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늘은 마슬로바가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가 하는 생각과, 그녀의 마음속에서나 옥중에 있는 다른 죄수들 전체 속에 존재하는 것같이 느껴지는 그 어떤 비밀을 생각하고,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과 두려움을 느끼면서, 네플류도프는 정문 현관의 초인종을 누르자 곧 나온 간수에게 마슬로바에 관해서 물었다. 간수는 잠깐 조사해 봤더니 마슬로바는 지금 병원에 있다고 대답했다.
네플류도프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의 수위는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노인으로서 곧 그를 안으로 들여 보내고,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은 다음 소아과 병실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온몸에 소독약 냄새가 밴 젊은 의사가 복도에 있는 네플류도프에게 오면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딱딱하게 물었다. 이 의사는 죄수들에게 관대하게 대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간수들이나 심지어 병원장하고도 자주 불쾌한 충돌을 일으키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네플류도프가 무슨 규정에 어긋난 부탁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또 누구를 위해서도 예외적인 일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짐짓 화난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여긴 여자라곤 없습니다. 소아과 병실이니까요." 의사가 말했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감옥에서 넘어와 간호사 겸 잡역부로 일하는 여자가 있을 텐데요."
"네, 그런 여자가 둘 있는데, 누굴 찾으시는데요?"
"나는 그 중의 마슬로바라는 여자와 가까운 사이입니다." 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잠깐 만나고 싶습니다만, 나는 그 여자의 사건에 대해서 상소하기 위해 지금 페테르부르크로 갈 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좀 전해 주고 싶은데요. 사진입니다." 하고 네플류도프는 호주머니에서 봉투 한 장을 꺼내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런 것쯤은." 의사는 부드러운 태도로 이렇게 말하고,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노파에게 간호사로 있는 여죄수 마슬로바를 불러오라고 했다.
"여기 앉으시든지, 그렇잖으면 응접실에 가서 기다리시지요."
"감사합니다." 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 의사의 태도를 보고, 병원에서 마슬로바의 평판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전의 그 여자의 환경을 생각하면 지금은 일을 잘하고 있는 편입니다." 하고 의사는 말했다.
"저기 오는군요."
한쪽 방문으로 늙은 간호사가 들어오고, 뒤따라 줄무늬 옷 위에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마슬로바의 모습이 나타났다. 머리에는 스카프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를 보자 얼굴을 붉히면서 망설이듯 발을 멈칫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내리깔고는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재빠르게 걸어 네플류도프에게 왔다. 그녀는 그의 옆에 와서도 처음에는 선뜻 손을 내밀지 않다가 잠시 후 손을 내밀더니 한층 더 얼굴을 붉혔다.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감정을 폭발했던 것을 사과한 이후 통 만나지 않았으므로 그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심정의 마슬로바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그녀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뭔가 새로운 것이 서려 있었다. 수줍으면서도 무언가 억제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그러면서도 그에게 반감을 품고 있는 듯한 데가 있었다. 그는 마슬로바에게 의사에게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하고, 페테르부르크로 가겠노라고 말한 다음, 파노보에서 가져온 사진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내주었다.
"이것은 파노브에서 찾은 옛날 사진인데, 기뻐할 것 같아서... 받아두도록 해요."
그녀는 깜짝 놀란 듯이 까만 눈썹을 약간 치켜올리고는 그 흘기는 듯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왜 이런 것을 주느냐'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봉투를 받아 에이프런 속에 집어넣었다.
"거기서 당신의 이모님을 만났었소."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그러셨어요?" 그녀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여긴 괜찮소?"
"괜찮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고생스럽지 않소?"
"네, 별로. 아직 익숙하지는 못하지만요."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소. 아무래도 거기보다는 나을 테니까."
"거기라니, 어디 말씀이세요?"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했다.
"저기 감옥 말이오." 네플류도프는 당황해서 얼른 대답했다.
"어떤 점이 좋단 말씀이세요?" 그녀는 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거기 있는 사람들보다 나을 것 같아서 말이오. 거기 있는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 있을라고."
