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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3부, 8 完)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1. 16.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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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네플류도프는 자려고도 않고 오랫동안 여관방 안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카추샤에 관한 문제는 결말이 나버렸다. 이제 그는 카추샤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것이 슬프기도 했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 일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말이 나지 않았을 뿐더러 그 어느 때보다 한층 더 강하게 그를 괴롭히고 더욱 강렬하게 그의 행동을 요구했던 것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그가 계속해서 듣고 보아 온 그 가공할 만한 온갖 죄악들, 그리고 크르일리조프를 파멸시켜 버린 저 사악은 자기의 승리를 구가하면서 이 세상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기는커녕 그것을 어떻게 정복해 나갈지 그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냉담한 장군들, 검사들, 형무관 등에 의해서 여러 면으로 부패된 공기 속에 감금되어 있는 저 수백 수천의 학대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권력자들의 죄상을 폭로하여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있는 그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이상한 노인이 떠오르고, 시체들 틈에 뉘어져 있던 분사한 크르일리조프의 백랍같이 아름다운 얼굴도 떠올랐다.

그러자 네플류도프는 그 자신이 광인인가, 아니면 자기네들을 총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부정한 행위를 자행하는 저 위정자들이 광인인가 하는, 전부터 느끼던 의문이 더욱 새로운 힘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고 그 해답을 요구하였다.

걷다가 지치고 생각하다가 지쳐, 그는 램프 앞쪽에 놓인 긴의자에 걸터앉아서 아까 호주머니에서 무얼 꺼내다가 테이블 위에 내던졌던, 그 영국인에게 기념으로 받은 복음서를 별생각 없이 펼쳐 보았다. '이 가운데는 온갖 것의 해결이 있다고 하지만,'하고 그는 혼잣말을 하면서 복음서를 열고 그 열려진 쪽, 마태복음 제 18장을 읽기 시작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2.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4.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그렇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자기가 마음의 평화와 삶의 희열을 느꼈을 때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마음을 가졌을 때뿐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6. 그러나 나를 믿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이건 무얼 뜻하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받아들이며, 어디로 받아들인다는 말일까? 또 내 이름으로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런 말이 자기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전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자기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더구나 맷돌을 목에다 단다든가, 깊은 바다라든가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 이건 좀 이상한 데가 있다. 정확하지 않다. 분명하지가 않아.' 지금껏 몇 년이나 복음서를 읽다가는 언제나 이렇게 명확치 않은 대목에 싫증이 나서 집어던졌던 일을 기억하며 그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또 7, 8, 9, 10절을 읽어 나갔는데 거기에는 온갖 악의 유혹과, 그 유혹이 반드시 이 세상에 올 것이라는 것과, 사람들이 지옥의 불 속으로 떨어져 벌을 받으리라는 것과, 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어린 천사의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너무나 모순투성이군.'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좋은 점이 어디엔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는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11.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12.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서지 않겠느냐?

13.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14. 이와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것없는 자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렇다, 그들이 파멸하는 거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도 수백 수천의 인간이 파멸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는 생각하였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제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

23.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24. 셈을 시작하자 1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25.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갚아라.'고 하였다.

26.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애걸하였다.

27.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보냈다.

28.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은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고 호통을 쳤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하고 애원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32.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33.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것이 아니냐?'

 

"고작 이런 것뿐이란 말인가?" 성경을 읽으면서 네플류도프는 별안간 소리내어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러자 그의 전존재의 내부의 소리가 이렇게 소리쳤다. '그렇다, 그런 것뿐이다.' 그리고 정신 생활로 사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 네플류도프에게서도 일어났다. 즉 처음엔 이상하고, 역설적이고, 농담같이도 생각되던 것이, 차츰 실생활 속에서 확증을 찾아내게 되고, 드디어는 갑자기 가장 단순하고 의심할 바가 없는 진리로서 그의 앞에 대두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그 무서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 하나의 확실한 방도는 사람들이 항상 하느님께 대하여 자기 자신을 죄인이라 인식하고, 따라서 자기에게는 절대로 남을 벌준다든가 고쳐 줄 만한 힘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는 감옥에다 수인 중계소에서 목격한 온갖 무서운 죄악도, 이러한 사악을 감행하고 있는 태연 자약한 태도도, 요컨대 그들 자신이 악인이면서 악을 교정하려는 따위의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원하는 데서 생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죄 많은 인간이 죄 많은 인간을 교정하기 위해 기계적 방법으로 그것을 달성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온갖 것이 남겨주는 결과는, 생활이 어려운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가장된 형벌과 인간 교정의 직업에 종사하여 그 자신이 극단적인 타락에 빠짐과 동시에, 자기가 괴롭히는 사람들마저도 끊임없이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네플류도프에게는 자기가 목격한 이런 공포가 어디서 생긴 것이며, 또한 그것을 근절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뚜렷해졌다. 오늘까지 그가 간절히 찾아다녔던 해답은 실로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해준 그 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사람은 죄 없는 자가 없는 것이며, 그에 따라 사람을 벌주거나 교정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모든 사람들을 몇 번이라도 끝없이 용서해야만 한다는, 그 한 가지 속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이 이렇게 간단할 리는 없다.' 네플류도프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지금껏 그는 그 정반대의 일에만 익숙해 왔었기 때문에 처음엔 아주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이론적일 뿐만 아이라 가장 실질적인 해결 방법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악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둘 것인가?'하는 항상 느끼고 있던 이러한 반문에도 이제 그는 당황해 하지 않았다. 만약 형벌이 범죄를 감소시키고 범죄자를 교정시킨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 반박은 큰 뜻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전혀 반대로 입증되어, 사람이 사람을 교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롭고 비도덕적이며, 잔혹하기가 이를 데 없으므로 그러한 일에서는 손을 떼야만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몇 세기 동안에 걸쳐서 너희가 범죄자라고 인정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숱하게 처벌해 왔다.

