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김동인]]
<배따라기> <발가락이 닮았다> <감자>
<배따라기>
-김동인 作-
***저녁산책***
2012.12.03 21:00
오랜만에 이북 사투리가 너무나 정겨운 소설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소설 도입부분 ,,북녘의 붐정경 묘사가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네요.
이 세사람의 기막힌 운명..
'그저 운명이 제일 힘셉디다'라는 말이 가슴에 박혀 버리네요.
영유 배따라기 그 구성지고 슬프디 슬픈 가락이 귀에 쟁쟁이 들리는 듯합니다.
동우님께 늘 감사드리며...
***┗동우***
2012.12.04 05:26
저녁산책님.
'배따라기'는 뱃노래라지요?
(내 멋대로) 이를테면 '배떠나기' '떠나가는 배',..
거기엔 헤어짐의 이미지가 녹아 있는듯.
세사람의 기막힌 운명.
그 운명은 그런데 격정적인 '파토스'의 감정밭에서 비릇 되었다는데 비극이 있는듯 합니다.
사랑에 내포된 패러독스.
불꽃같은 절망의 감정.
칼멘을 찌르는 호세... 사랑도 지나치면 심하게 데인답니다.ㅎ
***teapot***
2013.02.07 04:33
너무나도 강렬한 내용입니다.
아내를 사랑했다지만
참사랑인가 싶기도 합니다.~
***┗동우***
2013.02.07 05:19
그래요, 티팟님.
배따라기에서는 어떤 평안도적 기질(?)이라는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강렬하고 직정적인.(그런게 평안도 기질인지? ㅎ)
아, 사랑이 무엇이관대, 파멸따위 아랑곳없이 순간적인 격정에 온 존재를 던져 버리는겐지.
누구에게나 저와 같은 파토스의 불꽃 한줌씩은 내재되어 있을겝니다.
티팟님, 왕년 부군과의 로맨스에도 말이에요.ㅎ
***김인주***
2015.08.14 06:08
김동인과 그의 형 김동원, 매우 다른 길을 걸었지요. 1900년에 장로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금동은 젊었을 때 교회를 떠났지요.
습작 "이 잔을"에서, 젊은 날 동인의 복음서의 수난사화들에 대한 독서와 이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월간조선에서 그의 마지막을 유족들이 증언하고 있는 기사가 있습니다. 1951년 1월 왕십리에서, 거동이 어려워 피난갈 수도 없는 가장을 버리고 갈 수밖에 없던 이야기입니다.
김동인 전집을 사왔지만, 일 년 넘도록 하나도 읽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생각하면서도, 쉬 착수할 수 없네요.
20년 전에 열 권으로 나온 동인문학전집인데, 학문적으로는 가치가 전혀 없는 글모음입니다.
해제도 없고, 연보도 없고, 참고할 글은 한 줄도 없는 작품집.
이야기가 많이 뒤틀리기는 해도, <배따라기>가 그 형제의 삶과 갈등을 가장 많이 표출한 작품이라 느낍니다.
더 잘 연구한 논문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눈에 띄는 글을 없습니다.
저는 브레히트와 김동인이 매우 닮았다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 판이한 환경, 하지만 비슷한 시대,
동우님, 오늘이 브레히트의 사망일입니다.
독일에서 극화한 그의 마지막 날들에 관한 필름을 봤는데, 동독 정권과 감시하던 비밀경찰이 죽이는 것으로 끌어갑니다.
<태평천국>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중입니다.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동우님께도 권하는 바.
여러 버젼이 있지만. 쉽게 옥석을 가릴 수 있습니다.
꽤 재밌네요. 홍수전 한 사람 밖에는 몰랐는데, 많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부딪히는 것이, 어느 사극보다도 흥미롭습니다.
이 드라마의 기초를 이루는 소설도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하는데, 여기서는 보기가 어렵군요.
그 번역도 절반 정도만 했다고 합니다. 출간하던 중에 출판사가 망했는지. 이곳 도서관에서는 진순신이 지은 역사소설만 검색됩니다. 그것도 중국어판으로.
아쉽네요.
언제나 동우님의 건승하심을.
***┗동우***
2015.08.16 04:44
김동인은 참으로 많은 작품을 썼더군요.
동화 전설 우화 평론 잡문류를 비롯하여. 따라서 범작도 상당할겁니다만, 배따라기는 그의 작품중 가장 빼어난 것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광수에 관한 것들, 당시의 문단사, 문인교류사등 김동인의 여러 텍스트파일을 업어와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브레히트는 많이 읽어보지 못하였습니다만, 목사님께서 김동인과 비유하시니 찾아 읽어보고 싶습니다.
나는 요즘 보르헤르트에게 꽂히는바 있답니다.
드라마까지 챙겨보시는 목사님.
나는 영화 찾아 보기에도 벅차건만. ㅎ
<발가락이 닮았다>
-김동인 作-
***동우***
2013.01.24 05:25
그 옛날 이 소설을 읽기 전부터, 뜻도 모르고 내 입에도 익숙하였던 문장.
'발가락이 닮았다'
얼마나 닮은 곳이 없으면 글쎄, 발가락이 닮았다고 할까.
이 소설을 읽고서야 그 연유를 알게 되었지만.
저 기막힌 자기기만.
일종의 자기구원, 자기암시에 의한 방어기제..
절망적 모독감과 파멸의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한 남자의 저 안타까운 몸부림.
저 시대만 하여도 지금에 비하면 혈육, 혈연이란 지고의 가치...
멘델의 유전법칙정도야 과학적 근거로 차용되었을 법 하지만, 유전자검사는 꿈도 못꾸었을 시절.
생물학적으로 확고하게 자기 새끼라는 사실.
열달을 품고 있었던 밭(여자)이야 분명한 것이지만 씨앗(남자)이야 그 근거는 얼마든지 모호할수도 있지 않겠는가.ㅎ
비극인지, 희극인지.
일단 웃읍시다그려.ㅎ
***동우***
2013.01.24 05:52
앗, 전에 한번 포스팅한 소설이로군요.
그냥 두겠습니다. 옛 것은 지우고.ㅎ
***잉크***
2013.01.24 13:14
여학생때 읽었던 것.. 덕분에 또 한번 읽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누구를 닮았다.. 라는 말이 꼭 따르지요
저두 제 딸아이를 낳았는데 말이 분분했답니다.. 맹세코 저는 한 남편의 자식을 낳앗을 뿐인데~ ㅎㅎㅎㅎ
역시 우리 금서..
어디의 어떤 점에서 내 아들이 숨어 있나..
