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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17)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9. 2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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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의 집에서는 7시 반에 저녁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식사는 네플류도프가 일찍이 보지 못한 색다른 방식으로 행해졌다. 요리를 식탁 위에 차려 놓으면 하인들은 곧 물러가 버리므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가 요리를 날라다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자들은 부인들에게 쓸데없는 수고를 끼치지 않으려고, 또 여자들보다 힘이 센 남성으로서의 남성다운 모든 수고를 도맡아 하면서, 부인들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기도 하고 자기네들도 먹고 마시는 것이었다. 백작 부인은 접시 하나가 비게 되면 벨을 눌렀다. 그러면 하인들은 소리도 없이 들어와 재빨리 치우고 다른 접시와 바꾸어 놓고 나서 요리를 날라왔다. 요리도 퍽 맛이 좋았지만, 술도 손색이 없었다. 밝고 넓은 부엌에서는 프랑스인 요리장이 휜 옷을 입은 조수 두 명을 거느리고 일하고 있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은 모두 6명이었다. 백작 부처, 팔꿈치를 식탁에 괴고 있는 무뚝뚝한 근위장교인 아들, 네플류도프, 가정 교사인 프랑스 여인, 그리고 시골에서 올라온 백작가의 총지배인이었다.

여기서도 결투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 황제가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지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황제가 피살된 청년의 어머니에 대해서 깊은 동정을 베푸셨음을 알자 그들은 모두 그 어머니를 동정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해서 동정은 했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군복의 명예를 지킨 가해자에 대해서 엄격하게 다스릴 의사가 없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군복의 명예를 지킨 가해자에 대해서도 관대했다. 다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만이 본래의 경솔한 성미대로 가해자를 비난했을 뿐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술을 마시고 훌륭한 젊은이를 마구 쏘아 죽일 테죠. 나로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하고 그녀는 선언했다.

"그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얘기로군."하고 백작이 말했다.

"네, 그러시겠죠. 당신은 언제든지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시니까요."백작 부인은 네플류도프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들은 다 알아 주는데, 남편만은 몰라 준단다. 나는 그 어머니가 불쌍해. 사람을 죽이고도 태연하다는 건 싫어."

이 때 여지껏 잠자코 있던 아들이 가해자의 편을 들면서, 장교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으며 또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군법 회의에 회부되어 연대에서 쫓겨났을 것이라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제법 거칠게 대들었다. 네플류도프는 대화 속에 끼여들지 않고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남을 죽인 장교와 감옥에서 만난 적이 있는, 역시 결투를 해서 살인한 탓으로 유형을 선고받은 젊고 잘 생긴 죄수를 자기도 모르게 비교해 보았다. 어느 쪽이나 다 술취한 김에 저지른 살인이었다. 그런데 한쪽의 농부는 격분한 순간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아내와 가족, 그리고 친척과 헤어져서 쇠고랑을 차고 머리를 박박 깍이고 유형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쪽의 장교는 영창 안의 깨끗한 방에서 좋은 요리에 맛있는 술을 마시고 책을 읽으면 내일 쯤은 석방되어 전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더욱이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바를 밖에 내고 말았다. 처음에는 백작 부인도 조카의 의견에 찬성을 하는 듯했으나 나중에는 곧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래서 네플류도프도 자기가 무슨 불쾌한 말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날 밤 식사가 끝나고 얼마 안 되어, 넓은 홀에는 멋지게 조각이 된 높다란 등받이 의자들이 마치 설교를 들을 때처럼 여러 줄로 놓여지고, 큰 테이블 앞에는 설교를 들으려고 모두 모여들었다.

현관에는 번듯한 값진 마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호화롭게 장식된 홀에는 비단과 비로드와 레이스로 성장하고 머리는 덧머리를 얹고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여맨 귀부인들이 앉아 있었다. 부인들 틈에 군인과 문관이 자리잡고, 평민도 다섯 사람 2명의 문지기와 장사꾼, 그리고 하인과 마부가 섞여 있었다.

키제베테르는 희끗희끗한 머리에 체격이 우람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영어로 말하자, 코안경을 쓴 젊고 빼빼마른 여자가 재치 있고 재빠르게 통역을 했다.

우리들의 죄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죄악에 대한 벌도 크며, 더욱이 그것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그 벌을 예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활에 생각을 돌려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또 자비로운 하느님께 어떻게 죄를 범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고, 이를 피할 길도 없으며, 구원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파멸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하고 그는 울음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형제들이여, 어떻게 하면 이 무서운 재난으로부터 피할 수 있을까요? 이미 불길이 집을 둘러쌌으니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미 8년 동안 설교를 해 오면서 무척 마음에 드는 이 대목에 이르면, 그 때마다 틀림없이 목이 떨리고 코가 메어, 눈물이 더욱더 그를 감동시켰다. 방 안에는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백작 부인은 모자이크 된 테이블 곁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괸 채 살찐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마부도 놀란 얼굴로 독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그의 마차채에 부딪치게 되어도 비켜서려고 하지 않을 때 짓는 그런 표정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작 부인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닮은 볼리프의 딸은 최신 유행의 의상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설교자는 갑자기 얼굴에서 두 손을 떼고, 배우들이 기쁜 표정을 지을 때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달콤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은 있습니다. 그것은 쉽고도 기꺼운 길입니다. 그 구원이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하느님의 독생자가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우리들의 구원의 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하고 그는 또다시 눈물어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는..."

네플류도프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해져서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수치스러운 생각을 간신히 억제하면서 발끝으로 걸어나와 자기 방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