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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57)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9. 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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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자, 무슨 이야긴지 어디 해보게. 담배 피우겠나? 잠깐만 기다리게. 재투성이가 되면 안 되니까."하고 그는 재떨이를 가져왔다. "자, 무슨 이야기지?"

"자네한테 두 가지 청이 있네."

"아, 그래!"

마슬레니코프의 얼굴은 어둡고 침울해 보였다. 주인이 귓등을 긁어 줄 때의 흥분했던 강아지의 그런 모습은 말끔히 사라졌다. 객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말소리였다. "절대로, 절대로 믿지 않아요."하는 여자의 프랑스 말 목소리와 그 반대편에서 '보론초바 백작 부인과 빅토르 아프락신'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무엇인지 지껄여 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한쪽에서는 웃음소리가 범벅이 되어 들려왔다. 마슬레니코프는 객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네플류도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또 그 여자 때문에 왔는데."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응, 죄 없이 판결을 받았다는 여자 말이지? 알고 있어. 잘 알고 있어."

"그 여자를 교도소 병원 근무로 옮겨 주었으면 해서 말이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군."

마슬레니코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글세, 어떨지?"하고 그는 말했다. "어쨌든 이야기해 보고, 결과는 내일 전보로 알려 주겠네."

"병원에 환자가 많아서 보조 간호사들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그래 그래. 어쨌든 결과를 알려 주겠네."

"부탁하네."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객실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기분 좋게 터뜨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또 빅토르가 나섰군." 빙그레 웃으면서 마슬레니코프가 말했다. "저 친구는 흥이 나면 참 재미있는 말을 하거든."

"그리고 또 한 가지,"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지금 감옥에는 여행권의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1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는데, 벌써 한 달이나 됐다더군."

그리고 그는 그들이 수감된 이유를 설명했다.

"자네는 어떻게 그 일을 알았나?"하고 마슬레니코프가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갑자기 불안과 불만의 기색이 떠올랐다.

"어느 죄수한테 갔을 때, 그들이 복도에서 나를 둘러싸고 호소하더군."

"어느 죄수한테 갔었는데?"

"죄 없이 수감된 농부였네. 나는 그에게 변호사를 대 주었지.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아닐세. 대체 그들은 아무 죄도 없는데 말이야, 단지 여권의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수감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건 검사가 한 일이야." 화가 난 듯이 그는 네플류도프의 말을 가로챘다. "이것이 바로 자네가 말하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라는 걸세. 검사란 가끔 감옥을 방문하고 죄수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아닌가를 살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카드 놀이만 하고 앉았다네."

"그럼 자네로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네플류도프는 지사가 반드시 검사의 탓으로 돌릴 것이라던 변호사의 말을 상기하면서 우울한 낯으로 물었다.

"아니, 어떻게 해보지. 곧 조사해 보도록 하겠네."

"저분에게는 오히려 더 좋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그분은 수난자가 되니까요." 객실로부터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슬레니코프의 대답은 말뿐지 속으로는 자기가 한 말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 그런 말투였다.

"그렇다면 더욱 좋습니다. 그럼 난 이걸 갖겠습니다." 이번에는 남자의 농담 소리가 방 다른 구석에서 들려오고 곧이어 분명히 무엇인가 안 주겠고 버티는 여자의 농담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요. 안 된대두요. 절대로 안 돼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럼 모든 일은 내가 해보겠네." 마슬레니코프는 터키석의 반지를 낀 하얀 손으로 담뱃불을 끄면서 이렇게 되뇌었다. "자, 부인들 쪽으로 가세."

"참, 그리고 또 하나." 네플류도프는 객실로 들어가는 문가에서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어제 감옥에서 태형을 가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인가?"

마슬레니코프는 얼굴을 붉혔다.

"아니, 자네 그런 말까지 하긴가! 여보게, 이러면 절대로 감옥에 들여 보낼 수 없겠네. 모든 문제에 마구 개입하려 드는 말일세. 자, 가세. 안나가 부르고 있으니." 그는 네플류도프의 팔을 잡고 귀빈들의 방문을 받았을 때의 흥분을 되살리면서 말을 했지만 그 흥분은 이 시각부턴 기쁨에 넘치는 흥분이 아니라 다만 불안이 깃들인 것이 되고 말았다.

네플류도프는 그에게서 팔을 빼고는 아무에게도 인사 한 마디 하지 않고, 말없이 어두운 낯으로 객실과 무도실을 지나 마침 달려나오는 하인과 부딪치면서 현관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그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요?"하고 부인이 남편에게 물었다.

"그게 프랑스식이라는 거죠." 누군가 말했다.

"그게 프랑스식이라고요? 그건 줄루(아프리카의 야만족)식이에요."

"그렇지만 그분은 항상 그러시는걸요. 뭐."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어서 지껄여 대는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일동은 네플류도프의 에피소드들이 이 날 파티의 최고의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마슬레니코프를 방문한 이튿날 네플류도프는 마슬레니코프루부터 문장이 들어 있는 번들번들한 두꺼운 종이에다 멋진 필체로 마슬로바를 감방 병원 근무로 옮기도록 의삭에게 써 보냈으니까, 자네의 희망은 실현될 것이라는 뜻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 말미에, '친애하는 옛 벗 마슬레니코프'하는 글이 쓰여 있고, 그 밑에는 놀라운 만큼 커다랗고 뚜렷한 사인이 있었다.

"미친 놈!"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이라는 말 속에서 마슬레니코프가 관대한 자비심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이려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즉, 도덕적으로 가장 더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자기를 훌륭한 인물로 자부하면서 스스로 네플류도프의 벗이라고 칭하는 뻔뻔스러움을, 그다지 자랑으로 삼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하는 의도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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