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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55) -李舜臣-

카지모도 2021. 3. 25.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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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6월 (1597년 6월)

 

 

 

6월 초1일 [양력 7월 14일] <庚申>

비가 내렸다. 일찍 떠나 청수역(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었다. 저물녁에 단성땅과 진주 접경지역에 있는 박호원이라는 농사짓는 종의 집에 투숙하려는데, 주인이 기꺼이 접대하기는 하나 잠잘 방이 좋지 못하여 겨우 겨우 밤을 지냈 다.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유둔 하나, 장지 둘, 백미 하나, 참 깨 다섯, 들깨 셋, 꿀 다섯, 소금 다섯과 미지 다섯은 모두 하동에서 보낸 것이다.

 

6월 2일 [양력 7월 15일] <辛酉>

비오다 개이다 한다. 일찍 떠나 단계 시냇가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저녁나절에 삼가에 이르니, 삼가현감이 산성으로 이미 가버려 빈 관사에서 잤다. 고을 심부름꾼이 밥을 지어 먹어라고 한 것을 먹지 말라고 종들에게 타일렀다. 삼가현 오리 밖에 홰나무 정자가 있어 거기 앉아 있는데, 근처에 사는 노순일 형제가 와서 봤다.

 

6월 3일 [양력 7월 16일] <壬戌>

비가 내렸다. 아침에 떠나려다가 비가 이토록 오니 웅크리고 앉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을 적에 도원수의 군관 류홍(유홍)이 흥양에서 왔다. 그와 같이 길 사정을 이야기했다. 비로 길을 떠날 수가 없어 그대로 묵었다. 아침에 고을 사람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종들에게 매를 때리고 밥쌀을 도로 주었다.

 

6월 4일 [양력 7월 17일] <癸亥>

맑다. 일찍 떠나려는 데, 삼가현감(신효업)이 문안의 글을 보내면서 노자까지 보내왔다. 낮에 합천땅에 이르러 고을에서 십 리쯤 떨어진 홰나무 정자가 있는 곳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너무 더워서 한참 동안 말을 쉬게 하고, 오 리쯤 가니, 길이 쌍갈래이다. 한 길은 곧바로 합천군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또 한길은 초계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강을 건너지 않고 가다가, 거의 십리(4Km) 쯤 가니, 원수(권율)의 진이 바라 보였다. 문보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잤다. 고개를 끼고 넘어 오는데, 기암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강물은 굽이 돌며 깊고, 길은 험하고, 다리는 위험하다. 만일 이 험한 곳을 눌러 지킨다면, 만명의 군사라도 지나가지 못하겠다. 모여곡이다.

 

6월 5일 [양력 7월 18일] <甲子>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초계군수가 급히 달려왔다. 곧 그를 불러 이야기했다. 식사를 한 뒤에, 중군 이덕필도 달려 왔으므로 옛 이야기를 했다. 조금 있으니, 심준이 와서 보았다. 같이 점심을 먹고 잠자는 방을 도배했다. 저녁에 이승서가 와서 파수병과 복병이 도피했던 일을 말했다. 이 날 아침에 구례 사람과 하동현 감이 보내온 종과 말을 아울러 되돌려 보냈다.

 

6월 6일 [양력 7월 19일] <乙丑>

맑다. 잠자는 방을 다시 발랐다. 군관이 쉴 마루 두 칸을 만들었다. 저녁나절에 모여곡 주인 집의 이웃에 사는 윤감·문익신이 와서 봤다. 종 경을 이대백에게 보냈더니 담당 아전이 나가고 없어서 받지 못하고 그냥 왔다고 한다. 어두워서 집에 들어갔는데 과부는 다른 집으로 옮겨 갔다.

 

6월 7일 [양력 7월 20일] <丙寅>

맑다. 몹시 더웠다. 원수(권율)의 군관 박응사와 류홍(유홍) 등이 와서 봤다.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므로 곧 사례하는 답장을 보냈다. 안방으로 들어가 잤다.

