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24 1987. 6. 1 (월)
엇저녁 먹은 J가 끓여온 전복죽이 잘못된 것일까?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 화장실 다녀온 후부터 통증 시작.
밤새 잠 못이루고 고통속에서 새벽 맞다.
이 아픔이 수술의 정상적인 아픔인지, 아니면 무언가 잘못된 아픔인지 모르겠다.
의사에게 토로해 보아야 그저 시큰둥한 반응인데.
강하게 어필해야 하는 아픔일까?
나는 환자로서의 자격이 모자르다.
이럴 때 J라도 옆에 있었으면. 전화하였으나 언제쯤 오려는지..
환자라는건 의외로 시간이 없구나.
아프기 바쁘니까.
14725 1987. 6. 2 (화)
잠시 잠이 들었으나, 갑자기 내습하는 통증. 2시.
아프고 아프다.
밖은 몹시 비가 내리고 있다.
조금의 거동이 아프고 아프다.
밤중에 누군가 옆에 있어주었으면.
14726 1987. 6. 3 (수)
새벽2시.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있으려니 옆칸에도 어느 사나이 변을 보는 모양이다.
일을 보면서 "씨발.. 씨발.. 끙. 끙."하고 연이어 들리는 신음소리와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 역시 그 꼴이면서도 쿡쿡 웃음이 치밀어 소리내지 않으려 애쓴다.
조금 나아가고 있는 느낌.
입원실안. 옷,이부자리,온몸에서 풍기는 이 구린내음은 치질 썪는 냄새란다.
형수 문병와서 기도하여 주시다.
英이의 어제 합주회.
생각보다 수준이 높더라는 J의 말이 기쁘다.
엘리 위젤의 소설읽기는 영혼의 고통을 수반한다.
'The Night Camp'
"인간성? 인간성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나는 그 광경을 꼼짝하지 않고 지켜 보았다. 끝까지 가만있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다도 내 자신이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 무사히 도망갈수 있는 방법만을 궁리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때 나는 간수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에게 어떤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이데코가 발작을 일으킬 때 잽싸게 피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해서 화가 났다."
"그리고는 세 희생자의 앞을 지나는 분열식이 시작되었다. 두 어른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들의 길게 늘어진 혀는 팅팅 부었고 색깔도 변해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밧줄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몸이 가벼웠으므로 소년은 아직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우리의 눈앞에서 반시간 이상이나 고통 속에서 그대로 매달린채 삶과 죽음의 사잇길에서 몸부림치며 서서히 죽어갔다. 우리는 소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내가 그의 앞을 지날때에도 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나는 등위에서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묻는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그때 나는 나의 내부에서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한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어디 있느냐고? 그는 여기에 있어. 그는 여기 교수대위에 목이 매달려 있는거야.' -여러 민족가운데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밤낮으로 고문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 화장장에서 산채로 최후를 마치는 광경을 보게하신 영원한 우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될까?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어떻게 추려내기에서 무사할수 있을 것인가? 나이도 그렇게 많으니. 이 세상에는 아직도 기적이라는 것이 있단 말인가?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 아버지는 두 번째 추려내기에서 죽음을 면했던 것이다. 아직도 쓸모있는 존재임을 그들에게 입증해 보였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칼과 숟가락을 되돌려 드렸다."
"그림자는 이내 노인을 위에서 덮첬다. 노인은 바닥에 뒹군채 그림자로부터 주먹 세례를 받으며 비명을 질렀다. '마이어. 마이어. 내 아들아! 나 애비야. 아이쿠 난 네 애비다. 네게도 주려고.. 네게도 주려고..' 이내 노인은 무너졌다. 주먹안에는 조그만 빵조각이 쥐어져 있었으며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난 그것을 본 아들이 아버지위에 덮쳐 나꿔챘다. 노인은 가래끓는 낮은 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모든 사람의 무관심 속에 숨을 거두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몸을 뒤져 빵을 찾아내서는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들 역시 멀리 가지 못했다. 그를 본 두사람이 달려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물러갔을 때 내 옆에는 두구의 시체가, 아버지와 아들이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 때 나는 열다섯살 이었다."
