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이동하]] -1- (1,4,3,3,1)

카지모도 2020. 5. 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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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동하]]

<그는화가났던가> <매운눈꽃> <성가신죽음> <지붕위의산책> (낯선바다>

 

 

<그는 화가 났던가?>

-이동하 作-

 

***동우***  

2015.05.16 04:55

 

이동하' (李東河, 1942~ )의 '그는 화가 났던가?'

심야버스, 미친듯 달리다가 갑자기 급제동을 겁니다.

공포와 비명.

승객들은 이마를 찧고 통로에 나뒹굽니다.

운전사를 타이르고 애원도 하였다가 욕을 퍼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승객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없이, 보안경에 얼굴을 가린채 바위처럼 완강하게 버티고 앉아 로보트처럼 핸들과 패달과 브레이크를 조작할 뿐입니다.

 

운전기사는 화가 나 있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무사히 도착하여 보안경을 벗은 그의 모습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그저 맥빠지고 꾸적꾸적한 얼굴이 하나>였을 뿐입니다.

 

폐쇠된 공간, 불신과 적대감, 반항과 순복.

이 소설을 사회적 정치적 알레고리로 읽어도 무방할듯 싶습니다.

 

갈수록 제 위치에서 완고한 기능적 매커니즘.

 

닫힌 공간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들 끼리의 정(情)이나 연민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버스, 그 옛날 어린 여자 차장.

+++

나는 왜 그러는지 세상이 자꾸만.. 짠하고.. 증오심 다음은 측은한 마음뿐이고... 아무리 보아도...그것은 수평이 아니다... 승강구 2단에 서서...졸고 있는 너를 평면도로 보면... (황지우의 시 부분)

+++

 

완고할 때는 완고하게 단호해야 할떄는 단호하게. 

으흠, 그러나 나는 한낱 센티멘탈리스트입니다.ㅎ

 

 

<매운 눈꽃>

-이동하 作-

 

***동우***

2016.08.17 03:00

 

이제는 원로작가로 불리우는 이동하(李東河, 1942~ )의 자전적 소설 '매운 눈꽃'

2012년도에 발표한 작품이라니까 (나와 5년의 층이 지는 연배인) 이동하가 똑 지금의 내 나이때 쓴 소설이로구나.

 

과거를 돌아보는 고희(古稀)의 눈길은 관조일런가 애수(哀愁)일런가.

그때, 시대가 결핍하여 발끝은 시렸지만 가슴은 지금보다 뜨거웠을까.

 

<온통 결핍뿐이던 그 시절에 말, 즉 언어야말로 우리가 소유한 것들 중에서 가장 넉넉한 자산이었고, 우리의 공통 관심사 역시 그것을 특별하게 부리는 작업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도무지 돼먹잖은 세상을 상대로 그렇게밖에는 달리 참견하고 시비할 방법을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미아리 언덕배기(서라벌 예대) 문청(文學靑年)의 가슴은 과연 뜨거웠을런지. (돈암동 전차종점, 미아리고개, 정릉천변..아, 그 일원은 나의 소년에게도 낯 익은 곳이다)

 

그러나 연애는 참으로 어쭙잖았어라.

한마디 까칠한 언어(饒舌)에 스스로 굴절되어 지레 주눅들어버리는...

저따위가 사랑이라니.

 

그렇지만 그러하다.

오로지 파토스가 불타오르는 운명론적 사랑이란 지상(地上)의 이야기가 아니거늘...

 

<그녀에게 나의 시집은 무엇이었나? 어쩌면 선희는 거기서, 내 안 깊은 동토에 얼어붙어 있는 저 눈꽃 같은 것을 찾아냈던 게 아닐까? 오랜 세월동안 내가 헛되이 그 존재를 부인하려고 애썼던 그 매운 눈꽃 말이다.>  

 

그대여, 후제 낫살 들어 알리라.

문득 기억 속 깊은 동토에 얼어붙어 있는 저 눈꽃 같은 것이 마음에 떠오를때... 그것이 그것이었음을.

 

<내 몫의 인생을 온통 잘못 살아왔다는 때늦은 회한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남의 인생까지도 온통 그르치게 했는지 모른다는 뼈아픈 자책감 때문이었다. 그랬다. 그런 통증 속에서 나는 또, 양날의 검처럼 때로는 말 한 마디가 우리의 사랑을, 그리고 인생을 뿌리째 학살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을 어금니로 짓씹고 있었다.>

 

오늘 아내의 일흔번째 생일.

혹여 나로 인해 당신을 그르쳤느냐.

그래도 아내여.

저 안쪽 어딘가에는 빙벽에 박힌 눈꽃처럼 어느 순간 정지한 사물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얗게 남아있을 것이다.

버석거리는 우리 마음에도...

나보다 오래 살라.

늙은 아내여.

 

 

<성가신 죽음>

-이동하 作-

 

***동우***

2018.01.08 04:52

 

이동하(李東河,1942~ )의 '성가신 죽음'

우리 일상에서 범상하게 마주치는 일들,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길.

명확하고 간결하게 묘사한, 원로작가의 노련한 글솜씨입니다.

 

지금은 집에서 초상치르는 집은 거의 없을겝니다만, 한 2십여년전만 하더라도 동네에 장의사는 꼭 있었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관을 세워서 운구하는 경우도 접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장례.

하나의 생명을 이승에서 떠나보내는 절차.

죽은 자의 영혼을 기리고 산 자의 슬픔을 위무하는 엄숙한 제의.

친족이나 지인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그 앞에서는 숙연한 마음과 경건한 몸짓은 예의이며 도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덧 파편화된 삶의 질서에 길들여졌습니다그려.

기능적 삶의 양상에 있어서 마냥 성가신 주검의 처리.

