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8월 (1597년 8월)
8월 초1일 [양력 9월 11일] <己酉>
큰비가 와서 물이 넘쳤다. 저녁나절에 소촌찰방 이시경이 와서 봤다. 조신옥·홍대방 등이 와서 봤다.
8월 초2일 [양력 9월 12일] <庚戌>
잠시 개었다. 홀로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움을 어찌하랴! 비통할 따름이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8월 3일 [양력 9월 13일] <辛亥>
맑다.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가 뜻밖에 교유서를 가지고 왔다. 명령은 곧 겸 삼도수군통제사의 임명이다. 숙배를 한 뒤에 다만 받들어 받았다는 글월을 써서 봉하고, 곧 떠나 두치로 가는 길로 곧 바로 갔다. 초저녁에 행보역(하동군 횡천면 여의리)에 이르러 말을 쉬고, 한밤 12시에 길을 떠나 두치에 이르니, 날이 새려했다. 남해현령 박대남은 길을 잘못 들어 강정(강정: 하동읍 서해량 홍수통제소 서쪽 섬진강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기다렸다가 불러와서, 쌍계동에 이르니, 길에 돌이 어지러이 솟아있고, 비가 와 물이 넘쳐 흘러 간신히 건넜다. 석주관(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이르니, 이원춘과 류해가 복병하여 지키다가 나를 보고 적을 토벌할 일을 많이 말했다. 저물어서 구례현에 이르니, 일대가 온통 쓸쓸하다. 성 북문(구례읍 북봉리) 밖에 전날의 주인 집으로 가서 잤는데, 주인은 이미 산골로 피난 갔다고 했다. 손인필은 바로 와서 볼겸하여 곡식까지 가져 왔다. 손응남은 올감(조시)을 바쳤다.
8월 4일 [양력 9월 14일] <壬戌>
맑다. □□을 보내 왔다. 다시 들어와 관청을 보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압록강원(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에 이르러 점심밥을 짓고 말의 병을 고쳤다. 고산현감 최진강이 군인을 교체 할 일로 와서 수군의 일을 많이 말했다. 낮에 곡성(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713-2번지)에 이르니, 관청(곡성현감:최충검)과 여염집이 한결같이 비어 있고, 사람사는 기척이 끊어졌다. 이 일대에는 온통 비어있고 말 먹일 풀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 현청에서 잤다. 남해현령 박대남은 곧장 남원으로 갔다.
8월 5일 [양력 9월 15일] <癸亥>
맑다. 거느리고 온 군사를 인계할 곳이 없다고 하면서 이제 이원에 이르러 병마사가 경솔히 물러난 것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옥과(곡성군 옥과읍)땅에 이르니, 피난민이 길에 가득 찼다. 남자와 여자가 부축하고 걸어가는 것이 차마 볼 수 없었다. 울면서 말하기를 `사또가 다시 오셨으니 우리들은 이제야 살았다'고 했다. 길가에 큰 홰나무 정자가 있기에 말에서 내려 타일렀다. 옥과현에 들어갈 때, 순천에서 이기남의 부자를 만나 함께 현에 이르니, 정사준· 정사립이 와서 마중 했다. 옥과현감(홍요좌)은 병을 핑계 삼아 나오지 않았다. 잡아다 죄주려 하니 그제야 나와서 봤다.
8월 6일 [양력 9월 16일] <甲子>
맑다. 이 날은 옥과에서 머물렀다. 초저녁에 송대립이 적을 정탐하고 왔다.
8월 7일 [양력 9월 17일] <乙丑>
맑다. 일찍 길을 떠나 곧장 순천으로 갔다. 고을에서 십리쯤 되는 길에서 선전관 원집을 만나 임금의 분부를 받았다. 길 옆에 앉아서 읽어보니 병마사가 거느렸던 군사들이 모두 패하여 돌아가는 길이 줄을 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 세 필과 활과 살을 약간 빼앗아 왔다. 곡성현 석곡 강정 (석곡면 능파2구 능암리 3490번지 일대)에서 잤다.
8월 8일 [양력 9월 18일] <丙寅>
곧바로 부유창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이형립을 병마사에게로 보냈다. 새벽에 떠나 부유창(순천시 주암면 창촌리)에서 아침밥을 먹는데, 이곳은 병마사 이복남이 이미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불을 질렀다. 다만 타다 남은 재만 있어 보기에도 처참하였다. 광양현감 구덕령·나주판관 원종의·옥구 원(홍요좌) 등이 창고바닥에 숨어 있다가 내가 왔단 말을 듣고 배경남과 함께 구치(구치: 순천시 주 암면 행정리 접치 마을)로 급히 달아났다. 내가 말에서 내려 곧 전령을 내렸더니, 한꺼번에 와서 절을 하였다. 나는 피해 돌아 다니는 것을 들추어서 꾸짖었더니, 다들 그 죄를 병사 이복남에게로 돌리었다. 곧 길을 떠나 순천에 이르니, 성 안팎에 사람 발자취가 하나도 없어 적막했다. 오직 절에 있는 중 혜희가 와서 알현하므로 의병장의 사령장을 주었다. 저물어서 순천에 이르니 관사와 곳간의 곡식 및 군기 등 물건은 옛날과 같다. 병마사가 처치하지 않은 채 달아났다.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총통같은 것은 옮겨 묻고, 장전과 편전은 군관들이 져 나르게 하고, 총통과 운반하기 어려운 것들은 깊이 묻고 표를 세웠다. 그대로 순천부사가 있는 방에서 머물러 잤다.
