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10월 (1597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1월 9일] <戊午>
맑다. 아들 회를 보내서 제 어미를 보고 여러 집안의 생사를 알아 오게 하였다. 심회가 몹시 안달나서 편지를 쓸 수 없었다. 병조의 역꾼이 공문을 가지고 내려 왔는 데, "아산 고향의 한 집안이 이미 적에게 불타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게 없다."고 한다.
10월 2일 [양력 11월 10일] <己未>
맑다. 아들 회가 집안 사람들의 생사를 알아볼 일로 배를 타고 올라 갔으나, 잘 갔는지 못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심정을 어찌 다 말하랴.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심회가 만 갈래였다.
10월 3일 [양력 11월 11일] <庚申>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변산을 거쳐 곧바로 법성포로 되돌아 가는데 바람은 부드러워 따뜻하기가 봄날 같았다. 저물어서 법성포 선창 앞에 이르렀다.
10월 4일 [양력 11월 12일] <辛酉>
맑다. 그대로 머물러 잤다. 림선·업 등이 사로잡혔다가 적에게 빌어 임치로 돌아와서 편지를 보내왔다.
10월 5일 [양력 11월 13일] <壬戌>
맑다. 그대로 머물면서 마을집 아래로 내려가 잤다.
10월 6일 [양력 11월 14일] <癸亥>
흐렸다가 비가 뿌렸다. 눈비가 세차게 왔다.
10월 7일 [양력 11월 15일] <甲子>
바람이 고르지 않고 비가 오락가락한다. 소문에 호남 안팎에는 적선이 없다고 한다.
10월 8일 [양력 11월 16일] <乙丑>
맑으며, 바람이 살랑거렸다. 출항하여 어외도에 이르러 잤다.
10월 9일 [양력 11월 17일] <丙寅>
맑다. 일찍 출항하여 우수영에 이르니, 성 밖에는 집에 사람이 살지 않고, 인적이 하나도 없다. 보이는 것은 참혹 뿐이었다. 그러나 저녁에 "해남에서 흉악한 적들이 진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초저녁에 김종려·정조·백진남 등이 와서 봤다.
10월 10일 [양력 11월 18일] <丁卯>
비가 뿌리고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항해할 수가 없어 그대로 머물렀다. 밤 열 시쯤(이경)에 중군장 김응함이 와서 전하는데, 해남에 있던 적들이 많이 물러 간 모양입니다. 이희급의 부친이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빌어서 놓여 왔습니다고 했다.고 한다. 마음이 언짢아서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새벽이 되었다. 우우후 이정충이 왔는데, 배가 보이지 않은 것은 바깥 섬으로 달아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월 11일 [양력 11월 19일] <戊辰>
맑다. 밤 두 시쯤에 바람이 자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닻을 올려 바다 가운데에 이르러, 정탐인 이순· 박담동· 박수환· 태귀생을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에는 연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이는 반드시 적의 무리들이 달아나면서 불을 지른 것이다. 오정에 안편· 발음도(안편발음도= 안창도·팔금도)에 이르니, 바람도 좋고 날씨도 화창하다. 육상에 내려 산마루로 올라 가서 배 감출 곳을 찾아보니, 동쪽에는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는 없고, 북쪽으로는 나주와 영암 월출산으로 뚫렸으며, 서쪽에는 비금도로 통하여 눈앞이 툭 터였다. 잠깐 있으니, 중군장과 우치적이 올라 오고, 조효남·안위·우수가 잇따라 왔다. 날이 저물어 산봉우리에서 내려와 언덕에 앉았으니, 조계종이 와서 왜적의 사실 형편을 말하고, 또 왜놈들이 우리 수군을 몹시 싫어한다고 했다. 이희급의 부친이 와서 알현하고 또 사로잡혔던 경위를 말하는데, 아픈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저녁에는 따뜻하기가 봄 같아 아지랑이가 하늘에 아른 거려 비올 징조가 많았다. 초저녁에 달빛이 비단결 같아 홀로 봉창에 앉았으니 심사가 만 갈래였다. 밤 열시쯤에 식은 땀이 몸을 적셨다. 한밤에 비가 왔다. 이 날 우수사가 군량선에 있는 사람에게 장단지를 몹시 때렸다고 했다. 놀랄 일이다.
10월 12일 [양력 11월 20일] <己巳>
비가 내렸다. 오후 한시에 맑게 개었다. 아침에 우수사가 와서 절하기에 하인의 장단지를 때린 죄를 용서했다. 가리포첨사(이응표)·장흥부사(전봉) 등 여러 장수들이 와서 절하고 종일 이야기했다. 탐후선이 나흘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 걱정이 된다. 아마 생각건대, 흉악한 적들이 멀리 도망가기에, 그 뒤를 쫓아가느라 돌아오지 않는 것이리라. 그대로 발음도에 머물렀다.
