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주팔이가 형수와 같이 방으로 들어와서 봉단을 보고 “아까와 좀 어떠냐?”
물으니까 봉단이는 말이 없고 주삼이가 “앓는 소리를 아니하니 그만한 것 같
다.” 하고 대신 대답하였다. 주팔이는 형수를 돌아보며 “죽 쑤어 버린 효험이
당장에 났습니다그려. 그렇지만 김서방의 맹세만은 못하리다. 김서방의 말을 좀
자세히 들려주시지요. ”
봉단의 어머니가 김서방이 맹세치며 하던 말을 다소간 보태어 옮기었다. 봉단
이는 스르르 눈을 감고 혼곤히 잠이 든 것같이 누웠더니 혼인날인 칠석날 아침
해가 높이 돋았을 때, 씻은 듯 부신 듯 일어났다.
“대사를 받은 날에 지내게 되니 불행중 다행이다.” “네년의 덕에 잠 못자
고 눈이 아파 죽겠다. ” 기뻐하는 부모를 대할 때는 봉단의 얼굴에 미안히 여
기는 기색이 많았으나 “김서방의 맹세가 당약이다.” 조롱하는 삼촌을 볼 때
에는 봉단이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여 얼굴을 붉히었다.
해가 미처 한낮 때 못 되어서 초례청의 준비도 다 되었고 신랑 신부의 치장도
다 되었다. 준비니 치장이니 하여야 별것이 없었다. 주삼의 내외가 주팔의 주장
을 좇아서 여간 것은 모두 제폐하였다. 마당에 차일 치고 멍석 위에 새 돗 펴고
돗자리 위에 주팔의 글씨로 도지단 복지원이라 써붙이고 정한 사발에 정화수를
가득히 떠서 깨끗한 소반에 올려 놓은 것이 초례청의 준비이었으며, 망건을 쓰
고 초립을 쓰고 청베 도포에 붉은 술띠를 둘러 띤 것과 큰 다리 작은 다리를 꼭
지꼭지 한데 묶어서 큰머리 명색을 틀어 얹고 한삼 달린 겹저고리에 긴 치마를
늘인 것이 신랑 신부의 치장이었다.
또 대사를 지내는 주삼의 집이 외딴집일 뿐 아니라 가근방에 사는 주삼의 결
찌가 많지 못하던 까닭에 대사의 구경꾼도 몇 사람이 못 되었다. 말하자면 구메
혼인이나 별로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초례 절차도 주팔이가 간단하게 정하여 그날로 초례청인 마당에서 교배를 마
치고 신방인 건넌방에서 방합례를 지내고 그날 밤으로 신방을 차리게 되었다.
해가 지고 저녁밥이 끝난 뒤에 신방에는 황초 한 쌍을 켜서 놓고 떡과 고기를
늘어놓은 상 한상을 차려놓고 나이 지긋한 여인 하나가 신부를 데리고 들어와서
일어섰던 신랑과 마주 대하여 앉히어 놓고 문을 닫고 나갔다.
이교리인 김서방은 연분이란 정한 것이 있는 게다. ‘북방길’이 이 연분을
가리킨 것이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어여쁜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고 앉았다가 신
부에게로 가까이 가서 정수리를 누르는 큰머리를 떼 내려주고 빙그레 웃으면서
신부의 발을 끌어낸다. 맨발질하던 마당발이라 버선이 모양 없다. 신랑이 발을
잡고 버선을 벗기려고 하니 신부는 치마 밑으로 오므렸다. 오므리면 끌어내고
끌어내면 오므리고 신랑은 가도를 이 발에서 세우려는 듯이 짐짓 끌어내고 신부
는 편심을 이 발로 드러내려는 듯이 굳이 오므린다. 바깥에서 이 모양을 엿보던
신방 지키는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여 낄낄 소리를 내니 김서방은 한번 소
리를 내어 웃고 발을 놓고 일어서서 부집게로 촛불들을 집어 끄고 부스럭부스럭
신부의 옷을 벗기었다.
이튿날 돌이가 일지 중 젊은 사람을 두서넛 데리고 와서 ‘자리보기’한다고
한참 동안 야단법석을 벌이었다. 김서방의 족장을 때려 색시 훔친 죄를 물어보
겠다고 돌이가 얼쩡거리다가 “신랑 다는 것이 총각놈에게 당치 않은 일이다.