딱 들어 맞게 닮아주지~~ 서운합니다~ ㅎㅎㅎㅎ
얼핏 들은 얘기인데
의심해서 유전자검사를 의뢰한 건들중의 대다수가 친자가 아니라고 나온답니다
누군가는
남성들이 자유로이 여자를 탐하는 죄를 그런식으로 되돌려 받게 되는거라고도~ ㅎㅎ
***동우***
2013.01.25 05:43
내 아이들 어렸을 적.
아이들 생긴 것, 웃는 것, 우는 것 들여다 보면서 한참을 생각하면서, 정말 신기해 하였던 적 있었습니다.
저 생명이 저 모냥으로 저와 같은 움직거리는 것들, 과연 나의 무엇으로 인하여 생겨 난 것인가.
내 정액이라는 그것에는 저와 같은 의지 한톨, 나는 의식한 바 없었는데.
내 저러한 모양과 움직거림을 한번이라도 그려 보았던 적, 상상해 보앗던 적 잇었던가.
아아, 유전자의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실로 엄청난 기적이다.
어떤 섭리로서 이루어져 내게 주어진 기적..
하하, 잉크님.
금서 태어나기 전에 지금의 그 금서 모습 한번이라도 상상해 본적 있어요?
금서의 아빠 엄마 역시.
금서라는 생명을 발아케하는 그 순간, 그리고 엄마 태내에서 꼼지락거리던 어느 한 순간에라도...
하하.
유전자 검사 의뢰까지 이르게 하는 그 디테일한 사연에 이미 어긋남의 당위가 숨어 있었던 게지요.
오래 전의 티브이 프로.
출산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
그 아이들 어느 정도 성장하여 밝혀 졌는데.
기른 정과 낳은 정이 갈등하는 적나라한 두 가정의 현장은 정말 기가 막힌 비극이더군요.
아마 외국같으면 기른 정을 따르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더랬는데.
나는 적어도 인간관계를 인식함에 있어서는 서구인이 동양인의 의식구조보다 훨씬 성숙한 인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불구의 아기들도 범연하게 입양하여 정성껏 키워서, 자란 후에는 또 범상하게 친부모를 찾게 하는...
으흠, 나부터도 결코 그런 경지에는 도달할수 없을겁니다.
기질적 유전자가 그러한 모양이니....
***teapot***
2013.01.25 09:50
다시 읽고 갑니다
아기들이 엄마, 아빠 닮는 것이 과학적으로 당연한데도
신기 할 뿐입니다~그래서 자기 애들이 더 예쁜 걸까요?ㅎㅎㅎ
***동우***
2013.01.26 05:39
티팟님.
소설 주인공 M은 뻔히 제 자식 아닌걸 알면서도 저리도 제자식으로 믿고자 하는 저 슬픈 안간힘.
비극인지, 희극인지.
눈가리고 아웅.
의사친구.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
그리고 나의 얼굴로 날아오는 그의 눈을 피하면서 돌아앉았습니다.>
아무리 닮지 않았더라도, 티팟님.
제 새끼는 부모 눈으로는 어딘가 자신을 닮은데가 있는 법이랍니다.
발가락 말구요. ㅎ
***teapot***
2013.01.26 05:45
은비님 말고 티팟~ㅎㅎㅎ
제 블로그에 동우님 이야기를....
***동우***
2013.01.26 05:52
이런 실례.
아까 은비님댁에서 기형도 시를 읽고 와서 헤깔렸나 봐요.ㅎ
용서를. 티팟님.
***teapot***
2013.01.26 06:22
은비님만 이뻐하시나 하고 질투하려고 했지요~~
***eunbee***
2013.01.27 04:32
티팟님, 질투 마구마구 하세요.ㅎ~
동우님은 블로그 친구님들을 얼마나 골고루 이뻐하시는지
모두들에게 수호천사요, 쓸쓸해진 심사 달래러 오는 곳이요, 오라버니같은
또는 오랜 벗같은 분이니까, 질투 하셔도 된답니다.ㅎ
***동우***
2013.01.27 06:36
우하하하하하하하, 티팟님. 은비님.
다 늙어 이게 무슨 복이래유?
<감자>
-김동인 作-
***동우***
2013.05.01 05:19
김동인 (1900~1951)의 감자.
환경에 지배되고 변모하는 인간의 삶.
현대소설사 최초 자연주의계열의 작품이라지요?
***홍애(虹厓)***
2013.05.01 18:32
참 오랜만에 읽어보는 단편이에요.
평양말에도 휘휘 감기는 맛이 느껴지는 건
김동인의 언어능력이겠죠?
한글 고픈 날 참 좋은 시간 되었습니다!
***동우***
2013.05.02 05:03
기뻐요, 홍애님.
한글 고프신 홍애님께 좋은 선물이라시니.
홍애님.
나의 올 봄은 자못 수척하고 가난하여 '춘래불사춘'만 뇌이는 나날.
홍애님의 풍요한 일본(SNS로 들여다보는), 어느 블벗님의 지중해 크루즈, 어느 블벗님의 로마이야기, 어느 블벗님의 아트갤러리 순방, 어느 불벗님댁 옥상정원...그렇게 내다보는 창너머가 그나마 나의 봄 따뜻함이지요.ㅎ
***홍애(虹厓)***
2013.05.02 13:16
어서 회복하셔야죠.
집안에만 계신 건 아닌가요?
밖으로 가셔서 진짜 봄바람을 맞아 보시길요 ^^
***동우***
2013.05.03 05:04
하하, 홍애님.
무슨 회복 운운할 정도로 일관된 감정상태는 아니에요.
두루 물적 심적 요인으로 엄습하는 일종의 기분, 이를테면 글루미 센티멘털이지요. 하하..
내가 늘 홍애님 흔들어 일깨우는 그 구호 있잖아요?
"그 날의 기분이라는 놈에 속지 말자'는.
이번에는 우리 홍애님 일깨우는대로 좀 싸돌아 볼까요? ㅎ
참, 홍애님.
동경서 도연이엄마랑 도연이 만나 회포들 푸셨는지?
조교수님 내외분, 속으로 아기 손주 부러워 하셨을것 같은데..ㅎ
***홍애(虹厓)***
2013.05.03 17:42
도연이 돌아가고 나서 한동안 집안이 정적 조용 고요 ~~~
생명력 넘치는 기는 아무래도 엄마 민정이에게서 받은 것 같아요
무슨 애기가 놀러 다니면서도 칭얼대는 일도 없고 전철에서는 잠을 자 주고
놀 떄는 확실하게 놀고 그래서 무척 부러웠던 아기의 생명력이었답니다.
