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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15)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9. 2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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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전 국무장관이었으며, 매우 신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의 젊은 시절부터 신념은 다름이 아니라 마치 새가 벌레를 먹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 다니는 것이 천성인 것처럼 그 자신도 고급 요리사가 만든 고급 요리로 배를 채우고, 몸에 잘 맞는 값진 옷을 입고, 기분 좋고 빠른 준마를 타고 다니는 것이 천성에 어울리기 때문에, 그런 모든 것이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국고에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으면 받을수록 좋았고, 훈장도 다이아몬드가 박힌 것을 포함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며, 남녀 누구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었다. 이 같은 기본적인 신념에 비해 그 밖의 일체의 것은 이반 미하일로비치의 눈으로 볼 때 보잘것없고 흥미없는 것이었다. 이 신념에 따라서 이반 미하일로비치는 40년 동안 페테르부르크에서 생활하고 활약한 나머지 국무장관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이 이 지위를 얻게 된 중요한 자질은, 첫째 공문서나 법률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서툴렀지만 그럭저럭 서류를 초안할 수 있었으며, 철자법도 틀리지 않게 문장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둘째로는 풍채가 좋고, 때에 따라서는 의젓한 정도가 아니라 남이 근접할 수도 없을 만큼 위엄 있는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야비할만큼 비굴하게 아첨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셋째로, 그는 도덕적인 면이건 국가적인 면이건 일반적인 주의 원칙이라는 것이 전연 없었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누구에게나 찬성할 수 있었고, 또한 필요에 따라서는 누구에게나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같이 행동하면서 그는 줄곧 그의 체면을 유지해 갔고, 오직 뚜렷한 자가 당착을 보이지 않겠다는 데만 신경을 써왔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행동이 도덕적이거나, 부도덕적이거나, 또 자기 행동으로 해서 러시아 제국이나 전세계에 최대의 해악이 생기건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국무장관이 되었을 때는 그의 세력권 내에 있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과 측근자들이 있었는데, 일반 사람들과 바로 그 자신까지도 자기 자신이 지극히 총명한 국가적 인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상당한 세월이 지나가도 그는 이렇다 할 만한 일을 하지 못했고, 아무 수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생존 경쟁의 법칙에 따라 그와 같이 서류나 작성하고 해석하는 것을 배운, 정견도 없는 무주의 무절제한 관리들에게 떠밀려 퇴직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가 똑똑한 인간이 아닐뿐더러 자존심만 강할 뿐, 실상은 천박한 교양도 없는 다른 관리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것을 깨닫고 있었으나, 이 사실이 해마다 막대한 국고금을 축내며 자기 예복에 다는 새 장식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확신을 조금도 흔들리게 하지는 않았다. 이 확신은 너무 강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를 반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일부는 은급이라는 형태로, 일부는 정부 최고 기관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그 밖의 갖가지 위원회의 회장이라는 자격으로 매년 수만 루블의 돈을 받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새로운 권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어깨와 바지에 새로운 줄을 달고 연미복 밑에 새로운 술과 에나멜의 성장을 다는 자격을 획득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여러 방면에 연줄이 닿게 되었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네플류도프의 이야기를 옛날 부하들의 보고를 듣는 듯한 태도로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는 두 통의 편지를 써 주겠다고 말했다. 하나는 대심원 상소국의 볼리프 앞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 사나이는 여러 가지 소문이 잇지만, 어쨌든 훌륭한 사람이다."하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다가 내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라면 해줄거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이 준 또 한 통의 편지는 청원 위원회의 유력자 앞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백작은 네플류도프가 말한 페도샤 비류코바 사건에 대해서 커다란 흥미를 가졌다.

네플류도프가 황후 폐하에게 청원서를 올릴 생각이라고 말했을 때, 사실 이 사건은 감동적인 사건이므로 기회를 봐서 자기가 이야기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절차를 밟아서 청원서를 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기회가 있어서 목요일의 소위원회가 소집된다든지 하면 그 자리에서 얘기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백작이 써 준 두 통의 편지와 마리에트에게로 발길을 향했다. 그는 그녀를 처녀 시절 째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귀족 가문에서 자라났으나, 처세술에 능한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 남자에 대해서는 네플류도프도 좋지 못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수백 수천의 정치범에게 냉혹하게 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그의 특별한 직무가 되어 있을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금 네플류도프는 학대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학대하는 사람 측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워졌다. 학대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그들 자신도 필시 모르고 있을 평소의 잔악한 처사를 몇 사람의 특정한 인물에 대해서만이라도 다소 완화해 주기바란다는 식의 부탁을 함으로써 마치 그들의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케 되는 것이 못 견딜 지경이었다. 이런 경우 그는 항상 내적 불만과 혼란 때문에 부탁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은 부탁하기로 결심하곤 했다. 그 자신은 마리에트와 남편에게서 쑥스럽고 치욕스러운 불쾌감을 맛본다 하더라도, 그 대신 독방에서 고생하는 불편한 여성이 석방되어, 그녀와 그의 친척들이 고민하지 않아도 좋게 될 것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이럴 때 그는, 이쪽에서는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를 친구로서 취급하는 사람들 틈에 의뢰자가 되는 것이 어딘지 거짓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서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 사회 속에서 이전의 습관의 괘도에 뛰어들어가 이 서클을 지배하고 있는 경박하고 퇴폐적인 분위기 속에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어 가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는 벌써 이것을 이모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집에서 체험했다. 오늘 아침에도 이모와 가장 진지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농담으로 빠져들어가고 말았었다.

