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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58)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9. 4.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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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 세상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미신의 하나는 인간은 저마다 일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선한 자, 악한 자, 영리한 자, 어리석은 자, 근면한 자, 태만한 자 등등의 사람이 있다는 것...그러나 사실 인간이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는 어떤 한 사람에 관해서,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많다든가, 어리석을 때보다 영리할 때가 더 많다든가, 태만할 때보다 근면할 때가 더 많다든가, 또는 그 반대로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언제나, 저 사람은 선한 자 영리한 자이며, 이 사람은 악한 자 어리석은 자이다, 라는 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그릇된 짓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강과도 같은 것이어서, 물은 어느 강에서든 어디로 흘러가든 역시 같은 물이요, 또 강에서 좁은 곳도 있거니와 빠른 곳도 있고, 넓은 곳도 있거니와 고요한 곳도 있고, 맑은 곳도 있거니와 흐린 곳도 있고, 찬 곳도 있거니와 따뜻한 곳도 있는 법이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 속에 인간으로서 온갖 성질의 싹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성질이 나타나고 다른 경우에는 또 나른 성질이 나타난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지만, 가끔 전혀 다른 성질이 나타나곤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경우가 몹시 심한 사람이 있다. 그의 내부에 있어서의 이러한 변화는 육체적인 원인과 정신적인 원인에서 온 것이었다. 지금도 내부에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재판이 끝나고 카추샤와 처음으로 만난 뒤에 느꼈던 갱생의 승리와 환희의 감정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최근에 만난 뒤부터는 그녀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만 일었다. 그는 결코 그녀를 버리지 않겠다, 그녀만 원한다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자기의 각오를 절대로 변경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렵고 괴로운 일이었다.

마슬레니코프를 방문한 이튿날, 네플류도프는 카추샤를 만나기 위하여 감옥을 향해 마차를 달렸다.

소장은 면회를 허가했지만, 면회 장소는 사무실도 아니요 변호사 대기실도 아닌 여죄수 면회실이었다. 소장은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전보다는 네플류도프에 대해서 더욱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분명히 마슬레니코프와의 대화가, 감옥에서 네플류도프에 대하여 엄중히 경계하라는 명령으로 나타난 모양이었다.

"면회는 하셔도 좋습니다만,"하고 그는 말했다. "다만 돈만은 전에 제가 부탁드린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그녀를 병원으로 옮기는 것은 부지사 각하 말씀대로 할 수 있으며, 의사의 동의도 얻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마다하면서 '옴쟁이들을 간호하기는 싫다.'고 합니다. 아무튼 전부 그 모양들입니다, 공작님." 이렇게 그는 덧붙였다.

네플류도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만나게 해 달라는 부탁만 했다. 소장은 간수를 보냈다. 네플류도프는 그를 따라서 텅 빈 여죄수 면회실로 들어갔다. 마슬로바는 벌써 거기에 와 있다가, 겁먹은 듯이 수줍어하며 철망 저쪽에서 조용히 나타났다. 그녀는 네플류도프에게 다가오더니 시선을 피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용서해 주세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그저께는 너무 실례되는 말씀을 했어요."

"나더러 용서하라니..."하고 네플류도프는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어쨌든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렇게 그녀는 덧붙였다. 그 때 그를 무섭게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사팔눈에는 긴장된, 원한에 찬 표정이 감돌고 있었다.

"어째서 내버려 두라는 거요?"

"어째서고 뭐고 그저..."

"어째서?"

그녀는 또다시 적의에 찬(그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튼," 그녀는 말했다. "저를 내버려 두세요. 진정이에요. 어떻게도 할 수 없어요. 이런 일도 다 그만둬 주세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래요. 나 같은 인간은 목이라도 매어 죽어버리는 게 나을 거예요."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그렇게 거절하는 것을 자기를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는 원한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짐짓 거절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네플류도프의 마음에 뭉쳐 있던 일체의 의혹을 쫓아버리고, 다시금 이전의 진지한 환희의 감동적인 상태로 되돌려 준 것이었다.

"카추샤, 내가 전에 말한 적이 있었지만," 그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하고 결혼해 줘요. 만일 싫다고 한다면, 당신의 마음이 돌아설 때까지 전처럼 따라다니고,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겠소."

"마음대로 하세요.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다시 그녀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네플류도프는 말할 기력도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는 일단 시골로 갔다가 페테르부르크로 가겠소."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는 말했다. "당신의, 아니 우리들의 사건에 대해서 힘써 볼 생각이오. 반드시 판결은 취소될 거요."

