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54 1987. 7. 1 (수)
새벽 기도.
아버지 하나님. 육체를 뛰어넘을수 없는 정신, 환경의 테두리를 뛰어넘을수 없는 정신,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암시를 극복할수 없는 나의 정신.
내게 주신 어떤 탈란트가 있다면 주님이시여, 그 탈란트를 주신 소명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세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주소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수 있는 큰 일을 하게 하소서.
아니면 주님이시여. 내게 주신 탈란트의 왜소함을 깨닫게 하소서. 능력의 한계를 절감케하시어 주어진 환경과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여 늘 감사토록 하시고 늘 온유한 마음으로 자족의 도를 배우게 하소서.
J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고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맛볼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내게 주신 탈란트를 십분 활용할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이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아비가 되도록 그에 필요한 탈란트를 발휘하게 하소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
<밤>
비교적 경건을 되찾은 하루.
헨리 모리스 '성경과 현대과학' 또 읽다.
창조론의 정당함을 입증하는 물리학의 에너지보존의법칙(질량불변의 법칙)과 엔드로피 증가의 법칙.
진화에 의하여 종이 창조될수 있는가, 적자생존에 의하여 우성한 쪽이 우성한 쪽을 향하여 진행하는가, 역사는 나아갈수록 나아지는가에 대하여 위의 물리학의 법칙은 부정한다.
진화론의 헛점은 너무도 많고, 현상을 증명하지 못하고 상상이나 추론에 의하여 연결고리를 꿰 맞추고 있는 오류도 서슴치 않는다.
또한 성서고고학에 의하여 밝혀지는 구약 내용의 역사적인 사실.
성취된 예언들, 또는 내적인 증거들.
오만한 현대 인간의 품성은 절대적인 근거없이 성서를 논박한다.
그러나 성서는 말이 없고 오직 성서로서, 그 자신으로만 스스로를 증거할 뿐이다.
그 성서 자신의 증거에 심령의 감동이 작용하면 비로소 신앙은 탄생한다.
앞으로는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적인 논문들은 되도록 멀리하련다.
나같이 부박한 신앙인에게는 그것은 유혹이다. 어설픈 모더니즘에 순치된, 논리에 허약한 그 약점을 꼬드긴다. 영혼이 오염될 소지를 너무 많이 갖고 있다.
나의 하나님은 그런 것들이 합리화할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하고 물어서는 안된다. 어거스틴처럼.
결코 안된다. 나는 인간일 뿐이다.
이것의 깊은 자각으로부터 신앙은 출발하는 것일게다.
14756 1987. 7. 3 (금)
어제밤 홀로 술.
맛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그저 타성처럼 술마시기.
술로 마비코자 하는 몸뚱이의 불편함.
아침이면 더욱 악화될줄 뻔히 알면서 하는 미련퉁이 짓거리.
아침녁.
기침벌레는 계속 발악하고 뒷꽁무니는 쓰리고 쓰리다.
수술후 계속되는 최악의 육체 컨디션.
의사는 아프지 않을거라는데 어찌 이리도 아프단 말인지.
이렇게 하혈하고 아프다가 종장에는 멀쩡히 낫게 되리라고 믿을밖에...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 -이사야 41장-
14757 1987. 7. 4 (토)
나의 주님은 긍정이시다.
아픔과 고통까지도 포용하시는 절대 긍정이시다.
비 흩뿌리다. 장마철.
신조선 계약물량은 넘치고. 매출목표의 초과달성은 무난할 듯. 당기순이익은 다소 모호.
나는 지금 회사에 기여하는바가 있나? 요즘 참 농땡이다. 밑의 직원들만 볶아대는 형국이다.
14758 1987. 7. 5 (일)
일요일.
기침벌레는 거의 박멸되는가? 훨씬 나아지다.
다만 뒷꽁무니 아픔만.
맑은 날씨.
끊임없이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뒷꽁무니 통증.
그리고 나의 오전은 보오들레르적 도취와 일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긍정이시다. 이 노오란 일락까지도 포괄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늘 코에 걸어서는 아니되고 아니된다.
단지 이런 것으로 자기모멸과 같은, 하나님을 벗어나고 있다는 절망감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한번 경건을 잃고 피흘려 쓰러지면,
그 회복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참담하기 때문이다.
<밤>
숙직근무, 숙직원 이상인에게 맡기고 집으로 땡떙이.
