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스티븐 킹]] (1,4,3,3,1)

카지모도 2020. 8. 16. 20:28
728x90

-독서 리뷰-

 

[[스티븐 킹]]

<금연주식회사> <쇼생크 탈출> <향수의 사다리> <예루살렘 롯>

 

 

<금연주식회사>

-스티븐 킹 作-

 

***동우***

2013.07.06 04:48

 

영화나 공포영화를 좋아하시는 사람이라면 아마 스티븐 킹(1947년생 나와 동갑)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겝니다.

 

스티븐 킹.

이 냥반의 샘물과 같이 솟아나는 집필력(상상력과 구성력과 문장력)은 가히 절륜(絶倫)과 가공(可恐) 바로 그것입니다.

좀 과장하면 자신의 나이만큼 책을 쏟아냈을걸요. <그리고 세계 영화사(映畵史)에서 그의 소설만큼 영화화가 많이 된 사례가 없을거에요.>

그것(It), 불면증, 돌로레스 클레이븐, 다크타워, 샤이닝, 캐리, 캐슬록의 비밀, 미저리, 쇼생크 탈출...

더구나, 그 많은 작품중 범작(凡作)은 별로 없을겁니다. (나로서는 반 이상 읽어보았을겁니다만.)

게다가 등골 서늘한 서스펜스의 흥미진진한 맛과 더불어 ‘돌로레스 클레이븐’이나 ‘쇼생크탈출’처럼 문학적 감동 짙은 작품들도 없지 않구요.

나는 그의 가공할 글솜씨 한수 배우려고 그가 쓴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사다 읽었지만, 나처럼 천부적 범부에게는 족탈불급이더군입쇼.ㅎ

그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서 스티븐 킹은 실로 경이로운 작가가 아닐수 없습니다.

 

스티븐 킹의 다편소설 ‘금연주식회사’.

 

담배얘기 좀.

내가 처음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게 된게 중학 3년 쯤이었을 것.

어쭙잖게 되바라진 친구들 (요즘말로 '짱'에는 어림없었을 조무래기들...)과 어울려 낄낄 거리는 맛에 시작하여 시나브로 인이 박히게 되었지요.

끊기까지 근 40여년 넘게 계속 피워댔으니 내 끽연 연조(年條)도 상당히 깊은 것이었을겝니다.

금연을 시도한지 몇차례 되었지만 번번히 실패하였지요.(나약한 의지에 한숨이나 쉬면서.)

그러다가 2005년의 어느 봄날 아침, 마침내 그야말로 <홀연(忽然)>히 끊었답니다.

무슨 결연한 의지가 작용한 것도 아니고, 구체적 작정이나 계획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8년여 흘렀으니, 그리고 허공에 떠도는 담배연기가 혐오스러울 지경이니 이제는 금연에 성공하였다고 자신합니다.

이상한건 끊고 나서도 내게 금단증세가 아주 심각하지는 않았답니다.

 

나의 경우.

결연한 의지다, 금연 소문내기다, 은단이다, 금연초다 무어다 하는게 별 소용 닫지 않습디다. (내 친구 박상곤은 옛날 복음병원 금연학교에 일주일 가량 입소하여 금연코자 하였는데 한 반년가량 끊었나? 결국은 실패하였지요)

금연이란 마치 성령(? 감히 참칭컨대.)처럼 홀연 엄습하여 끊게 되는 듯 합니다.

육신 어딘가의 자율신경계가 무엇때문인지 금연을 절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금연의지와 서로 에스컬레이트되어 강력한 제어장치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애연가님들.

흉곽과 인후와 구강을, 그리고 주변을 시커멓게 오염시키는 담배연기.

거 심신신(心身神) 그 어디에도 도움될바 전혀 없다오.

 

스티븐 킹의 ‘금연주식회사’

모골이 송연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담배는 끊읍시다.

 

사랑하는 아내의 손가락 잘리기 전에. ㅎ

 

 

<쇼생크 탈출>

-스티븐 킹 作-

 

***동우***

2013.08.25 08:26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쇼생크 탈출' <원제(原題)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두번에 나누려다가 한번에 올립니다.