우리들에게는 차츰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아기랑 다녀보니 알겠더군요
조선생은 하루 나갔다 오더니 뒷날은 쉬어 주어야 할 만큼 지쳤더랬구요
그러고 가 버려서 이제 저희는 둘만의 생활에 뭔가로 활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하고 있답니다 아무래도 남편은 자기 할 일이 분명한데 저로서는 매일 뭔가 마음에서 긍정을 불러오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 상태가 여전하다 보니. 문제라면 제가 문제에요
그래도 뭐 이것이 천성인가 하고 받아들이고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떨어지지 말자고 애쓰고 있습니다.
***동우***
2013.05.04 05:27
나는 알지요, 우리 홍애님의 가장 긍정적인 마음밭의 그림을.
책이 있고 글이 있는 풍경화.
그 좋아하시는 책(레미제라블은 독파하신겐지?)이 있고, 그 수려한 글빨을 가지신 분인데. (솔직히 근래들어 홍애님의 글빨 많이 풀이 죽었다오, 확연하게 느껴지는바..ㅎㅎ)
어쨌거나 그럽시다, 우리.
그날 그날 기분에 떨어지지 말기.
우리 벗끼리 이거 하나는 스스로 애를 쓰고 서로 격려합시다그려. ㅎㅎ
요즘 어수선한 한일관계.
나는 이제 아들놈 나와 있어 별 신경쓰지 않지만, 홍애님 계시니 좀...
우짜든둥, 서방님과 좋은 주말을..ㅎ
***홍애(虹厓)***
2013.05.03 17:42
근데 글자가 잘 안 보이는 폰트에요
제가 쓰면서 제 글자가 안 보여요 ㅠㅠ
***teapot***
2013.05.10 06:33
우선 이글부터 읽었는데 예전에 읽었을텐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전혀 깜깜 하다가도 생각나는 듯도 하고.....
암튼 잘 읽고 갑니다.
***동우***
2013.05.11 10:40
김동인의 감자.
언젠가 티팟님 분명히 읽으셨을거에요.
아니면, 영화로도 보셨을듯.
윤정희 허장강 주연의, 박노식도 나왔었지요.
-독서 리뷰-
[[김동인]]
<태형> <붉은 산> <광염소나타> <순정> <김소월을 논함> <동자삼> <약한 자의 슬픔>
<태형(笞刑)>
-김동인 作-
***동우***
2013.06.05 05:49
나로서는 처음 읽는 김동인의 '태형'.
이 역시 일제시대의 감옥을 배경으로 한 소설, 이광수의 '무명' (전에 포스팅하였음)'이 연상된다.
인간의 추악한 이기적 본성.
극한 상황에 갇히면 여지없이 노정(露呈)되고 만다.
그건 그렇고, 근대(1920년대)까지도 형벌에 태형(笞刑)이라는 징벌제도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구나
<붉은 산>
-김동인 作-
***동우***
2013.10.04 04:53
소박한 민족주의와 순정한 조국애.
1932년 발표한 김동인의 '붉은 산'
몇년뒤 대동아공영을 부르짖으면서 일본의 만주 침탈이 시작되었지요.
그 무렵 흰옷 입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가 어떠하였을는지.
흐음, 마냥 폄훼의 대상이 되는 김동인의 일련의 친일행각은...
내가 처음 남도땅(전라남도)을 밟았을때 '아, 우리나라 강토의 본색(本色)은 붉음이로구나'하고 진하게 느꼈더랬습니다.
유독 남도땅의 황토가 그토록 붉게 느껴젔더랬지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도 그런 얘기를 합디다)
'붉은 산'을 착취 당하여 헐벗은 조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겠지만.
외국에 사시는 벗님네들, 고국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실까..
***고향***
2013.10.07 02:14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들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떠올라요.
포항이나 제주도를 비행기로 갈 때 시골에도 아파트군락이 여기저기 있는 것을 보면서 놀랐어요.
인구도 준다는데 몇 십년후 저 시멘덩어리들의 괴물(?)들은 어떻게 될지...
전세로 유랑다니는 사람들도 떠오르고?? 서로 소통하는 마음들은 저 시멘덩어리처럼 굳지않기를...
그리고
동네마다 있는, 잘 가꾼 초록 산들과 산보다니는 사람들, 골목마다 흘러넘치는 음식점들이 떠올라요.
구비진,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그 골목들을 걷고 싶군요.
***동우***
2013.10.07 06:09
고향님.
고국하면 먼저 회색 아파트 군락이 떠오르신다니, 서글픕니다.
나도 아파트 살지만 이런 나라 드물겁니다.
우리나라 세대의 60%이상이 아파트에 산답니다.
사람냄새 나는 골목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단독주택의 부동산 가치는 똥값이지만 아파트는 투기의 대상. (나는 시장걷기 골목걷기를 좋아한답니다. )
그 반작용인지 서울 북촌이나 부산 산복도로가 각광을 받기도 합니다만.
<광염 소나타>
-김동인 作-
***동우***
2013.12.08 05:59
읽을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 잡지는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지.
대본점에서 눈치껏 빌려다 보는 '아리랑'과 '명랑'과 '야담과 실화'등등 ('선데이 서울'류가 나오기 훨씬 전의 얘기다)의 선정적 재미는 덜 여문 꼬마를 달뜨게 하였다.ㅎ
그리고 몇번 나오다가 말다가 한 해적판 잡지가 있었다.
일본것을 번역(주로 추리소설이었는데 당시에는 탐정소설이라 하였다)한 조악한 인쇄와 제본의 얇다란 잡지.
그곳의 소설들은 어린 놈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고 전율이었다.
공포,죽음,불쾌,불안,우울,광기,변태,괴기....
사랑하는 사람의 인육을 먹고, 썩어가는 시취(屍臭)에 활홀하게 헐떡이는둥...
거기에는 변태적 편집증과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온갖 악덕들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일종의 미(美)처럼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전후의 어떤 허무주의적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던지,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말 놀라웠다)
인간의 이상심리.
그곳에도 기괴한 탐미(耽美)의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
후에 '사드'의 책들, 더 나중 읽었던 '한니발 헥터'(양들의 침묵)따위에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
방화와 사체유희와 시간(屍姦)과 살인...
패륜적이고 엽기적인 범죄행위가 있어야만 그 흥분된 감정상태에서 천재가 드러나는 인물.
정신병원에 갇힌 천재를 생각하면서 노인은 눈물을 흘린다.
[새빨간 저녁 해에 비치어서 그의 늙은 눈에는 눈물이 반득였다.]
'광기의 천재'
그러나 김동인은 너무나 점잖게 썼구나.
