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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류도프는 검사와 헤어진 뒤 그 길로 곧장 미결감으로 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마슬로바라는 여죄수가 없었다. 아마 옛날 이송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전옥이 네플류도프에게 말해 주었다. 네플류도프는 그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과연 예카테리나 마슬로바는 그 곳에 수감되어 있었다. 검사는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6 개월 전에 극도로 날카로워진 정치적 소요 사태가 헌병들의 탄압으로 더욱 확대되어 미결감의 모든 감방은 모조리 대학생, 의사, 노동자, 여학생, 간호사 들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미결감에서 이송감까지의 거리는 대단히 멀어서 네플류도프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그가 거대하고 음산한 건물의 문으로 가까이 가려고 하자 보초병이 들여 보내지 않고 벨을 눌렀다. 그러자 곧 간수가 나왔다.
네플류도프가 허가증을 보였지만 간수는 교도소장의 관사로 갔다. 그가 계단을 올라서자 뭔지 복잡하고 웅장한 피아노 곡이 집 안에서 흘러나왔다. 곧이어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시무룩한 얼굴의 하녀가 문을 열었는데, 그 때 피아노 소리가 집 안에서 둑 터지듯 울려나와 그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이제껏 싫증이 나도록 들은 리스트의 <광상곡>으로서 훌륭한 솜씨였지만 어느 일정한 부분까지밖에는 치지 않았다. 그 부분까지 쳤다가는 다시 처음부터 같은 곡을 되풀이했다. 네플류도프는 눈에 안대를 한 하녀에게 교도소장이 집에 있느냐고 물었다. 하녀는 없다고 대꾸했다.
"곧 돌아오실까요?"
<광상곡>이 다시 요란하게 시작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그 부분까지 채 가기도 전에 멎고 여자의 목소리가 문 뒤에서 들려왔다.
"안 계시고 오늘은 돌아오시지 않는다고 말해요. 초대받고 가셨다고요. 정말 귀찮아 죽겠군."
그리고 또 <광상곡>이 들리는가 싶더니 멎으며 의자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기분 잡친 피아니스트가 때아닌 시간에 찾아와서 귀찮게 구는 방문객에게 직접 잔소리를 할 작정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안 계세요."하고 우울해 보이는 눈 밑에 푸른 점이 있고, 흐트러진 머리를 높이 빗어올린 창백한 얼굴의 처녀가 문간으로 나오면서 툭 쏘아붙였다. 그러나 훌륭한 외투를 입은 청년을 보자 그녀는 곧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좀 들어오세요. 어떤 일로 오셨는지......."
"감옥에 있는 여죄수를 면회하려고 합니다."
"아마 정치범이겠죠?"
"아니 정치범이 아닙니다. 검사의 허가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저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쨌든 이리로 들어오세요." 그녀는 다시 좁은 현관에서 그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시다면 부 소장님에게 말씀해 보세요. 지금 사무실에 계실 거예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고맙습니다." 네플류도프는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의 등뒤에서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또다시 그 활기 있고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연주되고 있는 장소로 보거나 가련한 처녀의 얼굴로 보거나 어울리지 않았다. 안뜰에서 네플류도프는 염색한 콧수염을 뻣뻣하게 세운 젊은 장교를 만났기에 부소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가 부소장이었다. 그는 허가증을 받아 보고 나서 미결감의 면회 허가증이므로 여기서 그것이 허용될 수 있을는지 자기도 모르겠으며 또 이미 늦었으니 내일 오라고 말했다.
"내일 오십쇼. 내일 10시에 일반 면회가 허가됩니다. 그때는 교도소장도 집에 계실 겁니다. 일반 면회는 물론, 교도소장의 허가만 있으면 사무실에서도 면회하실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이 날은 끝내 면회를 하지 못하고 네플류도프는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흥분했던 네플류도프는 재판소의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검사나 부소장의 이야기만을 상기하면서 거리를 걸어갔다. 그녀와 만날 방법을 알아보고 자기의 결심을 검사에게 말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감옥을 두 군데나 찾아다녔다는 사실이 그를 몹시 흥분케 했으므로 한참 동안 그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즉시 오랜 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장을 꺼내서 몇 군데를 읽어 보고, 다음과 같이 적어 넣었다.
'2년 동안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어린애 같은 짓은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린애 같은 짓이 아니라 자기와의 대화이다. 모든 사람 속에 살고 있는 진실하고 신성한 자아와의 대화이다. 지난 2년 동안 이 마음속의 자아가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4월 28일 배심원으로 나갔던 법정에서의 뜻밖의 사건은 내 자아의 잠을 깨워 주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속아 몸을 버린 카추샤가 피고석에 않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상한 오해와 나의 과오 때문에 그녀는 징역을 선고받았다. 나는 곧 검사를 찾아보고 감옥으로 갔다. 그녀와의 면회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만나 용서를 빌고 결혼을 해서라도 나의 지난 죄를 속죄하겠다. 아, 신이여, 도와주옵소서! 나의 영혼은 평화롭고, 나는 지금 기쁨에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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