교회사 요약한 책 읽다.
치열한 기독교의 교회사, 교리사, 사상사.
이것이 곧 서양의 역사, 세계사의 주류이며 또한 사상,철학,정치,경제등 모든 분야의 핵이다.
그 장대한 역사 속에는 지금의 내가 고민하고 의심하고 천착하는 모든 문제들이 이미 체험되었을 것이다.
싸우고, 죽이고, 죽고.. 화형, 찢어 죽이고, 민족이 민족을 노예로 만들고, 사람을 신으로 만들고.... 역사는 무엇인가?
그 들끓는 도가니와 같은 역사은 오늘날 무엇을 창출했는가?
시대정신은 늘 새롭고, 도덕 윤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정립되는 것 같아도 결국 역사를 줄곧 관통하여 일관하여 흐르는 것이 있다. 그것을 찾을 일이다.
생각컨데 나와 같이 생각하고 나와 같은 자의식을 갖고 있었던 역사속의 필부필부가 무릇 기하겠는가?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역사는 주님의 예정이다. 나는 한 개의 질그릇이다.
14759 1987. 7. 6 (월)
용접공 한명.
신조선 Double Bottom Block 용접중 감전사. 아직 젊고 젊은 나이.
이 산업사회, 경제 제일주의의 사회에서 그의 죽음은 단지 얼마짜리 보상이냐로서만 처리될 것이다.
산업사회, 개발우선이라는 이 환경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사람 냄새는 점점 사라지고, 삭막한 계산 만이 모든 관계를 결정짓는다.
영도의 아름다운 산을 갉아 먹으며 점점 침식해 올라가는 아파트군. 저 푸른 바다를 메꾸어버리는 폭력은 하나님 창조에 대한 파괴이다.
사람 밑에 종속되어야 할 가치들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인간성이란 질식 할 것만 같다.
이 와중에 사람들은 두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아주 당연하게 이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즐기며 능동적으로 행위하는 자와 어쩔수없이 부자연스럽게 끌려가며 서서히 순치되는 무리.
나는 물론 후자이다.
더욱 더욱 종교가 필요하다.
정신적인 숨통은 이제 그곳에서만 트일수 있을 것이다.
산업사회를 거부하는 몸짓을 하는 사람에게도 살 권리는 있다.
그런 패턴을 추구하고 이룰 권리는 있다.
민주주의란 그런 인간의 권리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14760 1987. 7. 7 (화)
프레파레숀-H란 연고를 사다 바르며 통증을 다스리고 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위험한 여로'. 추리소설.
조금씩 노출되는 복선들, 드디어 반전.
현대 추리소설은 하드 보일드가 제맛이다.
고독, 단순, 직선, 절제, 소외... 현대적 상징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도없는 하루.
14761 1987. 7. 8 (수)
자신의 몸짓을 타인에게 완벽하게 이해시킬수 있을까?
찡그림, 화 냄, 미소지음, 껄껄거림, 울부짖음, 신음소리, 입술가의 미미한 경련, 어깨를 들썩거림...에 대하여.
타인은 그저 그 몸짓에서 정형화된 어떤 상징으로 추론하여 파악할 뿐이다.
그 몸짓 뒤에 숨어있는 진실한 감정모체의 진실은 모를뿐더러 관심도 없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감정모체의 진실을 눈치챈다는 것인데...
14762 1987. 7. 9 (목)
극심한 뒷꽁무니의 통증, 그러나 동인의원은 가지 않는다.
아프다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대하는 의사.
그러나 내일쯤 가야겠다. 이 통증을 강하고 심각하게 그에게 어필해야 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
작위적인 캐릭터의 설정이 필요없는 영화. 아주 사실적으로 그린 월남전, 그 전장의 지옥화. 부비 트랩,크레모아,정글복,정글화, 엠 16, 시레이숀, 베트콩, 다낭, 민간인 학살, 증오, 매복, 모기향, ...
1968년도 월남 전선의 그 용어들은 그즈음 군인이였던 내게는 매우 익숙한 용어들이고 개념들이다.
그 때 나도 월남에를 갈까 말까하고 전전긍긍하였다. '맹호라면 빠져야하고 십자성이라면 간다.'
3부두에서 육군병원으로 후송한 그 처참한 불구의 병사들, 그들에게는 포연냄새가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그 기억들이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그 시절 나라는 군바리는 참 어리기도 했지. 단순한 낭만주의의 군바리....
