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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2)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7. 2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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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드디어 진술을 끝낸 재판장은 점잖게 자문 질의서를 집어 앞으로 가까이 나온 배심원장에게 건네 주었다. 배심원들은 마침내 퇴정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무엇이 부끄러운지 몸둘 바를 몰라하며 줄줄이 뒤이어 배심원실로 갔다. 그들 뒤로 문이 닫히자, 헌병 하나가 그 문에 다가서서 칼집에서 군도를 빼어 어깨에 세우고 문 옆에 보초를 섰다. 판사들도 모두 퇴정했고, 피고들도 끌려나갔다.

배심원들은 배심원실로 돌아오자마자 아까처럼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법정의 자기 자리에 앉았을 동안 모두들 뭔지 모르게 느끼고 있던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던 태도는 배심원 협의실에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시작하자 씻은 듯이 사라졌고,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여자에겐 죄가 없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휩쓸려 들어간 것뿐이죠." 사람좋은 상인이 말했다. "관대히 봐 줄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심의하자는 겁니다." 배심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개인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재판장의 사건 요약은 참 훌륭하더군요."하고 대령이 말했다.

"쳇, 훌륭하다고요? 난 졸음이 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슬로바가 공모하지 않았다면 여관 하인들이 어떻게 돈이 있다는 것을 알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하고 유대인 점원이 말했다.

"그럼, 당신 생각엔 그녀가 훔친 것 같소?" 누군가가 물었다.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선량한 상인이 외쳤다. "모두 그 핏발 선 눈을 한 늙은 요부가 한 짓이에요."

"한 마디로 대단한 자들이군."하고 대령이 말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방에 안 들어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여자를 꽉 믿고 계시는군요. 나는 그런 계집의 말은 죽어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당신이 믿든 안 믿든 그건 아무 상관없지 않소?"하고 점원이 말했다.

"열쇠를 그녀가 갖고 있었거든요."

"갖고 있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죄가 됩니까?" 상인이 대꾸했다.

"그럼 반지는?"

"그것은 그녀가 다 말하지 않았소?" 상인이 다시 소리쳤다. "그 상인이란 자는 성미가 대단한데다가 얼근한 판에 그녀를 때린 겁니다. 그러곤 불쌍해진 거죠. 뻔해요. 울지 말라고 달래기 위해서 준 거겠지요. 뭐 키가 6피트 5인치나 되고 체중은 35관이나 나가는 위인이라니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하고 표트르 게라시모비치가 말을 가로챘다. "문제는 그녀가 모든 일을 꾸몄느냐, 아니면 하녀가 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하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열쇠는 그녀가 갖고 있었으니까요."

두서 없는 문답이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저 잠깐, 여러분!"하고 배심원장이 말했다. "테이블에 앉아서 의논하기로 합시다. 자, 어서." 그는 대표석에 앉으며 말했다.

"그런 계집은 하나같이 추잡하지."하고 점원은, 마슬로바가 주범이라는 자기 의견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어떤 매춘부가 가로수길에서 자기 친구의 시계를 훔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령은 이 틈을 타서 은제 사모바르(러시아에서 사용되는 물주전자)를 도둑 맞았다고 하는 더욱 놀랄 만한 사건을 이야기했다.

"여러분, 자문 질의 사항에 대해서만 토의해 주십시오." 배심원장이 연필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자문 질의 사항은 이러했다.

1. 크라피벤스키 군, 보로키 마을의 농민 시몬 페트로프 카르틴킨, 33세, 188X년 1월 17일 N시에서 상인 스멜리코프의 돈을 절취할 목적으로 다른 두 사람과 공모해서 살해를 기도하고 독약이 든 코냑을 그에게 주어 스멜리코프를 죽인 후 약 2500루블과 다이아몬드 반지를 절취한 데 대해서 유죄로 인정하는가?

2. 평민 예브피미야 이바노브나 보치코바, 43세, 제 1문과 동일한 범행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는가?

3. 평민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바 마슬로바, 27세, 제 1문과 동일한 범행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는가?

4. 피고 예브피미야 보치코바가 제 1문의 범행에 있어서 무죄라고 한다면, 188X년 1월 17일 N시의 마브리타니야 여관에서 일하면서 동 여관의 숙박객인 스멜리코프의 방에 있는 가방으로부터 남몰래 2500루블의 돈을 절취하려고 자기가 가지고 온 열쇠로 그 자리에서 가방을 열어 위에서 말한 목적을 달성한 것을 무죄로 볼 것인가?

