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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권 (5)

카지모도 2022. 9.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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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사불성하고 앓고 이교리가 청심환 한 개에 기운이 통하고 가미삼금탕 몇 첩

에 대세가 돌리어서 그날로 드나드는 사람을 알아볼 뿐이 아니라 사람을 보면

머리를 들썩거리며 ‘미안하다’, ‘감사하다’ 말하게 되었다.

며칠동안 이교리가 병을 조리하는 중에 주인집의 일을 자연히 많이 알게 되었

으니 주인의 성명이 양주삼인 것과 봉단이가 주인의 무남독녀로 지금 나이가 18

세인 것도 알았고, 주인의 아우 주팔이가 의약뿐이 아니라 문식이 있는 까닭에

근처 양민들이 백정환자라고 별명지어 부른다는 것과 주인의 처질 돌이가 성이

임가요, 돌이의 아버지가 고원 가서 장가든 까닭에 결찌끼리 고원댁이라고 택호

로 부른다는 것도 알았다.

이교리가 자기는 서울사는 김대건이란 사람으로 어느 대가에서 하인 노릇하다

가 애매히 죄명을 쓰고 쫓겨나서 홧김에 팔도강산을 구경다닌다고 거짓말로 본

색을 감춘 까닭에 그 사람들은 모두 이교리를 김서방이라고 불렀다.

이교리인 김서방이 긴 이야기를 할 만큼 병이 나으니까 김서방의 서울 이야기

를 듣느라고 아랫방에는 사람이 비지 아니하였다. 주팔이는 김서방과 연상약할

뿐이 아니라 유식한 것이 마음에 맞아 2마장이나 되는 아랫말서 하루 두서너번

씩 보러오고, 돌이는 김서방의 언어 거동이 점잖아서 비위에 맞지 아니하나 못

듣던 이야기를 듣는데 팔리어서 매일 저녁으로 놀러왔다.

김서방은 이 집을 떠나서 갈 데도 없거니와 여러 사람들과 정분이 생기고 더

욱이 봉단이가 있는 까닭에 이 집을 떠나갈 마음도 없었다. 봉단이의 어머니가

혹 불시에 축객령이나 놓지 아니할까 속으로 겁이나서 그 여인이 간혹 서울일을

물으면 정성껏 대답하고 또 재미스러운 이야기와 웃을 만할 말로 환심을 사려고

애쓴결과, 가라는 영이 내리기는 고사하고 조밥은 먹을 것이 있으니 몸이 소복

되도록 안심하고 있으라는 특별한 혜택을 입게 되었다.

어느날 초저녁에 그 집 식구들과 주팔이와 돌이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서로 이야기하는데, 이야기거리가 변변치 아니하여 이야기

판이 심심하여지니까 봉단이 어머니가 “김서방을 불러내서 우스운 소리나 좀

지껄이라고 합시다.” 말하고 곧 “김서방!” 부르니 주인이 “바깥에 나와 오래

앉았어도 괜찮을까?” 김서방의 병이 채 다 낫지 아니한 것을 염려하여 말하는

것을 “무얼 젊은 사내자식이 그것쯤 어떨라구.” 말대꾸를 하며 일변 “이리좀

나오.” 소리를 질렀다. 김서방이 “네.” 하고 나오는데 어지러운 까닭으로 걸

음이 비슬비슬하였다.

김서방 나오려는 것을 보고 봉단이는 어느 틈에 슬그머니 몸을 일어 들마루에

올라가서 등잔불을 켜놓고 하다 둔 고리짝을 겯기 시직하였다.

김서방이 나와 앉아서 가끔 들마루 편을 바라보며 봉단이 어머니의 하라는 대

로 또 서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가, 근래 서울은 팔도에서 기생들이 올라와서

계집천지가 되고 서방있는 계집들도 염치가 없어져서 두번 세번 시집을 간다고

이야기 하니 턱을 치어들고 듣던 돌이가 “제기 서울이나 갈까 부다. 장가 좀

들어보게.” 말하여 그 말에 여러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주팔이는 웃으면서 “

여보 김서방, 당신 안해는 다시 시집 못가게 단단히 두고 왔소?” 물어서 그 묻

는 말에 여러 사람은 또다시 웃었다.