10월 13일 [양력 11월 21일] <庚午>
맑다. 아침에 조방장 배흥립과 경상우후(이의득)가 와서 봤다. 조금 있으니, 탐망선이 임준영을 싣고 왔다. 그 편에 적의 소식을 들으니, "해남에 들어와 웅거해 있던 적들은 7일에 우리 수군이 내려 오는 것을 보고, 11일에 몽땅 도망가버렸는데, 해남의 향리 송언봉·신용 등이 적속으로 들어가 왜놈들을 꾀어 내어 선비들을 죽였다."고 했다.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 곧 순천부사 우치적·금갑도만호 이정표·제포만호 주의수·당포만호 안이명·조라포만호 정공청 및 군관 림계형·정상명·봉좌·태귀생·박수환 등을 해남으로 보냈다. 저녁나절에 내려가 언덕에 앉아 윗자리에서 조방장 배흥립·장흥부사 전봉 등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 날 우우후 이정충이 뒤떨어진 죄를 다스렸다. 우수사의 군관 배영수가 와서 아뢰기를, 수사의 부친이 외해에서 살아서 돌아왔다고 했다. 이 날 새벽 꿈에 우의정을 만나 조용히 이야기했다. 낮에 선전관 네 명이 법성포에 이르러 내려 왔다는 말을 들었다. 저녁에 김응함에게서 섬 안에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산골에 깊숙히 숨어서 소와 말을 잡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황득중·오수 등을 보내어 염탐케 하였다. 이 날 밤 달빛은 비단결 같고 잔잔한 바람도 일지 않았다. 홀로 뱃전에 앉았으니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할 따름이다.
10월 14일 [양력 11월 22일] <辛未>
맑다. 밤 두 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는 데, 말이 발을 헛디디어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쓸어지지는 않고, 막내 아들 면이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는데 깨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저녁나절에 배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이 와서 봤다. 배 조방장의 종이 영남에서 와서 적의 형세를 전했다. 황득중 등은 와시 아뢰기를 내수사의 종 강막지 라는 자가 소를 많이 기르기 때문에 열두 마리를 끌고 갔다고 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봉한 것 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열(둘째 아들)의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짐작했다. 어느새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 하지 못하는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너가 사는 것이 이치가 마땅하거늘, 너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그러진 이치가 어디 있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 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여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은 것이냐? 내 지은 죄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살아 있어본들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할꼬!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마는 네 형·네 누이·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아직은 참으며 연명이야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짖을 따름이다.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일년 같구나. 이 날 밤 열시쯤에 비가 왔다.
10월 15일 [양력 11월 23일] <壬申>
비바람이 종일 불었다.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종일 이리뒤척 저리뒤척 했다. 여러 장수 들이 와서 문안하니 얼굴을 들고 어찌 맞으랴! 림홍· 림중형·박신이 적을 정탐하려고 작은 배를 타고, 흥양·순천 등지의 바다로 나갔다.
10월 16일 [양력 11월 24일] <癸酉>
맑다. 우수사와 미조항첨사를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현감도 보냈다. 나는 내일이 막내 아들의 죽음을 들은지 나흘째가 된다. 마음 놓고 통곡할 수도 없으므로, 영 안에 있는 강막지 집으로 갔다. 밤 열 시쯤에 순천부사·우후 이정충·금갑도만호·제포 만호 등이 해남에서 돌아왔다. 왜놈 열세 명과 투항했던 송원봉 등을 목베고서 왔다.
10월 17일 [양력 11월 25일] <甲戌>
맑은 날씨인 데 바람도 종일 세게 불었다. 새벽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하는데, 하얀 띠를 두르고 있으니, 비통함을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10월 18일 [양력 11월 26일] <乙亥>
맑다. 바람이 자는 것 같았으나 우수사는 배를 출항할 수 없어 바깥바다에서 잤다. 강막지가 와서 알현했다. 림계형·임준영이 들어왔다.
10월 19일 [양력 11월 27일] <丙子>
맑다. 새벽 꿈에, 고향집의 종 진이 내려왔기에 나는 죽은 아들을 생각하여 통곡하였다. 저녁나절에 조방장과 경상우후가 와서 봤다. 백 진사가 와서 봤다. 림계형은 와서 알현했다. 김신 웅의 아내·이인세·정억부를 붙잡아 왔다. 거제· 안골· 녹도· 웅천· 제포· 조라포· 당포·우우후가 와서 봤다. 적을 잡은 공문을 와서 바쳤다. 윤건 등의 형제가 왜적에게 붙었던 두 명을 잡아 왔다. 어두울 무렵 코피를 되 남짓이나 흘렸다. 밤에 앉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어찌 다 말하랴! 이승에서의 영령이라 마침내 불효가 여기까지 이를 줄을 이찌 아랴! 비통한 마음 찢어지는 듯하여 억누를 수가 없다.