 

6월 8일 [양력 7월 21일] <丁卯>

맑다.아침에 정상명을 보내어 황 종사관에게 안부를 물었다. 저녁나절에 이덕필과 심준이 와서 봤다. 고을 원과 그 아우가 와서 봤다. 원수를 마중 갔는데 원수 일행 여나믄 명도 와서 봤다. 점심을 먹은 뒤에 오후에 원수(권율)가 진에 오므로 나도 나가 보았다. 종사관은 원수 앞에 있었고 원수와 함께 이야기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원수가 박성이 써 올린 사직서 초고를 보여 주는데, 박성이 원수의 처사가 소탈 하다고 진술하니, 원수가 스스로 편안하지가 않아 체찰사(이원익) 에게 글을 올렸다. 또 복병에 관한 일들을 낱낱이 아뢴 것을 보았다.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몸이 매우 불편하므로,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

 

6월 9일 [양력 7월 22일] <戊辰>

개이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정상명을 원수에게 보내어 문안했다. 다음에 종사관에게 문안했다. 처음으로 노마료(보수)를 받았다. 숫돌을 캐어 왔는데 질이 연일석(경북 영일에 나는 고운 돌)보다 좋다고 했다. 윤감·문익신·문보 등이 와서 봤다. 이 날은 여필의 생일인데 혼자 수루터에 앉아 있으니 회포가 어떻겠노!

 

6월 10일 [양력 7월 23일] <己巳>

맑다. 아침에 가라말·가라워라말·간자짐말·유짐말 등의 네 편자가 떨어진 것을 갈아 박았다. 원수의 종사관이 삼척의 홍연해를 보내어 문안하면서 좀 늦게 와서 보겠다고 한다. 홍연해 (홍련해)는 홍견의 삼촌 조카이다. 어려서 죽마고우 서철이 합천 땅 동면 율진에 사는데,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봤다. 아이 때 이름은 서갈박지인데 밥을 먹여 보냈다. 저녁에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이 와서 보고, 조용히 말하는 사이에 임진년에 왜적을 무찌른 일을 칭찬하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산성에 험고한 요새를 쌓지 않은데 대한 한탄과 당면한 토벌·방비에 관한 대책이 허술한 것 등을 말하는 데,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돌아갈 것을 잊고서 이야기했다. 또 말하기를 내일은 원수가 산성을 살펴보러 간다고 했다.

 

6월 11일 [양력 7월 24일] <庚午>

맑다. 중복날이라 쇠를 녹이고 구슬을 녹일 것처럼 땅이 찌는 듯하다. 저녁나절에 명나라 차관 경략군문(당차관군략군문) 이문경이 와서 보므로, 부채를 선물로 보냈다. 엊저녁에 종사관과 이야기 할 때, 변홍백이 집안 편지를 가지고 와서 전하므로 어머니의 영연이 편한 줄은 알겠으나, 쓰라린 회포를 어찌 다 말하랴! 다만, 변흥백이 나를 만나볼 일로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청도로 갔다고 하니, 참으로 한이 된다. 이 날 아침에 편지를 써서 변흥백에게 보냈다. 아들 열이 토사로 밤새도록 신음했다. 지짐 굽듯 말할 수 없이 답답하다. 닭이 울어서야 조금 덜하여 잠이 들었다. 이 날 아침에 한산도 여러 곳에 갈 편지 열네 장을 썼다. 경의 모친이 편지를 보냈는데 지내기가 몹시 어렵다고 했다. 도둑이 또 일어났다고 했다. 작은 워라말이 먹지 않으니 이것은 더위를 먹은 것이다.

 

6월 12일 [양력 7월 25일] <辛未>

맑다. 종 경과 종 인을 한산도 진으로 보냈다. 전라우수사(이억기)· 충청수사(최호)· 경상수사(배설)· 가리포첨사(이응표)· 녹도만호(송여종)· 여도만호(김인영)· 사도첨사(황세득)· 동지 배흥립· 조방장 김완· 거제현령(안위)· 영등포만호(조계종)· 남해현감(박대남)· 하동현감(신진)· 순천부사(우치적)에게 편지를 했다. 저녁나절에 승장 처영이 와서 보고 부채와 미투리를 바치므로, 물건으로써 갚아 보냈다. 또 적의 사정을 말하고 또 원공(원균)의 일도 말했다. 낮에 중군장(이덕필)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에게 갔다고 한다. 어떤 일인지 몰랐는데, 원수(권율)에게 가 보니, 우병사(김응서)의 보고에, "부산의 적은 창원 등지로 떠나려 하고, 서생포의 적은 경주로 진을 옮긴다."고 했다. 복병군을 보내어 길을 막고 적에게 위세를 뽐내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병사의 우후 김자헌이 일이 있어 원수에게 뵈러 왔다. 나도 원수를 보았다. 새벽 일찌기 돌아왔다.

