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계용묵]] (1,4,3,3,1)

카지모도 2020. 8. 1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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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계용묵]]

<희화> <별을 헨다> <상환> <백치 아다다> 

 

 

<희화(戱畵)>

-계용묵 作-

 

***동우***

2016.07.09 21:11

계용묵(桂鎔默, 1904~1961)이 1940년 발표한 소설 희화(戱畵)

그야말로 한편의 희화를 보여줍니다.

 

작가와 평론가인 두친구.

오랜동안 서로 숨겨온 자신들의 불순한 내면적 동기를 누설합니다.

상대방에 있어서 그것은 치명적인 실존적 상처입니다.

 

창 밖의 어둠 속엔 가랑비 소리가 여전히 보슬보슬, 정암의 최후를 재촉합니다. .

 

***송현***

2016.07.12 22:27 

당시만 해도 순수한 이성들입니다

저러한 행태.

제가 오랜 세월한 곳, 인사동에서는 이미 정당화된 거래랍니다

죽은 사회지요 ㅋㅋ

 

***┗동우***

2016.07.13 01:06

아하, 송현님.

인사동에도 저런 상투적 관행이...

 

그래도 송현님.

그 배후에 예술혼이야 연연하게 이어져 살아있을겁니다.

소녀같은 송현님의 감성으로도..

 

"마른 잎은 굴러도 대지는 살아있다." ㅎ

 

***momo***

2016.07.15 08:28

계용묵 하면 「구두」밖에 모르는데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두에 빗소리가 아주 드라마틱하네요. 구둣발처럼 청각적 이미지를 잘 표현하신 듯해요.

이분의 다른 글도 그런지 궁금합니다.

 

eunbee님 방에서 건너왔는데 읽을 자료가 많아서 북카페 같아요.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우***

2016.07.16 04:16

반갑습니다.

은비님 댁에서 낯익은 모모님.

 

징 박은 구둣발 소리에 쫓기듯 도망가는 여자, 죽음의 사신의 발자국처럼 보슬보슬 끊임없이 속삭이는 가랑비 내리는 소리..

정말 청각적 이미지가 글에 녹아있는듯 합니다.

계용묵은 '백치 아다다'로 잘 알려졌는데 그 소설에서도 그런 부분 있나 한번 살펴보고 싶군요.

 

모모님께서 어쭙잖은 이 곳을 북카페같다고 하시니 뿌듯합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작품의 본문 대부분을 삭제 하여 속 빈 강정이 되었지만.ㅎ

 

은비님 친구라면 내 친구.

친구신청하였습니다.

 

***┗momo***

2016.07.16 13:51

앗, 「백치 아다다」 깜빡했는데,

언제 도서관에 가서 찾아 봐야겠지만

그런 부분을 발견한다면 진짜 흥미진진하겠어요.

계용묵, 염상섭, 나도향, 양귀자 등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이네요^^

 

책박사님, 친구 신청 감사합니다!^^

 

 

<별을 헨다>

-계용묵 作-

 

***동우***

2016.08.31 10:18

계용묵(桂鎔默,1904~1961)의 '별을 헨다.'

 

별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

암담하고 아득한 심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세는 별헤아리기입니다.

 

해방직후.

해방과 더불어 원망(願望)하였던 독립에 대한 기대는 좌절되었습니다.

남북분단으로 남북 왕래는 차단되고, 궁핍과 혼란과 무질서 속에 귀환자(歸還者)와 월남자(越南者)는 몸 뉘일 곳도 없습니다.

 

뻔뻔스럽고 과감하게 시대를 헤쳐나가는 철면피적 용기.

그런게 어쩌면 진정한 역사의식으로 존재하는 삶의 자세일런지...

 

소심해 빠진, 그나마 양심적인 먹물 든 사람들은 패배주의에 젖은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이나 헤아리지 별수 있으리까.

내가 저런 처지였다면 똑 저러했을겁니다.

 

이소설은 황석영이 뽑은 한국 명단편 101중 하나입니다.

아래는 황석영의 해설입니다.

 

++++

<정처를 잃고 헤매다>

-황석영-

 

1945년 초 제2차 세계대전 승전연합국들의 얄타협정에서 신탁통치안이 협의되었고, 몇 달 뒤 포츠담선언에서 한반도를 삼팔선으로 분할해 남에 미군이, 북에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종전 처리하는 걸 약정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삼팔선은 애초에 작전 편의상 구획했던 군사적 임시조치에 지나지 않았으나 미·소 양 진영의 냉전이 세계화하면서 정치·군사적 분단선으로 고착되었다.

