.

작품은 어떤 문학지의 해외특집란에 소개된 적이 있는 소품이다. 그때는 그냥 재미있게 읽어 넘겼는데 세월이 지나도 그 강렬한 인상이 잊혀지지 않아 이번에 다시 찾아 실었다.

작가 테예스는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에세이스트이자 기자이며 문학평론가, 외교관, 소설가, 번역작가로 활동했다.

30여 년간 문화 및 소설을 연구한 그는 콜롬비아 현대 문학이 태동하기 시작한 1950년대의 산 증인이다. 리얼리즘으로 점철되어 있던 종전의 문학을 비판적으로 탈신비화시키면서 새로운 현대 문학을 향한 선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그는 또한 전세대들이 과소 평가했던 시인 아우렐리오 아르투리오와 레온데 그레이프를 열렬히 칭송하면서 그들의 시세계를 알리는 데 커다란 노력을 했다. 그의 문학 비평서로는 <불안한 세상> <숲 속의 불빛> <문학> <문학과 사회> 등이 있으며 소설집으로는 <바람에 날리는 재>가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소설 <단지 비누 거품일 뿐>은 <바람에 날리는 재>에 수록된 작품으로 중남미의 대표적인 단편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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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pot***

2013.04.23 11:53

 

읽는 동안 가슴이 조마조마 했지만 걱정한데로 그냥 이루어지면 소설이 될리가 없지 않아요.

그리고 자기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그리 못하게 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우***

2013.04.24 05:18

 

하하, 티팟님.

직업에 대한 책임감, 저 이발사를 티팟님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아 주시는군요. ㅎㅎ

우유부단함과 나약함과 심약함과...자기합리화..

저 배짱좋은 사나이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나와 같은 사람이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