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이동하]]
<땀> <네개의배역> <문앞에서> <물풍선던지기> <노크도없이문이열리더니> <내안의슬픔>
<땀>
-이동하 作-
***동우***
2018.04.28 06:47
이동하의 '땀'.
고독사(孤獨死)한 독거노인.
장노인은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일듯 싶습니다.
작가는 충직한 개에 대하여 얘기하고자 함이 아닐겝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이 왜 '땀'일까요.
해체된 가족... 외로운 죽음.
그 배후, 역사의 폭력.
어제 판문점 회담.
허리 동강나 피 흘린 상흔, 분단의 치유.
고이고이... 조심조심...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지요.
그런데 고독사하는 연령층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 스며있는 또 다른, 이 시대의 폭력성...
<네 개의 배역>
-이동하 作-
***동우***
2018.04.29 04:56
이동하의 '네 개의 배역'
사장인 철이 아빠와 군대동기인 그의 운전사 석이 아빠,
아이들 노는 모습을 전망 좋은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는 철이 엄마와 그 집 어둑어둑한 지하방에서 바라보는 석이 엄마.
그리고 유치원생인 철이와 석이.
소설에 등장하는 배역은 여섯인데 제목에는 왜 네 개 뿐일까.
남자 어른 둘을 제외하고 그렇다는 것인가요.
철이아빠와 석이아빠 사이에는 모종의 갈등이 섞인 대등한 관계이고 두 엄마 사이와 두아들 사이에는 일종의 하이라키 구도가 엿보입니다.
사회적 계층 사이에는 여러가지 유무형의 불평등한 억압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그 책의 함의(含意)는 심오합니다.
불평등을 자연의 이치로서 용납할수 있는가의 문제(自然法)를 생각해 봅니다.
이를테면 사자와 영양의 관계는 불평등하기 그지없습니다.
왜 사자는 잡아먹고 영양은 사자에게 잡아먹혀야 하는 신세로 태어난건가요.
약육강식의 동물계에서는 자연법으로서 인정할수 밖에 없는 불평등이 있는 것이지요.
인간계에서 보자면 신체적 불평등 역시 자연법적으로 용납할수 밖에 없는 불평등이라 할수 있을겁니다.(정상인과 불구자, 건강한자와 질병에 걸린자, 금수저와 흙수저, 미녀와 추녀, 브래드 피트와 스티브 부세미... 천재와 바보도 범주에 들런지)
허지만 부나 권력등, 인문적으로 만들어진 불평등은 인간의 본성으로서 수긍할수 없는 불평등입니다.
어느 놈은 금수저 어느 놈은 흙수저 물고 태어났는지, 어느 놈은 인삼뿌리 씹고 어느 놈은 무시(무의 영남 사투리) 뿌리 씹는지... 세상에는 투정과 한숨이 끊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불평등을 당연시 여기고 순치되고 고착화하는 사회적 기제가 작동한다는 것이지요.
축적된 인류 문명이나 제도나 관습과 같은 것에 의하여.
왕과 신하, 양반과 상놈, 영주와 농노가 그러하였습니다.
현대에 이르러는 법이나 제도나 관습에 의하여도 그런 기제는 작동합니다.
계약(약속)이나 동의나 용납에 의하여.
돈이 휘두르는 불평등(호텔과 쪽방, 샥스핀과 라면...), 권력이 행위하는 불평등(정책과 민원...), 勞(부림받는 자)와 使(부리는 자), 상급자와 하급자, 정규직과 임시직, 감정노동자와 고객등...
그로 인하여 철이엄마와 석이엄마와 같이 감정모체에 굳어진 불평등. (더욱 큰 비극은 어린애들에게 그런 불평등적 관념이 상속된다는 점...)
이른바 甲질.
인문적 불평등을 자연법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당연한듯 억압력을 행사하는...
대한항공 조씨 일가.
딸이 그렇더니 그 어머니가 내지르는 그 고함소리는 정말 끔찍하더군요.
갑질이라기 보다 그건 정신병리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 같습디다만.
여담.
세습으로 이어지는 절대왕조 북한.
거대한 동상으로 굽어보는 수령님은 신과 다름없습니다.
그 불평등은 하늘과 땅 차이와 같습니다.
그제 판문점 남북회담.
티브이의 어느 장면에서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문대통령에게 하는 말.
"우리 남편께서...'
남편이라는 그 어휘.
수령님이라거나 위원장님이 아닌 '남편'이라는 그 호칭. (제 남편을 남편이라 부르는 그 당연하고도 당연한 것이..ㅎ)
계산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그 한마디의 어휘에서 북한 변화에 대한 어떤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북한은 필경 중국과 베트남을 모방하여 개혁개방으로 갈겁니다.
북한과 달리 집단 지도체제인 중국과 베트남.
1인 우상화로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걸 김정은은 깊이 깨닫고 있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神의 자리에서 김정은은 차츰 내려올 것 같습니다.
적화야욕의 발톱을 숨키고 어쩌구.... 하는 보수주의 정객들.
자신의 우상화된 붉은 체제로 남측을 집어 삼킨다?
그게 가능할듯 싶습니까?
체제보장이라던가 경제발전이라던가 자신의 생존에 대한 야욕은 있을런지 모르겠으되 김정은스스로 적화(赤化)의 가능성을 꿈꾸는 그런 야욕은 애저녁에 물건너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적화야욕, 그 낡아빠지고 상투적인 슬로건이 작금 세계에서 절대 통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남한과 북한,
경제력 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무엇하나 적화될 여지는 없습니다.