"장교가 아버지에게 다가와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줄곧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장교가 손에 들고 있던 곤봉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세차게 한번 내려첬다.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무서웠다. 나도 아버지처럼 곤봉으로 맞을까봐 무서웠던 것이다. 아버지는 숨이 깔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엘리제르..' 나는 아버지의 숨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유인으로서 취한 우리의 첫행위는 너나없이 음식물에 달려드는 일이었다. 보복을 하는 일도, 가족을 찾는 일도 먹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맞은편 거울의 저쪽에서 해골하나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흐 해골이 노려보던 그 눈빛을 나는 결코 잊을수 없다."
치욕감과 굴욕감.
읽어가면서 나는 짐승처럼 신음하였다.
가히 인간성에 대한 고문이다.
나치의 잔혹행위는 영화로도 소설로도 제법 읽어 보았는데 엘리 위젤의 소설은 그 경험적 사실성에서 더욱 나를 고문한다.
이런 것을 경험한 사람은 어떻게 살수 있을까? 엘리 위젤은 노벨상까지 받았다지만.
욥이라면 이런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계속 바라볼수 있을까? 욥의 고난은 부와 명예와 육신의 고통뿐이었지만, 이것은 영혼 그 자체에 가해지는 고문이다.
그의 다른 소설 '새벽'을 읽고 또 '낮'을 읽는다.
그는 기억의 고문을 극복하고 결국 하나님을 다시 찾았는가. 유태인에게 하나님은 고향같은 것. 색깔이고 냄새같은 것... 과연 유태인이란 누구인가?
그들의 하나님 야훼는 역시 나의 하나님 야훼인데, 그들의 신앙은 나의 신앙과 같지 아니하다.
아,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고난이란 인간에게 가장 저열하고 가장 비열한 것을 가져오는 것이오. 당신을 짐승이하로 만들어 버리는 고난도 있어요. 한조각의 빵을 얻기위해서 그리고 한숨의 잠을 자기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당신 친구들의 영혼까지도 팔게 되요."
"성자들은 그런 역사가 끝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지요. 그와는 달리 주어진 숙명을 살아가기에 급급한 다른 사람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감히 드여다 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자기들의 내적인 영상을 보기가 두렵기 때문이지요. 그들의 내면에는 불행한 여인들을 비웃고 이미 죽은 성자들을 비웃는 괴물이 들어 있으니까."
"그녀는 갑자기 어둡게 흐린 눈길을 나에게 돌렸다. 그 흐린 눈길 속에는 하나님이 아직도 있었다. 그것은 혼돈과 무기력의 하나님이었다. 열두살 먹은 아이를 고문한 바로 그 하나님이었다."
"나는 다시 속으로 생각했다. 고통은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서 멀리 떼어 놓는다. 고통은 우리를 갈라 놓기 위해서 절규와 경멸로 만들어진 벽을 쌓는다. 인간은 순수한 고뇌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을 옆으로 밀처 버린다. 그 사람에게서 하나의 신을 만들어낼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은 인간에게 말했던 것이다. 내가 고뇌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기 때문도 아니며, 내가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성자이기때문도 아니다. 내가 고뇌하는 것은 나 역시 당신들처럼 연약하고, 당신들처럼 비겁하고, 당신들처럼 죄가 있고, 당신들처럼 모반하고, 당신들처럼 어리석은 야심을 가진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인간들은 이 사람이 수치심을 자기들에게 안겨주기 때문에 무서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죄인인 것처럼 그 사람을 멀리 끌고간다. 마치 그가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기라도 한것처럼.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고뇌하는 사람은 별도로 떨어져서 홀로 살아야 한다. 어떤 조직화된 생활로부터도 떨어져 살아야 한다. 그는 공기에 독을 넣어 사람들이 마시기에 부적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인간의 기쁨으로부터 그 자발성과 정당성을 가져가 버린다. 그는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말살한다. 그는 오직 기억의 가혹한 율법만을 알고 있으며 현재와 미래를 부정하는 시간의 화신이다. 그는 고뇌하며, 그의 전염되기 쉬운 이 고뇌는 그의 주위에 반향을 일으킨다."