” 고모에게 야단도 만났으려니와 김서방같이 큰 사람에게 손걸기가 엄청나서
“족장만은 용서하자.” 그만두고 김서방과 봉단이를 등을 대어 묶어놓고 갖은
조롱을 다하였다. 돌이의 법석 바람에 주삼의 집의 술 몇 병, 떡 몇 그릇, 도야
지고기 몇 접시가 없어졌다.
혼인 지내고 오는 손님을 치른 뒤에는 주삼이가 김서방을 데리고 가근방에 사
는 일지를 찾아보러 다니었다. 그리하여 김서방은 주팔의 집에 가서 쇠가죽 다
루는 것도 구경하고 돌이의 집에 가서 돌이의 늙은 아버지에게 버들 벗기는 법
도 이야기 듣게 되었다. 돌이의 어머니는 골골하는 병객이나 돌이의 아버지는
육십 넘은 늙은이가 기운이 좋아서 젊은 사람만 못지 아니하던 것이다. 그 기운
좋은 늙은이가 김서방을 보고 “돌이란 놈이 집에 좀 붙어 있었으면 나도 나다
닐 틈이 있겠는데 병객 하나만 남겨두고 집을 비울 수가 있어야지. 틈 있거든
놀러와서 재미있는 서울 이야기나 좀 들려주소. 나도 시골 이야기를 들려줄 것
이니. ”
돌이 아버지는 고담이 일수라고같이 갔던 주삼이가 김서방에게 말하였다.
8
며칠이 지나지 아니하여서 봉단이가 남 보는 데서는 김서방과 서로 말을 하지
아니하여도 단둘이 있어서는 정답게 속살거리고 더욱이 베개 위에서 이야기할
때는 재미가 참깨같이 쏟아졌다.
어느 날 저녁에 김서방이 주팔에게 놀러 갔다가 밤이 든 뒤에 돌아오니 그의
젊은 안해가 마당에 맷방석을 깔고 혼자 앉아서 동고리를 만들며 기다리고 있다
가 삽작문을 열어주면서 “인제 오세요?” 인사하고 뒤를 따라 들어오며 “내가
하든 일을 조금만 더하면 끝을 마치겠으니 먼저 방에 들어가 주무세요.” 하는
것을 김서방이 “좀 있다 같이 들어가지.” 하고 머리에 동였던 수건을 끄르고
면빗질을 하며 안해가 일거리 잡는 옆에 와서 가까이 붙어앉았다. “혼자 앉았
기 무섭지 않아?” “무섭긴 무에 무서워요.” “도깨비. ” “나는 도깨비를
본 적이 없는데요.” “그러면 호랑이.” “호랑이도 말만 들었세요.”
이렇게 입으로 말대답을 하면서도 손은 여전히 재빠르게 놀리어 동고리 테가
한 테 두테 늘어가니, 김서방이 이것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묻는 말이 “하룻밤
에 동고리를 서너 개 만들 수 있소?” “서너 개를 어떻게 만들어요. 내가 남의
두 몫 일을 한다고 남들은 칭찬하지만 긴긴 밤에 한 개 반이나 만들까요.” “장인 장모는 초저녁부터 끼고 자는 것이 일이신가?” “당신은 별걱정을 다하시오.” 봉단이는 잠깐 남편에게 눈을 흘기었다.
밤이 으슥하여질수록 바람은 더욱 선선하고 달빛은 더욱 밝다. 김서방이 안해
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홑적삼 하나 입고 춥지 않소?” 하고 등을 만져보는 체
하다가 살짝 꼬집으니 봉단이는 가만히 “아야!” 하고 “두 번만 추우냐고 물
으시다가는 사람의 등에 살점을 남기지 않으시겠소. ” 골이 난 모양으로 김서
방을 뒤에 두고 돌아앉아서 김서방이 “잘못했소. 도로 이리 돌아앉으우. ” 청
하여도 들은 체 만 체 하고 부지런히 일만 한다. 김서방이 달을 치어다보며 “
달이야 참 밝다. 별이 하나 둘 셋...”