"거기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메니쇼프 모자의 사건도 힘써 보았는데, 아마 석방될 것 같소."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제발 그렇게 됐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참 보기 드문 좋은 할머니예요."
그녀는 항상 그 노파의 말ㅇ르 할 때마다 하는 칭찬을 되풀이하면서 살며시 미소를 띠었다.
"나는 오늘부터 페레르부르크로 출발하오. 당신 문제는 곧 재심이 있겠지만, 제발 판결이 취소되었으면 좋겠소."
"취소되든 말든 마찬가지예요." 그녀는 말했다.
"이제는 마찬가지라니 어째서?"
"그건..." 그녀는 무엇인가 물어 보려는 듯 그를 힐끔 바라보고 이렇게 대답했다.
네플류도프는 그 말과 그 눈초리를 이렇게 해석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가 아직도 자기의 결심대로 실행을 할 것이지, 아니면 그녀의 거절을 받아들여 그의 결심을 변경시켰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왜 당신이 마찬가지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했다. "그러나 당신이 무죄가 되건 유죄가 되건 나에게 있어서는 마찬가지요. 그 어느 쪽이 되든 내가 말한 대로 할 각오요." 그는 딱 잘라서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들었다. 까만 사팔눈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옆으로 올리기도 했지만, 그녀의 얼굴 가득히 기쁨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눈이 말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말을 했다.
"그런 말씀은 하셔도 소용이 없어요." 그녀는 말했다.
"당신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 그렇소."
"그 이야기는 이제 끝난 것이니까 새삼스럽게 하실 필요 없어요." 그녀는 간신히 미소를 숨기면서 말했다.
병실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이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부르고 있나봐요." 그녀는 불안스러운 듯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자, 그럼." 그는 말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가 내민 손을 짐짓 못 본 체하고 돌아섰다. 그러고는 표정을 감추려 애쓰면서 빠른 걸음으로 양탄자가 깔린 복도 위를 사뿐사뿐 걸어갔다.
'도대체 그녀의 마음속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 나를 떠보려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인가?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없거나, 아니면 하기 싫은 것일까? 기분은 좀 풀어진 것일까? 그렇잖으면 더욱 원망하고 있단 말인가?' 네플류도프는 자문해 보았으나, 그에 대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그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변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영혼 속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변화로 인해서 그는 그녀와 결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변화를 일으켜주신 하느님과도 연결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결합은 그를 기쁜 환희와 겸손한 감정으로 이끌어 주었다.
마슬로바는 여덟 개의 소아용 침대가 놓여있는 병실로 돌아오자,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침대를 정리하기 시작했으나, 시트를 들고 너무 몸을 뒤로 젖혔기 때문에 하마터면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목에 붕대를 감은 회복기에 있는 사내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마슬로바도 참을 수 없어서 침대에 걸터앉으며 큰 소리로 웃어 댔기 때문에 여러 아이들도 그녀를 따라 '와아'하고 웃어 댔다. 간호사는 화를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
"어쩌자고 그렇게 깔깔거리는 거야? 여태까지 있던 곳에 되돌아갈 테냐? 어서 저녁 식사나 가지고 와요."
마슬로바는 웃음을 거두고 식기를 가지고 가라는 장소로 나가려다 목에 붕대를 감은 사내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킥'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슬로바는 혼자 있게 되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 정신 없이 들여다보곤 했다. 마슬로바는 일을 다 끝내고 밤이 되어 다른 잡역부와 함께 기거하는 방에 혼자 있게 되면 사진을 꺼내서 여러 사람의 얼굴과 옷, 발코니와 계단, 그리고 자기와 네플류도프, 두 고모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되는 숲의 작은 부분까지 세세히 눈으로 핥듯이 들여다보았다. 누렇게 퇴색된 그 사진은 오랫동안 꼼짝 않고 들여다보아도 도무지 싫증이 나지 않았다. 특히 이마 언저리에 머리칼이 내려와 있는, 싱그럽고 아름다운 자기 얼굴을 바라볼 때, 그녀는 황홀감을 느꼈다. 그녀는 너무 사진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 잡역부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게 뭐니? 그분이 준 거야?"하고 뚱뚱하고 착해보이는 잡역부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게 너야?"