14763 1987. 7. 10 (금)
오랜만에 새벽 기도.
용서를 빌고 간구드리고, 나의 이기심으로 J와 아이들 상처받지 말기를.
이사야.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이사야 12장-
먼지의 디테일만 보일때는 고개를 들고 시각의 초점을 길게 잡아 하늘을 보라.
때로는 하늘, 별, 바다, 혹은 나뭇잎의 흔들림을 보라. 먼지따위 보다는 얼마나 크고 신기하고 아름다운가.
<밤>
어제 이한열 장례식. 전국적으로 대단하다.
무슨 국민적 영웅의 장례식이다.
그렇게 엄청난 의미가 있는 죽음일까?
산자들의 잔치, 일종의 민중적 저략적인 잔치이다.
아마 이한열이란 그 청년의 혼은 저 위에서 내려다보며 쓴 웃음이나 짖지 않으려는지.
내일 새벽 기도하리라.
그 기도가 눈물이었으면.
거칠고 거친, 작년 접했던 그 성경의 세계, 그 감동으로 기도할수 있었으면.
세련된 신앙, 닳고 닳은 신앙, 숙고하는 신앙, 거친 신앙....
이중 거친 신앙만이 감동이다.
14764 1987. 7. 11 (토)
새벽 경건함은 맞지 못한다.
여름 장마.
뒷꽁무니 통증.
톨스토이가 설파한 인생에 있어서의 네가지 血路.
첫째- 무지와 무식, 인생 자체가 악이며 무의미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곧 우매한 자들의 길.
둘째- 쾌락주의에 빠지는 것, 인생에 소망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현재 지상에서의 행복을 즐긴다. 그들의 상상력은 빈곤하기 때문에 실증주의를 일종의 철학으로 단정해 버리므로 이들은 삶에 대한 진정한 의문을 갖지 못한다.
셋째- 원기와 정력으로 맞서려는 것, 삶이 악이고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것을 단숨에 전멸시키려는 태도. 강한 성격을 가진 소수의 사람, 곧 죽음을 단행하려는 사람.
넷째- 소심함, 인생이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알고 적당히 유지해 나가는 것, 어물어물 하루를 유지해 나가는 것, 약자의 처세.
나는 두말할 나위없는 넷째번의 혈로른 추구하는 종류의 사람.
어느 떄 나는 철두철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될 것인가. 모든 것의 시작이 하나님이고 모든 것의 끝장이 하나님이 되게 할수 있을까. 언제 아버지 나의 하나님하고 부르짖으며 희열에 떨어, 나를 초월할수 있을까.
꽁무니가 나은 다음에, 아내가 신앙을 갖고 나서, 俊이가 좀 더 자란 다음에, 좀 더 부요한 가정이 된 후에, 나이를 좀 더 먹은 후에, 여유를 좀 찾은 다음에...
왜 지금은 안되는가?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는 안되는가 말이다.
14765 1987. 7. 12 (일)
주룩주룩 비내리는 휴일.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스며들 듯 적시는 감상의 편린, 마치 유행가가사처럼.
그 조각을 보듬어 안고 일락에 젖는다는 것은 행복이다.
한가로움, 마음의 여유...
꽁무니는 아프지만 발톱깎고, 구두닦고, 방을 정리하고, 목욕한다.
그리고 소주 한병의 나의 책상.
전등갓이 만들어 주는 동그라미의 빛의 테두리.
참으로 행복한 동그라미.
그 테두리 속에 술과 한권의 책, 그리고 슈베르트.
14767 1987. 7. 14 (화)
배변은 고통이면서도 쾌감이다.
배변시의 극심한 통증과 출혈, 그러나 배변의 쾌감이 그 고통 속에서도 묻어 나온다.
항문열창이 아닐까? 아직 여물지 못한 수술의 상처를 배변시 자극하여 상처를 깊게 하는..
그러나 변비약을 먹으며 변도 그다지 굳지 않은데.
도무지 아파 죽겠다.
그리고 나는 의사를 불신한다. 내 생명의 리듬은 오직 나만이 느낄수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는 것이다.
이 새벽, 기도는 없었다.
<밤>
오후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비.
KR의 검사관 김규성씨. 오늘 새벽 1시 술취한채 차몰고 가다가 트레일러와 부딪처 즉사.
