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네플류도프는 페레르부르크에 세 가지 용무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마슬로바에 관한 대심원 상소였으며, 다음은 청원위원회에 제출해야 할 페도샤비류코바의 사건이었고, 마지막의 하나 베라 보고두호프스카야에게서 의뢰받은, 슈스토바의 석방을 헌병대 본부 또는 제 3부에 신청하는 일과, 그리고 역시 베라 보고두호프스카야에게 서면으로 의뢰받은 요새 감옥에 있는 청년에 대한 그 어머니의 면회를 신청하는 일이었다. 이 마지막 두 건을 그는 제 3의 용건으로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용건은 복음서를 읽고 해설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과 헤어져 카프카스 지방을 유형된 분리파 신도들의 이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을 위해서 보다도 자가 자신을 위해서 가능한 한 전력을 다해 명백히 밝히겠다고 결심했다.
최근 마슬레니코프를 방문한 이후, 특히 시골을 다녀온 후부터 네플류도프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을 해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자기가 생활해 온 상류 사회를 마음속으로 혐오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수의 편의와 만족에 대한 보장 뒤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같은 고통이 갖은 수단으로 숨겨져 있는 사화여서, 이 사회의 사람들은 이 같은 고통을 보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자기네의 생활이 얼마나 잔인하고 죄악에 가치가 있는가를 책망하는 마음이 없이는, 이 사회의 사람들 속에 끼여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날의 생활 습관과 친척 관계, 그리고 친구관계에 끌려 이 사회와 손을 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를 그런 사회로 이끌어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현재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유일한 관심사, 그러니까 마슬로바를 비롯하여 그가 도와 주고 싶은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존경은 커녕 때로는 혐오와 경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싫더라도 그런 사회의 사람들에게 원조와 호의를 청하지 않으면 안되겠기 때문이었다.
페레르부르크에 도착한 그는 큰이모이자 전 국무장관 부인인 챠르스카야백작 부인의 집에 여장을 풀고, 그렇게도 자기와는 인연이 멀다고 생각되던 귀족 사회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에겐 그것이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모 집에 머물지 않고 호텔에라도 가면 이모를 모욕하는 것이 되었다. 더욱이 이모는 발이 넓기 때문에 이제부터 운동하려고 하는 사건에 대해서도 다시 없는 힘이 되어 줄 사람이었다.
"네 소문은 만힝 듣고 있다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정말 이산한 소문이더구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그가 도착하자 커피를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주 하원드가 됐다더구나. 죄인을 도와서 감옥을 돌아다니며 개혁을 하고 다니다니..."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어떠냐, 좋은 일인데. 그런데 거기에 소설 같은 사연이 있다면서? 말해보려무나."
네플류도프는 자기와 마슬로바와의 관계를 모두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래, 생각난다. 네가 고모 집에 가 있었을 때, 불쌍한 엘렌(네플류도프의 어머니)이 그 비슷한 얘기를 했었어. 네 고모들은 널 그 양녀하고 결혼시키려고 했었지(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은 네플류도프의 고모인 두 자매를 항상 경멸하고 있었다). 그래, 그 처녀였구나. 지금도 그렇게 예쁘냐?"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이모는 60세의 노부인이긴 했지만 아직도 건강하고 쾌활하고 정력이 넘치는 여자였다. 키가 크고 뚱뚱했고 윗입술 언저리에는 거무스름한 잔털이 나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이 이모를 좋아해서 어릴 적부터 이모의 정열적인 활동과 쾌활한 성격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아닙니다, 이모님. 그것은 모두 옛날 이야기입니다. 저는 다만 그 여자를 도와 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첫째로 그녀는 아무 죄도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았어요. 그 점에 있어서는 저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녀의 운명 전체에 있어서도 역시 저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서라면 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해줄 의무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네가 그 여자와 결혼할 생각이라면서?"
"네, 그러고 싶습니다만, 그 여자는 원하질 않습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 눈을 내리깔고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없이 조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만족스러운 기색이 되었다.
"그래, 그 여자는 너보다 영리하구나. 정말 넌 어쩌면 그렇게 바보냐? 넌 진심으로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거냐?"
