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바니나 바니니. 순직한 영혼. 호수]] (1,4,3,3,1)

카지모도 2020. 10. 2. 21:07
728x90

 

-독서 리뷰-

 

<바니나 바니니> <순직한 영혼> <호수>

 

 

<바니나 바니니>

-스탕달 作-

 

***동우***

2014.12.13 05:16

 

스탕달 (Stendhal, 1783~1842)

발자크와 함께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오래 전 '적과 흑' '파므르의 승원'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로마 장안의 뭇 신사들이 목매는 귀족 처녀, 그리고 이탈리아의 비밀결사 카르보나리(Carbonari)당의 가난한 시골 청년.

이념에 목숨거는 남자와 사랑에 헌신하는 여자.

 

이와 같은 설정의 드라마, 참으로 많이 우려먹는 어찌보면 통속적인 주제입니다만.

얼마전 올린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한윤희의 마지막 편지구절->

오현우와 한윤희는 저 힘든 세월을 서로 용서하여 화해하였는데,

 

<그리고 신문에서는 그녀가 돈 리비오 사벨리 공작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바나니 바니니와 마시릴리의 뒷맛은 좀 쓸쓸합니다그려. ㅎㅎ

 

1980년대 당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되어 도망다니던 배기선(후에 민주당 국회의원)과 이대 성악과의 이경애(뮤지컬 서울 에비타)의 로맨스가 떠오르네요.

 

다음은 이문열의 해설입니다.

 

++++

<다른 가치와의 충돌>

-이문열-

사랑의 힘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라고 한 아가서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나 사랑은 만능이 아니며 때로는 다른 가치와의 충돌에서 패배하기도 한다.

사랑이 다른 가치와 충돌할 때 우리는 질타하거나 한탄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이 용서되었는가'라고.

'바니나 바니니'는 다른 가치와의 충돌로 비극적이 되고 만 사랑의 이야기다.

맹목적인 사랑의 논리를 따르면 여주인공 바니나의 사랑은 열정과 순진함에서 아무런 흠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힘과 지혜를 모두 동원해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카르보나리(숯구이당)인 미시릴리에게는 사랑에 우선하는 가치체계가 있다.

그것은 조국 이탈리아의 해방과 통일 및 독립이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비극이 예정된 것이었다.

하기야 그럴 때도 소설가들이 곧잘 쓰는 해법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우월한 가치를 위해 사랑을 희생함으로써 결과로는 그 가치의 무게까지 껴안은 보다 큰 사랑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승화시키는 길이다.

하지만 바니나는 끝내 미시릴리의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껴안을 수 없었고 그들의 사랑은 참혹한 결말을 맺게 된다.

그같은 결말은 일생 열정적으로 사랑을 추구했으면서도 사랑에 대해 다분히 냉소적이었던 스탕달식 사실주의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련된 사실주의의 눈으로 보면 그가 채택한 이른바 충격적 반전이 꼭 필요했던가 의문이 든다.

그것은 오래잖아 바니나가 돈 리비오 사베리 공작과 결혼을 했다는 후문을 전하는 구절이다.

그 구절로 그녀의 사랑은 다른 가치 앞에 더욱 참담하게 패배하게 되고 그녀는 사랑의 화신에서 영혼없는 세속의 여자로 전락하고 만다.

스탕달은 발자크와 함께 19세기 프랑스문학의 큰 봉우리로 손꼽히는 작가이다.

1800년 나폴레옹의 원정군을 따라 이탈리아로 간 경험이 그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바니나 바니니'도 그중의 하나다.

대표작으로는 '적과 흑', '빠르므의 승원'등이 있고 그밖에도 유명한 '연애론'이 있다.

++++

 

***eunbee***

2014.12.16 19:40

 

fkdhtm qldpdxldpsdptj dlrmfdmf dlfrrh Tmqslek.

gksrmfdl djqtdmsl rmsid ths rksmseofh enrmfu eneqslek.

sodlf wjsur qlgodrlfh ehfdkfkrugkqslek.

cndns rmrhteh rmfldnjwlsms wjsurdlfkqslek.gg

 

ajs skfkdptj dlstkfmf.^^

 

***동우***

2014.12.17 05:31

 

한글 먹히지 않는..

하하, 그럴줄 알았습니다.

 

은비님의 암호같은 알파벳 나열, 번역합니다.

 

<라오스 비엥티엔에서 이글을 읽고 씁니다. 한글이 없으니 그냥 손 가는대로 두드려 봅니다. 내일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려 합니다. 추운 그곳도 그리워지는 저녁이랍니다. 하하. 먼 나라에서 인사를, -그리고 눈인사->

 

라오스 다녀오신 분들, 산업자본사회의 도회지에서 도망가 단절되어 살고 싶은 곳이라고들 합디다만.