그토록 건강하고 KR검사관중 가장 인간미 풍부한 나와 동갑나기 김규성씨.
감전사한 용접공 가족들 회사에 찾아와 농성.
밀고당기는 협상이 필요한 하나의 주검.
합리적으로 아무런 갈등없이 풀어가는 방법이 없는 건가?
주검 앞에서 다소곳이, 엄숙한 슬픔만으로 주검을 보낼수 있는 사회계약적인 어떤 방법의 도출은 불가능한가.
폭력과 큰 목소리의 배짱있는 흥정이 보상금을 높이는 구조이니.
이한열의 죽음과 김규성씨의 죽음과 이름없는 용접공의 죽음.
정치적 질곡에서 저항하다 죽은 죽음과 교통사고의 죽음과 산업사회에서의 죽음, 자살이 아닌 것은 모두 타살이라고 볼 때 이들의 죽음의 값은 동일하다.
정치적 타살과 물리적 타살과 산업사회의 타살.
밤. 찬물로 俊이와 목욕.
발가벗어 더욱 예쁜 아들녀석의 고추.
쑥찜기의 쑥찜, 기분이라도 한결 개운하다.
항문질환에 대한 책자를 보니까, 어쩌면 내가 받은 그 수술방법에서 오는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항문협착증, 항문을 넓히는 외과적 재수술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좀 더 상태를 지켜보자.
14769 1987. 7. 16 (목)
밤 12시부터 으르렁거리는 바람소리.
태풍 셀마는 기어코 부산을 때렸다.
아침, 출근길의 하늘은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푸르르다.
가로수가 뿌리째 뽑혀나가고, 담이 무너지고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도 많은 피해.
설계부 지붕이 날아가고, 계류선박들 외판 데미지 그리고 2공장 Dock Gate가 이탈하여 가라 앉았다. 상무이하 전원 밤새 비상대기, 말할수 없이 미안한 마음.
전국 200명이상 사망 실종...
<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지옥의 고통을 맛보았다.
동인의원-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나 의사의 표정은 실패한 수술임을 말해주고 있다. 아마도 항문협착증이 맞는 모양이다.
항문넓히기- 수술칼로 그 예민한 부위를 난도질을 하더니 방맹이같은 기구를 쑤셔 넣는데... 끔찍한 고문, 비명을 지르다 지르다 나중에는 숨이 컥컥 막혀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한시간여 그런 고문을 받다가 어서 여기서 도망치자는 생각에, 의사와 간호원은 고문을 가한후 피하였는지 수술실은 텅비어 있는데, 엉금엉금 기어서 그 고문장을 탈출한다.
아, 돌팔이여, 2개월에 걸친 그 긴 고통의시간, 직장에서 가정에서의 불성실과 신경질로 타인을 괴롭힘, 경제적 낭비.... 게다가 오늘 극을 달리는 고문, 앞으로 외과적인 재수술,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나?
부근 다방에 한참을 앉아서 고통의 흔적을 다스리고 겨우 택시불러 타고 돌아오다.
그러나 J는 내 고통에는 전혀 아랑곳없을뿐, 그저 병원선택등 손해에 대해서만 탓하는 잔소리.. 그것이 이제 나를 마음까지도 고통속으로 몰아 넣는다.
다만 俊이만이 걱정스런 눈길로 온갖 아빠 수발 들어준다.
5월부터 시잣된 나의 불운함에 기가 막히고 하여 조금 울다. 어엉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데.
14771 1987. 7. 18 (토)
거짓말처럼 무사한 회사의 하루 일과.
진통제 덕이다.
태풍의 피해보고서, 보험처리 내역도 별도로 작성.
퇴근길. 어머니와 함께 영도병원, 외과과장.
자세히 뒷꽁무니를 진찰하더니 항문확장수술은 지금으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핑거마사지로 그 통로를 계속 넓혀주라고.
이제 이 한밤.
정신을 다스려 고통을 긍정한다,
동인의원 건도 잊어 버려라.
당연한 나의 통증으로 수긍하라.
아픔의 리얼리티를 철저히 경험하라.
그 아픔이 너의 다큐멘타리가 되어라.
프란치스코처럼 '아픔 형제여.' 할수 있도록 하라.
나의 하나님 이 아픔으로 다소라도 높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린도후서 12장-
나를 만드신 분께서는 반드시 내가 견딜수 있을만한 분량의 고통을 주실 것.