그것으로 죄인이 근절되었던가? 아니, 근절은 고사하고 형벌에 의해 한층 더 타락해 버린 이 죄인들과 판사, 검사, 예심 판사, 형무관 따위의 사람들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또 다른 이들 죄인들 때문에 오히려 그 수가 불어나고 있지 않은가?' 지금에 와서야 네플류도프는 사회와 질서를 존속시키고 있는 타락에도 불고하고 사람들이 서로 동정하고 서로 사랑하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네플류도프는 이런 생각의 확증을 '마태복음'속에서 찾고자 하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항상 그를 감동시켰던 산상 수훈을 읽는 동안, 오늘 비로소 그는 그 설교 속에는 아름답고 추상적인 사상과, 과장되고 실행 불가능한 사상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하게 실제적인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계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계율이 실행되기만 한다면 인간사회는 보다 새로운 체제를 형성하고, 그렇게도 네플류도프를 분개시켰던 온갖 폭력이 저절로 소멸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인 지상 천국을 누리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계율은 다음의 다섯 조항이었다.

 

제1의 계율(<마태복음> 제5장 12~26절), 사람은 형제를 살해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하여 성을 내서도 안 된다. 누구든 형제를 하잘것없는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구와 싸우는 일이 있을 때는 먼저 그와 화해를 하고 난 뒤, 하느님께 예물을 바쳐야 한다. 즉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제2의 계율(<마태 복음> 제5장 27~32절), 사람은 간음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여자의 아름다움을 향락해서도 안 된다. 일단 한 여자와 맺어졌다면 절대로 그녀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

제3의 계율(<마태 복음> 제5장 33~37절>),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거짓맹세를 하거나 거짓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제4의 계율(<마태복음> 제5장 38~42절>) 식의 복수를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만약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한쪽 뺨도 내밀지 않으면 안 된다. 모욕을 용서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참고, 사람들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이면 누구에게라도 거역하지 마라.

제5의 계율(<마태 복음> 제5장 38~42절), 사람은 원수를 미워하든지 싸워서는 안 되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돕고 그들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플류도프는 꼼짝도 않고 타오르는 램프 불빛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우리들 생활의 온갖 추악상을 생각해 보면서, 그는 만약 세상 사람들이 이 같은 계율에 따라 생활해 나간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훌륭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환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흡사 그것은 오랫동안 겪어 온 괴로움과 고통 끝에 별안간 안식과 자유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

그는 밤새도록 밤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지금껏 몇 번씩이나 읽으면서도 찾아내지도 못했던 말씀의 의미가 이제서야 비로소 명확히 해득되는 것이었다. 흡사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는 이 복음서 가운데서 자신이 계시된 필요하고 중요하며 또한 기쁜 요소를 흠뻑 흡수하였다. 그리고 지금 읽은 것이 죄다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알기는 했었지만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고 또 믿지도 않았던 것을, 이제는 명확히 의식을 하게 된 것같이 여겨졌다. 지금이야말로 그는 완전히 인식하고 또 믿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계율이 실행만 된다면 인간으로서 원하고 기대하는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확신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이 계율을 실행하는 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의미가 없고, 또 그 가운데 인생의 유일한 합리적인 의의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곧 벌을 초래하는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또한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교의 전체에서 맥맥이 흘러나온 것이지만, 그것이 특히 뚜렷하고 강력하게 묘사된 것은 포도밭 농부들의 우화 속에서였다. 농부들은 주인들의 일을 하기 위해서 맡겨진 포도밭을 자기네들의 재산이라 여기고, 포도밭에 있는 모든 것은 전부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포도밭에서 인생을 향락하는 것만이 자기들의 일이라 여겨, 주인의 존재는 잊고 주인이나 주인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상기시키려 드는 사람들을 몽땅 죽여 버렸던 것이다.

'우리들도 그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하고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우리 자신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라든가, 생명은 우리의 쾌락을 위해서 부여된 것이라든가 하는 불합리한 신념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어리석은 생각인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이 세상에 보내진 존재라면, 그것은 그 어떤 의지에 의해서 어떤 목적을 진고 보내지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지 자기의 향락만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렇게 되면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실행하지 않은 포도밭의 농부가 보복받아 비참한 앞날을 맞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무참한 경우를 당할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주인의 의지는 이들 계율만 실행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이 지상에는 하느님의 왕국이 세워지고 사람들은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하느님의 왕국과 그 진실을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은 모두 너희들에게 돌아가리니."라고 하였지만, 사람들은 그 '나머지 것'만 찾으려고 했으니, 그것이 발견되지 않음은 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 필생의 사업이다. 이제 한가지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더니, 또 다른 일이 시작되는 구나.'

그 날 밤부터 네플류도프에게는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가 새로운 생활 조건에 들어갔다는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그의 신상에 일어나 모든 것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새로운 생의 시작이 어떠한 결말을 맺을지 그것은 미래가 말해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