10월 20일 [양력 11월 28일] <丁丑>
맑고 바람도 잤다. 이른 아침에 미조항첨사·해남현감·강진현감이 해남현의 군량을 운반할려고 여쭙고 돌아갔다. 안골포만호 우수도 여쭙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김종려· 정수 백진남이 와서 보고, 또 윤지눌의 못된 짓을 말하였다. 김종려를 소음도 등 열세 곳 섬의 염전의 감자도감검(감자도감검: 감독관)으로 정하여 보냈다. 영의 둔덕에서 일하는 사화의 모친이 배 안에서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곧 묻어버릴 일로 군관에게 시켰다. 남도포·여도 두 만호가 와서 알현하고서 돌아 갔다.
10월 21일 [양력 11월 29일] <戊寅>
밤 두시쯤에 비오다 눈오다 했다. 바람이 몹시 추웠다. 뱃사공이 추워 얼까 걱정이 되어 마음을 잡지 못했다. 오전 여덟시부터 바람이 불고 눈이 펑펑 내렸다. 정상명이 와서 아뢰기를 무안현감 남언상이 들어 왔다고 했다. 남언상은 원래 수군에 소속된 관리인데, 사사로이 목숨만 보존할 꾀를 부려 수군에 오지 않고, 산골에 숨어서 달포쯤 관망하다가, 적이 물러간 뒤에는 무거운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 비로소 이제야 나타나니, 그 하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꽤씸하다. 저녁나절에 가리포 및 배 조방장과 우후가 와서 절했다. 바람불고 눈이 종일 내렸다. 장흥부사가 와서 잤다.
10월 22일 [양력 11월 30일] <己卯>
아침에 눈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장흥과 같이 식사를 했다. 오후에 군기사장 선기룡 등 세 사람이 임금의 분부와 의정부의 방문을 가지고 왔다. 해남현감(유형)이 적에게 붙었던 윤해김언경을 묶어서 올려 보내 왔다. 그래서 나장이 있는 곳에 단단히 가두었다. 무안현감 남언상은 가리포의 전선에 가두었다. 우수사가 황원에서 와서 말하기를, 김득남이 처형되었다고 했다. 진사 백진남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10월 23일 [양력 12월 1일] <庚辰>
맑다. 저녁나절에 김종려·정수가 와서 봤다. 배 조방장 과 우후·우수사우후도 와서 봤다. 적량·영등포만호가 잇따라 왔다가 저녁에 돌아갔다. 이 날 낮에 윤해·김언경을 처형했다. 대장장이 허막동을 나주로 보낼려고 밤 아홉시에 종을 시켜 불렀더니 배가 아프다고 했다. 싸움말의 떨어진 편자를 갈았다.
10월 24일 [양력 12월 2일] <辛巳>
맑다. 해남에 있던 왜의 군량 삼백스무두 섬을 실어왔다. 초저녁에 선전관 하응서가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우 후 이몽구를 처형하라"는 것이었다. 그 편에 들으니, "명 나라 수군이 강화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밤 열시쯤에 병을 다스리려고 땀을 내니 등을 적시고 밤 한시에야 그쳤다. 밤 세 시 에 또 선전관과 금오랑이 왔다고 한다. 날이 밝자 들어오는데, 선전관은 권길이요, 금오랑(의금부도사 주부) 홍지수였다. 무안현감(남언상)·목포만호(방수경)·다경포만호(윤승남)를 잡으러 여기 왔다.
10월 25일 [양력 12월 3일] <壬午>
맑다. 몸이 몹시 불편했다. 윤련이 부안에서 왔다. 종 순화는 아산에서 배를 타고 왔다. 집안의 편지를 받아 보니 심회가 불편하여 이리뒤척 저리뒤척이다가 혼자 앉아 있었다. 초저녁에 선전관 박희무가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명나라 수군이 배를 정박하기에 알맞은 곳을 골라서 장계 하라는 것이었다. 량희우(양희우)가 장계를 가지고 서울로 갔다가 되돌아왔다. 충청우후가 편지를 보내고 또 홍시 한접을 보내 왔다.
10월 26일 [양력 12월 4일] <癸未>
새벽에 비를 부렸다. 조방장 등이 와서 봤다. 김종려·백진남·정수 등이 와서 봤다. 이 날 밤 열시에 자는데 식은 땀이 나서 몸을 적시었다. 온돌이 너무 따뜻한 탓이었다.