"물론입니다."
"그런 데 있던 여자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게 다 제 죄니까요."
"아니, 너 정말 철부지로구나!"하고 이모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넌 정말 철부지야. 하기야 그런 철부지이기 때문에 넌 널 좋아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 철부지라는 말이 자신이 생각해도 조카의 정신적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해 준 말로 여겨졌던 모양인지 그 말을 되풀이했다. "아, 그렇지. 참 좋은 수가 있다."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알린이라는 사람이 창녀 갱생원을 경영하고 있는데, 나도 한번 가 보았다. 그러나 알린은 그 일에다 심신을 다 바치고 있거든. 그러니 너의 그 여자를 알린한테 맡기면 어떻겠니? 그런 여자들을 올바르게 만들어 줄 사람은 알린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만 그 여자는 징역을 선고받았어요. 그래서 저 그 선고의 취소 운동 때문에 여기 온 것입니다. 이것이 이모님께 부탁하고 싶은 첫째 용건입니다."
"그랬구나! 그 여자의 사건은 어디서 맡고 있지?"
"대심원입니다."
"대심원? 그래 대심원에 내 사촌 레부시카가 있긴 한데. 하지만 그 사람은 상훈국에어서 말이야. 글세 그쪽에는 아는 사람이 없군 그래. 그쪽은 독일 사람들뿐이라서, '게'라든가, '페'라든가, '데'라든가 하는 첫 글자가 붙은 사람이 아니면, 이바노프, 세묘노프, 니키티치라든가, 또는 이바넨코, 시모넨코, 니키첸코라든가 하는 이상한 이름의 사람들뿐이야. 모두 딴 사회의 사람들이지. 하여튼 이모부한테 얘기해 보마. 너의 이모부는 여러 방면의 사람들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자세한 건 네가 설명하도록 해라. 내 얘기라면 언제나 잘 알아 듣지 못하니까 말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모부는 모르다고만 하니 말이야. 항상 판에 박힌 대답이란다. 남은 다 알아듣는데, 그분만은 모른다는 거야 글세."
이 때 긴 양말을 신은 하인이 은쟁반 위에 편지를 얹어 가지고 들어왔다.
"마침 알린한테서 왔구나! 너도 키제베테르의 얘기를 들을 수 있겠다."
"누굽니까, 키제라베티르란 사람은?"
"키제베테르 말이냐? 오늘 밤 보려므나.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거다. 그 사람의 설교만 듣고 있으면 아무리 흉악한 범인이라도 무릎을 꿇고 울면서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단다."
백작 부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이상하게도 그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기독교의 본질은 속죄에 있다고 생각하는 교의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녀는 그 당시 유행하고 있던 교의를 전도하는 모임에 빠짐없이 나가기도 하고, 또한 자기 집으로 신자들을 불러오기도했다. 이 교의에 의할 것 같으면, 모든 의식과 성상은 물론 일체의 성례까지 부정해야 했는데 그러면서도 백작 부인의 집에는 어느 방이나, 심지어 침대의 위에까지 성상을 걸어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무 모순도 느끼지 않고 교회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너의 막달레나(회개한 매춘부)도 그분의 설교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틀림없이 개심할 거야."하고 백작 부인은 말했다.
"오늘 밤에는 꼭 집에 있도록 해라. 그분의 얘기 좀 들어 보라고. 참 훌륭한 분이란다."
"별로 흥미가 없는데요. 이모님."
"틀림없이 재미있을 거야. 그러니까 꼭 참석하도록 해라. 그리고 또 무슨 부탁이 있니? 아주 털어놓고 말해보렴."
"또 하나는 요새 감옥의 일입니다만."
"요새 감옥? 아, 거기라면 크리스무트 남작에게 소개장을 써 주지. 부탁할 만한 분이야. 너도 알 거다. 네 아버지와는 절친한 친구였으니까. 강신술에 빠져 있었지만, 뭐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착한 사람이지. 그래 거긴 무슨 용건이지?"
"거기 수가되어 있는 청년에게, 그의 어머니를 면회시켜 주도록 부탁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엔 그건 크리그스무트 남작의 관할이 아니라, 제르뱐스키의 관할이라고 하더군요."
