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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25)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0. 4.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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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튿날 아침, 네플류도프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느낀 것은 어제 무슨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저것 돌이켜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추악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또 나쁜 일을 한 것도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나쁜 생각을 했었다. 이를테면 지금 그가 계획하고 있는 것, 즉 카추샤와 결혼하는 것도, 농민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것도, 모두 실현하기 어려운 공상일 뿐, 자기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모두 인위적이고 부저연스러운 것이므로, 전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행동이야 없었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있었다. 나쁜 상념은 그러한 길로 완전히 끌어넣는 것이다.

어젯밤 자기가 했던 생각을 되살려 보고, 네플류도프는 잠시나마 자기가 어떻게 그런 것을 믿을 수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이루려고 하는 일이 아무리 새롭고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자기에게 있어서 유일한 생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이전의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무리 쉽고 익숙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죽음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어젯밤의 유혹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마치 충분히 잠을 자고 나서 더 자고 싶지는 않으나, 잠자리에서 뒹굴며 게으름을 피우는 기분으로 있을 때 간혹 볼 수 있는 상태와 겉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대하고 기꺼운 일을 위해 그만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페테르부르크에 체재하는 마지막 날인 그 날, 그는 아침부터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슈스토바를 찾아갔다.

슈스토바의 방은 아파트 2층에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관리인이 일러 준대로 뒷문으로 돌아가서 가파른 계단을 곧장 오른 뒤, 음식 냄새가 풍겨나오는 후덥지근한 부엌으로 돌아갔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치마를 두른, 안경 쓴 나이 많은 여자가 부뚜막 앞에서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냄비 속을 휘젓고 있었다.

"누구를 찾아오셨는지요?"하고 그녀는 안경 너머로 들어온 사람을 넘겨다보면서 물었다. 네플류도프가 이름을 채 대기도 전에, 노파의 얼굴에는 놀라우면서도 기쁜 표정이 감돌았다.

"아, 공작님이시군요!" 두손을 앞 치마에 닦으면서 그녀는 외쳤다. "아니, 왜 뒷문으로 들어오셨어요? 당신은 우리들의 은인이신데! 전 그애의 어미랍니다. 정말이지, 딸 하나를 아주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슴을 드려야 좋을." 네플류도프의 손을 잡고 키스하려 하면서 그녀는 말했다. "어제 댁에 갔었지요. 동생이 가 보라고 자꾸 졸라대서. 동생도 여기 있어요. 자, 이리로 오세요. 저를 따라오세요."하고 슈스토바의 어머니는 네플류도프를 안내하여 좁은 문과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가면서 걷어붙인 옷자락과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제 동생은 코르닐로바라고하죠. 아마 들은 일이 있으시리라고 생각되지만..."하고 그녀는 방문 앞에 멈춰 서서 속삭이듯 말을 계속했다. "정치 운동에 가담하고 있답니다. 아주 영리하고 좋은 애예요."

슈스토바의 어머니는 복도에서 문을 열고 네플류도프를 조그만 방으로 안내했다. 방안의 테이블 앞 소파에는 줄무늬진 무명옷을 입은, 그다지 키가크지 않고 통통한 처녀가 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많이 닮은 창백하고 둥근 얼굴에 아마빛 곱슬머리가 곱슬곱슬 굽이치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러시아 식의 깃에다 수를 놓은 루바시카를 입고 검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청년이 몸을 구부리고 안락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에 열중해 있었던 모양으로 네플류도프가 방 안에 들어섰을 때에야 비로소 그를 돌아다 보았다.

"리지아, 이분이 네플류도프 공작님이시다. 바로..."

얼굴색이 창백한 처녀는 귀 뒤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신경질적으로 발딱 일어나 커다란 잿빛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럼, 당신이 바로 베라 예프레모브나가 부탁하던 그 위험한 아가씨군요?"하고 네플류도프가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예, 저예요."하고 리지아는 입을 벌리고, 고운 이를 드러내어 어린아이처럼 크고 곱게 웃으며 말했다. "실은 아주머니가 무척 만나 뵙고 싶어하셨죠. 아주머니!"하고 그녀는 문 쪽을 향해 상냥하고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로 불렀다.

"베라 에프레모브나는 당신이 수감된 것을 몹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이쪽으로, 이쪽이 더 나아요. 자, 앉으세요."하고 리지아는 청년이 방금 앉았던, 좀 망가지기는 했으나 폭신폭신한 안락 의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쪽은 저의 사촌 오빠인 자하로프예요." 리지아는 네플류도프가 청년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을 눈치채고 소개했다.