영화는 두어번 보았지만, 나도 소설은 오늘 아침 처음 읽었습니다.

 

스티븐 킹을 그저 절륜(絶倫)한 통속작가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무엇 한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장된 캐릭터와 극적 요소를 가미한 영화(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주연)에 비하여 소설의 감동은 다소 옅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희망과 자유.

결코 감옥(억압과 복종의 환경)에 순치되지 않는 ‘앤디 듀프레인’이라는 사나이.

 

좀 전 유 튜브로 모차르트(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가 감옥 마당 울리는 유명한 장면을 다시 보았습니다.

‘모건 프리먼’의 대사가 오버랩됩니다.

감옥의 높은 담장 넘어 높은 하늘에서 아름다운 새가 날아 가는 것 같은...

다시 보아도 감동적인 장면이었어요.

 

***eunbee***

2013.08.25 17:46

 

'쇼생크 탈출'하면 얼른 떠오르는 장면이 탈출에 성공한 앤디가 빗속에서 두팔을 벌려 하늘 향해 외치는 그 시원한 탄성의 몸짓.

사실 더욱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은 저 아리아가 들려오는 죄수들의 마당과 그들이 바라보는 담장너머 먼하늘이건만.

 

노래는 새가 날아가는 것 같은 게 아니라, 노래는 부르는 순간 수많은 새가 되어 날지요. 노래 부를 때 그런 생각하지요?ㅎ

'노래의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ㅋ

 

모건 프리먼, 항상 믿음직스럽고 중후하고 품위있는 그가 좋습니다.(그의 그러한 역할이라고 말해야?...)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란 영화를 보고는, 아, 저런 친구가 정말 필요한 친구구나, 했지요.

 

쇼생크 탈출의 마지막 장면의 혼잣말도 좋고... 배를 짓고 있는 앤디. 먼 바다 앞에 놓여진 새로 짓는 배.

그 희망이 또 좋았지요. 쇼생크 탈출이 스티븐 킹 것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답니다.

 

'바쁘게 살아갈 것인가, 바쁘게 죽어갈 것인가'

 

***동우***

2013.08.26 05:25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 몸(영혼)으로 맞으면서 두팔 활짝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 자유를 환호하는 그 장면.

정말 압권이었어요.

 

'모건 프리먼'하니까 대번 은비님 머릿 속 떠오르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은비님은 나와 통한다니까요.ㅎ)

백인 노파와 흑인 운전사간의 우정 (여주인공 제시카 텐디가 그 영화로 역대 최고령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는 기억), 얼마전 본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이라는 영화와 비슷한 설정이었지요.

거부 백인과 건달 흑인 돌보미와의 우정을 그린...

 

좀 전에 김영하의 '베를 가르다'라는 소설 포스팅하였습니다.

그 소설 올리면서 왕년에 발레를 공부하셨다는 은비님의 발이 문득 떠올랐지요.ㅎ

 

 

<향수(鄕愁)의 사다리>

-스티븐 킹 作-

 

***동우***

2015.09.20 00:33

 

절륜한 이야기꾼, 스티븐 킹.

상상력, 구성력, 문장력..

더불어 감동 또한.

실로 스티븐 킹은 가공할 재능의 작가입니다.

순수문학이냐 대중문학이냐 따위를 논하는 것은 적어도 스티븐 킹 앞에서는 무력해집니다.

 

꼬비에뚜님 댁으로부터 업어 온 이 소설.(꼬비에뚜님, 말미에 빠진 몇문장 채웠습니다)

공포소설이겠거니 하고 읽었다가....

그만 코끝이 싸아해지고 눈물이 비어져 나왔습니다.

 

건초더미가 밑에 있을거라고 늘 믿었던 누이 키티.

오라비 래리의 회한(悔恨)의 흐느낌이 가슴으로 전해지는듯 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느닷없이 옛 작가의 소설 한편이 떠올랐습니다.

‘박순녀’의 ‘영가(靈歌)라는 소설.

 

현실에서는 갈수 없는 땅. 가지 않으려는 땅.

북한.