"체르뱐스키라는 사람은 싫지만, 그는 마리에트의 남편이니까 그녀에게 부탁해도 되겠지. 날 위해서라면 그만한 일쯤 해줄 거야. 그녀는 참 친절한 여자거든."
"그리고 또 한 여자의 일도 부탁드려야겠습니다. 벌써 여러 달 수감되어 있는데 그 이유를 모르고 있어요."
"아니, 그럴 수야 있나? 이유는 그 여자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텐데. 난 그런 여자들을 잘 알고 있어. 그런 단발녀(허무주의를 지향하는 여자들을 뜻함)들에겐 당연한 일이지."
"당연한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요, 여하튼 고생하고 있으니까요. 이모님은 기독교인이시고 복음서를 믿고 계시면서 그런 잔혹한..."
"괜찮아. 복음서는 복음서고, 싫은 건 싫은 거니까. 난 그런 허무주의자, 특히 단발머리를 한 여자들은 아주 질색이거든.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체하는 것은 더 나쁘지 않겠니?"
"어째서 그런 사람들이 질색이라는 말씀이시죠?"
"그 3월 1일(알렉산더 2세가 암살된 날)의 사건이 있었는데도 그걸 묻니? 오히려 그런 걸 묻는 네가 이상하구나."
"그렇지만, 그런 여자들이 모두 3월 1일 사건의 참가자는 아니잖습니까?"
"마찬가지야. 자기가 할 일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참견을 하는 거야? 그런 일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야."
"그럼, 저 마리에트도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지도 모르잖습니까?"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마리에트? 마리에트는 마리에트지. 그녀가 어떤 여자라는 건 하느님도 아실 거다. 그런데 할츄프키나라는 여자가 사람을 가르치려 드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도와 주어야 할 사람과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쯤은 잘 알고 있단다."
"그러나 농민들의 생활은 말이 아닙니다. 나는 얼마 전에 시골에 다녀왔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데, 우리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네플류도프는 마음이 좋은 이모에게 끌려서 무의식중에 품고 있던 것을 전부 털어놓고 말았다.
"그럼, 나도 일을 부지런히 하고 아무것도 먹지 말기를 마라는 거냐?"
"아닙니다. 이모님더러 잡수시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네플류도프는 웃으며 말했다. "다만 같이 일하고 다같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이모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 깔더니, 호기심에 찬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넌 제대로 죽지도 못하겠구나." 그녀가 말했다.
"왜요?"
"그 때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장군이 방으로 들어왔다. 이 사람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남편이며 전 국무장관인 차르스키 백작이었다.
"여어, 드미트리, 잘 있었나?" 그는 말쑥하게 면도한 뺨을 내밀면서 말했다. "언제 왔니?" 그러고는 그는 가만히 아내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얘는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백작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이 애가 나더러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하고, 감자나 먹으라지 않하요? 정말 철부지지 뭐예요." 그녀는 말을 바꾸었다. "그건 그렇고 당신도 들으셨지요? 카멘스카야 부인이 몹시 낙심하고 있다고요. 생명이 위태롭다던데요."하고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한번 가 보시는 게 어때요?"
"그거 참 안됏군." 남편이 말했다.
"그럼 이 애하고 가서 얘기나 하세요. 난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네플류도프가 응접실 앞방으로 나가자마자, 부인은 그의 뒤에서 소리쳤다.
"그럼 마리에트에게 편지를 쓸까?"
"네, 이모님."
"단발머리 여자에 관해서는 네가 써넣도록 여백을 남겨 두겠다. 마리에트는 남편에게 말해 줄 것이고, 그럼 남편도 잘해 주겠지. 나를 언짢게 생각하지 말아라. 네가 걱정하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무슨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마음에 안드는 것뿐이니까. 그런 사람들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거야.! 그럼 다녀오렴. 저녁에는 꼭 와야한다. 키제베테르 씨의 설교가 있으니까, 함께 기도하자꾸나. 네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네게도 반드시 보람이 있을 거다. 엘렌이나 너나 모두 이런 면에는 상당히 뒤떨어져 있으니까. 그럼 다녀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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