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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54) -李舜臣-

카지모도 2021. 3. 23.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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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5월 (1597년 5월)

 

 

 

5월 초1일 [양력 6월 15일] <辛卯>

비가 내렸다. 사과 신씨가 머물러서 이야기하였다. 순찰사와 병마사는 원수가 머물고 있는 정사준의 집에 같이 모여 술을 마시며 무척 즐겁게 논다고 하였다.

 

5월 2일 [양력 6월 16일] <壬辰>

저녁나절에 비내렸다. 원수(권율)는 보성으로 가고, 병마사(이복남)는 본영으로 갔다. 순찰사(박흥로)는 담양으로 가는 길에 와서 보고는 돌아갔다. 순천부사(우치적)가 와서 봤다. 진흥국이 좌영에서 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원균의 일을 말했다. 이형복· 신홍수도 왔다. 남원의 종 끝돌이가 아산에서 와서 어머니 영연이 평안하다고 한다. 또 변유헌(유헌)은 식구를 데리고 무사히 금곡에 도착하였다고 했다. 홀로 빈 동헌에 앉아 있으니, 비통함을 어찌 참으랴!

 

5월 3일 [양력 6월 17일] <癸巳>

맑다. 열 신사과·응원(응원)·진흥국이 돌아갔다. 이기남이 와서 봤다. 아침에 차남 울을 열(하)로 이름 고쳤다. "열"자는 소리는 "기쁠 열(열)"과 같고 뜻은 "움이 돋아나다,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것으로 매우 좋은 글자이다. 저녁나절에 강소작지이 와보고서 곡했다. 오후 네 시쯤에 비가 뿌렸다. 저녁에 부사가 와서 봤다.

 

5월 4일 [양력 6월 18일] <甲午>

비가 내렸다. 오늘은 어머니 생신날이다. 슬프고 애통함을 어찌 참으랴! 닭이 울 때 일어나 눈물만 흘릴 뿐이다. 오후에 비가 많이 내렸다. 정사준이 오고, 이수원도 왔다.

 

5월 5일 [양력 6월 19일] <乙未>

맑다. 새벽 꿈이 몹시 어수선했다. 아침에 부사가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 원유남이 한산도에서 원균의 못된 짓 을 많이 전하고, 또 진중의 장병들이 군무이탈하여 반역질을 하니, 장차 일이 어찌 될지 헤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오늘은 단오절인데, 멀리와 천리나 되는 땅의 끝 모퉁이에서 종군하느라고 어머니 영전에 예를 못하고 곡하며 우는 것도 내 뜻대로 못 하니 무슨 죄로 이런 보답을 받는고! 나 같은 사정은 고금을 통하여도 짝이 없을 것이다. 가슴이 갈갈이 찢어지누나! 다만 때를 못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5월 6일 [양력 6월 20일] <丙申>

맑다. 꿈에 돌아가신 두 분 형님을 만났는데, 서로 붙들고 우시면서 하는 말씀이 "장사를 지내기 전에 천리 밖으로 떠나와 군무에 종사하고 있으니, 대체 모든 일을 누가 주장해서 한단 말이냐. 통곡 한들 어찌하리!"라 하셨다. 이것은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 와서 근심하고 애달파함을 이렇게까지 한 것이니 비통할 따름이다. 또 남원의 추수를 감독하는 일을 염려하시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연일 꿈자리가 어지러운 것도 아마 형님 들의 혼령이 그윽히 걱정하여 주는 탓이라 슬픔이 한결 더하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설운 마음에 눈물이 엉기어 피가 되건마는 아득한 저 하늘은 어째서 내 사정을 살펴주지 못하는고! 왜 어서 죽지 않는지. 저녁나절에 능성현령 이계명도 상제의 몸으로 기용된 사람인데, 와서 보고 돌아갔다. 흥양의 종 우롬금(우로음금)·박수매·조택과 순화의 처가 와서 인사했다. 이기윤과 몽생이 왔다. 송정립·송득운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저녁에 정원명이 한산도에서 돌아와 흉물(원균?)의 하는 꼴을 많이 말했다. 또 부찰사(한효순)가 좌영으로 나와서 병이라 하여 조리한다고 했다. 우수사(이억기)가 편지를 보내 와 조문했다.