 

나의 주검 또한.

어쩌면 그대의 주검도.

 

 

<짦은 황혼>

-이동하 作-

 

***동우***

2018.01.09 04:17

 

어제에 이은 작가, '이동하'

'짧은 황혼'

 

1997년 발표된 소설이라니까 그 때 작가는 50代의 나이.

아직 늙지 않았던 작가인데, 어떤 노추(老醜)의 느낌으로 쓴 에피소드였을까.

 

그렇지만 아닐겁니다.

아파트 단지, 경로당의 범상한 늙은이들.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연민은 따뜻하고 애틋합니다.

 

짧은 황혼.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앞뒤좌우 할 것 없이 시멘트 벽들로 각지게 차단된 눈앞의 좁은 공간이 묽은 주황빛으로 일순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저 위쪽에다 거대한 장명등이라도 막 내건 것 같았다. 뒤돌아보니 방안이 온통 주황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일몰의 순간은 허무하리만큼 짧았다. 다시 창 밖을 내다 보았을 때는 이미 꺼멓게 죽어가는 빛깔이었다. 눈앞의 공간이 상자 속처럼 음험해졌다.>

 

윤여정이 몸 파는 여자(65세 바카스 할머니)로 나왔던 '죽여주는 여자'에는 이중의 함의(含意)가 있습니다.

남자에게 베푸는 성적 쾌락으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

그리고 고통스러운 말년을 종결지어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은 절망적인 늙은 목숨들을 끊어주지요)

 

늙은 섹스를 다룬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도 있었군요.  

 

아, 내 늙어보니 늙음은 추한 것이 아닙니다.

늙어보지 않은 젊은 것들 눈에 때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요.

 

젊은 것들 늙어보지 못하였지만, 늙은이들 왕년에는 젊어보았었지요.

 

 

<지붕 위의 산책>

-이동하 作-

 

***동우***

2018.04.26 00:32

 

어느덧 원로가 된 작가 '이동하 (李東河,1942~ )'

지붕 위의 산책.

 

핫바지 방귀 새듯 슬쩍 직장을 빠져나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거리를 허적허적 배회하는 사나이.

불치병 판정을 받고 절망적인 심사로 방황하는 것도 아니고 왠 情婦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럴거라고 사람들은 대충 추측하지만.)

어쩌면 부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사회 아버지의 초상, 그 메타포인지도 모르지요.

 

그 이유도 결과도 작가는 가르처 주지 않습니다.

그건 독자가 알아서 느끼라는가 보지요.

 

아내는 그렇게 의미없이 배회하는 남편을 미행하다가 문득 지난 밤 꿈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경사진 지붕위에 올라가 있는 남편.

 

<"당신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곧바로 대꾸를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그가 한참 만에야 어눌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냥... 바람이나 좀 쐴려고..."

그가 발을 옮겨딛을 때마다 기왓장이 파싹파싹 부서져서 경사진 골을 타고 뜨락으로 좌르르 좌르르 흘러내렸다.

그랬다. 지난밤의 꿈은 분명 그런 것이었다.>

 

겉으로는 범상한듯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균형과 일탈의 경계에서 위험한 곡예을 하는 우리의 삶...

일상의 틈새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지붕 위의 바이올린.

급한 경사의 지붕위에서 아슬아슬 균형을 잡으면서 바이올린을 켜는...

다이스포라의 삶....

 

 

<낯선 바다>

-이동하 作-

 

***동우***

2018.04.27 00:31

 

며칠전 업어 온 이동하 소설집 텍스트 파일.

계속하여 몇편 올리겠습니다.

 

낯선 바다.

어제 올린 '지붕 위의 산책'에 나오는 주인공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남편.

어느날 느닷없이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아내에게 이혼을 선언합니다.

앞 뒤 맥락도 없이...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말입니다.

직장(아내의 형부가 사장인)에 가 알아보니 회사 여직원과 바람을 피운 전력이 있다고 합니다.

사장인 형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위로하지만 남편의 결심은 확고합니다.

 

가족회의.

 

<남편 기주는 그 준열한 논고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입을 꾹 다문 그는 눈마저 감은 채 끝까지 대꾸 한마디 없었다. 분위기가 숙연하였다. 단지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이 뒷전에 앉아 쿨적거리기만 하던 중3짜리 딸애가 돌연 외치듯이 선언하였다.

"아빨 너무 욕하지 마세요. 그게 왜 나빠요? 그 여잘 더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전 생각해요."

그렇게 선언한 다음 그 애는 제 어미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성희로서는 가장 가슴 뭉클했던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 기주는 보통때처럼 집을 나섰다. 역시 딸애와 함께였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전에 없이 커다란 가방이 하나 들려 있어 좀 긴 출장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성희는 베란다 창 너머로 그들 부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선 급한 대로 꾸린 가방의 품목을 그녀는 곰곰 헤아려보는 중이었다.>

 

아빠를 변호하는 중3짜리 딸아이, 그리고 그게 가슴 뭉클한 아내.

다음날 아침 큰 가방을 들고 떠나는 남편, 딸과 함께.

아내는 그 가방 속에 두루두루 잘 챙겨 놓았는지 곰곰 헤아려 봅니다.

 

이건 무슨 영문인가요.

생활형태를 변화시켜 보려고 몸부림치는 남편에 대한 깊은 공감인가요.

 

평상과 일탈.

우리 일상 속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실존적 상황....

 

그건 그렇고....

10시간 후 판문점에서는 남북회담이 열립니다.

 

북녘 어느 모롱이 죽어갔을 내 아버지.

나는 늘 그렇습니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이런 이벤트, 마음겨워 눈물이 납니다.

모쪼록 잘 되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