"고뇌란 산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죽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냐. 그리고 인간의 의무는 고뇌를 그치게 하는 것이지 그것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냐."
"만일 자네의 고뇌가 다른 사람들, 자네 주위의 다른 사람들, 말하자면 자네가 사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사람에게 옮겨간다면 자넨 그 고뇌를 없애고 목졸라 죽여야 해. 만일 죽은 사람들이 그 고뇌의 근원이라면 그들을 다시 죽이고 혀를 잘라 버려야 해."
엘리제르여! 불쌍한 엘리제르여!
이제 그 악몽으로부터 벗어나시오.
그리고 외치시오. 노벨평화상의 권위로 외치시오.
치욕의 역사를 외치시오.
듣는 자들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끊임없이 외치시오!
상헌이란 우리 속에 있는 어떤 추악한 짐승들이 들을수 있도록.
14727 1987. 6. 4 (목)
한밤중.
무언가 요 밑이 축축하여 정신차려보니 피로 홍건하다.
심한 출혈. 급히 의사불러 응급처치.
몇 개의 치질을 떼어내는데 그 극심한 아픔.
매우 어두운 기분. 이럴 때 J가 있었으면.
요의 시트갈고 팬티 갈아입고.
엎드려 기도.
어제 저녁, CS교대리, 해양선용의 H사장 문병와 이런저런 얘기 노닥거리고.
14728 1987. 6. 5 (금)
꼬박 밤을 지새다.
엎드린채 미어즈의 '로마서' 공부.
입원 8일째.
어찌된 것이 갈수록 고통이 더하다.
이 집의 수술방법은 전형적인 외과적 수술이 아니다.
그 부위를 썩혀서 뿌리째 도려내는 방법이다.
첫날 수술이라는 것은 부위 부위마다 무슨 약품을 주사한 것이고.
그 후로 부위가 썩는 과정에서의 아픔, 그것을 도려낼 떄의 아픔, 떼어낸 부위의 아픔.
아프고 아프고 아플 뿐이다.
조금이라도 배변할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조금이라도 잠들어 버릴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J는 잠시 왔다가는 가버리기 급급하고.
닥처오는 밤. 견디어 낼일이 아득하구나.
이럴 때 모든 아픔을 가다듬어 주님께 기도할수 있어야 한다.
14729 1987. 6. 6 (토)
어제밤 진통제 주사맞고.
누워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의 의미를 묵상하다가 오랜만에 잠 들다.
새벽.
배변의 고통은 가히 고문이다.
화장실에서 병실까지 기다시피 와서 엎어 쓰러진다.
벌건 상처에 고춧가루라도 뿌린 듯.
몸부림도 칠수 없는채, 그저 요를 쥐어 뜯으면서 울지도 못한다.
통증 속에는 오직 통증 뿐이다.
아프다는 느낌 외에 어떤 것도 틈입할수 없다.
이런 통증이 시종 계속된다면 사람은 견뎌낼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간헐적이니까 문득문득 의식 속에 절망감 또는 희망감이 교차하고.
이 통증은 온전히 내 것이다.
14730 1987. 6. 7 (일)
어제 오후 퇴원.
병원을 나서니까 세상은 어느새 여름이다.
혈거 생활을 하다가 광명천지에 나온 느낌.
집안은 어수선.
온유치 못한 J.
엇 저녁무렵과 오늘 새벽의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무서운 통증.
내일 출근이 가능할는지?
청결함이 좋다. 나는 청결함을 사랑한다.
또 단순함이 좋다. 나는 단순함을 사랑한다.
모든 형상- 현상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에서.