취향에 접수되는 바, 이 작품은 소설적으루다 내게 한참 모자르다.
아마 김동인이 요즘 다시 썼다면 엄청 다른 플룻으로 썼을듯 하다.
그렇다고 나를 아주 이상한 놈처럼 보지는 말아주오.
'죽음으로라도 돌아오라 캐시!'라고 부르짖는 히스클리프가 그리 이상한 놈이 아닌것 처럼. ㅎ
<순정>
-김동인 作-
***서길수***
2014.12.12 06:12
사람 사는 모습이 자상히 그려집니다.
글이란 쓰기에 따라 아름다워진다는걸 잘보여 줍니다.
동우님께 고마움을~~
***동우***
2014.12.13 05:52
김동인은 참으로 여러 장르의 소설을 썼더군요.
소설 뿐 아니라, 동화나 수필 평론까지.
순정...
작금의 세상에서는 몽롱해져 버린 어휘입니다.
<김소월을 논함>
-김동인 作-
***동우***
2017.02.09 04:24
우리 또래, 성장하면서 가장 먼저 접한 시가 소월이었을테고 시적 감흥을 처음 느끼게 된 것도 소월이 아니었을까요.
천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우리 정서를 그처럼 잘 드러낸 시인이 달리 또 없지 싶습니다.
생각건대 우리 한반도의 사람이 아니라면 소월의 정조를 느끼기 힘들겁니다.
여러 외국어로 번역한 시들이 있을 터이지만.
현대에도 촌스럽지 않은 소월의 시어들.
김동인에 동감합니다.
<그 전편을 통독한 뒤에 독자의 머리에 걸리는‘통일된 감정’과 천근 같은 무게는 무엇인가. 마치 우리의 유년시대의 꿈과 같이 우리의 온 신경을 누르며 우리의 정열로써 숨막히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인가. 앨런 포오의 어떤 소설과 같이 우리로 하여금 신비적 공포에 몸을 소스라치게 하는 그 마력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여기에 소월의 승리가 있다. 수수께끼와 같은 연락 없는 말을 줄로 써놓은 듯하여도 읽은 뒤에는 독자는 그 신비적 공포에 도취한다.>
<夜半(야반)에 울려오는 人(인)의 통곡성과도 같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끼치게 하는 그 마력, 여기 소월의 승리가 있었다>
<순정한 조선 사람의 감정을 나타낼 만한 조선말은 시단상에 나타난 일이 없었다. 소월이 그 첫 길을 열어 놓았다. 소월의 시에 나타난 감정은 시골 과부들의 노래를 새로운 표현 형식으로 다시 나타낸 따름이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조선 재래의 민요 그것이었었다.>
<그리고 그 애조야말로 누누 수천 년간 鄕問(향문)의 부녀들에게 전하여 내려온 바 그 조선‘미나리’가 가지고 있는 그 애조에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소설 독특의 ‘희롱’이라고까지 형용하고 싶은 放奔(방분)한 서사 기술로써 적어 놓은 것이 소월의 시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조선 정조의 진실한 이해자요 조선 감정의 진실한 재현자요 조선말 驅馳(구치)의 鬼才(귀재) ─ 그것이 우리의 시인 소월이었다>
<조선 정조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고 조선 민중과 시가를 접근시킬 가장 큰 인물이다.>
<동자삼>
-김동인 作-
***동우***
2017.03.09 04:16
김동인은 여러 종류의 글을 쓴 작가입니다.
야담, 전설, 동화등...
동자삼(童子蔘), 이것도 야담에서 취재하였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영조(英祖)'라고 알고 있는 왕을 '영종(英宗)'이라고 표기하였네요.
'祖'는 나라를 세우거나 큰 국난을 극복하였거나 '반정'을 통해 왕에 즉위한 왕에게 붙이는 호칭이고, '宗'은 나라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 왕에게 붙이는 호칭이라는데.
생각해 보면 '영조'는 '영종'이 옳지 싶기도 하군요.
유전자로 친자 확인을 할수 없는 옛날, 개연성이 아주 없는 얘기도 아닐듯 합니다.
왕후장상 영유종호 (王侯將相 寧有種乎, 왕과 제후와 장수와 정승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라고 하지 않습니까 왜.
<약한 자의 슬픔>
-김동인 作-
***동우***
2017.04.27 00:05
1919년 발표한 김동인(金東仁,1900~1951)의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
세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한 세기 전의 소설이니 주제와 소재와 형식, 두루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질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보시면 시대와 생각이 읽히고 공감하는바도 없지 아니할듯.
김동인이 쓴 '문단(文壇) 30年의 자취', 텍스트 파일도 업어왔습니다.
뿌리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리오.
우리 현대문학의 태동과 시대적 부침에 따른 에피소드, 시방 접하는 현대문학 형식의 시원이라던가 명멸하다 사라져간 옛 문인의 흔적 엿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으리다.
근간 올리지요.
***동우***
2017.04.28 04:14
현대 소설형식에 익은 우리 눈에는 퍽이나 어설퍼 보이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전범(典範)도, 정립된 소설형식도 없었을때의 작품이란걸 감안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1919년은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해입니다.
그 시절, 엘리자베트라는 이름이라던가 가정교사, 병원이나 재판소같은... 확립된 근대적 사회 분위기는 좀 신기합니다그려.
***동우***
2017.04.29 00:55
이 전의 근대소설은 서술시점의 객관화(작품 속에 작가가 너무 드러나는등으로 리얼리즘의 결여)나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묘사에 있어서 하나의 형식 확립 없이 매우 엉성하였나 봅니다.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
소설의 구조적 시점 확보를 통한 새로운 문학 양식을 창출하였기 때문에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작금의 눈으로보면 어딘가 매끄럽지 못하고 어딘가 고리타분한 느낌은 어쩔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백년 전의 이 사연은 우리 현실에서도 익숙한 이야기.
똑똑하고 이쁜 신여성이지만 물정 모르게 순진하기만 한 강 엘리자베트는 일찌기 부모를 여윈 처녀입니다.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건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채 애만 태우다가, 가정교사로 있는 집의 돈과 권력있는 유부남에게 겁간을 당하고 임신 한 채로 쫓겨납니다,
재판정에 억울함을 호소해보지만 돈있는 남작이 고용한 변호사의 논리적인 반박에 끽소리도 못하고 물러날 밖에요.
그 충격으로 낙태를 하고 비로소 깨닫습니다.
약한 자의 슬픔, 표본생활 20년을.
여기서의 표본생활이라 함은 무얼 의미하는지.
여성으로서, 보여지는 삶, 봉건에 길들여 진 삶, 종속된 삶, 비주체적인 삶 같은 그런게 아닐까요.