 

5월 7일 [양력 6월 21일] <丁酉>

맑다. 아침에 정혜사의 중 덕수가 와서 미투리를 바쳤다. 거절하며 받지 않으니, 재삼 간절히 받으라고 하므로 값을 주어서 보냈다. 미투리를 곧 정원명에게 주었다. 저녁나절에 송대기· 류몽길이 와서 봤다. 서산군수 안괄도 한산도에서 왔다. 음흉한 자(원균)의 일을 많이 말했다. 저녁에 이기남이 또 왔다. 이원룡은 수영에서 돌아왔다. 안괄이 구례에 갔을 때 조사겸의 수절녀를 사통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놀랄 일이다.

 

5월 8일 [양력 6월 22일] <戊戌>

맑다. 아침에 승장 수인이 밥지을 중 두우를 데리고 왔다. 종 한경이 일이 있어서 보성에 보냈다. 흥양의 종 세충이 녹도에서 망아지를 끌고 왔다. 활장이 이지가 돌아갔다. 이 날 새벽꿈에 사나운 범을 때려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휘둘렀다. 이건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조종이 이름을 연으로 고치고는 와서 봤다. 조덕수도 왔다. 낮에 망아지에 안장을 얹어서 정상명이 타고 갔다. 음흉한 원이 편지를 보내어 조문한다. 이는 곧 원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이경신이 한산도에서 와서 원균의 흉악한 일을 많이 말했다. 또 그가 데리고 온 서리를 곡식을 사오라는 구실로 육지로 보내놓고 그 아내를 사통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기를 써도 따라주지 않고 밖으로 뛰처나가 고래고래 소리쳤다고 했다. 원이란 자는 온갖 꾀로써 나를 모함하려하니 이 또한 운수로다. 말에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길에 잇닿았으며, 그렇게 해서 나를 헐뜯는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하니, 그저 때를 못 만났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5월 9일 [양력 6월 23일] <己亥>

흐리다. 아침에 이형립이 와서 봤다. 곧 돌아갔다. 이수원이 광양에서 돌아왔다. 순천급제 강승훈이 응모해 왔다. 순천부사가 좌수영에서 돌아왔다. 종 경이 보성에서 말을 끌고 왔다.

 

5월 10일 [양력 6월 24일] <更子>

궂은 비 내렸다. 오늘은 태종(태종)의 제삿날이다. 옛날부터 이 날에는 비가 온다 더니, 저녁나절에는 많은 비가 왔다. 박줄생(박주질생)이 와서 인사했다. 주인이 보리밥을 지어서 들여왔다. 장님 임춘경이 운수를 봐 가지고 왔다. 부찰사도 조문하는 글을 보냈다. 녹도만호 송여종은 겸하여 삼종이(마지) 두 가지를 부의로 보내 오고, 전라순찰사는 흰쌀·중간쌀 각 열 말과 콩과 소금도 얻어서 군관을 시켜서 보낸다고 말했다.

 

5월 11일 [양력 6월 25일] <辛丑>

맑다. 김효성이 낙안에서 왔다가 곧 돌아갔다. 전 광양현감 김성이 체찰사의 군관이 되었다. 화살대를 구하러 순천에 왔던 길에 왔다가 봤다. 소문을 많이 전하는데, 소문이란 것은 모두 흉물이 일이었다. 부찰사가 온다는 통지문이 먼저 왔다. 장위가 편지를 보냈다. 정원명이 보리밥을 지어서 내었다. 장님 임춘경이 와서 운수 본 것을 말했다. 부찰사가 순천부에 도착했다. 정사립과 양정언이 전하기를 "부찰사가 와서 만나 보자"고 하는데, 내 몸이 불편하여 만나 보는 것을 거절했다.

 

5월 12일 [양력 6월 26일] <壬寅>

맑다. 이원룡이 보내어 부찰사에게 문안했다. 부찰사는 또 김덕린을 보내어 문안했다. 저녁나절에 이기남·기윤이 와서 보고는 아뢰고 도양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침에 아들 열을 부찰사에게로 보냈다. 신홍수가 와서 보고 원영감(원균)의 점을 쳤는데, 첫 괘가 수뢰둔(상괘 감,하괘 진:널 리 형통하지만 기운은 최악으로 험난함)변하여 천풍구(상괘 건,하 괘 손:여자가 지나치게 거센 괘로서 흉사를 만나는 확률이 열에 아홉임)가 되니 이 쓰임은 본체를 이기는 것이라 크게 흉하다. 남해 원이 조문 편지를 보내고, 또 여러 가지 물건 - 쌀 둘, 참기름 둘, 꿀 다섯, 조 하나, 미역 둘 저녁에 향사당으로 가서 부찰사와 함께 이야기하고, 자정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정사립·양정언 등이 왔다가 닭이 운 뒤에 돌아갔다.