오랜만에 와서 보는 페테르부르크는 항상 그렇듯이 육체적으로는 자극을 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둔화시켜 버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 곳은 모든 것이 깨끗하고 편리하고 설비가 잘되어 있었으며, 특히 사람들이 도덕적인 면에 무관심한 탓으로 생활이 유달리 안이하게 보였다.

단정하고 말쑥하며 겸손한 마부가 그를 태우고 역시 단정하고 말쑥하고 겸손한 순경 옆을 지나 단정하고 깨끗하게 물을 뿌린 포장길과 집들을 지나 마리에트가 살고 있는 운하 쪽에 자리잡은 집으로 그를 데려다 주었다.

현관의 주차장에는 눈을 가린 영국풍의 말 두필이 끄는 마차가 있었으며, 수염으로 뺨을 절반쯤이나 가린, 영국인 같은 제복을 입은 마부가 거만하게 채찍을 들고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말쑥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문지기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곳에는 금몰이 달린 더 말쑥한 제복을 입은, 보기 좋게 턱수염을 기른 하인 한 사람과, 깨끗하게 새 정복을 입고 총검을 든 당직 사병이 서 있었다.

"장군님의 면회는 사절입니다. 사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외출하십니다."

네플류도프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의 편지를 건네고, 명함을 꺼내어 방문객의 명부가 놓여 있는 테이블로 가서, 만나뵙지 못해 대단히 유감이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때 하인이 층계 쪽으로 급히 달려가고 문지기는 현관으로 달려가더니 "준비!"하고 외쳤다. 당직 사병은 양손을 바지 솔기에 대고 부동 자세를 취했다. 당직 사병은 이러한 근엄한 태도에 어울리지 않게 가벼운 총총걸음으로 층계를 내려오는 홀쭉하고 자그마한 귀부인을 눈으로 배웅하고 있었다. 털이 달린 큼직한 모자를 쓰고, 검은 옷에 소매 없는 검은 외투를 걸치고 까만 장갑을 낀 마리에트는 얼굴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를 보자, 베일을 치켜올리고 빛나는 눈동자의 귀여운 얼굴을 내밀면서,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공작님 아니세요?"하고 그녀는 쾌활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제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잘 알고 있어요. 전 동생과 둘이서 당신을 사모한 적도 있었는데요."하고 그녀는 프랑스 말로 말했다. "많이 변하셨군요. 마침 나가려던 참이어서 섭섭해요. 그렇지만 잠깐이라도 올라가실까요?" 그녀는 망설이면서 발을 멈추며 말했다.

그녀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역시 안 되겠어요. 카멘스카야 댁의 영결식이 있어서. 그분은 몹시 상심하고 계세요."

"카멘스카야란 누구시죠?"

"어머, 모르세요? 구분의 자제분이 결투를 해서 죽었어요. 포겐하고 결투를 해서 죽었어요. 외아들이었는데, 무서운 일이지요. 어머니께서 어찌나 상심하시는지..."

"네,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럼 갔다 오겠어요. 내일이나 오늘 밤에 와 주세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현관문을 향해서 재빠르게 사뿐사뿐 걸어갔다.

"오늘 밤에는 못 오겠습니다." 그는 그녀와 같이 현관으로 가면서 말했다. "실은 당신에게 좀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현관에 대기하고 있는 밤색 말 한 쌍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데요?"

"이겁니다. 이모님이 쓰신 편지인데 이 속에 다 쓰여 있습니다."하고 큼직하게 이름을 박아 놓은 긴 봉투를 내밀면서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이것들을 일거 보시면 다 아실 수 있습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제가 남편의 일에 간섭하고 있는 줄 아실 거예요. 그건 오해입니다. 전 그의 일에 참견할 수도 없거니와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나 백작 부인이나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런 규칙을 깨뜨리겠어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까만 장갑을 낀 손으로 포켓을 뒤적이며 그녀가 말했다.

"실은 요새 감옥에 어느 여자가 하나 수감되어 있는데, 그 여자는 병자인데다가 사건에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무엇인데요?"

"슈스토바, 라지야 슈스토바입니다. 편지에 쓰여 있습니다."

"잘 알았어요. 힘껏 노력해 보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흙받이의 옻칠이 햇살을 받아 번쩍거리는, 푹신거리는, 푹신푹신한 깔개가 깔려 있는 사륜 마차에 사뿐히 올라타고는 파라솔을 펼쳤다. 하인은 마부석에 올라앉아 마부에게 떠나라고 신호했다. 그 때 그녀가 파라솔로 마부의 등을 치자, 윤기 있는 털에 미끈하게 생긴 말은 고삐가 당겨진 목을 움츠리고 날씬한 다리로 제자리걸음을 시작했다.

"꼭 오세요. 용건 없이 말씀이에요." 그녀는 스스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의식하면서, 빙긋이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러고는 마치 연극이 끝난 뒤 막을 내리듯이 베일을 내렸다. "자, 가요." 그녀는 다시 파라솔로 마부를 툭쳤다.

네플류도프는 모자를 들었다. 순종의 밤색 말은 코를 벌름거리며 포장길을 발굽소리도 높이 달려갔다. 마차는 가끔 울퉁불퉁한 길에 고무바퀴를 가볍게 퉁기며 신나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