김서방은 자기가 3년전 스물여섯까지 돌이같이 떠꺼머리로 있다가 간신히 장

가를 들었는데, 안해의 얼굴이 반주그레한 탓으로 곧 상전 양반에게 빼앗기고

지금은 안해가 없다고 이야기하니 다른 사람은 들을 만하고 있고 돌이는 남의

일일망정 분하여 한다. “여보, 계집을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었단 말이오?” “

그럼 양반을 어떻게 하나?” “양반의 배때기엔 칼이 안 들어가오? 양반을 어떻

게 하나라니 당신의 키가 아깝소.” 김서방은 안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웃었다.

그럭저럭 이야기판이 식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던 주팔이는 너무 아래

바깥에 나와 앉아서 몸에 이롭지 못하다고 김서방을 권하여 방으로 들여보낸뒤,

김서방이 안해가 없다니 사위로 얻으면 어떻겠느냐고 형수와 형에게 말을 비친

즉 형은 대답이 없이 그 형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형수는 말없이 고개를 외칠 뿐

인데 돌이가 “누이를 갖다가 또 빼앗기라고?” 분기가 남은 어조로 말을한다.

그리하니까 주팔이는 “너는 잠자코 있어라!”

돌이를 제지하고 형수의 기색을 보며 “이 담날 다시 이야기합시다.” 뒤를

두고 말을 그치었다.

 

5

며칠뒤에 주팔이가 조용히 형과 형수를 대하여 사윗감으로 김서방보다 더 나

은 사람을 고를 수 없을 것이니 불계하고 혼인하라고 권하였다. 주삼의 안해는

사람이 거세기는 하나 지각이 많은 시동생의 말을 남편의 말보다는 더 중하게

여기는 터이라 그 권을 받아 “아재 말대로 그년의 혼인을 정합시다.” 말하게

까지 되었는데 주삼이는 그 아우의 권유요, 그 안해의 말이지만 선뜻 허락하기

를 주저하였다.

“나이가 너무 틀려. 스물아홉하고 열여덟하고.” “여보, 데릴사위는 나이 좀

지긋한 것이 좋소.” “형님, 사내 나이 많으면 나중에 같이 늙게 되지요.” 그

안해와 그 아우의 말이 이유는 각각 다르더라도 사나이의 나이 많은것을 좋다기

는 일반이라 주삼이가 나이 틀리는 것을 탈잡다가 말이 몰리니까 “그래도 막중

대사를 그렇게 경솔히 정할 수가 있나. 좀더 생각해보지. 그러고 우선 김서방의

의향이 어떤지도 알아야지.” 저 편에서 장가들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알아보고

서 말하자고 한다. “의향이 무슨 의향이야? 감지덕지할 터이지.” “가죽신에

짚신날이 소용 있나? 김서방도 우리네와는 다른 사람이라 그 의향을 알 수 없

지.” “저는 삼정승 육판서의 자식인가? 무슨 말라죽을 의향이야! 싫다거든 고

만두지.” “그러자니 창피하지.” “우리가 창피한가 제가 고약하지. 다 죽은

것을 우리가 살려주지 않았는가베.” 내외간에 쓸데없는 말이 왔다갔다 하는 것

을 주팔이가 듣다 못하여서 "그것일랑 내게 맡기시오. 내가 창피지 않게 물어볼

것이니.” 하고 말을 가로막고 “지금이라도 물어보리까?” 하고 형과 형수의

얼굴을 번갈아 치어다보니 주삼이는 “아무케나 하려무나.” 고개를 끄덕이고

주삼의 안해는 “그 자식이 두말만 하거든 다리를 퉁겨 내쫓읍시다.” 눈썹을

일으켰다.