우리 식구는 만주 장춘에 살다가 해방되면서 귀국하여 어머니의 친정인 평양에 일단 짐을 풀었다. 내 기억도 그 즈음에서 시작되는데 모란봉이 건너다 보이는 전차 종점 부근의 어느 적산가옥 이층에 살았다. 아래층에는 소련군 장교 부부가 살았는데 가끔씩 부인이 나를 데리고 들어가 음식을 해 먹이곤 하였다. 어머니는 그녀가 날생선이나 아마도 캐비어일 듯싶은 통조림 알을 얹은 비스킷을 내게 먹여 배탈이 날까봐 염려하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시내 번화가에 양장점을 냈는데 소련군 장교나 하사관 부인들이 와서 원피스며 블라우스를 맞추어 입곤 했다. 누나들과 나는 퇴근하는 어머니를 마중하려고 전차 종점에 나가서 기다리곤 했다. 어머니가 일본식 생과자를 사들고 반기며 돌아오던 기억이 남아 있다.

모란봉 아랫녘에는 크고 작은 한옥 기와집들이 높낮이에 따라 층층이 들어 앉았는데 우리 집 이층 창가에서 보면 셋째 이모네 집 마당이 건너다 보였다. 우리는 창가에 모여 섰다가 밥상을 들고 부엌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이모를 보고 목청을 합쳐 외치곤 했다. 이모오, 라고 부르면 그녀가 오오, 하면서 손을 흔들어 반기던 광경이 떠오른다.

아침에는 아버지와 함께 모란봉에 올라가곤 했고 늘 앉아 쉬던 판판한 바위가 있었는데, 나중에 방북했을 때 나는 그 바위를 찾아내고 정말 반가웠다.

아버지는 직장을 잡으려고 애를 쓰다가 드디어 북보다는 남으로 내려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외할아버지는 3·1운동 때는 지역 대표로, 일제말에는 신사참배 반대로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목사였고 개화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비롯한 자식들에게 신식교육을 받도록 했고 일곱 남매 중에 일본 유학을 했던 이가 넷이나 되었다.

그들 중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형제도 있었다. 큰이모는 학생운동 중 만주로 도피하여 항일연군에 들었다가 군복 차림으로 귀국했고, 넷째 이모는 메이지 법대를 나와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는 군간부였다. 일본 유학을 했던 막내 외삼촌도 북측 정부에 참여했다.

그러나 둘째딸인 어머니를 포함하여 의사였던 큰외삼촌과 교사였던 셋째 이모네 식구들은 월남했다. 어머니의 회상에 의하면 내가 다섯 살 무렵인 1947년에 우리 식구는 넷째 이모부가 해주까지 차편을 내주어 삼팔선을 넘을 때만 이틀쯤 고생하고 곧 개성 피란민 수용소에 와서 남한 입국 절차를 치렀다고 한다.

내가 삼팔선을 넘던 기억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들꽃이 가득 피어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가던 것이다. 멀리 앞쪽에 륙색을 멘 누나 둘과 아버지가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부르지 말라고 일렀음에도 같이 가자고 외쳐 부르곤 했다. 누나들은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들꽃을 따서 한묶음씩 쥐고 걸어갔다.

개성 피란민 수용소에는 만주에서부터 북한을 거쳐 온 일본인 귀국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보다 더 고초를 겪어서 의복도 거지 차림이었고 아이들이 각종 전염병으로 죽어갔다. 울타리 가녘에 파묻은 작은 무덤들과 들꽃을 꽂은 사이다병이 놓여 있던 게 생각난다.

서울에 와서 집을 찾아 다니다 남산 밑의 어느 일본식 집에 세들었는데 여기서 우리 식구는 남에서 살림을 시작할 정착자금을 도난당하고 비교적 조건이 나았던 영등포 공장지대로 가서 작은 집을 샀다. 일본 유학을 했던 어머니는 취직했고 아버지는 시장에 점포를 열면서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해방 기간의 작품들을 고르면서 안회남에 이어 만주에서부터 귀국하는 과정을 쓴 허준의 ‘잔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중편소설이어서 제외시켰다. 그 외에도 해방 시기 대학가의 좌우익 갈등을 다룬 이근영의 ‘탁류 속을 가는 박교수’, 만주의 신경에서 압록강변의 안동까지 귀국하는 피란민을 그린 김만선의 ‘압록강’, 북한 농촌의 토지개혁 과정을 다룬 이선희의 ‘창’, 그리고 이번에 소개하는 계용묵의 ‘별을 헨다’ 등이 이 시기를 그리고 있다.