은비님 인천공항 내리시면 심신 모두 선뜻하실걸.

아열대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으로부터의 진입, 날씨와 더불어.

 

은비님으로서는 짧은 여행이지만 어떤 인상으로 여행기 풀어놓으시려나..

기다립니다.

 

***eunbee***

2014.12.17 10:02

 

dugod tlwkrskf tmakxmvhsmf wnstlfgoTdjdy.bb

rmfotj dlfjgrp Rkakrnsjfja...zz

 

dl ghxpfdps tjdiddlsemf aksgdktj rmskak dlfjs qkdqjqdfhfkeh ..

durtl ehddnsladms dhxkrk tjRduTekgoeh dlfrdjwntlspdy.

jdckvl durltjs dhwk skrwkeh qhlwl kdsgdmsl. rmsid.zz

 

ehddnsla.

rktj qhldjdy.

wkf dlfrdj wntutj kratkgkqslek.

dkssud.

durlsms wlmra dkcla 8tl.

 

***동우***

2014.12.18 05:13

 

번역.

 

<여행 시작날 스마트폰을 분실했어요.ㅠㅠ

그래서 이렇게 까마귀얌...ㅋㅋ

이 호텔에 서양인들이 많아 그나마 이런 방법으로라도..

역시 동우님은 오타가 섞였다해도 읽어 주시네요.

어차피 여기선 오타도 낙자도 뵈지 않으니 그냥. ㅋㅋ

동우님.

가샤 보ㅑ야요.(그냥 보세요인가, 번역 불가)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여기는 지금 아침 8시.>

 

그러니까, 은비님.

키에 한글 표시없는 자판을 두드려 한글조합을 만든다는 말씀이겠는데.

아무리 손가락의 기억이라도 놀랍습니다.

아무튼 영특하신 분.

 

한반도는 오늘도 한파랍니다.

비행기 내리자마자 콜록이지 마시고, 두둑하게 입고 오시우.

 

 

<순직한 영혼>

-폴로베르 作-

 

***동우***

2014.05.23 04:37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 1821~1880)는 처음 올리는 것 같습니다. (텍스트파일 업어다 놓은 '보바리 부인' 있는데 너무 길어.. 언젠가 함께 읽어요]

 

노르망디, 브레따뉴, 도빌, 퐁 레베크...

벗으로 인한 데자뷔..

 

성선설, 성악설...

선한 품성은 천래적(天來的)인 것인지.

어떤 특이 유전자의 발현인지.

마냥 착한 사람을 보면 마냥 착하지 못한 나는 이상하게 서러움같은게 밀려옵디다.

 

구원받을 자는 태고로부터 결정지어졌다는 칼뱅의 예정의 교의(敎義)..

흐음,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느 구원파 교주 유아무개와 저 '펠리시테' 둘 중, 살아서는 누가 하나님의 사람이고 죽어서는 누가 천당행 특급열차를 탈까요? .

 

죽음으로 떠나는 것들,

부모와 테오도르, 빅토르, 비르지에,그리고 앵무새, 오뱅부인...

펠리시테는 땅바닥에 엎드려 웁니다.

 

부잣집 소녀 로라는 가난한 집 아이의 주검 앞에서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립니다. ('캐더린 맨스필드'의 소설 '원유회')

"이런 모자를 쓰고 와서 미안해요."

 

아무런 혈연 관계도 없는 사샤에게 쏟는 올렌까의 모성 (체홉 '귀여운 여인')

 

사랑하는 용이기 곁에 있어 착하디 착한 월선이의 임종은 행복합니다, (박경리 '토지')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착한 삶은 스스로 숭고(崇高)하여 무여한(無餘恨)이올시다.

우리, 평화로운 죽음을 위하여 모쪼록 차카게들 삽시다.

 

다음은 이문열의 해설입니다.

 

++++

<단순하고 소박한 영혼의 궤적>

-이문열- 

성장소설이 언제나 진지하고 심각한 깨달음만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속된 시간으로서의 삶을 다루고 있고 나름의 눈뜸과 성장의 과정을 담은 것이라면 성장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프로베르의 '순직한 영혼'은 지금까지와는 유형을 달리하는 성장소설이 된다.

'순직한 영혼'은 펠리시테란 하녀의 일생을 요약하여 기술하고 있는 중편이다.