 

6월 13일 [양력 7월 26일] <壬申>

맑다. 저녁나절에 가랑비가 뿌리다가 그쳤다. 저녁나절에 병마사의 우후 김자헌이 와서 봤다. 한 시간이나 넘도록 서로 이야기했다. 점심을 먹여서 보냈다. 이 날 낮에 왕골을 쪄서 말렸다. 어두울 무렵 청주의 이희남의 종이 들어와서, 주인이 우병사의 부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 원수의 진 근처에까지 왔는데 날이 저물어서 묵고 있다고 했다.

 

6월 14일 [양력 7월 27일] <癸酉>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이희남이 들어와서 아산의 어머니 영연과 위·아랫사람들이 두루두루 무사하다고 한다. 쓰리고 그리운 마음을 어이 다 말하랴! 아침밥을 먹은 뒤에 이희남이 편지를 가지고 우병사(김응서)에게 갔다.

 

6월 15일 [양력 7월 28일] <甲戌>

맑고 흐리기가 반반이다. 오늘은 보름인데, 군중에 있으니, 어머니 영전에 잔을 올리어 곡하지 못하니, 그리운 마음을 어이다 말하랴! 초계 원이 떡을 마련하여 보냈다.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이 군관을 보내어 말하기를, "원수가 산성으로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나도 뒤를 따라 가서 큰 냇가에 이르렀다가 혹시 다른 계획이 있을까 염려되어 냇가에 앉은 채로 정상명을 보내어 병이라고 아뢰게 하고서 그대로 돌아왔다.

 

6월 16일 [양력 7월 29일] <乙亥>

맑다. 혼자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들여다보는 이가 없었다. 아들 열 과 이원룡을 불러 책을 만들어 변씨 족보를 쓰게 했다. 저녁에 이희남이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병마사는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변광조가 와서 봤다. 아들 열은 정상명과 함께 큰 내로 가서 전마를 씻고 왔다.

 

6월 17일 [양력 7월 30일] <丙子>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서늘한 기운이 쓸쓸하다. 밤 경치는 한없이 넓기만 한데 새벽에 앉았으니 쓰라린 그리움을 어찌 다 말하랴! 아침밥을 먹은 뒤에 원수(권율)에게로 가니, 원균(원균)의 정직하지 못한 짓을 많이 말했다. 또 비변사에서 내려 온 공문을 보이는데, 원균(원균) 의 장계에 수군과 육군이 함께 나가서 먼저 안골포의 적을 무찌른 연후에 수군이 부산 등지로 진군하겠다고 하니, 안골포의 적을 먼저 칠 수 없겠는가 하였다. 또 원수의 장계에는 `통제사 원이라는 사람은 전진하려고는 아니하고 오직 안골포만 먼저 쳐야 한다.'고 하였다. 수군의 여러 장수들이 대개 딴 마음을 품고 있을 뿐더러 원이라는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나가지 않으니, 절대로 여러 장수들과 대책을 합의하지 못할 것이라 일을 망쳐버릴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원수에게 이희남과 변존서· 윤선각 등에게 공문을 띄워 독촉하여 오게 했다. 올 때에 종사관 황여일이 머물고 있는 곳에 들어가 앉아서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나의 임시로 사는 집에 와서 곧 이희남의 종을 의령산성으로 보내고, 청도에는 파발로 공문을 보냈다. 초계 원을 보았더니 이른바 양심이 없다고 할만하다.

