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네플류도프가 역에 닿았을 때는 죄수들은 벌써 전원이 유리창에 창살이 달린 열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열차 가까이로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탓인지 플랫폼에는 몇 명의 전송객이 서 있었다. 오늘이 호송병들에게는 유난히 성가신 날이었다. 감옥에서 역으로 가는 도중에 네플류도프가 본 두 사람 이외에도 세 사람이나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처음의 두 사람처럼 가까운 경찰서에 수용되었고, 딴 두 사람은 역에까지 와서 죽었다 (1880년대 초에 부트이르스키 감옥에서 니제고르드 역으로 죄수들을 이송하는 도중, 하루 사이에 일사병으로 인하여 다섯 명의 죄수가 죽은 일이 있었음). 그러나 호송병들의 걱정거리는 호송 중에 더 살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죄수가 죽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일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이런 경우에 법규대로 완전히 수속을 다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시체를 적당한 장소로 보내는 일, 니즈니로 가지고 가야 할 명부에서 그 이름을 삭제해야 할 일, 이런 일들은 참으로 귀찮은 일인데다가,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더욱 짜증나는 일이었다.
호송병들은 이런 일로 무척 분주햇다. 그래서 이것이 다 끝날 때까지는, 네플류도프를 비롯해서 다른 전송객들을 죄수들이 탄 열차 옆으로 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렇지만 네플류도프만은 호송 하사관에게 슬쩍 돈을 쥐어준 탓으로 허가가 되었다. 그 하사관은 네플류도프에게 들어가게는 했지만 얘기를 되도록 빨리 끝내고 지휘관의 눈에 뜨지 않도록 떠나 달라고 당부했다. 객차는 모두 여덟 차량이었다. 지휘관의 찻간을 빼놓고는 딴 차량들은 모두 죄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열차 옆을 지나가면서 차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찻간에서도 쩔그렁거리는 쇠사슬 소리와 지껄이는 소리, 쓸데없이 욕지거리를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네플류도프가 기대했던, 도중에서 죽어간 동료에 관한 얘기는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배낭과 음료수와 자리를 잡는 얘기들뿐이었다. 한 찻간을 들여다보았을 때, 네플류도프는 통로 한가운데서 죄수의 수갑을 풀어 주고 있는 호송병을 보았다. 죄수들이 손을 내밀면 한 호송병이 열쇠를 수갑을 끌러 주고, 또 하나의 호송병이 수갑을 모으고 있었다. 남자 죄수들의 찻간을 지나서 여죄수들의 찻간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둘째 찻간에서는 "오, 하느님, 오! 하느님!"하는 신음 소리가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플류도프는 그 옆을 지나 호송병이 가르쳐 준 대로 세 번째 찻간의 창가로 다가갔다. 차창에다 얼굴을 가까이 대자 땀냄새에 가득 찬 열기가 풍겨왔고 높은 목소리로 떠들어 대는 여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죄수복과 재킷을 입은, 땀에 젖고 벌겋게 탄 여자들이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앉아서 지껄여 대고 있었다. 창살에 바싹 갖다 댄 네플류도프의 얼굴은 여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가까이 있던 여죄수들이 얘길 멈추고 다가왔다. 마슬로바는 재킷만을 입고 스카프도 쓰지 않은 채 반대편 창가에 앉아 있었다. 이쪽 가까이에는 얼굴이 흰 페도샤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고 마슬로바를 쿡 찌르며 한 손으로 창을 가리켰다. 마슬로바는 얼른 일어나서, 까만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땀에 잦은 발그스름한 얼굴에 미소를 활짝 지으면서 창가로 다가와 창살을 붙들었다.
"참 덥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기쁜 듯 방글방글 웃었다.
"물건은 받았소?"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뭐 더 필요한 게 없소?" 네플류도프는 찌는 듯한 찻간에서 흡사 한증탕에서의 증기와도 같은 열기가 흘러나옴을 느끼면서 이렇게 물었다.
"네,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뭐 좀 마실 거라도 있으면." 페도샤가 말했다.
"그래요, 뭐 좀 마셨으면." 마슬로바가 되뇌었다.