"취소되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이번 일이 아니라도 다른 죄를 짓고 있으니까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 때 그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기 위해서 그녀가 몹시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 메니쇼프를 만나셨어요?" 그녀는 동요된 마음을 감추려는 듯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그 사람들이 무죄라는 게 사실이죠?"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 좋은 할머니예요."

그는 메니쇼프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다 하고, 무슨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병원의 일이지만," 그녀는 갑자기 사팔눈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가겠어요. 그리고 술도 다신 안 마시겠어요."

네플류도프는 잠자코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은 웃고 있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야." 그는 간신히 이 말만 하고 그녀와 헤어졌다.

'그래, 그렇다. 그녀는 딴사람이 되었다.' 여태까지의 모든 의혹 끝에 오는, 전혀 새롭고 일찍이 맛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다는 절대성을 느끼면서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면회를 마치고 악취가 물씬 풍기는 감방으로 돌아오자, 마슬로바는 겉옷을 벗고 양손을 무릎 속위에 얹은 채 나무 침대틀에 앉아 있었다. 감방에는 젖먹이 어린애를 거느린 폐병쟁이 블라디미르 현의 여자와 메니쇼프 노파, 그리고 두 아이가 딸린 건널목지기 여자밖에 없었다. 교회 부집사의 딸은 어제 정신병자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으로 끌려갔다. 다른 여자들은 모두 빨래하러 가고 없었다. 그리고 노파는 자기 잠자리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아이들은 복도에서 놀고 있었고, 그 쪽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두 팔에 어린아이를 안은 블라디미르 현의 여자와, 쉴 새 없이 손가락을 눌리면서 양말을 뜨고 있던 건널목지기 여자가 카추샤 곁에 가까이 왔다.

"그래, 만나고 왔수?" 그들은 물었다.

마슬로바는 높은 침대에 걸터앉아 마루까지 닿지 않는 다리를 흔들흔들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우는 거야?" 건널목지기가 말했다. "절대로 낙심해선 안 돼요. 자, 카추샤! 자!"하고 그녀는 잽싸게 손가락을 눌리면서 말했다.

마슬로바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들 빨래하러 갔어. 오늘은 자선 차입이 한아름이래. 잔뜩 가져왔나봐." 블라디미르 현의 여자가 말했다.

"피나시카!"하고 건널목지기가 문 쪽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이 장난꾸러기가 어딜 갔을까!"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뜨개바늘을 하나 빼서 실뭉치와 양말에 꽂고 복도로 나갔다.

이 때 복도에서 시끄러운 발소리와 여자들의 말소리가 들리더니 맨발에 죄수화를 신은 다른 감방의 여죄수들이 들어왔다. 모두 흰 롤빵을 한 개씩 들고 있었으나, 개중에는 두 개를 들고 있는 여자도 있었다. 페도샤가 곧 마슬로바 곁으로 다가왔다.

"왜 그래?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어?" 페도샤는 맑고 푸른 눈으로 정답게 마슬로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건 차 마실 때 받은 거야."하고 그녀는 흰빵을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서 덧붙였다.

"그분이 결혼을 망설이기라도 하든?" 코라블료바가 물었다.

"아냐,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싫은걸."하고 마슬로바가 말했다. "그래서 싫다고 했어."

"바보 같으니!" 코라블료바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같이 살 수 없을 텐데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해?" 페도샤가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너의 남편도 따라다니고 있잖아?" 건널목지기가 말했다.

"그야, 우린 정식 부부니깐 그렇지 뭐."하고 페도샤가 말했다. "하지만 같이 살 수 없는데 무엇 때문에 굳이 정식 결혼을 하겠어?"

"이 바보야! 무엇 때문이냐고? 그 사람하고 결혼만 하면, 등 따습고 배부르지 않아!"

"그이는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오겠다고 말했어."하고 마슬로바는 말했다. "그런데 오고 싶으면 와도 좋고, 또 그러고 싶지 않으면 안 와도 좋지뭐. 나는 부탁하지는 않았어. 그분은 지금부터 페트르부르크로 가서 석방 운동을 하겠다는 거야. 그 곳의 장관들이 모두 친척이라나."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나는 그 사람 필요 없어."

"그야 뻔하잖아!" 코라블료바는 자루를 챙기고 있었으므로 아마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맞장구를 쳤다. "어때, 술이나 한잔 마실까?"

"난, 안 마시겠어."하고 마슬로바는 대답했다. "당신들끼리나 실컷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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