 

6월 18일 [양력 7월 31일] <丁丑>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종사관 황여일이 종을 보내어 문안했다. 저녁나절에 윤감이 떡을 만들어서 왔다. 명나라 사람 섭위가 초계에서 와서 말하기를, "명나라 사람 주언룡이 일찌기 일본에 사로잡혔다가 이번에야 비로소 나왔는데, 적병 십만 명이 벌써 사자마나 대마도에 이르렀을 것이며, 소서행장은 의령을 거쳐 곧장 전라도를 침범할 것이요, 가등청정은 경주 ·대구 등지로 옮겨 안동 등지로 갈 것이다."고 했다. 저물무렵 원수가 "사천에 갈 일이 있다."고 알려 왔다. 그래서 사복 정상명을 보내어 물어보게 하였더니, 원수가 "수군에 관한 일 때문에 사천으로 간다."고 하였다.

 

6월 19일 [양력 8월 1일] <戊寅>

새벽에 닭이 세 번 울 때 문을 나서서 원수의 진에 이르를 즈음에 동트는 빛이 벌써 밝았다. 진에 이르니 원수와 종사관 황여일이 나와서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 뵈었더니 원수는 원균에 관한 일을 내게 말하는 데, 통제사(원균)의 하는 일이 말이 아니다. 흉물은 조정에 청하여 안골포와 가덕도의 적을 모조리 무찌른 뒤에 수군이 나아가 토벌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무슨 뜻이겠소? 질질 끌고 나아가지 않으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사천으로 가서 세 수사에게독촉하겠다. 통제사(원균)는 이를 지휘할 것이 없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또 조정에서 내려온 유지를 보니, "안골포의 적은 가벼이 들어가 칠 것이 못 된다"고 하였다. 원수가 간 뒤에 황 종사관과 이야기했다. 조금 있으니 초계 원이 왔다. 작별하면서 초계 원에게 하는 말이 진찬순에게 심부름시키지 말라고 했더니 원수부의 병방 군관과 원이 모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돌아올 때 사 로잡혔다가 도망해 되돌아온 사람이 나를 따라 왔다. 이 날은 땅이 찌는 듯했다. 저녁에 작은 워라말 풀을 적게 먹었다. 낮에 군사 변덕기· 변덕장· 변경완· 변경남이 와서 봤다. 진사 이일장도 와서 봤다. 밤에 소나기가 많이 쏟아져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6월 20일 [양력 8월 2일] <己卯>

종일 비오더니 밤에는 많이 내렸다. 늦은 아침 늦게 서철이 와서 봤다. 윤감·문익신·문보 등이 와서 봤다. 변유가 와서 봤다. 오후에 종과 말의 보수를 받아 왔다. 병들었던 말이 조금 나아

졌다.

 

6월 21일 [양력 8월 3일] <庚辰>

비가 오락가락 하다. 새벽 꿈에 덕과 율온과 대가 꿈에 보였는데, 다들 나를 보고 좋아하고 뵙고자 하는 기색이 많았다. 아침에 영덕현령 권진경이 원수께 뵈러 왔다가 원수가 이미 사천으로 갔으므로 나에게 와서 보고 좌도의 일을 많이 전했다. 좌병사 군관이 편지를 가져왔다. 곧 회답편지를 써서 보냈다. 종사관 황여일이 문안을 보냈다. 저녁에 변주부·윤선각이 여기와서 들어와서 밤까지 이야기했다.

 

6월 22일 [양력 8월 4일] <辛巳>

비가 오락가락 하다. 아침에 초계군수가 연포국(무우·두부·다시마·고기를 맑은 장에 끓인 국)을 마련하여 와서 권하기는 했지만 오만한 빛이 많이 있었다. 그 처사가 체모 없음을 말하여 뭣하랴! 저녁나절에 이희남이 들어왔다. 우병사의 편지를 전했다. 낮에 정순신·정사겸·윤감·문익신·문보 등이 와서 봤다. 이선손이 와서 봤다.

 

6월 23일 [양력 8월 5일] <壬午>

비오다가 개다가 하였다. 아침에 대전을 다시 다듬었다. 저녁나절에 우병마사(김응서)에게 편지를 보내고, 겸하여 환도의 크고 작은 것을 보냈다. 그러나 가지고 오는 사람이 물에 빠뜨려 장식과 칼집이 결딴나버렸으니 아깝도다. 아침에 나굉의 아들 나재흥이 그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봤다. 또 쪼들리는 데도 노자까지 보내어 주니 미안스럽다.