별 수를 세다가 종시 싱겁든지 그만두고 조그만 버들 끄트럭을 봉단의 볼에
닿을 듯 말 듯하게 쥐고서 “애구 이것 보게. ” 갑자기 무엇을 보고 놀라는 체
하여 봉단이가 돌아보다가 볼이 버들에 찔리었다. 봉단이가 김서방의 버들 쥔
손을 뿌리쳐 치우면서 “점잖지도 못하시우. ” 나무라니 김서방은 “어여쁜 사
람 앞에서는 점잖은 이의 머리가 자라목같이 들어가는 법이야. ” 잘한 체하고
웃는다. 그때 마침 안방에서 기침소기가 나는 것을 듣고 봉단이는 “어머니가
깨시면 잔소리를 하실지 모르니 소리내서 웃지 마시오. ” 나직이 말하였다. 김
서방이 웃음을 그치고 한참 말이 없이 앉았다가 안해의 일이 끝나는 것을 보고
“인제 방으로 들어가지.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치우지. ” 하며 일어서서 버들
채의 흐트러진 것을 묶어서 봉당 위에 세우고 안해더러 일어나라고 한 뒤 맷방
석을 말아서 처마 밑에 들여놓고 다 만든 동고리를 들고 섰는 안해를 뒤로 가서
번쩍 안고 아랫방으로 향하는데 안겨 가는 봉단이는 “이게 무슨 짓이예요. ”
하며 달 아래 그림자를 부끄러워하고 안고 가는 김서방은 “치우자면 이렇게 다
치워야지. ” 하며 다시 웃음을 시작하였다. 방에 들어와서 자리 보고 누운 뒤에
봉단이가 “너무 실없이 굴지 마세요. 남의 눈에 띄일까 봐서 마음이 조마조마
해요. ” 소곤소곤 말을 하니 김서방이 “네, 말씀대로 하오리다. ” 하고 왼손
가락으로 살그머니 안해의 턱을 치어들었다. “이런 짓을 마시란 말이에요. ”
“네, 말씀대로 하오리다. ” 하고 다시 그 손가락으로 안해의 겨드랑이를 간질
렀다. “당신이 하우불이시요그려. ” “상지불이는 어떤가? 문자를 쓰는 품이
백정학자의 교훈이 많으시오그려. ” “학자면 학자이지 백정학자란 건 다 무언
지. 미친 놈들이지. ” “여보, 과하오. 그러면 버들학자라고 할까?” “지각 좀
채리세요. ” “어른더러 지각을 차리라니 버릇없어 못 쓰겠군. 버들학자 좋지않
아? 처음 만날 때 가르쳐 준 것이니. ” “누가 가르쳐요?” “왜 버들잎으로
군호했었지?” “군호는 다 무어요? 딱도 하시오. 그때 당신 모양이 보기에 하
도 황당하기에 급히 자시지 말라고 일부러 버들잎을 띄웠지요. 군호는 무슨 군
호?”
이렇게 내외가 재미있게 속살거리다가 닭 울 때가 되어서 간신히 잠들이 들었
다.
제 5장 게으름 뱅이
1
이튿날 봉단이는 다른 때나 일반으로 일찍부터 기동하였지만 김서방은 늦잠을
자고 아침밥 때에야 일어났다. 장모가 눈살을 찌푸리며 “우리가 화초사위로 두
고 볼 처지가 못 되니까 인제는 일을 좀 해봐야지. 해가 한나절까지 자빠져 잠
이나 자서야 쓰나!” 하고 잔소리 마디나 좋이 하더니 그날부터 일을 시키기 시
작하였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내외가 버들일하는 옆에서 잔심부름을 시키며 고리
를 트는 법, 키를 겯는 법, 이 법 저 법 가르치고 우선 키바탕을 결어 보라고 맡
기는데 처음 솜씨에 시초와 끝은 어렵다고 장인이 겯다 둔 것을 내주었다. 버들
잎을 물고 죽을 처지에 태어나지 아니한 김서방이 팔자에 없는 버들잎을 물게
되니 일이 잘 될 까닭이 없다. 회창회창하게 가는 채를 골라서 뽑다가 분지르고
씨로 먹이는 채를 날로 놓은 노끈에 얽히게 하여 분질러서 키는 한 뼘도 겯지
못하고 버들채는 줌으로 분질렀다. 장인이 이것을 보고 “이 사람 고만두소. 공
든 채가 아까웨. ” 하고 일거리를 빼앗아 가니 김서방은 무안한 것을 감추려는
듯이 “손이 굳어서 잘 되지 않아요. ” 발명하였다. 말썽 많은 장모가 듣지 않
았으면 모르되 듣고서는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라 “손이 아니라 두툼발인가?