주팔이가 아랫방으로 내려가서 김서방을 보고 이 말 저 말 수어하다가 “만일

우리 형님이 봉단이를 당신 준다면 당신이 어찌할 터이오?” 물으니 김서방은

아 입을 벌리고서 한참 대답이 없더니 “어찌하다니요?” 뒤잡아 묻는데, 그

묻는 것이 묻고 싶어 묻는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없이 앉았기가 겸연쩍어서 엄

적으로 묻는 것 같았다. 주팔이는 웃으면서 “봉단이가 싫진 않지만 뒷생각 없

이 선뜻 장가간다든가 어려울것 아니오?” 남의 속을 뚫고 들여다보듯이 말하니

김서방은 한번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치어들며 “나로는 두말할 것이 없소. 날

같은 사람을 줄는지들 모르지.” 말하는데 얼굴에 무슨 결심하는 빛이 보이었다.

주팔이는 “잘 알았소. 이따라도 또 오리다.” 하고 몸을 일어서 나갔다.

이교리인 김서방은 주팔의 말이 아니라도 뒷날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목전

안신하는데 제일 상책이라고 생각하여 두말이 없다고까지 단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쉽사리 단언하도록 결심하게 된것은 봉단에게 마음이 끌리었던 까닭이

다. 주팔이가 형을 보고 “김서방은 두말이 없답디다.” 하니 그 형수가 내달이

말하였다. “그렇지, 당초에 두말이 있을게요” 이리하여 김서방과 봉단의 혼사가

결정되고 주팔이가 날을 받아 칠월칠석날로 혼인 날짜까지 작정되었다.

주삼이 내외는 말할 것도 없고 주팔이와 돌이는 혼인 준비하느라고 여러 날

동안 분주히 지내다가 혼인 전날밤에 들어가 돌마루에 앉아있는 봉단의 옆에 와

서 가까이 앉으며

“봉단아, 너는 내일이면 어른이구나. 어른 되었다고 오래비 대접을 조금이라도

나쁘게하면 네 대신으로 김서방을 경쳐놓을 테다!” 너털웃음을 웃고서 “이애

그러나 저러나 김서방이 안해가 없다더니 그것이 멀쩡한 거짓말이래. 네가 첩노

릇할 일이 딱하다.” 봉단이는 김서방과 혼인을 정하게 된 것이 마음에 싫지는

아니하여도 김서방이 안해가 있지 아니한가 의심은 없지 아니하던터라, 지금 돌

이의 말이 자기를 조롱하는 시없은 소리인줄은 알지마는 그 의심은 속으로 더하

여졌다.

 

6

그날 밤에 봉단이가 자다가 갑자기 병이 났다. 날은 거의 샐 때가 되었는데

봉단이는 머리를 동이고 누워서 앓는 소리를 그치지 아니하니 주산의 안해는 “

이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법석을 벌이고 주삼이는 “공교한 일이지. 평일에

병이 없던 아이가 하필 혼인 전날 밤에 병이 나다니 내일 대사는 다 지냈다. 할

수 없이 날짜를 눌리는 수 밖에 없다.” 쓴입맛을 다시고 또 주팔이는 “신열이

좀 있어도 대단치 아니하고 맥은 아무렇지도 아니한데 괴상스럽다.” 의심을 마

지 아니하였다. 부모와 삼촌이 모두 봉단의 좌우에 둘러 앉아 그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무엇이 체했느냐, 속이 아프냐?” “감기가 들었느냐, 머리만 아프냐?

” 여러 가지로 물어보아도 봉단이는 대답이 없었다.

나중의 주삼의 안해가 “뜬것이 들린 것이오. 그렇기에 이렇게 갑자기 병이

나지.” 말하자, 봉단이가 별안간 정신기가 좀 나는듯이 그 어머니를 치어다보며

꿈을 꾸고 병을 얻었으니 뜬것이 분명하다는 뜻을 말하였다. “무슨 꿈이냐?”