배심원장은 제 1문을 낭독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즉시 대답이 나왔다. 모두는 카르틴킨이 독살과 절도에 가담한 것을 인정하고 '유죄'라는 데 동의했다. 다만 늙은 직공 조합원 한 사람만이 카르틴킨을 유죄로 하는 데 반대하면서 모든 문제에 대해서 변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배심원장은 이 노인이 이해를 못해서 그러는 줄 알고, 카르틴킨과 보치코바가 모든 점으로 보아 틀림없이 유죄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늙은 직공 조합원은 자기도 잘 알고 있지만 동정을 베푸는 데 나무랄 게 무엇이냐고 대꾸했다. "우리들 자신은 아니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보치코바에 관한 제 2문에 대해서는 한참이나 승강이를 하다가 마침내 독살에 가담한 뚜렷한 증거의 불충분으로 무죄로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그녀의 변호사가 강조했다.

상인은 마슬로바의 무죄를 변호하기 위해서 보치코바야말로 모든 일의 주모자라고 주장했다. 다른 배심원들도 그에 찬성했으나, 배심원장만은 어디까지나 공정한 태도를 지키기 위하여 그녀를 독살 공모자로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오랜 논의 끝에 배심원장의 의견에 모두 합의하고 말았다.

보치코바에 관한 제 4문에 있어서는 '유죄'로 결정을 내렸으나 직공 조랍원의 주장으로 '단, 정상을 참작할 것'이라는 말이 첨가되었다.

마슬로바에 관한 제 3문에 있어서는 논쟁이 불붙듯 벌어졌다. 배심원장은 마슬로바가 절도와 독살에 대해 모두 유죄라고 주장하였는데, 상인은 이에 반대했다. 대령과 점원과 늙은 직공 조합원은 모두 상인 편을 들었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동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배심원장의 읜견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배심원들이 모두 지쳐 있어서 되도록 빨리 끝마치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게 해줄 듯한 의견에 가담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정 심리에 나타난 모든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마슬로바의 성품으로 보더라도, 그녀가 절도나 독살에 대해서 전혀 죄가 없다고 네플류도프는 확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배심원 누구나 이를 인정할 것으로 여겼던 것이 상인의 변변치 못한 변호와 마슬로바가 육체적으로 그의 마음에 들었다는 점에 입각한(그는 이것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변호와, 그 점에 중점을 둔 배심원장의 반박과, 특히 모든 배심원들의 피로 때문에 점점 결론은 유죄로 기울어져 갔다. 이것을 본 네플류도프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마슬로바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 두려웠다. 자기와 그녀와의 관계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놔둘 수도 없어서 즉시 반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면서 간신히 입을 떼려고 했을 때, 이때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표트르 게라시모비치가 배심원장의 억압적인 태도에 대뜸 화를 내며 그를 반박하면서 네플류도프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마슬로바가 열쇠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훔친 게 틀림없다고들 하지만 그녀가 돌아간 뒤 여관 하인들이 딴 열쇠로 그 가방을 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암, 그렇지, 그래!"하고 상인이 맞장구를 쳤다.

"게다가 그녀는 돈을 훔칠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처지로서는 돈을 숨겨둘 만한 데가 없었으니까요."

"바로 그 점입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하고 상인이 거들었다.

"그것보다는, 그녀가 방에 들어가자 두 하인의 머리에 어떤 계교가 떠올라 그 기회를 이용하여 일을 저지르고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덮어씌웠다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표트르 게라시모비치는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의 흥분은 배심원장에게도 옮겨져서 그 바람에 배심원장은 더한층 끈질기게 자기의 반대 의견을 고집했다. 그러나 표트르 게라시모비치의 말이 조리 있고, 확신에 찼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 동의했고, 마슬로바는 현금과 반지를 훔치는데에 관계가 없다는 것, 반지가 그녀가 상인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그런 뒤에 그녀의 독살 관계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자, 그녀의 열렬한 옹호자가 된 상인은 그녀에겐 그를 독살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무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심원장은 그녀가 스스로 가루약을 주었다고 자백한 이상 무죄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수면제인 줄 알고 주었다지 않습니까?"하고 상인이 말했다.