제목 그대로 단순하고 소박한 영혼의 궤적을 절제된 묘사로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시간의 흐름은 그녀의 눈뜸이나 성장으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의 변화로만 나타난다.

불행하게 끝장이 난 첫사랑으로부터 주인집 남매, 조카로 이어지다 마지막에는 앵무새에게로 옮아가는 그녀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덧없음과 더불어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가슴 저리게 느끼게 된다.

체홉과 모파상에게는 불경이 될지 모르지만 무엇인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영혼, 혹은 상처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랑의 열망이란 점에서 '귀여운 여인'과 ‘여자의 일생'을 아울러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중학시절부터 소설을 습작한 플로베르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간질과 유사한 병을 앓게 되면서 문학에 전념 하였다.

'보라비 부인'으로 프랑스 당대 최고작가라는 칭호를 들은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칩거생활을 즐겼다.

친구의 누이동생의 아들, 모파상은 그가 만년에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

 

 

<호수>

-슈토름 作-

 

***동우***

2013.08.03 04:34

 

<이미 유리창으로 달은 비쳐오지 않는다. 주위는 어두워졌다. 그러나 노인은 여전히 손을 포갠 채 안락의자에 기대앉아서 정신없이 방안을 둘러본다. 그를 에워싼 저녁의 어두움이 그의 눈앞에서 차차 넓은 호수로 변해 간다. 시커먼 물이 점차 깊게 멀리 멀리로 펼쳐지고 노인의 눈에는 거의 다다를 수 없으리만큼 먼 수면에, 넓은 잎 사이에 끼인 흰 수련이 외로이 떠 있다...>

 

넓은 호수의 수면 위 외로이 떠 있는 수련..

늙은 라인하르트, 노인의 눈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과 애틋한 첫사랑의 그림....

 

늙은 내게는 어떤 그림이 남아 있어 가슴 한구석 아련할까.

 

명사적(名詞的) 구상화(具象畵)는 떠오르지 않는다.

내 가슴 속 어딘가, '아름다운'이라던가 '애틋한' 따위 형용사적(形容詞的) 추상화(抽象畵)만이 아련하게 남아있어 어여쁘고나.

어여쁜 시절 내게도 있었거니. ㅎ

 

다음은 이문열의 해설.

 

++++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영혼의 낙인>

-이문열- 

같은 샘물이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벌이 마시면 꿀이 된다. 또 같은 나무라도 강남(양자강 남쪽)에 심으면 귤이 되고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나머지 삶을 황폐시키는 독이 되고 일생 가슴을 찌르는 고통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 추억의 달콤함과 향기로움이 영원과 절대 앞에서는 어차피 헐벗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의 한 살이를 견딜 만하게 달래준다.

젊은 라인하르트의 사랑이 슬프게 끝난 원인은 어쩌면 그 연인 엘리자벳 쪽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라인하르트가 믿음을 가지고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어머니의 강요란 것이 지닌 힘을 감안한다 해도 그것은 틀림없이 변심이며, 거기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은 달라질 수도 있다. 곧 사랑을 격렬한 분노와 증오로 바꿔 일생 자신과 상대를 괴롭히는 독과 가시를 품고 가는 경우이다.

그런데도 젊은 라이하르트에게는 분노나 증오의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오히려 아름다운 시를 빌어 연인을 변명하고 확인 못할 그녀의 수긍을 무슨 축복처럼 간직하며 외로운 자신의 길을 떠난다. 그 뒤 라인하르트의 청춘은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갔으나 독신으로 학문탐구에 바친 그 일생을 반드시 불행했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으리라. 왜냐하면 그의 가슴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상처......품고 있는 그리움만큼이나 깊고 넓은 호수가에 청초한 수련처럼 떠있는 엘리자벳의 영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슈토름은 원래 서정시인으로 출발해 아아헨도로프, 뫼리케등과 나란히 이름을 떨쳤다.

나중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켈러 등과 함께 19세기 독일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는 대략 50편이 넘는 중단편을 남겼는데 [호수]는 그의 출세작으로 사실적이라기보다는 낭만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슈토름은 서른 살 때 도르테아 옌첸이라는 소녀를 만나 사랑했으나 이미 사촌 콘스탄체와 약혼 중이어서 헤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 일이 [호수]를 쓴 동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시작했으나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는 상당한 자부심을 품게 된 듯 부모에게 이런 글을 남기고 있다.

<이 작품은 시와 청춘의 매력 때문에 오랫동안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참고로 슈토름은 아내 콘스탄체가 산욕열로 죽은 이듬해인 마흔 아홉 살 때 다시 도르테아 옌첸과 결혼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