청결한 이미지, 단순한 구도.
기자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게 물었다던가?
"왜 당신은 사막을 그토록 사랑하시오?"
"깨끗해서."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의 이 한마디 대답은 세척강박이나 금욕주의적인 그의 기질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는 예술가의 눈으로 미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4732 1987. 6. 9 (화)
새벽 엎드린채 기도.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에베소서 6장-
출근하는 날.
위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14733 1987. 6. 10 (수)
어제부터 출근.
회사에서 갑자기 엄습할 통증을 염려했으나 무사.
그러나 한밤중, 배변후에 내습한 통증.
통증이 고난이라면 나는 참으로 고난에 약하다.
오래 참음의 부족, 진득이 좀 견뎌낼수 없을까?
고난 중의 의식의 흐름은 매우 불손하다.
분노, 원망, 악의에 가득찬 욕지기-
이런 것으로 나의 신앙의 옅음은 여실히 증명된다.
만일 내가 고문을 받는다면 나는 얼마나 견뎌낼수 있을까?
아마 초반에 벌써 술술 다 불어버리고 말 것이다.
아니면 겁에 질려 시작도 하기전에 오줌을 지릴지도 모른다.
나의 이 강인하지 못함에 절망한다.
밖에서는 정국의 긴박감.
14734 1987. 6. 11 (목)
새벽 엎드려 기도.
"그리하여 나는 성경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성경에 몰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거기에는 교만한자가 가까이 못하나, 어린아이에게라도 감추어지지 않은 무엇이 있으니, 들어가려고 하면 낮아지고, 가까이 가려면 높아지고, 신비의 막으로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당시의 나로서는 그 진상을 알아보고 싶어서 그 안에 들어가거나 내 목을 굽힐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성경으로 눈을 돌렸던 그 당시만 해도 지금의 형편과는 달라서, 성경이 키케로의 저서와 비교하여 별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물론 미혹되어 있던 내 파토스는 성경의 보이지 않는 지혜에 대항해서 일어섰고, 나의 통찰력이 성경의 내부에까지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방법은 어린이와 함께 자라는데 있습니다. 어린이가 된다는 것은 내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교만한 마음이 부풀어 올라 스스로 어른인 듯이 행세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사랑이십니다. 내가 강해질수록 그 사랑에 나를 맡겨 버렸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하늘에서라도 볼수있은 어떤 물체가 아니십니다. 또 거기서 우리가 볼수 없는 어떤 것도 아니십니다. 그런 것들은 다만 당신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당신은 환상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모르며, 내가 꾸며내어 생각하는,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환상적인 물체도 아니십니다. 이런 것에 의존한 인식보다는 존재하는 물체의 형상을 생각해서 인식하는 것이 더 확실하고, 이것보다는 물체가 더 확실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것도 아니십니다. 당신은 또한 육체에서 생명을 구사하는 영혼도 아니십니다. -육체의 생명은 육체 그 자체보다 상위에 서있고 더 확실한 것입니다.
당신은 영혼의 생명이시오, 생명중의 생명이시오, 그러면서도 당신 자신을 통해서만 존재하시고 변하지 않으시니, 주는 내 영혼의 생명이십니다.
그 때 당신은 어디 계셨으며 내게서 얼마나 멀리 계셨습니까? 나는 당신을 멀리 떠나 타향에서 있었습니다. 당신의 말씀보다는 문법선생과 시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더 훌륭했던지요. 운문과 시에서 진정한 양식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앙화입니다. 그떄 나는 死者의 세계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때로 나는 진리의 결핍으로 고통스러웠고, 고갈되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을, 내가 당신께 신앙고백하기 훨씬 이전에 주께서는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인간을 짐승보다 뛰어나게 하시려고 주신 영안의 시력 정도에 따라 당신을 내가 추구한 것이 아니라 육체의 감관정도에 따라 당신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가장 깊은 속보다도 더 내재하셨고 내 가장 높은 것보다도 더 위에 계셨습니다. 솔로몬의 수수께끼에, 저 파렴치하고 분별없는 여인이 문 앞 의자에 앉아서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하였다는데 내가 거기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4735 1987. 6. 12 (금)
배변의 고통은 언제쯤 사라지려는지?
