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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류도프는 유형수의 한 감방에서 오늘 아침 나룻배에서 만났던 그 이상한 노인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주름살투성이인 얼굴의 이 노인은 더럽고 어깨가 해진 회색 셔츠와 그와 똑같은 바지를 입고 나무 침대 옆에서 맨발로 마룻바닥에 앉아 힐책하는 듯한 날카로운 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더러운 셔츠의 해진 곳으로 엿보이는 그의 말라빠진 몸은 가엾게 여겨질 만큼 쇠약해 보였으나, 그 얼굴만은 나룻배에서 보던 때보다도 더욱더 날카롭고 진지하며 생기가 넘쳐 흘렀다. 죄수들은 다른 감방에서와 마찬가지로 형무관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모두 벌떡 일어나 부동 자세를 취했지만 그 노인만은 그대로 앉아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의 눈은 빛났고 눈썹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일어섯!" 형무관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노인은 꼼짝 않고 비웃는 듯이 싱긋 웃을 뿐이었다.
"너의 앞에는 네 부하들이나 서는 거겠지. 그러나 나는 네 부하가 아니란 말이야. 너도 얼굴에 낙인이 찍혀 있구나..."하고 노인은 형무관의 이마를 가리키면서 맞받았다.
"뭐 어째?" 형무관은 한 걸음 그의 앞으로 다가가 위협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형무관에게 네플류도프가 급하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수감되었나요?"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이리로 보낸 것입니다. 이런 자는 보내지 말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래도 자꾸만 보내는군요."하고 화가 난 듯이 노인을 곁눈질로 노려보면서 형무관이 말했다.
"으응, 당신도 역시 반그리스도군이었군?"하고 노인이 네플류도프한테 말을 했다.
"아닙니다. 나는 참관자일 뿐이오."하고 네플류도프는 대답했다.
"그럼 반크리스트교도들께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구경하러 왔다는 거요? 자, 어서 보시오. 한 연대쯤이나 되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한 우리 속에 가두어 두다니. 사람이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는 게 당연한데, 이런 곳에 돼지처럼 처박아 두고 일도 시키지 않고 처먹이고만 있으니 모두 짐승이 될 수밖에 없는 거지."
"이 노인이 뭐라고 말하는 겁니까?"하고 영국인이 물었다.
네플류도프는 형무관이 사람을 감금해 두는 것은 부당한 짓이라고 노인이 비난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 이렇게 한번 물어 봐 주십시오. 법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될 것이냐고요."하고 영국인이 말했다.
쭉 고른 이를 드러내면서 노인은 이상스럽게 웃었다.
"법률이라!" 노인은 경멸하는 듯한 투로 되뇌었다.
"자기네들이 먼저 사람들이 가진 것을 모두 약탈해서 땅도 재산도 다 빼앗고 거역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나선, 그때서야 약탈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하는 식의 법률을 만든 것 아니냔 말이오. 그런 법률은 그러기 전에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야."
네플류도프가 그대로 통역했다. 영국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에 와서 도둑이나 살인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걸 한번 물어 봐 주십시오."
네플류도프는 그 말을 전했다. 노인은 얼굴을 무섭게 찡그렸다.
"자기 이마에서 먼저 반그리스도의 낙인을 떼버리는 게 좋다고 말해 주시오. 그러면 도둑도 살인도 다 없어질 테니까. 그렇게 말해 주시오."
"이 사람은 돌았군요." 영국인은 네플류도프가 노인의 말을 통역해 주었을 때, 이렇게 말하고 어깨를 움츠리며 감방을 나섰다.
"인간은 자신의 일만 하면 되는 거야. 남의 일에는 참견한 것이 없어. 자기는 자기고 남은 남이니까. 누구를 벌주고 누구를 용서할까 하는 것은 하느님만이 아는 것이지 인간이 할 수 없는 거야."하고 노인은 말했다.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는 거야. 다른 주인이란 필요가 없는 거지. 자, 어서 가라고, 어서 가!" 노인은 성난 듯 미간을 찌뿌리고 아직도 감방 안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네플류도프를 번득이는 눈으로 쏘아보며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반그리스도의 하수인들이 사람을 미끼로 써서 이를 기르고 있는 걸 잘 보았겠지? 자, 가라. 어서 나가!"
복도로 나왔을 때, 네플류도프는 영국인이 형무관과 같이 문이 열려진 사람이 없는 방 앞에서, 이 감방의 용도를 묻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형무관은 이 곳이 시체실이라고 하였다.
"오!" 네플류도프의 통역을 듣고 영국인은 이렇게 소리지르면서 거기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말하였다.
시체실은 조그마한 보통 감방이었다. 작은 램프가 하나 벽에 켜져서, 한 구석에 쌓여 있는 배낭과 장작, 그리고 오른편 나무 침대 위의 시체 네 구를 희미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삼베 셔츠와 바지를 입은 한 시체는 큰 키에 짧은 턱수염을 뾰족하게 기르고 절반쯤 머리를 깎은 사내였다. 시체는 벌써 오래 전에 굳어져서 푸르죽죽한 두 손을 아마 가슴 위에다 모아 놓은 것 같았으나 지금은 벌어져 있었고, 맨발인 두 발도 같이 벌어져서 발바닥이 따로따로 삐죽 내보였다. 그 옆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또 한 시체는 흰 재킷에 스커트를 입고 숱 적은 머리를 조그맣게 땋아내린, 코가 작고 뾰족한 주름 투성이의 누런 얼굴을 한 노파로, 역시 맨발로 머릿수건도 쓰지 않고 있었다. 노파의 뒤편에는 무엇인지 보랏빛의 물건에 감싸여진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그 빛깔은 무엇인가를 네플류도프에게 생각나게 해주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시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위로 뾰족하게 뻗쳐진 짧은 턱수염과 날이 선 아름다운 코, 새하얗고 높은 이마와 숱 적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모든 것이 낯익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다. 바로 어제 이 얼굴이 흥분 속에 분개도 하고 괴로와도 하는 것을 보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안하고 움직이지도 않는,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얼굴로 거기 누워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크르일리조프였다. 아니, 크르일리조프가 남긴 물질적 존재의 전부였다.
'무엇 때문에 그는 괴로와했던가? 무엇 때문에 그는 살고 있었던가? 지금 그는 그 이유를 알았을까?' 네플류도프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대답은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음 이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러자 별안간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네플류도프는 영국인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간수에게 안내를 부탁하여 밖으로 나오자 오늘 밤에 경험했던 것 모두를 곰곰히 되새겨 보기 위하여, 조용히 홀로 있고 싶어서 마차를 달려 여관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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