8월 9일 [양력 9월 19일] <丁卯>
맑다. 일찍 떠나 낙안군에 이르니, 오리까지나 사람들이 많이 나와 환영하였다. 백성들이 달아나고 흩어진 까닭을 물으니, 모두 하는 말이, "병마사가 적이 쳐들어 온다고 퍼뜨리며 창고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그 때문에 이와 같이 백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관청에 들어가니 적막하여 사람의 소리가 없었다. 순천부사 우치적·김제군수 고봉상 등이 와서, 산골에서 내려와서, 병마사의 처사가 뒤죽박죽 이었다고 말하면서 하는 짓을 짐작했다고 하니, 패망한 것을 알만하다. 관청과 창고가 모두 다 타버리고 관리와 마을 사람들이 흐르는 눈물을 가누지 못하고서 말하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나 십리쯤 오니, 길가에 동네 어른들이 늘어서서 술병을 다투어 바치는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억지로 권했다. 저녁에 보성군 조양창(조성면 조성리)에 이르니, 사람은 하나도 없고, 창고에는 곡식이 묶여진 채 그대로였다. 그래서, 군관 네 명을 시켜 지키게 하고, 나는 김안도의 집에서 잤다. 그 집 주인은 벌써 피난나가 버렸다.
8월 10일 [양력 9월 20일] <戊辰>
맑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그대로 김안도의 집에 머물렀다. 동지 배흥립도 같이 머물렀다.
8월 11일 [양력 9월 21일] <己巳>
맑다. 아침에 박곡 양상원의 집으로 옮겼다. 이 집 주인도 벌써 바다로 피란갔고 곡식은 가득 쌓여 있었다. 저녁 나절에 송희립·최대성이 와서 봤다.
8월 12일 [양력 9월 22일] <庚午>
맑다. 아침에 장계를 초잡고 그대로 머물렀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안위)·발포만호(소계남)가 들어와 명령을 들었다. 그들 편에 경상수사 배설의 겁내던 꼴을 들으니, 더욱 한탄스러움을 이길 길이 없다. 권세 있는 집안에 아첨이나 하여 감당해내지도 못할 지위에까지 올라 나랏일을 크게 그릇치건마는 조정에서 살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랴, 어찌하랴. 보성군수가 왔다.
8월 13일 [양력 9월 23일] <辛未>
맑다. 거제현령 안위 및 발포만호 소계남이 와서 인사하고 돌아갔다. 수사(배설)와 여러 장수 및 피해 나온 사람들이 머무는 곳을 들었다. 우후 이몽구가 전령을 받고 들어 왔는데, 본영의 군기를 하나도 옮겨 실어 오지 않은 죄로 곤장 여든 대를 쳐서 보냈다. 하동현감 신진이 와서, "초3일에 내가 떠난 뒤에 진주 정개산성과 벽견산성도 풀어 흩어지니 병마사가 바깥 진(외진)을 제 손으로 불을 질렀다."고 전하였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8월 14일 [양력 9월 24일] <壬申>
아침에 각각으로 장계 일곱 통을 봉하여 윤선각으로 하여금 지니고 가게 했다. 저녁에 어사 임몽정을 만나러 보성에 갔다가 열선루에서 잤다. 밤에 큰비가 쏟아지듯 내렸다.
8월 15일 [양력 9월 25일] <癸酉>
비 오다가 저녁나절에 맑게 개었다. 식사를 하고 난 뒤에 열선루 위에 앉아 있으니, 선전관 박천봉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8월 7일에 만들어진 공문이었다. 영의정은 경기 지방으로 나가 순시중이라고 했다. 곧 잘 받들어 받았다는 장계를 썼다. 보성의 군기를 검열하여 네 말에 나누어 실었다.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추니 심회가 편치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잠을 자지 못했다.
8월 16일 [양력 9월 26일] <甲戌>
맑다. 아침에 보성군수와 군관 등을 굴암으로 보내어 도피한 관리들을 찾아오게 했다. 선전관 박천봉이 돌아갔다. 그래서 나주 목사와 어사 임몽정에게 답장을 부쳤다. 박사명의 집에 심부름꾼을 보냈더니, 박사명의 집은 이미 비어 있었다고 한다. 오후에 활장이 지이와 태귀생· 선의· 대남 등이 들어왔다. 김희방·김붕만이 뒤따라 왔다.