잠들기 전, 南의 아버지에게는 언제나 북에 두고 온 소아마비 딸 정아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듣습니다. 그리고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정적 속에서 기도합니다. ‘정아야, 잘 자거라’... 그리고 아버지는 잠이 듭니다. 딸이 생각해 주기를.. "내게는 목숨처럼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고...

 

내게도, 우리에게도.

누이가, 어머니가, 딸이, 오라비가. 아버지가, 형이 <있었습니다>.

후기 자본주의 관계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곧 한가위 명절이 다가옵니다. .

<있었습니다>끼리 어울려 척박한 것들 좀이라도 서로 어깨 기대어 눕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도회(都會)는 시나브로 어두워 밤이 깊었습니다.

가을입니다.

 

***김인주***

2015.09.20 17:56

 

동우님 올려주신 이 소설.

박완서의 <아저씨의 훈장>을 다 읽었을 때 느꼈던 먹먹함이 다시 떠오릅니다.

여름을 보내면서 제 삶이 무척 바빠졌습니다. 

왠지 그러한 일이 동우님 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간, 제 정신을 차리고 여러가지 새로운 계획들을 구상하며, 할 일을 찾았다는 게, 어떻게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봄에 오랫만에, 한 2년만이었다 생각합니다만, 공항에 나갔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중요한 모임에 죄송스럽게도 참여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후로, 갑자기 바빠지고, 서울 혹은 육지 나들이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냥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좋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동우***

2015.09.21 04:51

 

목사님.

내 블친 은비님께서도 이 소설 그리 시큰하셨다는데 목사님께서도 먹먹하게 읽으셨군요.

고맙습니다.

 

매일이 막막한 사람으로서, 목사님 바쁘심은 그저 부러움이올시다.

내 탓이라시니, 호리라도 목사님께 자극이 있었다면 나로서는 큰 영광이고 큰 기쁨입니다.

진정으로.

 

목사님 연재하시는 역사 속의 오늘.

지식의 외연확장, 나 역시 목사님께 고마운 애독자랍니다.

 

 

<예루살렘 롯>

-스티븐 킹 作-

 

***동우***

2016.10.02 04:16

 

연휴의 엔터테인먼트..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 1947~ )의 소설 한편.

예루살렘 롯(Jerusalem's Lot).

우리 시대 가장 절륜한 이야기꾼 스티븐 킹의 공포소설입니다.

 

공포라는 감정은 결코 유쾌하거나 즐거운 감정은 아닐건데, 사람들은 왜 호러물을 즐기는걸까요?

글쎄요.. 난들 알겠습니까마는 나의 임상에 비추어 공포자체가 어쩌면 쾌락이기도 할거라는...ㅎ

 

일요일과 개천절인 오늘과 내일,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6.10.03 04:27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는지는 과문(寡聞)인 나로서는 알지 못합니다만. 스티븐 킹의 수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었지요.

공포물이나 스릴러물 뿐 아니라 쇼생크 탈출처럼 감동적인 것까지.

 

예수살렘 롯.

비밀스러운 세월의 먼지와 냄새가 떠돌고, 밀교(密敎)와 이단과 금기와 좀비와 악이 넘실대고 있는 공간.

 

벌레의 신비, 벌레의 비밀.

 

<"Yogsoggoth의 종복이신 이름없는 분이시여! 우주의 경계 밖에서 온 벌레, 별을 멸하고 시간을 눈멀게 하는 분이시여! 이제 충전의 시간이 왔습니다. 파괴의 시간이 도래하였습니다!">

 

주인공 찰스 분은 서서히 미처갑니다.

 

작가는 편지나 메모같은 기록물로 그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음산한 저택의 환경 속에서 발현한, 뇌막염을 앓고 있는 찰스 분의 과대망상이었다고 합니다.

커다란 쥐 한마리는 고택의 벽 속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살고 있었던가 봅니다.

 

그러나 미동북부의 뉴 잉글랜드지방 한켠에는 어떤 흑마술적인 분위기가 있을듯도 싶습니다.

캘비니즘 환원주의자들이 건설한 고장.

마녀사냥, 매커시즘...

아서 밀러의 크루서블, 호돈의 주홍글씨....

오소독스한 종교적 원리주의...

그 반작용으로는 더 무시무시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법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