10월 27일 [양력 12월 5일] <甲申>
맑다. 영광군수(전협)의 아들 전득우가 군관이 되어 알현했다. 곧 그 부친이 있는 곳으로 돌려 보냈더니 홍시 백 개를 가지고 왔다. 밤에 비가 뿌렸다.
10월 28일 [양력 12월 6일] <乙酉>
맑다. 아침에 여러 가지 장계를 봉하여 피은세에게 주어서 보 냈다. 저녁나절에 강막지의 집에서 대장선으로 옮겨 탔다. 저녁에 소금밭의 서원 도걸산(도거질산)이 큰 사슴을 잡아 바쳤다. 그래서 군관 등에게 주어 나누어 먹게 했다. 이 날 밤에는 잔잔한 바람도 일지 않았다.
10월 29일 [양력 12월 7일] <丙戌>
맑다. 밤 두 시쯤에 첫 나발을 불고 출항하여 목포로 향하는데 벌써 부터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샛바람이 살살 불었다. 목포에 이르러 보화도(목포시 고하도)로 옮겨 정박하니, 된하늬 바람을 막을 만하고 배를 감추기에 아주 알맞다. 그래서 뭍에 내려 섬 안을 둘러 보니, 형세가 매우 좋으므로, (보화도에서) 진을 치고 집 지을 계획을 했다.
10월 30일 [양력 12월 8일] <丁亥>
맑으나 샛바람이 불고, 꼭 비올 것 같다. 아침에 집지을 곳으로 내려가 앉았으니, 여러 장수들이 와서 알현했다. 해남현감 류형도 와서 적에게 붙었던 사람들의 소행을 전했다. 일찍 황득중으로 하여금 자귀장이를 데리고 섬 북쪽 봉우리로 가서 집 지을 재목을 베어 오게 했다. 저녁나절에 해남에 있던 적에게 붙었던 정은부 및 김신웅의 부인이 왜놈에게 지시하여 우리나라 사람을 죽인 자 두 명과, 선비 집 처녀를 강간한 김애남을 아울러 목 베어 효시하였다. 저녁에 량밀이 도양장의 벌레 먹은 곡식을 멋대로 나누어 준 일로 곤장 예순 대를 쳤다.
(** 다음은 날짜는 적혀 있지 않으나, 1597년(정유)(Ⅰ) 10월 8일(을축) 뒷 장부터 모두 3 장으로 적혀 있는데 그 앞의 한 장은 「독송사」 이다.)
어허 이 때가 어느 때인데, 저 강(강)은 가려고 하는가. 가면 또 어디로 가려는가. 무릇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이 있을 뿐이요, 다른 길은 없다. 그 때야말로 종사의 위태함이 마치 터럭 한 가닥으로 천만 근을 달아 올림과 같아 정히 신하된 자는 몸을 버려 나라의 은혜를 갚을 때인데 이어서 간다는 말은 진실 로 마음에 생각도 내지 못할 말이거늘, 하물며 어찌 입 밖으로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 내가 강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몸을 헐어 피로써 울며, 간담을 열어 젖히고서 사세가 여기까지 왔으니 화친할 수 없음을 밝혀서 말할 것이요, 아무리 말하여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면 거기 이어 죽을 것이요, 또 그렇지도 못한 다면, 짐짓 화친하려는 계획을 따라 몸을 그 속에 던져 온갖 일 에 낱낱이 꾸려가며, 죽음 속에서 살 길을 구한다면, 혹시 만에 하나라도 나라를 건질 도리가 있게 될 것이어늘, 강의 계획은 이 런데서 내지 않고 그저 가려고만 했으니, 이것이 어찌 신하된 자로서 몸을 던져 임금을 섬기는 의리라 할 수 있겠는가.
(** 다음은 위의 「독송사(독송사)」가 적힌 그 다음 장에 두 장으로 적혀 있는 것이다.)
새로 급제한 원경전(원경전)·한치겸(한치겸)·정복례(정복례)는 우병사의 진에, 남엽· 정재순· 조형· 조완은 진주 운곡에, 이홍훈 주인집은 송곡에, 창노의 우두 머리 봉환·석운 뢰손은 백천 별장에, 훈련정 조신옥· 홍대방은 쌀 14·콩 18·파초 4·콩2 및 10, 대오미 2를, 흥양 정병 김득상은 화살쏘기로, 김덕방·김윤복은 처음 벼슬에 나왔고, 처음 벼슬에 나온 조언해·주부 송상보는 말이 없고, 순천 이진과 아산에서 처음 벼슬한 박윤희는 지금 충청도 방어사의 진중에 있는데 싸움말이 있어 적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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