8월 17일 [양력 9월 27일] <乙亥>
맑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장흥땅 백사정(장흥읍 원도리)에 이르러 말을 먹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군영구미(장흥군 안양면 해창리)에 이르니, 일대가 모두 무인지경이 되어 버렸다. 수사 배설은 내가 탈 배를 보내지 않았다. 장흥의 군량감관과 색리가 군량을 맘대로 모조리 훔쳐 나누어 갈 적에 마침 그 때 이르러 잡아다가 호되게 곤장을 쳤다. 거기서 잤다. 배설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괘씸하다.
8월 18일 [양력 9월 28일] <丙子>
맑다. 늦은 아침에 곧바로 회령포에 갔더니, 경상수사 배설이 멀미를 핑계를 대므로 보지 않았다. 다른 장수는 보았다. 회령포 관사에서 잤다.
8얼 19일 [양력 9월 29일] <丁丑>
맑다. 여러 장수들이 교서에 숙배를 하는데, 경상수사 배설은 받들어 숙배하지 않았다. 그 업신 여기고 잘난 체 하는 꼴을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다. 너무도 놀랍다. 이방과 그 영리에게 곤장쳤다. 회령포만호 민정붕이 그 전선에서 받은 물건을 사사로이 피란인 위덕의 등에게 준 죄로 곤장 스무 대를 쳤다.
8월 20일 [양력 9월 30일] <戊寅>
맑다. 앞 포구가 몹시 좁아서 진을 이진(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으로 옮겼다. 창고로 내려가니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음식도 먹지 않고 앓았다.
8월 21일 [양력 10월 1일] <己卯>
맑다. 날이 채 새기 전에 도와리가 일어나 몹시 앓았다. 몸을 차게 해서 그런가 싶어 소주를 마셨더니 한참동안 인사불성이 되었다. 하마트면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토하기를 10여 차례나 하고 밤을 앉아서 새웠다.
8월 22일 [양력 10월 2일] <庚辰>
맑다. 도와리가 점점 심하여 일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8월 23일 [양력 10월 3일] <辛巳>
맑다. 병세가 무척 심해져서 정박하여 배에서 지내기가 불편하므로 배타는 것을 포기하고 바다에서 나와서 (뭍에서) 잤다.
8월 24일 [양력 10월 4일] <壬午>
맑다. 아침에 도괘땅(도괘포)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었다. 낮에 어란 앞바다에 이르니, 가는 곳마다 텅텅 비었다. 바다 위에서 잤다.
8월 25일 [양력 10월 5일] <癸未>
맑다. 그대로 어란포에서 머룰렀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당포의 보자기가 놓아둔 소를 훔쳐 끌고 가면서 "적이 쳐들어 왔다. 적이 쳐들어 왔다."고 헛소문을 내었다. 나는 이미 그것이 거짓말일줄 알고 헛소문을 낸 두 사람을 잡아다가 곧 목을 베어 효시하니, 군중 인심이 크게 안정되었다.
8월 26일 [양력 10월 6일] <甲申>
맑다. 그대로 어란 바다에 머물렀다. 저녁나절에 임준영이 말을 타고 와서 급히 보고하는데, "적선이 이진에 이르렀다"고 했다. 전라우수사가 왔다. 배의 격군과 기구를 갖추지 못했으니 그 꼬락서니가 놀랍다.
8월 27일 [양력 10월 7일] <乙酉>
맑다. 그대로 어란 바다 가운데 있었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와서 보는데, 많이 두려워하는 눈치다. 나는 불쑥 "수사는 어디로 피해 갔던게 아니오!"라고 말하였다.
8월 28일 [양력 10월 8일] <丙戌>
맑다. 새벽 여섯시 쯤에 적선 여덟 척이 뜻하지도 않았는데 들어왔다. 여러 배들이 두려워 겁을 먹고, 경상수사(배설)는 피하여 물러나려 하였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적선이 바짝 다가오자 호각을 불고 깃발을 휘드르며 따라 잡도록 명령하니, 적선이 물러갔다. 뒤쫓아 갈두(갈두: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적선이 멀리 도망하기에 더 뒤쫓지 않았다. 뒤따르는 배는 쉰여 척이라고 했다. 저녁에 진을 장도(노루섬)로 옮겼다.
8월 29일 [양력 10월 9일] <丁亥>
맑다. 아침에 건너왔다. 벽파진(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대었다.
8월 30일 [양력 10월 10일]<무자>
맑다. 그대로 벽파진에서 머물렀다. 정탐꾼을 나누어 보냈다. 저녁나절에 배설은 적이 많이 올 것을 염려하여 달아나려고 했으나, 그 관할 아래의 장수들이 찾기도 하고, 나도 그 속뜻을 알고 있지만, 딱 드러나지 않은 것을 먼저 발설하는 것은 장수로서 할 도리가 아니므로 참고 있을 즈음에, 배설이 제 종을 시켜 솟장을 냈는데, 병세가 몹시 중하여 몸조리 좀 해야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뭍으로 내려 몸조리하고 오라고 공문을 써 보냈더니, 배설은 우수영에서 뭍으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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