 

5월 13일 [양력 6월 27일] <癸卯>

맑다. 어젯밤에 부찰사의 말이 "상사가 보낸 편지에 영감에 대한 일을 많이 탄식했더라"고 한다. 저녁나절에 정사준이 떡을 만들어 왔다. 순천부사(우치적)가 노자를 보내왔다. 너무 미안하다.

 

5월 14일 [양력 6월 28일] <甲辰>

맑다. 아침에 순천부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부찰사는 부유(순천시 주암면 창촌리)로 향했다. 정사준·정사립·양정언이 와서 모시고 가겠다고 한다. 아침밥을 일찍 먹고 길을 떠나 송치(솔티:순천시 서면 학구리 바랑산) 밑에 이르러 말을 쉬게 했다. 혼자 바위 위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곤하게 잤다. 운 봉의 박롱이 왔다. 저물 무렵 찬수강(순천시 환전면과 구례 사이의 강)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걸어서 건넜다. 구례현의 손인필의 집에 이르니, 현감(이원춘)이 와서 봤다.

 

5월 15일 [양력 6월 29일] <乙巳>

개이다 비오다 하다. 주인 집이 너무 낮고 더러워 파리떼가 벌처럼 모여 사람이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동헌의 띠풀로 엮은 정자로 옮겨 왔더니 마파람이 바로 들어왔다. 구례현감과 함께 종일 이야기했다. 거기서 그대로 잤다.

 

5월 16일 [양력 6월 30일] <丙午>

맑다. 현감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남원의 탐후인이 돌아와서 고하되, "체찰사가 내일 곡성을 거쳐 이 구례현에 들어와 며칠 묵은 뒤에 전주로 갈 것이다."고 했다. 원이 주물상을 무척 융숭하게 차렸다. 몹시 미안했다. 저녁에 정상명이 왔다.

 

5월 17일 [양력 7월 1일] <丁未>

맑다. 현감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남원 탐후인이 돌아와서 전하여 말하기를, "원수(권율)가 운봉 길로 가지 않고 명나라 총병 양원을 영접하는 일로 완산(전주)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내 여기 온 것이 헛걸음이라 민망스럽다.

 

5월 18일 [양력 7월 2일] <戊申>

맑고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에 김종려 영감이 남원에서 곧바로 와서 봤다. 충청수영 영리 이엽이 한산도에서 왔기로 집안에 편지를 부쳤다. 그러나 아침 술에 취해 미친듯 날뛰니 얄밉기만 하다.

 

5월 19일 [양력 7월 3일] <己酉>

맑다. 체찰사가 이 구례현에 들어올 것이다. 성 안에 머물고 있기가 미안해서 동문 바깥 장세호의 집으로 옮겨 나갔다. 명협정에 앉았는데 구례현감(이원준)이 와서 봤다. 저녁에 체찰사가 현으로 들어왔다. 오후 네 시쯤에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오후 여 섯 시에 개었다.

 

5월 20일 [양력 7월 4일] <庚戌>

맑다. 저녁에 첨지 김경로가 와서 봤다. 또 말하기를 무주 장 박지리의 농토가 아주 좋다고 했다. 옥천에 사는 권치중은 첨지 김경로의 서처남인데 옥천 양산창 근처에 있다고 했다. 체찰사(이원익)이 내가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공생을 보내고 또 군관 이지각을 보내 더니 조금 있다가 또 군관을 보내어 조문하기를, "일찍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비로소 듣고 놀라 애도한다."고 하고, 저녁에 만날 수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대답하기를 "저녁에 마땅히 가서 뵙겠다."고 했다. 어둘 무렵에 가서 뵈오니, 체찰사는 소복을 입고 접대한다. 조용히 일을 의논하고 체찰사가 개탄해 마지 않았다.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는 중에 일찌기 임금의 분부가 있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이 많이 있었다는 바, 그 뜻을 알지 못하겠다고 하며, 또 흉물의 하는 짓이 몹시도 그럴 듯하게 속이고 있음에도 하늘이 이를 살피지 못하니 나랏일을 어찌할꼬! 나올 때에 남종사가 사람을 보내어 문안했다. 나는 밤이 깊어서 나가 인사하지 못한다고 대답해 보냈다.