“꿈 이야기 좀 해라.” 다투어 말하는 그 아버지나 삼촌은 본체만체하고 봉단

이는 “어머니!” 불러가지고 “아까 꿈에요.” 하고 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늙은 할망구 하나가 날이 시퍼런 칼을 쥐고 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년

너를 죽이러 천리길을 쫓아왔다.’ 대번에 호령합디다. 무서운 마음을 참고 ‘무

슨 죄인지 죄나 알고 죽어지이다’ 빌며 말하니까 ‘내 딸이 있는데 내 사위를

빼앗아 가는 년은 죽여 마땅하다!’ 또 호령합디다. 부끄러운 마음을 참고 ‘저

의 부모가 안해 없단 말을 듣고 정한 일이랍니다.’ 발명하니까 ‘거짓말을 곧

이듣다니 죽일 년이다!’ 여전히 호령합디다. 그제는 마음에 좀 분한 생각이 나

서 ‘거짓말을 했든지 곧이를 들었든지간에 내게야 무슨 아랑곳이 있겠습니까?

” 말을 불쾌히 하였더니 ’요년, 무슨 앙탈이냐! 죽어봐라!‘ 소리를 지르며 칼

을 들고 달려듭디다. 잠이 깨면 곧 한전이 나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지금

도 머리가 정신없이 아파요.“ 병난 사연을 말하여 꿈 이야기를 마치었다.

“가위가 눌렸던 것이구나.” “의심을 하면 울타리에 널린 치마가 허깨비의

옷자락으로 보이는 법이야. 네가 의심을 가졌던 것이지.” 주삼의 형제가 봉단에

게 말하고 있는 틈에 주삼의 안해는 몸을 일어 방 밖으로 나갔다.

한참동안이나 지나도 다시 들어오지 아니하니까 주팔이는 그 형수가 김서방의

방에 가서 해거를 부리고 있지 아니한가 의심하여 “아주머니가 어디를 갔을까?

나가 보고 오리다.” 하고 방에서 나오다가 마침 그 형수가 무엇을 두 손에 들

고 삽작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부정 풀러 가는 줄을 짐작하면서 그 뒤를 따라

갔다.

주삼의 안해는 길가에 있는 어두컴컴한 풀밭머리에 가서 동향하고 서더니 “

물 우에 김첨지 물 아래 김낭청 동무들과 같이 가소, 걸게 먹고 빨리 가소, 가지

않고 지체하면 , 엄나무 말뚝 무쇠 두멍에, 세상 구경 못하리니, 여율령 어서 가

소 쉑쉑. ”하면서 바가지에 담은 묽은 조죽을 내끼얹고 또 왼발을 구르면서 식

칼을 세 번 내던지고 그리하고 돌아서 들어온다. “여보 아주머니!” 주팔이가

부르니 “에구 깜짝 놀라겠구려!” 하고 우뚝 선다. “김낭청이고 김첨지고 고만

두고 나를 따라 김서방한테나 가봅시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말을 듣기만 하시오.

그리하여 수숙이 같이 아랫방으로 와서 자는 김서방을 깨워가지고 주팔이가

봉단의 병난 이야기와 봉단의 꿈 이야기를 대강대강 말하고서 “의심이 있었던

까닭에 꿈도 꾸고 병도 난 것이니 그 의심을 풀어주어야 할 터인데...” 하고 수

단 없는 것을 걱정한즉 김서방은 자기의 안해를 상전에게 빼앗긴 것은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는 사실이라고 중언부언하고 만일 이것이 거짓말이면 발설지옥에

떨어져 죽어도 한가를 아니한다고 맹세를 치며 말하였다. 주팔이는 “우리야 어

디 의심하오마는 나이 어린 계집애라 그렇소그려. ” 하고 도로 나와 윗방으로

오는 길에 그 형수에게 말하였다. “지금 들은 말씀을 한마디 빼지 말고 봉단이

에게 들려주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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