회사 일도 고통이다.
6.10 대회는 무산된 것인가, 성공한 것인가.
이 시대, 완고함과 독선과 거짓과 폭력의 이 시대까지도 암울하게 나를 휩싸고 있다.
87년도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 읽다.
김승옥풍 작품도 있다.
김승옥- 그 냥반의 언어는 얼마나 황홀하였던가?
그 시절- 문학의 열정에 들떠 있던 무렵, 내게 김승옥은 도달할수 없는 피안이었다. 김승옥 때문에 내 재능을 절망하였다.
그러나 지금 김승옥씨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다. 신앙을 위하여 자신의 문학을 버려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난해한 천재로부터 단순한 신앙인으로의 변신은 혹자는 전락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때로 신앙의 단조로운 말씀으로부터 고개를 좌우로 돌려 목운동을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문학을 향한 향수-
술과 사변과 현학적 폼잡기와 위악과 그 낄낄거림이 너무 그리울 떄가 있다.
14736 1987. 6. 13 (토)
'わか淚よわか歌どなれ'를 읽고 신앙의 본질에 대하여 한참 생각하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마태14장-
물리적으로 불가능 한다 할지라도 지금 주께서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면 물위를 걷겠는가?
나의 모든 공포,근심,걱정을 전적인 신뢰로 주님께 맡길수 있는가?내 자신에게 아무리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라도, 나의 전 존재, 생과 사의 전존재로서 신앙할수 있겠는가?
스즈끼는 말한다.
"하나님은 강하다. 그리스도는 강하다. 그리스도교는 강하다. 모든 진실한 교인은 강하다. 진실한 기독교인은 자기의 약함을 괴로워하는 일에 있어서까지도 강하다. 그들은 길이 막힐때까지 진정 막다른 골목까지 걸어갔다. 그래서 솔직하게 부딪쳤다. 그렇게 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힘이 나타났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곳이야말로 진실로 주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 이것이 신앙이다. 진리는 고난과 고뇌 속에서만 알수 있은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생명을 건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충족하다. 나의 힘은 약한데서 완전해 진다."는 고린도후서의 말씀.
어떤 고난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할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게 될 때 나는 한사람의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토요일, 흐린 날씨.
뒷꽁무니 고통은 좀 덜하다.
참으로 오랜동안 술 마시지 않고 있다. 대견.
英이는 시험 잘 치른 듯.
14737 1987. 6. 14 (일)
새벽2시 화장실 다녀온 후부터.
형편없이 몸이 아프기 시작, 전형적인 몸살이다.
俊이 시켜 약 사다 먹고 좀 다스린다.
뒷꽁무니는 참 낫지 않는다.
엇저녁 처제들 오다. 우리 노처녀들.
정국은 어찌 되려는가?
민정당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집권당다운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도 외처야 한다.
민주화- 그 도도한 물결에 나도 마음을 실어야한다.
쥐새끼같은 작은 찍찍거림이라도 소리를 내야한다.
미국의 논평, 6.10 사태를 보고 '혐오한다'고 표현한다.부끄럽고 부끄러운 일, 이것은 전적으로 집권당 책임이다.
그들이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 명예인가. 야욕인가. 착각인가.
"내가 나는 것만이 나 자신의 지식과 진리이다. 이 세상은 서로 다른 갖가지 의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지지 않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내가 아는 일에 관여케 하라. 그 이상의 관여는 없기를." -우찌무라 간조의 일기-
14740 1987. 6. 17 (수)
매우 매우 괴로운 몸뚱이.
기침, 뒷꽁무니 견디기 힘든 통증.