"나 아니면 누구겠어?" 마슬로바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 사람은 누구? 그분? 이것이 그의 어머니겠네?"
"고모야. 정말 날 못 알아보겠니?" 마슬로바가 물었다.
"어떻게 아니? 정말 모르겠어 얘, 전연 딴 얼굴인데. 이건 한 10년쯤의 사진이잖아!"
"10년이 다 뭐야, 한평생도 더 지났는걸."하고 마슬로바는 말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밝던 표정이 사라지고 얼굴에 침울한 빛이 감돌면서 양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렇지만, 생활은 편했을 테지?"
"편했고말고!" 마슬로바는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러나 감옥보다는 못했어."
"어째서 그래?"
"어째서라니" 밤 8시부터 아침 4시까지, 그것도 매일 밤일걸."
"그럼 왜 그만두지 않고?"
"그만두려고 생각은 해도 그렇게 안돼. 다 쓸데없는 짓이야!"하고 마슬로바는 외치더니 벌떡 일어나 사진을 테이블 서랍 속에 집어넣고는, 분한 듯 눈물을 삼키면서 문을 쾅 닫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사진을 보고 있는 동안 그녀는 거기 찍혀 닜던 시절의 자기로 돌아간 것 같아서 그 당시의 행복했던 일들, 그리고 앞으로도 그와 결혼하면 행복해지겠거니 하고 공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친구가 한 한 마디는 현재의 자기 모습과 옛날 그곳에 있었을 때의 자기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당시 막연히 느끼고는 있었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으리라고 하던 그 생활이 온갖 공포를 상기시켜 주었다. 이제 새삼스럽게 그 당시의 무서웠던 밤들이 생각났다. 그 중에서 사육제 날 밤 자기를 빼내 주겠다고 약속한 대학생들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일이 생각났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술에 얼룩이 지고 가슴이 넓게 노출된 진홍빛 비단옷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달고, 그녀는 새벽 2시경에야 손님을 다 보내고 술에 취해 지쳐서 춤을 추다 잠깐 쉬는 사이에, 바이올린의 반주를 하는 비쩍 마른 부스럼투성이 여자 피아니스트를 붙잡고 신세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자기도 괴로워서 견디지 못하겠으므로 생활을 바꾸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때마침 클라라가 와서 세 사람은 이런 생활을 집어 치우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오늘밤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제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뜻하지 않게 현관에서 취한 손님들의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이올린이 '전주곡'을 켜기 시작하고, 피아노 반주자가 카드릴의 제 1절의 경쾌한 러시아 민요를 피아노로 반주하기 시작했다. 연미복에 흰 넥타이를 맨 한 남자가 만취되어 술냄새를 풍기며, 딸꾹질까지 하면서 마슬로바를 잡아끌었다. 역시 연미복을 입고 턱수염을 기른 뚱뚱한 또 한 사람이 클라라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빙글빙글 돌며, 떠들며 뛰며 마셨다.
이렇게 해서 1년이 지나고, 2년, 3년이 지났다. 그 동안 왜 그런 생활을 바꾸지 않았을까! 이것은 모두 그 사람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속에서 다시금 그에 대한 원망스럽던 옛 생각이 홀연히 고개를 쳐들고 일어났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책망해 주고 싶었다. 오늘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당신의 뱃속을 환히 알고 있으니까, 당신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예요, 옛날에는 육체적으로 나를 마음대로 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자기의 관대함을 표시하는 도구로 삼으려는 건 어림없는 일이에요'하고 다시 한 번 똑똑히 말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게 분했다. 이같이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고 네플류도프를 부질없이 원망하는 마음을 씻어 버리기 위해 그녀는 술을 마시고 싶었다. 여기가 만약 감옥이었다면, 그녀는 자기의 맹세를 어기고 술을 마셨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여기서 술을 구하려면 조수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그녀는 이 조수를 두려워했다. 그것은 그가 줄곧 그녀에게 지분거렸기 때문이었다. 남자들과의 관계라면 이제 진저리가 났다. 오랫동안 복도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친구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의 망쳐진 생애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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