"그렇지만 수면제로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가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에서 빗나가기를 잘하는 대령이 말했다. 그리고 자기 처남의 아내가 수면제를 먹었는데 만약에 이웃에 의사가 없어서 금방 응급 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죽었을 거라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얘기를 하는 대령의 태도가 아주 진지했으며 자신만만하고 더욱이 위엄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막을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다만 점원만은 대령의 본을 떠서 자기도 한바탕 늘어놓으려고 용감히 대령의 이야기를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개중에는 점점 습성이 되어."하고 그는 지껄이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마흔 알쯤 먹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친적 중에도..."

그러나 대령은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었으므로 수면제가 처남의 아내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러분, 벌써 4시가 지났습니다."하고 배심원의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여러분?"하고 배심원장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유죄라고 인정하기는 하지만, 절도할 의사는 없었으며, 사실 훔치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표트르 게라시모비치는 자기의 승리에 만족하여 이내 찬성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나 정상을 참작해야 합니다." 상인이 덧붙였다.

모두들 찬성했으나 다만 늙은 직공 조합원만이 그녀가 무죄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결국 무죄가 되는 겁니다."하고 배심원장이 설명했다. "훔칠 의사도 없었고, 또 사실 훔치지도 않았다고 하면 당연히 무죄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자, 이렇게 합시다. '정상을 참착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해둡시다. 이제 마지막 손질을 해 봅시다."하고 상인이 기분이 좋아서 말했다.

그들은 모두들 지칠 대로 지쳐 있는데다 논쟁을 하느라고 머리가 어지러워졌기 때문에, 답신서에 '단, 살해할 의도는 없었음'이라고 단서를 덧붙이는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네플류도프도 몹시 흥분해 있었으므로 거기가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답신서는 이런 형식으로 기록되어 법정에 제출되었다.

라블레(<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라는 풍자소설을 남긴 프랑스의 유명한 풍자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쓴 일이 있다. 어느 법률가가 소송 사건을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대하여 온갖 법률 조항을 가리키면서 무의미한 법률상의 용어를 20페이지나 읽어 준 다음 주사위를 던져서 짝수냐 홀수냐를 시험해 보라고 제의했다. 만약 짝수가 나오면 원고가 이기고 홀수가 나오면 피고가 이긴다는 것이었다.

이것과 똑같은 일이 여기서도 행해졌다. 바로 이 결의가 채용된 것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 아니라. 첫째로는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사건 요약을 늘어놓은 재판장이 언제나 반드시 말하던 일, 즉 배심원들은 자문 사항에 답할 때, '유죄임. 단, 살해할 의사는 없었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먹고 주의시키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대령이 자기 처남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오랫동안 했으므로 모두가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셋째로는 네플류도프가 너무 흥분했기 때문에, '살해할 의사는 없었음'이란 단서가 빠진 것을 모르고, '절도할 의사는 없었음'이란 단서만으로도 기소를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넷째로는 배심원장이 자문 질의 사항과 답신서를 낭독할 때, 표트르 게라시모비치가 밖에 나가서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모두들 지쳐 버려서 한시라도 빨리 자유롭게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빨리 결말이 날 듯한 결의에 찬성을 했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은 벨을 눌렀다. 군도를 빼들고 문 앞에 서 있던 헌병은 칼을 칼집에 도로 넣고 옆으로 비켜섰다. 이윽고 재판관들이 자리에 앉자, 배심원들이 한 사람씩 들어왔다.

배심원장은 엄숙한 태도로 답신서를 가지고 있다가 재판장에게 가까이 가서 그것을 주었다. 재판장은 그것을 한 번 읽고 난 다음, 어이가 없다는 듯이 두 손을 벌리고는 배석 판사들과 의논하기 시작했다. 재판장은 배심원들이 '절도할 의사는 없었음'이란 단서를 붙였으면서 '살해할 의사는 없었음'이란 단서는 붙이지 않았다는 데 놀랐던 것이다.

배심원의 결의에 의한다면, 마슬로바는 훔치지도 않았고 빼앗지도 않았으면서 이렇다 할 목적도 없이 사람을 독살한 결과가 되고 만 것이었다.

"이것 좀 보게. 이런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고 그는 왼쪽에 앉아 있는 배석 판사에게 말했다. "이건 징역감이란 뜻이야. 하지만 그녀는 죄가 없단 말이야."