인력(引力)의 크기가 근본적으로 다르니까요.
내가 나이브한건가요?
지나치게 낙관하는건가요?
<물풍선 던지기>
-이동하 作-
***동우***
2018.05.16 00:32
'이동하'의 '물풍선 던지기'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인간과녁으로 사람들에게 물풍선을 맞아가며 재수생 아들을 뒷바라지 하는 아버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매맞아주는 퇴물 권투선수 최민식 나오는 영화도 있었지요>
아버지가 모범생으로 믿고있는 아들녀석은 빌빌대는 놈팽이, 어느날 공원에 놀러와서 아버지의 얼굴에다 대고 물풍선을 던집니다.
<"고놈이 날 알아본 거여. 암만 분장을 했다 쳐도 새끼가 지 애비를 몰라볼 거여? 고놈이 빤히 알고서도 역부러 그랬단마시. 허허... 허허... 나가 어디 왕창 모잘라서 무단히 그라고 다닐랍디어? 자식이 웬수여 웬수! 허허... 허허...">
나는 열심히 술을 권할 뿐입니다.
술 취한 그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 어둠을 향해 전진합니다.
연민의 위무.
쓸쓸함끼리의 연대입니다.
80년도 어느 5월, 항도(港都)의 서정.
도회의 변두리 따라지 인생들, 바람과 갯비린내, 그리고 질척한 선창의 포장마차.
목포에 오래 머문적은 없지만 목포도 그 시절 여기 부산과 많이 비슷하군요.
광주의 오월. 장애인들을 돌보면서 함께 사는 소망원 원장... 같은 것들은 그런 분위기와 어떤 연관이 있을런지...
<문 앞에서>
-이동하 作-
***동우***
2018.05.28 23:35
'이동하'의 '문 앞에서'
열지 못하는 문.
관계끼리의 빗장, 무릇 기하일까.
낫살로 깊게 느껴지는 소설,
세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8.05.30 22:42
닫힌 문.
그 문 앞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내와 자식.
그럼 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관계로 규정된 존재.
그러나 관계의 틀 밖에서 서로 외로운 존재인식.
진작 칠십 고희를 넘어선 아버지와 오십 지천명을 코앞에 둔 아들.
과거의 파편을 공유한 부자지간,
그러나 서로의 문 안으로 들어갈수는 없습니다.
이 소설, 6.25의 상흔에 대한 것도 있지만 꼭 그런것만도 아닌듯 합니다.
都農간, 세대간, 모든 관계간에 존재하는 空洞...
문 앞에서 서성이는 남루한 존재의 모습.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문 밖에서'라는 제목의 희곡이 있지요.
전쟁의 비참함, 변모된 인간관계, 죄의식....
그처럼 적나라하게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아니지만.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더니>
-이동하 作-
***동우***
2018.07.18 04:23
'이동하'의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더니'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느닷없이 맞닥뜨리는 뜻 모를 폭력.
흉포한 분노와 절망.
<"유서를 쓰려니가 정작 쓸 말도 없더라구요. 그것두 참 웃기는 거 아닙니까?"
"신고하면 죽일 거야! 누구든 죽여버릴 거란 말이야!"
"나두, 안다구, 알아! 그러니까 날 좀 내버려두란 말이오! 제발 그냥 좀 놔두란 말이오! 그러면 알아서 할 거라구!">
세상을 향한 청년의 적의의 내용이나 폭력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상처입고 우리를 뛰쳐나온 짐승 한마리.
처음에 나교수는 당황하였지만 종장에는 그 낯선 분노에 동화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해가 떨어지기까지 오랜 시간 나교수는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었다. 간신히 가방을 챙겨 들고 연구실을 나서자 돌연 가슴이 미어지게 뜨거워지면서 뒷덜미가 뻣뻣해졌다. 상처 입은 짐승이 따로 없었다. 자신이야말로 오늘, 다시는 치유할 길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 '묘지로 가는 길'이 떠오릅니다.
피프삼이라는 사나이의 절망과 분노.
절망하는 하나의 실존이 오직 자신의 언어로만 세상을 향하여 퍼부어대는 분노...
<내 안의 슬픔>
-이동하 作-
***동우***
2018.08.02 23:29
'이동하'의 '내 안의 슬픔'
<"쟤가 불쌍해서 그래."
"그래도 자꾸 눈물이 나."
"무지 이뻐! 헌데 말이야, 걔를 보고 있으면 왜 자꾸 슬퍼지냐? 툭 하면 눈물이 나...">
나 또한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만, (어느덧 하나 둘 세상을 뜨는) 학교동기들 상청에서 바짓가랑이 젖을 정도로 울지는 않습니다.
그대는, 안에 고여있는 슬픔이 어느 때 벅차 오르더이까?
아니 그대 또한 그대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슬픔이 있을진대, 무엇이 그것들을 억누르고 있더이까.
내 유년의 어느날, 창밖으로 한낮의 햇살이 작열하던 텅 빈 행길.
그때 홀연 북받처 올랐던 슬픔을 나는 기억합니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슬픈 것들.
우연과 필연으로 교직된.
부대끼다 병들고 늙어 이윽고 죽어....
울음이 되어 터져 나오는 존재론적 슬픔.
이제 늙어 억병으로 술이 취해지지도 않는데 나, 어찌 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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