 

6월 24일 [양력 8월 6일] <癸未>

이 날은 입추이다. 새벽에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골짜기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침에 수사 권언경의 종 세공·종 감손이 와서 무우밭에 관한 일을 아뢰었다. 무우밭을 갈고 씨부침하는 일의 감독관으로 이원룡·이희남·정상명·문임수 등을 정하여 보냈다. 생원 안극가가 와서 보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오후에 합천군수가 조언형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더위가 찌는 듯했다.

 

6월 25일 [양력 8월 7일] <甲申>

맑다. 다시 무우씨를 부침하도록 시켰다. 아침을 먹기 전에 종사관 황여일이 와서 보고는 해전에 관한 일을 많이 말하고, 또 원수가 오늘 내일 진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군사를 토론 하다가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저녁에 종 경이 한 산도에서 돌아왔다. 보성군수 안홍국이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들었다. 놀라워 슬픔을 이길 수가 없다. 놀랍고도 애석하며 놀라와 탄식했다. 한 놈의 적도 잡지 못하고 먼저 두 장 수를 잃었으니 통탄하고 한탄할 일이다. 거제도 사람을 보내어 미역을 실어왔다.

 

6월 26일 [양력 8월 8일] <乙酉>

맑다. 새벽에 순천의 종 윤복이 현신하기에 곧 곤장을 쉰 대 때 렸다. 거제에서 온 사람이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중군장 이덕필과 변홍달·심준 등이 와서 봤다. 종사관 황여일이 개벼루 강가의 정자로 갔다가 돌아갔다. 어응린과 박몽삼 등이 와서 봤다. 아산 종 평세가 들어와서 어머니 영연이 평안하고, 집집이 위·아랫 사람들이 다 평안하다고 했다. 다만 석달이나 가물어서 농사는 틀려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장삿날은 7월 27일이나 또는 8월 4일중에서 날잡는다고 했다. 그리운 생각에 슬픈 정회를 어찌 다 말하랴! 저녁에 우병마사(김응서)가 체찰사(이원익) 에게, "아산의 이방과 청주의 이희남이 복병하기 싫어서 원수(권율)의 진영 곁으로 피해 있다."고 말하여, 체찰사가 원수에게 공문을 보내니, 원수는 무척 성내어 공문을 다시 작성하여 보냈다. 이 날에 작은 워라말이 죽어서 내다버렸다.

 

6월 27일 [양력 8월 9일] <丙戌>

맑다. 아침에 어응린 ·박몽삼 등이 돌아갔다. 이희남과 이방이 체찰사의 행차가 도착하는 곳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황여일이 와서 보고 한참동안 이야기하였다. 오후 세시에 소나기가 많이 쏟아져 잠깐 사이에 물이 흘러 넘쳤다고 했다.

 

6월 28일 [양력 8월 10일] <丁亥>

맑다. 저녁나절에 황해도 백천에 사는 별장 조신옥·홍대방 등이 와서 봤다. 초계 아전의 편지에, "원수가 내일 남원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 날 새벽 꿈이 몹시도 뒤숭숭하였다. 종 경이 물건을 사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6월 29일 [양력 8월 11일] <戊子>

맑다. 변주부가 마흘방으로 갔다. 종 경이 돌아왔다. 이희남·이방 등이 돌아왔다. 중군장 이덕필과 심준이 와서 유격 심유경을 잡아가는 데, 총병관 양원이 삼가에 이르러 꽁꽁 묶어 보내더라고 전했다. 문림수가 의령에서 와서 전하기를 체찰사가 벌써 초계역에 이르렀다고 한다. 새로 급제한 량간(양간)이 황천상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변주부가 마흘방에서 돌아왔다.

 

6월 30일 [양력 8월 12일]<기축>

맑다. 새벽에 정상명을 시켜 체찰사에게 문안했다. 이 날 몹시 더워 땅이 찌는 듯했다. 저녁에 흥양의 신여량·신제운 등이 와서, 연해의 땅은 비가 알맞게 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