낙태한 사산아의 핏덩이에서 느끼는 사랑에서 비롯된 각성.
그로써 획득하게 된 주체적 자아가 강한 삶의 다짐을 노래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사랑하라!’ (그는 기쁨으로 눈에 빛을 내었다.) 그렇다! 강함을 배는 태(胎)는 사랑! 강함을 낳는 자는 사랑! 사랑은 강함을 낳고, 강함은 모든 아름다움을 낳는다. 여기, 강하여지고 싶은 자는,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 자는, 삶의 진리를 알고 싶은 자는, 인생을 맛보고 싶은 자는 다 참사랑을 알아얀다. 만약 참 강한 자가 되려면은?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한다. 우주에 널려 있는 사랑, 자연에 퍼져 있는 사랑,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사랑! 그의 입에는 온 우주를 쳐누른 기쁨의 웃음이 떠올랐다.>
서사적 비약이 좀 심하게 느껴집니다만,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을테지요.
좋은 주말을.
-독서 리뷰-
<문단 30년의 자취>
-김동인 作-
***동우***
2017.05.01 00:07
'김동인'의 '문단 30년의 자취'
우리 문학 성숙기의 파노라마.
한세기전,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절.
작금의 나의 단서(端緖) 한조각 게 있을런지.
문학사 뿐 아니라 지난 한 시대, 삶의 자리를 들여다봅니다.
재미.
그리고 이해.
그래서 유익.
다섯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7.05.02 04:44
이름 귀에 익은 옛 文士들의 면모, 그 시절의 행각을 들여다보는 재미 쏠쏠합니다.
문단사(文壇史)는 뒤로 제치고. ㅎ
술과 여자.
식민지 지식인의 어떤 고뇌와 도피주의가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 당당한 기생오입은 부러움이올시다.
그런 나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면 그 또한 협량(狹量)입니다.ㅎ
'성매매금지법'이 제정된게 언제인지요.
생각건대, 젊은 머슴애들에게 일종의 로망의 이벤트로서 사창가가 존재하였던 우리 시절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겝니다.
내가 늘 뇌까리는 바, 역사를 살아 낸 정당성은 당시의 '삶의 자리'를 이해함으로써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36년, 나남없이 지사(志士)의 삶을 살지 못하였다고 비난할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작금의 인식 패러다임으로 옛 것을 재단하는 것은 분명 오류입니다.
나로서는 말입니다.
나는 절대로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대선에 나온 홍아무개.
45년전 돼지발정제 어쩌구하여 곤욕을 치루던데.
방금 검색하여보니 집단강간을 기도하여 저지른 것이라는군요, 미수에 그친. 그렇다면 그건 범죄입니다. 이 점 분명히 하여 덧붙입니다.>
나 젊었을 적 저 비슷한 이야기 숱하게 들었지요.
좋아하는 여자는 일단 깃발을 꽂아야 한다는.
그래야 비로소 내 여자가 된다는.
성의 개방시대 요즘과 달리 성적폐색 사회에서 보편편만한 그런 인식...
홍아무개의 얘기를 듣고 나는 대번에 김승옥의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요힘빈! 총각들은 최음제의 위력을 과도히 신앙한다. 그래서 그 약품이 총각들 간에서는 사랑의 매개물질로 간주되어 있는 법도 있다. 피강간(被强姦) 뒤에 으례 있는 처녀의 눈물도 그들에게는 공식적인 식순(式順)의 일구(一句)에 불과하다. 참 못마땅한 일이다. 도덕자연 하는 나의 이러한 언사가 도리어 못마땅하다고 할는지 모른다. 좋다. 우리들 총각들 간에는 도덕자연 하는 것도 위악(僞惡)의 품목에 참석할 수 있으니 나의 위악적인 이런 언사가 나를 우리의 본부(本部) 다방 <지하실>의 야단스러운 청춘 속으로 못들어밀 바 못 되노라, 에헴. 이런 논리가 나의 머리 위에 <비이트>의 월계관을 올려놓고 박수했다. -김승옥 '생명연습'->
하하, 본문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사설이었습니다..
***momo***
2017.05.03 14:15
동우님, 혹시 '탄실 김명순(1869~1951)'이라는 작가를 아시는지요?
1917년 춘원 이광수에 의해 등단한 소설가인데 김동인의 소설 '김연실전'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문단에서 유폐된 한국 여성 최초의 작가로 들었어요.
2016 <문예중앙> 겨울호에서 '여성혐오' 특집을 냈는데 거기 실린 문정희 시인의 '곡시(哭詩)'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어요.
'김동인'에 대한 이러한 평가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기나긴 시에서 두 부분을 떼어 옮깁니다.
-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타국에서 그녀는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조롱했다.
그것도 부족하여 근대 문학의 선봉으로 새 문예지의 출자자로 기생집을 드나들며 술과 오입의 물주였던 당대의 스타 김동인은 그녀를 모델로 '문장' 지에 소설 '김연실전'을 연재했다.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성폭력, 비열한 제2의 확인 사살이었다.
- 한국여성 최초의 소설가, 처음으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
평론가, 기자, 5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는 일본 뒷골목에서 매를 맞으며 땅콩과 치약을 팔아 연명하다 해방된 조국을 멀리 두고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소설 25편, 시 111편, 수필 20편, 희곡• 평론 등 170여 편에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를 처음 이 땅에 번역 소개한 그녀는 처참히 발가벗겨진 몸으로 매장되었다.
동우님, 저는 <김연실전>도 안 읽어 봤으니 잘 모르지만 문정희 시인의 시 한 편으로 말미암아 지나간 문단사의 한 부분이 드러난 것 같네요...
작년 초겨울에 문단네 성추문이 들끓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이 공교롭게도 이 큰 이슈를 막아주게 되었지요.
'다정도 병인양하다'는 게시글을 저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으나 문 시인은 아마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시기에 저런 형태의 시를 쓰신 것 같기도 하고요.
동우님께서 그 책을 아신다면 또 김연실이라는 작가를 아신다면 어떤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 여쭙니다^^;
***┗동우***
2017.05.04 00:15
모모님,
문정희 시인의 '곡시(哭詩)'에서 묘사된 김동인.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 '문단 30년의 자취'에서도 짙게 느끼시겠지만 김동인의 안티 페미니즘, 남성중심주의적 고루한 사고방식은 아무리 그 시절이라지만 지독한 바 있지요.
이 글 본문에 나오는, 김탄실에 대한 것뿐 아니라 일엽이나 춘강에 대하여 혐오스럽게 묘사한 것 보면 알쪼 아닙니까?