"아니, 거긴 물도 없소?"
"있었지만 벌써 다 마셔 버렸어요."
"곧 가져다 주겠소."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호송병에게 부탁해 두겠소. 니즈니까지는 만나지 못할 테니까."
"그럼 정말 당신도 가시나요?"하고 마슬로바는 그럴 줄 몰랐다는 듯이 말하고 네플류도프를 기쁨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음 열차로 가겠소."
마슬로바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 나리, 열두 명의 죄수가 죽었다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사내 같은 거친 목소리로 늙은 여죄수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그것은 코라블료바였다.
"열두 명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소. 내가 본 것은 두 명이었소."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열두 명이라던데요. 대체 그런 못된 짓을 하고도 그놈들은 마음이 편안할까요? 악마 같은 놈들!"
"여자들 중에는 병든 사람이 없소?"하고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여자들은 더 강해요." 키가 작은 한 여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다만 한 사람, 별안간 산기가 있어서요. 저렇게 진통하고 있죠." 그녀는 아까부터 끊임없이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옆의 찻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신은 필요한 게 없느냐고 하셨죠?" 마슬로바는 기쁨에 넘치는 미소를 간신히 참으면서 말했다. "저 여자를 남아 있게 해줄 수 없으실까요? 저렇게 괴로워하고 있으니까요. 지휘관에게 말씀 좀 해주었으면."
"좋아, 말해 보겠소."
"그리고 또 한가지, 저 여자를 그의 남편 타라스하고 만나게 해주실 수 없으세요?"하고 마슬로바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페도샤를 눈으로 가리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분도 당신과 함께 가게 될 거예요."
"여보시오, 얘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하는 하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플류도프를 들여 보낸 하사관이 아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곳을 떠나, 산기가 있는 여자와 타라스의 일을 부탁하기 위해 지휘관을 찾았으나 오랫동안 찾을 수가 없었다. 호송병에게 물어도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이다. 죄수들을 어디로인지 데려가는 자들도 있고, 식료품을 사려고 뛰어다니는 자들도 있고, 여기저기 자기 짐을 찻간에 싣는 자들도 있고, 호송 지휘관과 같이 가는 부인의 시중을 들고 있는 자도 있어서, 네플류도프의 질문에는 그저 마지못해 한두 마디 대답할 뿐이었다.
두 번째 벨이 울렸을 때에야 간신히 호송 지휘관을 찾았다. 지휘 장교는 짤막한 손으로 입가에 뒤덮인 수염을 매만지면서 어깨를 치켜들고 하사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용건입니까?"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물었다.
"저 열차에 아기를 곧 분만할 여자 죄수가 있어서, 어떻게 좀..."
"아니, 낳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어떻게 되겠지요." 이렇게 말하더니, 그는 짤막한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자기의 찻간 쪽으로 걸어갔다.
이 때 호각을 손에 든 차장이 지나갔다. 마지막 벨소리와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플랫폼에 서 있는 전송객들과 찻간에 있는 여죄수들의 울음소리와 통곡이 터져나왔다. 네플류도프는 타라스와 나란히 플랫폼에 서서 창살 차창 안에 머리를 박박 깎인 남자 죄수들의 모습이 보이는 차량들이 한 칸 또 한칸 차례차례로 그의 옆을 지나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다음 여죄수의 첫째 차량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머리와 수건을 쓴 머리들이 창문을 통해서 보였다. 그 뒤를 이어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둘째 차량이 지나가고, 그 다음에 마슬로바가 탄 셋째 차량이 지나갔다.
마슬로바는 딴 여자들과 같이 창가에 서서 네플류도프를 바라보고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B> 부활 (2부, 40) -톨스토이- (0) | 2021.10.29 |
---|---|
<R/B> 부활 (2부, 39) -톨스토이- (0) | 2021.10.28 |
<R/B> 부활 (2부, 37) -톨스토이- (0) | 2021.10.25 |
<R/B> 부활 (2부, 36) -톨스토이- (0) | 2021.10.23 |
<R/B> 부활 (2부, 35) -톨스토이- (0) | 2021.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