방망이로 쳐 이겨서 풀솜같이 만들지 굳은 게 걱정이야?” 김서방을 망신 주고
“아따, 처음이라 그렇지. ” 사위 두둔하는 주삼이를 “처음을 보면 끝도 알지.
사위 봉양하려면 늙게 신세가 고될 판이야. 잔소리 말고 정신이나 차려요!” 두
말 못하게 윽박았다.
이로부터 김서방이 장모에게 박대받기 시작하여 나날이 자심한 구박을 당하게
되었다.
김서방이 잠시라도 편히 앉았으면 그 장모는 없던 심정이 저절로 나는 듯이 무
슨 일이든지 불러 시키고 시킨 일이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욕설을 예사로 내놓
았다. 주삼이도 구경은 안해의 편이라 김서방을 구박할 때는 장모가 선봉대장
격이요, 장인이 후진중군 격이었다.
주팔이가 종종 와서 보고 유세객의 구변으로 형수와 형을 달래지만, 그 힘이
오래 가지 못하므로 항상 봉단이가 김서방을 싸고 도느라고 애를 썼다. 그리하
자니 따라 볶이는 것이 봉단의 신세라 남모르게 눈물을 흘릴 대가 많건마는, 그
래도 남편과 둘이 서로 대하면 웃음도 웃고 실없는 장난도 자아내고 하여 지성
으로 그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김서방은 젊은 안해의 얼굴이 야위고 팔목이 가
늘어지는 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장모의 마음을 사보려고도 하였으나, 살이 끼었
든지 사이가 종시 좋아지지 아니하여 나중에는 나는 나대로 할 터이니 너는 너
대로 하라는 뱃심을 가지지 아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장모가 심악하다고만 말하지 못할 점도 없지 않아 있었으니, 김서
방이 일치고 힘들여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배우지 못한 일을 먹지로 하노라
니 서투르기도 하겠지만, 모든 일을 마음에 하치않게 여기는 것이 남의 눈에 보
이었다. 우선 버들일만 하여도 밤저녁에 봉단이가 손을 붙잡고 가르치다시피 하
였으니 어지간하면 며칠 안 지나서 잘은 못하더라도 시늉만은 내련마는 달포가
지나도록 봉단의 입과 손을 빌게 되고, 나무를 해오라면 종일 산에 있다가 다
저녁때 내려오되 큰 키에 짊어진 나무가 까치집만밖에 아니 되어 봉단이까지 어
이없게 하고 또 거름을 쳐내라면 맞빨이밖에 없는 고의 적삼에 더러운 칠을 하
여 봉단의 수고를 끼치고야 말게 되니 데릴사위로 놓고 보면 주삼의 안해가 아
니라도 장모로 뛸 사람이 없지 아니할 것이다.
김서방이 일손이 느릴 뿐이 아니라 게으름을 부리어서 조만한 잔소리가 아니
면 당초에 일을 잡지 아니하는 까닭에 주삼의 안해가 게으름뱅이라고 별명을 지
어서 김서방을 부를 때에 “게으름뱅이 게 있나?” 하면 김서방도“네. ”대답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삼의 내외 외에는 이 별명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던
것이 차차로 기근방에 퍼져 나중에는 게으름뱅이 사위가 조명이 나서 주팔이까
지도 김서방보고 농담하려면“게으름뱅이 사위. ”부르게 되었다. 이 별명을 입
에 올리지 아니하는 사람은 오직 봉단이 하나뿐이었다.
어느 날 밤에 봉단이가 김서방과 마주 앉아서 수수께끼로 마음을 위로하는데
‘장도 장도 못 먹는 장이 무어냐, 강도 강도 못 건너는 강이 무어냐’ 서로 걸
고 풀고 하다가 김서방이 “뱅이 뱅이 못 쓰는 뱅이가 무언가?” 걸고 봉단이에
게 풀라고 하니 봉단이는 잠깐 양미간을 찌푸리다가 얼른 다시 펴며 “못 쓰기
는 누가 못 쓴대요? 게으른 데는 게을러도 게으르지 않은 데도 있겠지요. 그렇
지 않아요? 그렇지요?” 하고 소명한 눈 속에 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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