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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류도프는 알고 있는 대학생 시절의 셀레닌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들이었고 충실한 벗이었으며, 언제 보아도 점잖고 용모가 단정하며, 지극히 성실하고 정직한 인간이었다. 그는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성적이 뛰어나고, 진급 논문을 쓸 때마다 금메달을 탔으나 조금도 우쭐거리지 않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는 말만 내세우지 않고 실제로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을 젊은 날의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봉사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 자기의 모든 정력을 기울여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조직적으로 검토하고, 결국 법률을 제정하는 고등 법원의 제 2부라면 자신도 가장 유익한 일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고 그곳에 들어갔다. 그러나 자기에게 요구되는 모든일을 성심껏 정확하게 처리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일에서 남을 위하여 유익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자기 본래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도 없거니와, 자기 역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질 수도 없었다. 이 불만은 지극히 옹졸하고 허영심이 강한 직속 상관과 충돌할 때마다 더 커져 갔으므로, 결국 그는 고등 법원의 제 2부를 그만두고 대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심원은 훨씬 나았으나, 그런 불만은 여전히 뒤따라다녔다.
그는 항상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고,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일과 현실이 전혀 상반된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대심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중, 친척들의 주선으로 시종관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그는 금몰이 달린 예복에 흰 리넨의 가슴받이를 걸치고, 이런 요직에 앉게 해준 분들에게 인사를 보아도 이 직무의 합리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현재의 그로서는 관청 근무를 하고 있을 때마다 더욱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느꼈으나, 한편으로는 그를 만족스런 자리에 앉게 해주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이 임명을 거절하지 못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기의 비열한 근성을 기분 좋게 어루만져 주기도 했었다. 금몰로 수놓은 예복 차림의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본다든가, 이번 임명으로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존경심을 이용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에게 퍽 만족감을 주었다.
이와 마찬가지의 일이 결혼을 했을 때에도 일어났다. 세속적인 관점으로 봐서 매우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그가 결혼한 중요한 이유는 역시, 만약 그가 결혼을 거절하기라도 한다면 이 결혼을 원하고 있던 신부와 이 결혼을 성립시키려 중매한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 되고, 틀림없이 그들에게 불쾌감을 주리라는 생각과, 동시에 명문가의 젊고 사랑스러운 규수와의 결혼이 그의 자부심을 한층 북돋워서 그에게 큰 만족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결혼을 관청 근무나 시종관의 일보다 더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첫아이를 낳자 아내는 더 이상 아이 낳기를 마다하고 호화로운 사교 생활로 들어갔으므로 그도 아내와 더불어 그런 사회로 말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았고 남편에게 충실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런 생활 태도로써 남편의 생활을 망쳐 놓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녀 자신도 또한 노력의 소모와 피로감 이외에 이 생활에서 얻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온갖 방법을 다해서 이런 생활을 바꿔 보려고 했지만, 친척과 친지들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아내의 바위처럼 확고한 신념 앞에는 마치 돌담에라도 부딪친 양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금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언제나 다리를 드러내고 있는 어린 딸은 그에게는 남의 집 아이처럼 생각되었다. 특히 그가 희망하고 있는 것과는 전연 다른 방법으로 양육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생각은 더했다. 부부간에는 세상의 흔한 몰이해가 깔려 있었으며, 심지어 서로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예절에 억제된 무언의 냉전이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가정 생활은 다시 없이 괴로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가정 생활이 관청의 근무나 궁중의 지위보다 더 '잘못된 것'임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잘못된 것'은 종교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그는 동료들이나 같은 연배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교육받아 왔던 종교적 미신의 속박을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자신의 지적 성장과 더불어 타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 그런 속박에서 해방되었는지는 자기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진지하고 성실한 남자였으므로, 청년 시절, 대학 시절, 그리고 네플류도프와 친했던 시절에는 공인 종교의 속박에서 해방된 것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고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특히 당시 사회에 밀려온 보수적 반동 사상의 대두와 더불어 이 종교적 자유는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집안의 여러 관계, 특히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와 그 추도회 때 어머니가 성사를 받으라고 요구했고, 또 공론이 이를 요구했던 것은 문제삼을 것이 못된다 할지라도, 직무상 예배식이나 성찬식이나 감사 기도 같은 의식에 항상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실 표면적인 종교상의 갖가지 형식에 관계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을 피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의식에 참석하는 이상, 안 믿으면서도 믿는 시늉을 한다거나, 혹은 이런 모든 표면적인 형식을 허위로 인정하고, 허위로 인정되는 자리에 참석할 필요가 없도록 자기의 생활을 뜯어고치든가, 그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일이라도, 막상 실행에 옮기려고 하면 여러 가지 장애가 뒤따랐다. 가까운 사람들과 항상 싸워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처지를 변경하고 직무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리고 자기가 이제껏 그 관직에 있음으로써 인류를 위하여 공헌하고 있다고 믿고, 앞으로는 더한층 공헌할 수 있으리라는 모든 포부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정당성을 끝까지 확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소나마 역사를 배우고 대체로 종교의 발생과 기독교의 발생, 분별을 아는 현대의 교양인이라면 누구든지 자기의 상식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듯이, 그 역시 자기를 정당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교회의 교의의 진실성을 믿지 않고 자기의 정당성을 믿었다.
그러나 일상 생활의 갖가지 조건의 압력 때문에 그와 같이 정직한 인간도 조그만 허위를 묵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합리한 것을 불합리하다고 단정 지으려면 우선 그 불합리한 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그마한 허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가 그 속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커다란 허위 속으로 그를 끌어들이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라온 정교의 세계, 주위 사람들로부터 요구받고 있고, 또 이를 인정치 않고는 인류를 위해서 유익할 자신의 활동을 계속할 수 없는 정교의 세계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자문해 보았으나 이미 그의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는 불테르, 쇼펜하우어, 스펜서, 콩트의 저서를 읽지 않고, 헤겔의 철학서와 뷔네의 호마코프의 종교 서적을 읽었으며, 그 속에서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즉 종교적 교외의 평안과 변호 같은 것을 찾아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를 이성으로써 부정하고 있기는 했지만 어려서부터 이교의 속에서 자라 왔고,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생활은 불쾌한 것으로 충만될 것이며, 일단 이것을 인정해 버리면 일체의 불쾌한 일이 순식간에 소멸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판에 박은 일체의 궤변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개개의 이성은 진리를 인식할 수가 없다. 진리는 오직 사람들의 결합체에만 계시된다, 진리 인식의 유일한 방법은 계시이다, 계시는 교회에 의해서 보존된다는 등등의 궤변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그 때부터 허위를 행한다는 의식도 없이,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의젓하게 기도식이나 추도식에 참석하게 되었고, 성사를 받거나 성상을 향해 성호를 그을 수도 있었으며, 계속 직무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덕택으로 인류에 이익을 베푼다는 의식과 즐겁지 않은 가정 생활에서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신앙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반면에 신앙이라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잘못된 것'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의 눈은 늘 수심에 차 있었다. 또 그 때문에 그는 그의 마음속에 그러한 허위가 미처 뿌리도 박히기 전에, 가까운 친구 네플류도프를 만나자 순진했던 옛날의 자기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더욱이 종교관에 있어서는 네플류도프에게 말한 뒤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것이 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네플류도프 역시 옛 친구를 만난 기쁜 첫인상이 사라진 다음에 이와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으나 어느 쪽도 만날 기회를 마련하려고 하지 않아, 네플류도프가 페테르부르크에 체재하는 동안 두 사람은 끝내 다시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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