14773 1987. 7. 20 (월)
배변후 몸부림 칠 통증의 소요시간을 감안하여 꼭두새벽에 기상.
엎어진채 통증을 다독거리며 기도.
기도와 아픔.
마음의 한편에서는 간구의 언어가 흘러나오고, 또 몸뚱이의 한편에서는 맹렬한 아픔이 척추를 자극해 뇌를 때리고 그것이 욕지기의 언어가 되어 마음 한구석에서 군시렁거리고 있다.
기도와 욕지기라니. 이것이 선과 악의 격전장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얼마나 참담한 노릇이냐.
14775 1987. 7. 22 (수)
또 하나의 태풍이 저 남쪽바다에서 세력을 만들고 있다고.
P이사는 나를 다른 부서로 쫓아보내고 싶어 한다.
수리선부,조선부, 2공장등으로 전보된다는 풍문도 떠돈다.
현업부서의 고달픔을 작금의 이 참담한 육신으로 버티어낼수 있을지 미상불 걱정이다.
모든 것들, 내 주님께 기도하자.
14776 1987. 7. 23 (목)
잡다하고 잡다한 꿈, 꿈, 꿈.
그러나 하나님은 꿈속에 나타나 주시지 않는다.
찬송가 가사 '주여 어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내 꿈 속에 주님이 등장하실때는 내가 너무나 단잠을 이루어 아무 것도 꿈꾸지 않게 될 그때일 것이다.
잠을 거의 설처버린 새벽.
뒷꽁무니의 아픔으로 엎푸러저 기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 2장-
<밤>
종일 빗발 흩뿌리는데 저 위쪽 지방은 호우로 수백명 사망, 금강이 범람하고.
"만군의 주여. 우리를 당신께로 돌이키시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이시옵소서. 그리하여야 우리가 구원을 얻겠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당신없이, 어디로 향하던지 당신이나 영혼이외에 어떤 아름다운 것에 부착할지라도, 그 영혼은 괴로움에 붙잡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께로부터 생기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들은 생성하고 소멸합니다. 그들은 생성하면서 존재하기 시작하여 성장하여 자기완성에 이르고, 완성되면 노쇠하여 멸망하고 맙니다.
모든 것이 다 노쇠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은 다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발생하면서 곧 존재하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존재하려고 빨리 성장할수록 그만큼 더 빨리 서둘러서 없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당신께서 그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 事物의 세계의 일부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동시에 성립한 것 아니라, 전체는 한꺼번에 오기도 하고 가기도하여 맡은바대로 성립합니다.
그것들은 전체의 부분입니다.
보십시오. 우리의 말도 울리는 소리도 완성이 됩니다. 말 한마디가 울려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뒤를 이어 다른 말이 나올수가 없어서 말 전체를 할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물로 인하여 '내 영혼이, 오 하나님. 세상의 창조주되시는 당신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감관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것을 너무 사랑하여 고착되지 말게 하소서.
이 사물들은 각각 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있지 않게 되고, 부패로 가득찬 욕망으로 영혼을 찢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존재하기를 열망하고 그것이 사랑하는 것 안에 집착해버리려고 갈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물속에 영혼이 쉴만한 곳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오래 존재하지 않고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라서 자신의 감관능력 만으로 그들에게 도달할수 있겠습니까? 누구라서 그것을 파악할수 있으며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포촉할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할수 있도록 창조되어진 일만을 성취시킬수 있을 뿐이지, 일정한 시점에서 일정한 종점까지 달려가는 사물들을 성립시킬수 있는 일은 할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그들이 지어졌거니와 그들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라는 당신의 말씀에 구속되는 것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영혼의 꿀이 되었었던 책들, 때로 그것들은 현실에 있어서 빛이 바래어 버린다.
오직 성경-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빛을 발할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온갖 기술방법을 동원하여, 은유와 직유와 메타포와 난해함으로 언뜻 부조리한 듯 느껴지도록하는 방식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나타내어 진 것, 드러나 버린 것... 하잘것없는 인간의 지식이 느낄수 있는 이런 것은 진부한 것이다.
성경의 그 세계, 거칠고 거친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14777 1987. 7. 24 (금)
새벽. 밖에서는 주룩주룩 비 쏟아지는 소리.
뒷꽁무니의 통증 다독이며 엎드려 요한1서 공부하고 기도.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1서 4장-
14779 1987. 7. 26 (일)
토요일 처제들 오다.