김동인은 모던여성(신여성)에 대한 모종의 컴플렉스가 있었던겐지.
<이 중학동 시절에 望洋草(망양초) 金明淳(김명순)(혹은 김탄실 양)이 <매일신보> 기자로 며칠 들어갔다. 이것이 여자 신문기자의 맨 처음이었다.
망양초는 ‘남편 많은 처녀’라는 일컬음을 듣던 사람으로서 일찌기 동경유학 때에 몇 남편을 경유한 것을 비롯하여 귀국해서는 임노월을 경유(김원주 보다 먼저다) 하고 유방 김찬영을 경유하고 그 뒤 서울서 처녀과부로 지내던 터이었다. 따라서 딴 수입 없이 지내노라니 매우 곤핍하였고 들리는 평판에는 안서며 상섭이며 萬壽(만수)들이 식지 움직여 혹은 하숙으로 찾고 혹은 함께 산보를 청하고 했으나 정절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는 보증치는 않는다.
망양초라는 사람은 뒷날 내 소설(「金姸實傳」(김연실전))의 주인공이라고 세상에서 추정하는 사람으로, 그의 오라비와 내가 소학 1년생 때의 동창생이었던 관계로, 본시부터 지면이 있었고 내가 패밀리 호텔에서 놀아날 때에 곁방에 있던 김유방의 리베로 몇 번 보았고, 그 전에는 임노월의 리베로 대한 일이 있어서 좀 쑥스러운 데도 불구하고 얼굴 붉히지 않고 나를 대하였다.
뒷이야기지만 그는 매일신보사에 며칠 있다가 퇴사하여 한때 독일 유학 가겠다고 독일어를 배운다고 김 모(현재 한국민주당의 효장이요 당시 좌익운동의 거물)를 찾아다니다가 사제간 이상한 관계가 생겨, 그때에 그의 또 다른 친구(남자)와의 사이에 삼각관계에 격투까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뿐 아니라 모모님.
김동인은 병명할 여지 없는 친일파입니다만, 그가 쓴 '반역자'에서는 자신의 친일행적에 대한 변병이 가득하지요.
이 글에서도.
그러나 모모님.
나는 인간성 일반이 그러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일생 일관된 고답적(高踏的) 자세로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지만.ㅎ
한 인간을 하나의 모습으로서 단호하게 규정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나는 박정희를 한켠 존경하고 한켠 혐오합니다.
그에게는 혁명도 있고 친일도 있고 이념도 있고 독재도 있고 자부(慈父)도 있고 팔난봉도 있지요.
이 연재 끝내고 '김연실전'과 '반역자'도 올립지요.
모모님 말씅으로 그럴 생각이... ㅎ
***동우***
2017.05.04 00:21
모모님도 말씀하셨지만.
김탄실을 비롯하여 일엽이나 춘강등, 신여성들을 폄하는 김동인의 어조는 매우 거북합니다.
그 옛날 일엽은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으로 당시 젊은이들을 매혹시킨바 있는데, 이 글에서는 무슨 졍욕의 화신처럼 묘사하였습니다그려.
방인근.
나 소년적에는 '벌레먹은 장미' 류의 도색작가로 알고있던 사람이구요.
하하, 한살이 삶이 그러합니다그려.
momo
2017.05.04 17:03
어제 긴 댓글에 답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참으로 옛 글 특히 소설에 대한 식견이 높으신 것 같아요.
책을 아무리 읽는다고 해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서 블로그 어깨너머로 내다보고만 가네요...
여기 귀한 자료들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흔적을 좀 남기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자주 오는 형편은 아니지만,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동우***
2017.05.05 00:31
모모님과 같은 독자 있어, 나야말로 감사.
그리고 모모님.
공부도 없고 궁구도 없는, 딜레당뜨 어름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
무슨 천착함도 사유의 깊이도 없이, 그냥 느낌으로 끄적일 뿐이랍니다.
식견이라니요.
부끄럽게시리. ㅎ
***동우***
2017.05.04 00:25
김동인의 평양, 그리고 대동강.
작금의 대동강은...
김동인의 변명.
김동인의 자부심.
김동인의 바람...
내일 마지막 분 마치고.
***동우***
2017.05.05 00:24
김동인의 '문단 30년의 자취'
자유연애나 여성해방 따위를 폄훼하여 안티 페미니즘의 농후한 경향.
그리고 <일제 말기의 친일 행위는 민족 해방을 위한 결단이자 고육지책, '조선어와 조선 소설'을 지키기 위한 체제내적 저항 행위>라고 미화한 김동인.
자신의 친일행적에 관한 당위는 구차한 변명같습니다.
그러하더라도 '문단 30년의 자취'는 우리나라 근대 문단사의 기록으로서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조의 잔영 짙은 당시, 남성중심 사회 속에서의 부잣집 도령.
순문학과 예술지상주의를 코끝에 걸면서도 그의 처세는 별로 순수하지는 못하였지요.
그러나 나는 그가 살아 낸 그의 '삶의 자리'로서 용납코자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명정 사십년'의 재미로움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어쩄거나 김동인은 빼어난 문재(文才)의 훌륭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춘원연구(春園硏究)'를 읽어보면 그의 비평의식도 사뭇 예리하지요.
자연이거나 인간이거나.
팔자라던가 성격이라던가 생각이라던가 관계라던가.
明이 있으면 暗도 있는 법.
안티 페미니즘의 여성관과 친일행적에 대한 변명
앞에서 모모님과도 얘기한 望洋草(망양초) 金明淳(김명순)을 모델로 하여 쓴 '김연실전', 그리고 '반역자'를 연이어 올리겠습니다.
***momo***
2017.05.16 23:29
동우님... 저는 페미니즘 트로이카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에 대해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춘원이 극찬했다는 김명순의 <의심의 소녀>를 읽으셨나요?
1917년 <무명>을 발표한 이광수가 최초의 근대소설작가로 불리지만, 같은 해 발표한 김명순의 작품을 두고 최초의 여성근대소설작가로 일컫는다는데 문단에 유폐된 것 때문에 우리는 이런 천재를 모르고 살아온 것일까요?ㅠㅠ
혹시 나혜석의 <경희>라는 소설도 아시는지요?
***┗동우***
2017.05.17 04:05
김명순의 '의심의 소녀'
모모님의 김탄실 언급으로 읽어보았습니다.
내 깜냥으로는 그녀의 천재가 확 만져지지는 않았습니다만 근대 여명기의 그때를 생각하면 역시.
나혜석의 '경희'도 있는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나혜석도 많은 글을 남겼더군요.
참, 모모님.