"아니 어째서 죄가 없다는 겁니까?" 엄격한 표정의 배석 판사가 말했다.

"암, 죄가 없다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사건은 818조를 적용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818조란 재판장이 유죄를 부당하다고 생각할 경우 배심원의 결정을 파기할 수 있음을 명기한 조문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판장은 마음씨 좋은 배석 판사에게 물었다.

그 마음씨 좋은 판사는 금방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서류 번호를 힐끔 보고는, 그 숫자를 셋으로 나누어 봤다. 만약 나누어 떨어지면 찬성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나누어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워낙 마음이 좋은 탓으로 찬성하고 말았다.

"나도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그럼 당신 생각은?" 재판장은 성미 급한 배석 판사에게 물었다.

"절대로 찬성할 수 없습니다."하고 그는 딱 잘라 말했다. "그렇잖아도 신문에서는 배심원들이 범인을 무죄로 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는데, 재판소까지 무죄로 해버린다면 뭐라고 떠들어 댈지 모릅니다. 나는 절대로 반대입니다."

재판장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가엾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군."하고 답신서를 배심원장에게 주고 낭독시켰다.

모두 기립했다. 배심원장은 한 발에서 다른 발로 중심을 바꾸면서 우선 잔기침을 하고 나서 자문 질의 사항과 답신 사항을 낭독했다. 재판소의 여러 관리들은, 서기로부터 변호인, 검사에 이르기까지 깜짝 놀란 기색을 나타냈다. 피고인들은 답신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으로 태연히 앉아 있었다. 모두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재판장은 검사보를 보고 피고를 어떤 형에 처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의견을 물었다.

검사보는 마슬로바에 관해서 뜻밖에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 공로를 자기 웅변이 훌륭한 탓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서류를 뒤적여 조사한 다음 일어서서 말했다.

"시몬 카프틴킨은 제 1452조 및 제1453조 제 4항에 의하여, 예브피미야 보치코바는 제 1659조에 의하여, 예카테리나 마슬로바는 제 1454조에 의하여 각각 구형해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구형은 죄 중에서도 가장 준엄한 형벌이었다.

"재판관은 형의 결정을 위해서 잠시 휴정한다."하고 재판장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모두들 그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커다란 일을 해치웠다는 흐뭇한 기분을 맛보면서 사람들은 법정에서 나가기도 하고 그 안을 서성거리기도 하였다.

"허 참, 우리는 나이값도 못하고 형편없는 실수를 했단 말이야." 표트르 게라시모비치가 배심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네플류도프에게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 여자에게 우리가 징역을 언도한 셈인지요."

"네, 뭐라고요?" 네플류도프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 때만은 이 교사의 능글맞은 태도가 조금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이러쿵저리쿵할 것도 없어요. 우리는 그 답신서에, '유죄. 단, 살해할 의도는 없었음'이라고 써넣는 것을 잊어버렸지요. 내가 금방 서기한테서 들었습니다만 검사는 그 여자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그렇게 정한걸요."하고 배심원장이 말했다.

표트르 게라시모비치는 그녀가 돈을 훔치지 않았으므로 생명을 빼앗을 의도를 가질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맞섰다.

"그렇지만, 내가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답신서를 낭독해 드렸잖습니까?"하고 배심원장은 둘러 댔다. "그 땐 아무도 이의를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습니까?"

"난 그 때 마침 방에 없었습니다."하고 표트르 게라시모비치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그걸 몰랐지요?"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물었다.

"나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허, 생각도 못했다니."

"하지만, 그러한 것은 정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아니, 안 되죠. 이제 모두 끝났으니까, 다 틀렸습니다."

네플류도프느 피고들을 보았다. 이미 운명이 결정된 이 사람들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헌병들이 지키는 나무 칸막이 안에 앉아 있었다. 마슬로바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네플류도프의 마음속에는 못된 감정이 꿈틀거렸다. 이 때까지는 그녀가 무죄가 되어 이 도시에 남아 있게 될 경우를 예상했었으므로, 그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사실 그녀에 대한 관계는 골치 아픈 것이었다. 그런데 징역과 시베리아 유형은 그녀에 대한 모든 관계를 일시에 끊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미처 숨이지지 않고 불치 주머니 속에 갇힌 새는, 곧 퍼덕거리지 못할게 될 것이며, 자기의 존재를 상기시키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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