조선공사 농성중.
지금 민주화는 무슨 패션인양 유행이고 중구난방이다.
우리나라 인종은 너무 감상적이고 유행지향적이어서 경박하다.
시대가 한번 변하니 온갖 오합지졸들이 날뛰고 있다.
사상(Thought)은 물론 되지 못하거니와 의견(Opinion)정도도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부화뇌동하는 무리들.
무슨 정의의 목적을 수행하는 엄숙한 과정은 없고 단지 그 떠들석한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는듯한 형상이다.
일요일.
모든 크리스찬은 예배당에 모여 찬송을 하고 예배를 드린다.
이 하루만이라도 정결한 경건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일상의 흐트러진 영혼을 다시 조율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 필요한 행위이고, 실질적으로 그 영혼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결코 요식으로서의 행위가 아니다.
나의 일요일, 엄숙과 경건의 행위가 필요하다. 말씀은 차치하고라도.
14782 1987. 7. 29 (수)
늦잠.
어제는 홀로 과음했는가?
급박한 아침 출근시간, 신경질 터뜨리다.
무더위, 본격적인 여름이다.
조선공사는 저 지경이고 불똥이 튀지 않을리없는 회사의 안사장은 전전긍긍.
한번은 터질 것이다.
루터 읽는다.
루터는 최대의 자유를 가지고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세상을 상대하였다.
그는 커다란 자각에 의해서, 즉 양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에서 그의 자유는 강력한 힘을 얻었다.이것이야말로 그 위대한 생애의 업적의 비밀이다.
인간이 자기본질과 실존의 '뿌리'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 자유는 가능한 것이다.
그 사로잡힘이 깊고 강력하면 할수록 인간이 그 속에서 획득하는 자유는 크다.
그래서 그는 카토릭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 그 자유 때문에.
14783 1987. 7. 30 (목)
하늘은 쾌청하지 않으나 무더운 날씨.
풍문만 요란하고 아직 인사이동은 없다.
현업부서로 가게 되면 승진은 시켜 주겠지.
현업부서에 대한 걱정이 무리일듯한 컨디션이지만, 담대하라. 닥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부딪치라.
원 네, 모레 내려 온다고.
황근이는 낙영, 상곤등과 함께 가족동반 피서 제의.
모든 산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집단행동의 함성을 지른다.
6.29는 몇십년 꽁꽁 묶어 놓았던 목소리들을 일시에 터뜨리게 하고 있다.
국가의 관리란 물리적인 게 아닐것이고 일종의 화학적 요법일 것이다.
루터가 말하는 크리스찬의 자유, 사로잡힘에 의한.
하나님의 예정, 선택받음.
나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닌데, 선보다 악이 날뛸 때 임재하시는 그 의외성.
유전,교육,환경도 크리스찬이 되는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자연법칙, 인과법칙,심리학적법칙은 신앙에 있어서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다.
선한 행위와 그 노력 또한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은혜대문에 나는 신앙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죄의식으로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주 내게 불이익한 것이다.
이것을 연습하자. 죄의식따위는 은혜 앞에 녹아버리는 그 연습.
14784 1987. 7. 31 (금)
며칠째 심한 불면증.
은총의 희열, 그 풍부함이 많이 메마른 증거이다.
나는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거칠고 거친 그 세계로 돌아가야 이 불면증을 치유받는다.
기적을 배척하면 동시에 종교도 배척해야 한다.
나를 비롯한 현대인 대부분의 특징은 기적을 믿기는 쉽지만, 그 기적을 과학의 원리와 함께 믿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리스도의 기적보다도 더 이상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인데, 이 이상한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기적을 믿게 되는 것이다.
아, 나는 스스로가 크리스찬이라고 고백하는 한, 내 스스로가 기적이 되어야 한다. 내 실존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나의 사고,행위,느낌 자체가 기적임을 믿어야 한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느낌이 유지된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 내 존재의 주인이시여.
<밤>
근근히 버티어 낸 하루 일과.
불면 다음의 상태중 극히 나쁜 상태.
차라리 뜬눈으로 꼬박 밤을 세우는 것이 훨씬 컨디션은 좋은데, 어줍잖은 잠 몇시간자려고 이 꼴이라니.
내 육체는 기적이 될 수 없을까?
英 승즌 남매의 다툼.
俊의 뺨을 때리는 아비의 어리석음은 또 어찌할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