청년은 리지아와 마찬가지로 선량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에게 인사했다. 네플류도프가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자, 그는 창가에 있는 조그만 의자를 옆에 갖다 놓고 앉았다. 그리고 다른 방으로부터 열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역시 아마빛 머리의 중학생이 들어오더니, 말없이 창가에 가서 앉았다.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아주머니하곤 둘도 없는 막역한 친구랍니다. 그러나 저는 알지 못했어요."하고 리지아는 말했다.

이 때 옆방에서 흰 재킷에 혁대를 맨, 쾌활하고 똑똑해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지아와 나란히 소파에 앉으면서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베라는 어떻게 지내나요, 만나 보셨어요? 자기 처지를 잘 참고 있는지요?"

"불평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그리고 원기도 왕성하다고 하더군요."

"아, 베로치카(베라)다운 말이군요."하고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여자를 잘 이해해 주지 않으면 안 돼요. 정말 훌륭항 인격자입니다. 언제나 남을 위해서만 일해 왔을 뿐, 자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다군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부탁이 없었어요. 다만 당신의 조카(슈스토바)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조카가 아무 죄도 없이 갇혔다고 하면서 늘 걱정하고 있었지요."

"정말 그랬어요."하고 아주머니는 말했다. "참 무서운 일이에요! 사실 그 애는 저 때문에 그런 고생을 했던 거예요."

"아니에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아주머니."하고 리지아가 말했다. "아주머니가 부탁하시지 않았어도, 나는 그 서류를 맡았을 거예요."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깐 가만히 있어요."하고 아주머니가 우겼다. "실은요,"하고 그녀는 네플류도프에게 다가왔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합니다. 어느 사람이 서류를 잠시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만, 전 그 때 집에 없었기 때문에 이 애한테로 가져왔었지요. 그러자 바로 그 날 밤, 가택 수색을 당해서 서류와 이애가 같이 잡혀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구류를 받고, 누구한테서 서류를 받았느냐고 문책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말하지 않았어요."하고 별로 방해도 되지 않는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면서 리지아는 황급히 말했다.

"네가 말했다는 게 아니야."하고 아주머니는 말했다.

"미친이 잡혀간 것도 결코 제 탓이 아니에요."하고 리지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불안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 얘긴 그만두어라, 리도치카(리지아)."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왜요? 전 말하고 싶어요."하고 리지아는 말했으나, 미소를 짓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이제는 머리키락을 손가락에 감으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제도 그 얘기를 시작하자, 넌 흥분하지 않았니?"

"걱정 마세요... 내버려 두세요, 어머니.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켜 왔어요. 그 사람들이 두 번이나 아주머니와 미친에 대해서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그 때 그 페트로프가..."

"페트로프는 스파이입니다. 헌병으로 지독한 악당이에요."하고 아주머니가 네플류도프에게 조카의 말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가로막았다.

"그 때 그 사내가," 리지아는 흥분하면서 조급하게 말했다.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반대로... 당신이 말만 한다면, 죄 없는 사람들을 석방할 수 있다. 혹시 잘못돼서 우리가 이유도 없이 그런 친구들을 고생시키고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하면서 말이에요.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그 사내는 '그러면 좋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말하는 것을 부정하지만 마라.'하고 여러 사람의 이름을 쳐들었는데, 그 중에 미친의 이름을 지적했어요."

"그런 이야기는 그만둬라."하고 아주머니는 말했다.

"아주머니는 제가 말하는 것을 간섭하지 마세요." 그녀는 여전히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글쎄 그 이튿날에야 안 일이지만, 옆의 감방에 있던 동료가 벽을 두드려서 모든 것을 알려 주었는데 미친이 잡혔다는 게 아니겠어요? 그 다음부터 그 일이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러나 나중에 네 탓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니?"하고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래요.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몰랐어요. '그 사람을 판 것은 나'라고 생각했지요. 감방 안을 서성거리면서도, 그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아도 누군가 내 귀에다 대고 '미친을 팔았지, 미친을 팔았지.'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그것이 착각인 줄은 알면서도 듣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정말 무서운 일이었어요!" 리지아는 점점 더 흥분해서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리도치카, 진정해라."하고 어머니는 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을 했다.

그렇지만 리지아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거기다 더 무서운 것은..."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안락 의자에 부딪치며 방에서 뛰어나갔다. 어머니는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악당들은 모두 목을 비틀어 죽여야지."하고 창가에 앉아 있던 중학생이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그저 그래 본 것뿐이에요." 중학생은 대답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담배를 집어 푹푹 피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