스마트폰, 구글앱 '한국문학모음' 검색하여 내려받아 보시지요.
저작권에서 벗어난 (public domain) 수만편의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보고랍니다.
춘원 김동인은 물론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의 전 작품이 모두 있습니다.
나도 김탄실을 거기서 읽은 것입니다.
텍스트 파일 '드래그 앤 카피'가 아니되어 좀 아쉽지만.
-독서 리뷰-
[[김동인]]
<김연실전> <반역자> <포플러> <어떤날 밤>
<김연실전>
-김동인 作-
***동우***
2017.05.06 04:25
김동인의 '김연실전'
두 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탄실 김명순(1869~1951)
요전 포스팅 '문단 30년의 자취'에서 김동인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학동 시절에 望洋草(망양초) 金明淳(김명순)(혹은 김탄실 양)이 <매일신보> 기자로 며칠 들어갔다. 이것이 여자 신문기자의 맨 처음이었다. 망양초는 ‘남편 많은 처녀’라는 일컬음을 듣던 사람으로서 일찌기 동경유학 때에 몇 남편을 경유한 것을 비롯하여 귀국해서는 임노월을 경유(김원주 보다 먼저다) 하고 유방 김찬영을 경유하고 그 뒤 서울서 처녀과부로 지내던 터이었다. 따라서 딴 수입 없이 지내노라니 매우 곤핍하였고 들리는 평판에는 안서며 상섭이며 萬壽(만수)들이 식지 움직여 혹은 하숙으로 찾고 혹은 함께 산보를 청하고 했으나 정절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는 보증치는 않는다. 망양초라는 사람은 뒷날 내 소설(「金姸實傳」(김연실전))의 주인공이라고 세상에서 추정하는 사람으로, 그의 오라비와 내가 소학 1년생 때의 동창생이었던 관계로, 본시부터 지면이 있었고 내가 패밀리 호텔에서 놀아날 때에 곁방에 있던 김유방의 리베로 몇 번 보았고, 그 전에는 임노월의 리베로 대한 일이 있어서 좀 쑥스러운 데도 불구하고 얼굴 붉히지 않고 나를 대하였다. 뒷이야기지만 그는 매일신보사에 며칠 있다가 퇴사하여 한때 독일 유학 가겠다고 독일어를 배운다고 김 모(현재 한국민주당의 효장이요 당시 좌익운동의 거물)를 찾아다니다가 사제간 이상한 관계가 생겨, 그때에 그의 또 다른 친구(남자)와의 사이에 삼각관계에 격투까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내 소설 '김연실전'의 주인공이라고 세상에서 추정하는 사람'.
세상에서 추정하는 사람이라니.
자신은 김연실이 김탄실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겐가요, 김동인의 교활함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김연실은 출신도 교양도 문학적 깊이도 없는 단지 신여성이라는 헛바람든 성적 방탕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김연실전'의 후속편인 '선구녀;와 '집주름'에서도 일관되게.
그 시절 '명예훼손'과 같은 개념이 없었던지요.
이번에 모모님의 언질로 알았습니다만.
얼마전 문정희 시인은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 '곡시(哭詩)'라는 시를 써서 그녀를 추모하며 분노하였더군요.
일부만 덧붙입니다만(모모님 댓글에서), 검색하여 그 시 전문(복사가 안되더군요)을 한번 읽어보시기를.
++++
-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타국에서
그녀는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조롱했다.
그것도 부족하여 근대 문학의 선봉으로
새 문예지의 출자자로 기생집을 드나들며
술과 오입의 물주였던 당대의 스타 김동인은
그녀를 모델로 '문장' 지에
소설 '김연실전'을 연재했다.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성폭력,
비열한 제2의 확인 사살이었다.
++++
후편 마친후 다시.
***동우***
2017.05.07 06:29
자신의 주위에 실존하고 있는 지인(知人), 그것도 젊은 여자를 이토록 정신적 도덕적 육체적으로 결핍되고 비뚤어진 인물로 그린 김동인.
김탄실 뿐 아니라 여기 등장하는 송안나는 나혜석을 빗댄 것이라지요?
‘신여성’에 대한 왜곡된, 김동인은 '신여성'에 대하여 무슨 원혐(怨嫌)이라도 있는듯 합니다. ('문단 30년의 자취'에서 보아하니 김동인은 마누라에게 버림받더구만요)
부잣집 도령으로 여필종부라는 봉건적 사상에 젖어있던 사람.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작가적 의식으로는 용납하기 힘듭니다.
김연실이라는 인물이 소설적 가공 캐릭터로 읽힌다면 얼마든지 이해될수도 있으련만.
당시 선각자연하는 사이비 여성 지식인을 반어적으로 풍자한 소설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ㅎ
그런데 노골적으로 실존인물 김탄실을 빗대고 있으니 작가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노정되지 않을수 없습니다그려.
이 소설 '김연실전'의 후속작(3부작)인 ‘선구녀(先驅女)'와 '집주름(복덕방의 옛말이지요)'에서 그 다음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김연실은 귀국 후에도 여류문사연(머릿속 든 건 하나도 없으면서)하면서 여러 남자들과 문란한 성놀음을 벌이다가 결국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셋방을 얻으러 다니다가 이제는 복덕방 영감쟁이가 된 옛날의 일본어교사(맨처음 김연실의 정조를 유린한)를 만나, 몰락한 남자 여자는 서로 눈이 맞아 살림을 차리게 됩니다. (옛날엔 부동산 거간꾼이라면 일없는 자의 소일꺼리였답니다)
내일은 김동인의 '반역자'를 올리겠습니다.
춘원 이광수의 친일행적에 대한 일종의 변증(?)이라던데, 연이어 올릴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과 비교하여 읽어보면 느낌이 재미로울런지...
대선일, 이틀후로 다가왔네요. (난 사전투표를 마쳤습니다.)
두루, 國運이 트였으면 좋겠습니다.
연휴의 끝물입니다.
좋은 휴일을.
<반역자>
-김동인 作-
***동우***
2017.05.08 07:02
김동인의 '반역자'
춘원 이광수 임에 틀림없을 '오이배'.
더불어 이 소설에 김동인 자신의 '변증'이 녹아있음직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한번 생각해 봅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 이르기 전.
카이로 선언을 예측하였던, 志士중에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확신할수 있었던 사람 몇이나 있었을까요.
내가 뇌까리는 '삶의 자리'라는 것이 그러합니다그려.
김동인은 저 때(아래의 글) 마음 속으로, 진실로 춘원에게 자살을 권고하였던걸까요?
아래의 글은 엊그제 올렸던 김동인의 '문단 30년의 자취'에서 따 온 글입니다.