‘별을 헨다’는 1946년에 발표되었고, 해방 직후 남과 북에서 동시에 생활터전을 상실한 사람들이 그 어느 쪽도 딱히 자기의 거처를 정하지 못하고 떠도는 상황을 기록영화의 몇 장면처럼 그려낸 소품이다. 이러한 난민의식은 나중에 군사정부가 들어서서 1970년대의 근대화 개발을 진행하고 있을 때까지 전국민을 지배하고 있던 위기의식이었다. 그것이 한강 이남의 대대적인 개발의 출발점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서른 남짓의 주인공은 해방을 맞아 환갑인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유골을 파내 만주에서 인천항을 통해 귀국했다. 원래 아버지 고향인 이북으로 가고자 했으나 삼팔선에 막혔다. 무일푼인 화자는 집을 구하지 못해 산에 초막을 짓고 밀가루떡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귀국선에서 만난 친구는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다시피 해서 집과 세간을 마련하지만 성정이 바른 화자는 그의 권유에도 차마 그러지 못한다. 남한에서 살길을 찾지 못한 모자는 그래도 고향이라고 이북행을 택하는데, 가던 길에 삼팔선을 넘어 서울로 오고 있는 옛 고향사람을 만난다. 이북 사정도 남한과 다르지 않다는 걸 전해들은 모자는 망연자실해진다. 해방 직후 정처 없이 떠도는 귀국 교포들의 신산한 삶을 이북 사투리에 실어 표현한 이 작품은 민초들에 대한 진한 연민을 자아낸다.

계용묵은 1930년대에 썼던 ‘백치 아다다’ 한 편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작가다. 1903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출생했고 본명은 하태용이다. 조부 몰래 상경하여 휘문고보를 다니며 김안서의 소개로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했으나 중도에 다시 낙향했다. ‘조선문단’을 통하여 단편소설 ‘상환’으로 등단하고 ‘최서방’ ‘인두지주’ 등을 발표했다. 일본에 가서 동양대학 철학과에서 수학하다 집안의 파산으로 귀국했다. ‘백치 아다다’ ‘병풍에 그린 닭’ ‘신기루’ ‘희화’ 등을 연이어 발표했는데 주로 단편소설을 많이 썼다. 다작은 아니었지만 묘사가 정교하고 구성이 깔끔하여 압축된 절제미를 보여준다는 평판을 받았다. 정비석과 잡지도 창간하고 김안서와 출판사도 설립하여 운영했다. 1·4후퇴 때는 제주도에 피란 내려가 월간지 ‘신문화’를 창간하기도 했다. 1961년에 서울에서 사망했다.

내 어머니는 언제나 서울을 임시 거처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이사 다닐 때마다 낡고 퇴색한 아버지의 가죽가방을 품에 안아 옮겼는데, 그 안에는 옛날 사진이며 편지들, 떠나온 고향의 집 문서나 매매계약서 따위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어느 따스한 봄날에 어머니는 그것들을 마당에서 모두 태웠고 나는 그녀의 등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는 아직도 대륙의 끝자락 언저리를 고물고물 떠돌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

 

 

<상환>

-계용묵 作-

 

***동우***

2017.11.06 01:16

계용묵(桂鎔默,1904~1961)의 '상환(相換)'

 

남의 마누라를 겁탈하여 함께 야반도주하고, 마누라를 빼앗긴 사내 또한 그 마누라와 한날 한시에 사라져 버리는.

허황한 이야기이지만 가볍게 읽히지 않습니다.

경과나 내막을 세세하게 들려주지 않아, 오히려 그 절제(節制)가 서사를 돋보이게 하지 싶습니다.

 

<이 일이 난 후에 홍득은 아내를 찾으려고도 아니하고 “세상이란 이렇구나.” 하고 픽 웃었다.>

 

저와 같은 유유자적함, 요즘 우리 표면적 정서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인간성에 저런 에토스가 없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그려.

 

....현실이 이러하니, 내 어이할꼬.

 

수긍은 아닐터이고 일종의 체념, 현실을 인정하는...

아내를 빼앗긴 처용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백치 아다다>

-계용묵 作-

 

***동우***

2017.11.09 04:13

계용묵의 대표작 '백치 아다다'

리딩북에 진작 올렸겠거니 하였었는데, 어라? 이걸 빠뜨렸군요.

 

백치 아다다.

돈이야말로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라는 본능적 인식.

돈과 맞짱을 떠서 이기다니, 아다다는 가히 슈퍼우먼이올시다. ㅎ

백치와 광인일지언정 돈을 쓰레기처럼 저리 내다버리기는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돈 앞에서는 나와 남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호모 모니쿠스(?ㅎㅎ)로 순치되어, 인간성 속에 집단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을테니까요.

 

아, 돈 돈 돈.

그 어여쁜 돈 돈 돈.

늙어빠진 나 또한 갈망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