 

5월 21일 [양력 7월 5일] <辛亥>

맑다. 박천 류해(유해)가 서울에서 내려와서는 한산도로 가서 공을 세우겠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은진현(논산군 은진면 연서리)에 이르니, 은진 원이 뱃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고 했다. 해가 또 말하기를, 죄수의 우두머리 이덕룡을 고소한 사람이 옥에 갇히어 세 차례나 형장을 맞고 다 죽게 될 판이라고 했다. 놀랍고도 놀랍다. 또 과천의 좌수 안홍제 등이 이상공에게 말과 스무살짜리 계집종을 바치고 풀려 나오는 것을 보고 나갔다고 했다. 안홍제는 본시 죽을 죄도 아닌데도 여러번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가 물건을 바치고서 석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이 달려있다고 하니, 이러다가는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야말로 돈만 있으면 죽은 사람의 넋도 찾아온다는 것인가.

 

5월 22일 [양력 7월 6일] <壬子>

맑다.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손인필의 부자가 와서 봤다. 박천 류해가 승평으로 가서 그 길로 한산도로 간다 하므로, 전라·경상 두 수사에게 와 가리포 첨사 등에게 문안 편지를 써 보냈다. 늦게 체찰사의 종사관 김광엽이 진주에서 이 구례현으로 들어오고 배흥립 영감도 온다는 개인적인 편지도 왔다. 그 동안의 정회를 풀 수 있겠다. 다행이다. 혼자 앉았으니 비통하여 견디기가 너무 어렵다. 어두울 무렵 배흥립 동지와 이 구례현감 이원춘이 와서 봤다.

 

5월 23일 [양력 7월 7일] <癸丑>

아침에 정사룡·이사순이 와서 봤다. 원공의 일을 많이 전했다. 저녁나절에 동지 배흥립이 한산도로 돌아갔다. 체찰사가 사람을 보내어 부르므로 가서 뵙고 조용히 의논하는데, 시국의 그릇된 일에 대하여 많이 분개하고 다만 죽을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내일 초계로 간다고 하면서, 체찰사가 영수증을 주면서 이대백이 모은 쌀 두 섬을 모아서 이를 성밖 주인 장세휘의 집으로 보냈다.

 

5월 24일 [양력 7월 8일] <甲寅>

맑다. 샛바람이 종일 세게 불었다. 아침에 광양의 고응명의 아들 고언선이 와서 봤다. 한산도의 일을 많이 전한다. 체찰사가 군관 이지각을 보내어 안부를 묻고, 경상우도의 연해안 지도를 그리고 싶으나 도리가 없으니, 본 대로 지도를 그려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지도를 대강 그려서 보냈다. 저녁에 비가 많이 왔다.

 

5월 25일 [양력 7월 9일] <乙卯>

비가 내렸다. 아침에 길을 떠나려 하려다가 비에 막혀 가지 않다. 혼자 시골집에 기대어 있으니 회포가 그지없다. 슬프고 그리운 생각을 어찌 하랴!

 

5월 26일 [양력 7월 10일] <丙辰>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비를 무릅쓰고 길을 막 떠나려 하려는데, 사량만호 변익성이 문초받을 일로 체찰사 앞으로 왔는데 이종호가 잡아 왔다. 잠시 서로 마주 보고는 그 길로 석주관(구례군 토지 면 송정리)에 이르니, 비가 퍼붓듯이 쏟아진다. 말을 쉬게 했지만, 엎어지고 자빠지며 간신히 악양(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이정란의 집에 이르렀으나, 문을 닫고 거절당했다. 김덕령의 아우 김덕린이 빌려 쓰는 집이다. 나는 아들 열로 하여금 억지를 대고서 들어가 잤다. 행장이 흠뻑 다 젖었다 .

 

5월 27일 [양력 7월 11일] <丁巳>

흐렸다가 개다. 아침에 젖은 옷을 바람에 걸어 말렸다. 저녁나절에 떠나 두치 최춘룡의 집에 이르렀다. 류기룡이 와서 봤다. 사량만호 이종호가 먼저 왔었다. 변익성은 곤장 스무 대를 맞아 꼼짝도 못한다고 했다.

 

5월 28일 [양력 7월 12일] <戊午>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하동에 이르니, 하동현감(신진)이 서로 만나 보는것을 기뻐하며 성 안 별채로 맞아들여 매우 간곡한 정을 베푼다. 또 원(원균)의 하는 짓이 엄청 미쳤다고 말했다. 날이 저물도록 이야기했다. 변익성도 왔다.

 

5월 29일 [양력 7월 13일] <己未>

흐리다. 몸이 너무 불편하여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머물러서 몸조리했다. 하동현감(신진)이 정다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황생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이가 일흔 살인데 하동에 왔는데, 일찌기 서울에 있었으나 지금은 떠돌아 다닌다고 했다. 나는 만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