++++
<이광수는 그때 자하골 산장에 홀로 있고 문안 자택에서 매일 조반 저녁을 배달하여 먹고 있던 중이었다.
그날은 늦은 가을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문이 연해 덜컥 열리면 이광수는 달려가서 문을 닫고 다시 와서 나와 마주 않고, 이러한 가운데서 나는,
“壽(수), 富(부), 貴(귀)를 일생의 복록으로 꼽는데 그대 나이 50이니 이미 수에 부족이 없고 그대 비록 재산이 없으나 부인이 넉넉히 자식 양육할만한 재산이 있으니 부도 그만하면 족하고, 춘원 이광수라 하면 그 명성이 이 땅에 어깨를 겨눌 자 없으니 귀 또한 족하다. 이제 더 ‘수’를 누리다가 욕이 혹은 더해지겠고 지금껏 쌓은 공이 헛 데로 돌아갈지도 모르겠으니, 그대의 수를 50으로 고정시켜서 그대의 뒤가 헛 데로 안 돌아가도록 함이 어떠냐?”
고 그의 가슴 찔리는 말을 하였다.
그때 춘원은 난감한 듯이 연해 한숨만 쉬며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한 시간 기다리라고 약속한 택시는 시간이 되었다고 싸이렌을 뚜우 뚜우 울리어서 나 나오기를 채근하고 있었다.
나는 종내 몸을 일으켜 택시로 나왔다. 춘원은 따라 나와서 택시를 붙잡고 서서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한숨만 쉬고 있다. 한 시간 가량을 이렇게 서 있다가 종내,
“내 잘 연구해서 좋도록 처리하리다. 백씨께 그렇게 말씀드려 주시오.”
하고야 택시를 놓아주었다.
이광수가 그때 어떤 上申書(상신서)를 재판소에 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상고심 재판까지 올라가서, 이광수는 온 책임을 자기가 뒤집어쓰고 자기는 자기의 잘못을 통절히 느낀다는 성명을 하고,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이 2천만 동포를 진정한 천황의 적자가 되도록 하기에 여생을 바치겠노라는 서약을 하여, 5개년 간 끌던 ‘동우회’사건은, 모두 무죄의 판결을 받았다.
내가 그때 춘원에게 권고한 바는, 춘원이 온 ‘죄’를 홀로 쓰고 수, 부, 귀 그냥 지닌 채 자살해 버리라는 것이었다. ‘자살’이란 말을 노골적으로 꺼내지 못하여 춘원으로 하여금 내 말 뜻을 잘못 해석하여 一蓮托生 (일련탁생)식의 전향을 성명케 하여 춘원을 실질적으로 우리 민족운동 사상에서 말살케 한 것이다.
춘원은 재판소에서 전향을 성명한 이후 그의 성격상 표리가 다른 언행을 할 수 없으므로, 진정한 일본 천황의 적자가 되고자 노력하였다. 아직껏 꺼리고 피해 오던 일본인과의 연회에도 자주 나가고, 총독부 출입조차 자주하고, 大和同盟(대화동맹)의 간부로 지방 강연도 자주 나가고, 집에서는 일본옷으로 일본식의 생활을 하며, 이러한 생활에 적합한 이론까지 꾸며내어 글로 발표하며ㅡ 지금껏 청년계의 사표로 추앙받던 춘원이 홱 돌아서서 청년사상 악지도자로 표변하였다.
학병, 징병 등을 위하여 강연을 다니며 천황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말라고 부르짖던 춘원ㅡ 그가 과연 예전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라고 외치던 춘원의 후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춘원의 성격은 어디까지든 충직하였다. 겉으로만 부르짖고 속으로 딴 꿈을 꿀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지라 솔선하여 창씨개명도 하였고 대담스럽게 황국신민이 되라고 부르짖기도 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당시 춘원의 말을 따라서 지금껏 원수로 여기던 일본을 조국, 모국이라 생각을 돌렸던가?
당년 춘원의 전향으로 무죄 석방이 된 40여 명 동우회원은 모두 해방된 내 나라에 자기네들이 바칠 충성을 강구하고 있지만, 춘원은 오직 60의 늙은 몸을 효자동 구석에서 그래도 붓대는 놓을 수 없어서 외로운 심경으로 붓대를 희롱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건대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젊은이가 일본 제국주의의 철봉 아래서 춘원의 덕으로 피하게 되었는가? 춘원이 서둘러서 막지 않았다면 일본의 성난 제국주의는 얼마나 많은 피를 이 민족에게 요구하였던가?
그러나 춘원은 이를 막기에 급급하여 ‘民族魂(민족혼)’을 일본에게 넘겨 준 것이다.
춘원 전향의 일부 책임을 면할 수 없는 나는 지금 ‘민족 반역자 처단법’에 걸리어 있는 춘원을 보기가 민망하기 짝이 없다.
춘원이 나에게 향하여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너 때문이라고 질책할지라도 나는 변명할 아무 말도 없다.>
++++
내일은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을 을리겠습니다.
나는 김동인의 몽롱한 관념보다 채만식의 '삶의 자리' 그 리얼리즘을 사랑합니다.
<포플러>
-김동인 作-
***동우***
2018.01.29 04:24
김동인의 '포플러'
이 작품을 나는 높게 평가하렵니다.
40년 동안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천진스러운 삶을 살아 온 최 서방.
마누라를 구해주겠다는 주인의 암시에서 비롯되어, 홀연 정욕의 화신이 되어 버립니다.
끔찍한 성범죄.
결국 사형으로 최후를.
남자의 성욕은 분출하는 화산인지요.
성매매특별법 따위로는 다스려질수 없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집창촌의 순기능을 역설하기도 합디다만.
<어떤날 밤>
-김동인 作-
***동우***
2018.02.09 04:23
우연히 마주친 상류층 일본녀와의 하룻밤 정념.
설마 김동인 자신의 '어떤날 밤'은 아닐테지요.
알렉세예비치 부닌의 단편 '일사병'에서도 낯선 여인과의 하룻밤을 그리고 있지만, 아침에 홀연히 떠나버린 여자의 빈자리를 더듬으면서 남자는 미칠것 같은 상실감에 젖습니다.
그와는 차원이 틀린 어떤날 밤.
시쳇말로 원나잇 스탠드.
오입을 당한 오입장이.
자칭 대감, 입으로는 오입장이 체면 똥칠했다고 씨부리지만 속으로는 '그런 행운 다시한번'을 뇌였을테지요.
어린 시절 북촌은 내 나와바리.
요즘도 서울가면 주로 북촌에서 술을 마시지요만 내게 그런 행운은 언감생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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