과연 뒷꽁무니는 낫고 있는 건가? 의사는 차츰 통증은 사라질거라는데. 왜 이렇게 아픈건가? 불안하고 불쾌하다. 게다가 감기 몸살이라니! 치미는 욕지기.
내게 크리스찬으로서의 덕이 너무나 없음에도 절망하고. 나는 지금 영육 공히 무질서하고 불결하다.
14741 1987. 6. 18 (목)
발작적인 기침, 기침할적마다 움찔움찔 자극되어 바늘로 쑤시는듯한 뒷꽁무니의 통증, 그르렁 그르렁 가래 끓는 호흡, 머리를 들면 기 증, 배변시 극도의 아픔.
참으로 엉망인 몸뚱이의 상태이다.
새벽, 책상 앞에 앉아서.
영험한 바위 앞에서 비는 노파처럼 기도한다.
콜록거리며 그르렁거리면서.
빨리 낫게 해 줍시사고.
신태규 내과와 동인의원 다녀 온다.
거리에는 매운 최류가스 연기 자욱하고, 파출소는 파괴되고, 보도에는 구호가 씌여 있다.
14746 1987. 6. 23 (화)
자심한 뒷꽁무니의 통증.
독하디 독한 기침 약을 복용해서 그런지 배변할때의 고통은 어이없을 정도의 아픔이다.
오늘 어찌 하루의 직장을 견뎌낼수 있을까?
병이여, 병이여. 이제 그만 놓아다오.
14749 1987. 6.26 (금)
새벽 엎드린채 기도.
기침은 좀 가라앉았으나 가슴 어딘가 기침벌레의 스멀거림은 여전하다.
오늘 평화대행진.
일촉즉발.
전두환씨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다.
저 똥배짱을 누가 뻥하고 빵꾸를 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14752 1987. 6. 29 (월)
경천동지할 사건.
전두환씨 100% 항복, 노태우씨가 발표하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씨 사면 복권, 언론기본봅 폐지, 구속자 석방, 구속적부심 확대실시, 교육 자율화.
모든 이슈를 단번에 해결하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고난을 겪었단 말이냐?
이제부터다.
어느 누구라도 또 건방져저서는 안된다.
이것은 모두 국민의 공로이니까 그 어느 누구라도 건방저서는 안된다.
아, 나의 병도, 기침아 통증아 더불어 사라저라.
14753 1987. 6. 30 (화)
다소의 늦잠으로 청정한 새벽을 맞지 못하다.
이름없는 여인의 수필집. 소담이라는.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질질 끌어내려 나와 비슷하게 해 놓고 싶고,
나보다 못한 이를 보면 냉혹할 만큼 저 아래에 놓고 무시해 버리려는 심사.
자기의 자로, 그 알량한 자기의 자로 남을 재어 보는 자, 그리하여 안절부절, 혹은 우쭐우쭐..
남을 진실로 칭찬하는 사람의 아름다움.
내 주위에도, 그 회색빛 공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건조한 인품이나 단세포적 인격 속에서도 아름다운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나의 자가 건조하고 단세포적이고 회색빛일 뿐이다.
내 스스로가 칭찬과 기쁨과 감사를 갖고 있지 않은데 무엇으로부터 그런 것들을 느낄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내 주위에 배치하여 놓으신 모든 것들은, 내게는 넘치도록 풍요로운 것이고 내게는 벅차게 감사한 것들이다.
상헌이여. 벗어나려 하지 말라. 도피하려하지 말라. 변케 하라. 너의 시각을 변케 하라. 선택의 폭이 너무나 좁은 여건이라고 투정치 말라. 그 좁다고 생각하는 모든 객체마다 주님의 뜻이 있지 않다고 어찌 장담할수 있느냐?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노예적 의지'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강해' 구입.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성서의 지혜와 사상' 구입.
남포동 탈무드 서점의 덤핑 책중에는 귀하고 성실한 책도 제법 많다. 눈만 밝으면.
밤중 俊이 두 손을 모두어 잡고 기도.
"제 아들에게 유우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어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맥아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