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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16)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9. 2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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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마리에트와 환한 미소를 생각하면서 네플류도프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주위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또다시 그 생활에 휩쓸려 들어갈 뻔했군.' 그는 자기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어야할 때마다 항상 일어나는 자기 분열과 의혹을 느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헛걸음치지 않으려고 어디를 먼저 가고 어디를 나중에 가야 하나를 생각한 끝에 네플류도프는 먼저 대심원으로 가기로 했다. 대심원에서 사무실로 안내된 그는, 장엄한 실내에서 단정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많은 관리들을 볼 수 있었다.

마슬로바의 상소장은 수리가 되었으며, 이모부가 편지를 써 준 대심원 의원 볼리프에게 심리, 보고되도록 회부되었다고 관리들이 네플류도프에게 설명해 주었다.

"대심원 회의는 이번 주에 있을 예정인데, 마슬로바의 사건은 이번 회의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청원하시면 이번 주 수요일 회의에 상정될 수는 있습니다."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대심원 사무실에서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네플류도프는 또 다시 결투에 관한 이야기와 카멘스키가 피살된 경위를 자세히 들었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페테르부르크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 사건은 이러했다. 수명의 장교들이 어느 술집에서 굴을 곁들여 술을 잔뜩 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카멘스키가 근무하고 있는 연대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카멘스키는 그를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그는 카멘스키를 때렸다. 그 이튿날 결투가 벌어져 카멘스키는 복부에 총을 맞고 두 시간 후 숨을 거두었다. 살해한 남자와 입회자들은 체포되어 영창에 들어갔으나 2주일 후면 석방되리라고 했다.

대심원의 사무실에서 나온 네플류도프는 청원 위원회에 세력이 있는 보로비요프 남작을 찾아갔다. 그는 웅장한 관사에서 살고 있었다. 문지기와 하인은 면회일 외에는 남작을 만날 수 없으며, 더구나 오늘은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가셨고, 또 내일도 보고하러 가실 거라고 엄숙한 어조로 네플류도프에게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편지를 내주고 대심원 의원인 볼리프한테로 갔다.

볼리프는 마침 아침식사를 끝내고, 여느 때와 같이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 궐련을 피워 물고 방 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네플류도프를 맞아 주었다. 그는 자기의 이 특징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이 특징으로 인해 자기가 원했던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결혼을 함으로써 1년에 1만 8천 루블의 수입이 있는 재산을 손에 넣었으며, 자기 노력으로써 대심원의 의원의 자리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빈틈없고 치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청렴한 기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렴이라는 말은 그의 해석에 따르면,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요구하는 일체의 일을 노예같이 실행하면서, 그 대신 여비라든가 보수라든가 대여금이라든가 하는 모든 종류의 돈을 국고에서 받아내는 것은 별로 파렴치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전에 폴란드의 어느 현의 지사로 있을 때 단행한 일이지만, 그 지방의 주민들이 자기 나라의 국민을 너무 많이 사랑하고 종교에 너무 충실하다고 해서 수백 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재산을 몰수하고 유형에 처하거나 감금했는데, 그는 이것을 별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결하고 남자답고 애국적인 위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자기에게 반한 아내와 처제의 재산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도 파렴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의 가정은,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내와, 재산은 형부에게 빼앗기고 토지는 매각되고 돈은 형부 명의로 예금되어 있는 처제와 , 그리고 얌전하고 어리벙벙하고 못생긴 딸로 구성되어 있었다. 딸은 괴롭고 외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으며, 요즈음에는 복음서의 탐독과, 알링의 집이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부인의 집에서 열리는 모임에 나가 겨우 마음의 위안을 받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의 아들은 사람이 좋기는 했느나, 열다섯 살 때부터 턱수염을 기로고 술을 마시며 방탕해지기 시작하여 스무 살이 되도록 학교 하나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고, 못된 친구들하고 어울려 빚을 져서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마침내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한번은 그의 아버지가 230루블의 빚을 갚아 주었고, 두 번째는 600루블의 빚을 갚아 주었다. 그 때 아들에게 이것이 마지막이니 개심하지 않으면 집에서 쫓아내어 부자간의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아들은 개심하기는 커녕 또 천 루블의 빚을 짊어진데다가 오히려 아버지에게 집에서 이렇게 사는 것은 고문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대들었다. 그 때,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아들에게 어디든지 가버리는 것이 좋겠다, 이제는 아비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 때부터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자기에게는 아들이 없는 것처럼 말해 왔으며, 가족들도 누구 하나 그의 앞에서는 아들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가장 현명하게 가정을 정리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볼리프는 상냥하면서도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면서 이것이 그의 평소의 버릇이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하다는 무의식적인 표현이었다 실내를 거닐던 걸음을 멈추고 네플류도프와 인사를 한 다음, 편지를 받아 읽기 시작했다.

"이리 앉으십시오. 죄송하지만 거닐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상의의 포켓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아담하고 정돈된 넓은 서재를 대각선으로 가볍게 걸으면서 말을 시작했다.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의 부탁은 될 수 있는 대로 힘을 써 보겠습니다." 그는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살며시 입에서 궐련을 떼고, 향기로운 파란 연기를 뿜으면서 말했다.

"네, 네 , 잘 알았습니다. 니즈니에서 첫 번 기선으로 가겠다는 말씀이시죠?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남의 말을 듣기도 전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는 거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피고의 이름은 무엇이지요?"

"마슬로바..."

볼리프는 테이블로 다가가서, 다른 서류와 함께 철해 둔 서류를 뽑아 들여다보았다.

"아, 그렇군, 마슬로바. 좋습니다. 동료들에게 부탁해 놓겠습니다. 수요일에 이 사건을 심리하겠습니다."

"그러면 변호사한테 전보를 쳐도 되겠습니까?"

"변호사에게 의뢰하셨나요?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그야 원하신다면 상관없습니다만."

"상소의 이유가 허술한 것 같아서 말씀입니다."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그러나 이 사건에 관한 선고는 오해에서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글쎄올시다. 그러나 대심원에서 꼭 사건의 본질을 심리한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하고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담뱃재를 바라보면서 엄숙한 투로 말했다. "대심원은 다만 법의 적용과 그 해석이 올바른가를 조사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라고 생각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무슨 사건이든 모두 예외적인 것이니까요. 우리들은 당연히 해야할 일은 꼭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담뱃재는 아직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곧 떨어질 상태에 있었다. "페레부르크에는 자주 오지 않으십니까?" 볼리프는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궐련을 들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도 담뱃재는 풀풀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볼리프는 가만히 재떨이로 가서 털었다. "카멘스키의 사건은 참 끔찍한 일입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게다가 외아들이었죠. 그의 어머니의 심정이란 말할 것도 없었을 겁니다." 그는 그 당시 페테르부르크에서 떠돌아다니던 카멘스키의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의 일과 부인이 열중하고 있는 새로운 종교적 경향에 대해서 말한 다음,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 자신은 그것에 대해 비난도 찬성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태도로 볼 때 그 종교는 그에겐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는 벨을 눌렀다.

네플류도프는 일어서서 작별인사를 했다.

"시간이 있으시면 저녁 식사나 드시러 오십시오." 볼리프는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수요일이라면 좋겠군요. 그 때는 확실한 대답을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이미 시간이 늦었으므로 네플류도프는 곧장 마차를 타고 이모네 집을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